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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붕의 사직상소로 인해 직격타를 세게 얻어맞은 건 단연코 호조였다.
지금까지는 야근을 하면 어떻게든 오늘 일을 오늘 안에 처리할 수 있어, 그나마 휴일에는 쉴 수가 있었는데...
"호판 대감, 살려주십시오. 이러다가 죽겠습니다."
"하루 3시진(6시간)만 잘 수 있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군... 하하, 이러다가 안사람이 내 얼굴이랑 목소리를 잊어버리겠어."
김대붕이 있을 때는 방원법 때문에 정신이 없을지라도 호조 관원들이 걸어 다니는 시체처럼 흐느적거리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해결이 안 되는 문제가 생기면 모두 다 황희가 김대붕에게 던져줬기 때문이다.
일감을 받은 김대붕은 방원법을 시작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 지를 정확히 계산해서 결과를 출력해 줬었고, 호조의 관리들은 그 방침에 맞춰서 일을 하면 되었다.
따라서 평시의 2~3배가 넘는 업무 폭탄이 쏟아져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던 거다. 물론, 그것은 며칠 전까지의 이야기일 뿐이다.
호조 내 살벌한 분위기를 뚫고 호조판서 황희가 2인자 호조참판을 불렀다.
"...... 호조 참판."
"예, 대감."
"거기 똑바로 서게."
호조 참판은 과거에 막 합격했던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김대붕이 보았다면 호조 참판씩이나 되는 높으신 분이 자대에 막 전입 한 신병처럼 칼 같은 각을 잡다니 아주 신기해했을 광경이다.
물론, 이 상황을 직관하고 있는 호조 관원들은 속으로 돌아가신 조상님 또는 부처님을 찾고 있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라 양반 사대부가 드러내놓고 부처를 섬기지는 않았지만...
고려가 멸망한 지 이제 겨우 50년이 되어가는 지금 조선 관원들은 내심 불교를 어느 정도 믿고 있었다.
어떤 고리대금업 전문가이자 영의정이신 분은 부처님께 수륙재를 지내느라 백미 5천 섬을 날려 먹었을 정도니 말 다한 거다.
그러니 오늘도 호조 관원들은 습관처럼 부처와 조상님께 빌었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제발 저희를 살려주십시오.'
'조상님 제발... 2대 독자 좀 살려줘요.'
그러거나 말거나 황희는 껄껄 웃으면서 호조 참판을 갈구기 시작했다.
"아, 편히 서 있어도 좋아. 참판도 알지 않나? 내가 무슨 예조판서처럼 꼬장꼬장하게 사소한 자세 같은 걸로 트집 잡을 인간은 아니라는 걸 말이야. 긴장 풀어도 좋네. 긴장 쫙 풀고. 내가 이제부터 묻는 사소한 질문에 제대로 대답만 해주면 된다네."
"소관은 이게 편합니다."
"그렇군. 자, 그러면 내 책상 위에 쌓여있는 이 수많은 공문 더미를 보게. 지금은 일이 바쁜 때라서 공문 더미가 이처럼 쌓이는 건 이해가 되네. 그럴 수 있지."
조선에서 관직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다 알 수 있다. 여기서 이해가 된다는 말은 '이해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을 강조해서 말했다는 것을 말이다.
따라서 호조 참판의 머릿속에는 자연스레 이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오늘 난 죽었다.'
물론, 황희도 내리갈굼의 무서움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 '일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호조 참판을 갈구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말이야... 일이 이렇게 많은데. 요즘 들어 호조 관원들이 자잘한 실수를 많이 한단 말이야. 내가 말이야, 전하께 직접 올리는 거 말고는 형식이나 그런 거 안 지켜도 된다고 하지 않았나?"
"대감의 배려를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말이야. 저기 김 정랑은 방원법으로 백미 18두라고 써야 할 것을 16두라고 떡 써놓았더군. 그 덕분에 계산이 다 꼬여 버렸고. 우리 박 참의는 그 잘못된 숫자로 산관들이 계산한 걸 그대로 나한테 보고했고 말이야."
호조 참판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자기들이 아무리 일에 쫓기고 있어도, 이런 실수는 정말 해서 안 되는 일이다.
만약에 자신들이 계산한 게 틀렸는데, 그걸 태상왕께서 발견하는 불상사가 생긴다?
이건 호조판서인 황희가 찾았기에 천만다행한 일이다.
태상왕부터 시작하는 일 똑바로 하라는 격려(내리갈굼)보다는 호조판서부터 시작하는 격려가 100억 배는 나으니까.
"이거 말고도 숫자가 잘못되고, 내용이 잘못된 게 어디 보자..."
황희의 입에서 호조 본청은 물론이고, 속아문에 소속된 이들의 이름까지 줄줄이 나왔다.
그들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호조 참판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참판."
"예, 대감."
"잘하도록 해야지, 안 그런가. 믿어도 되겠나?"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름이 불린 이들 얼굴은 한결같이 새하얀 백지장처럼 질려 있었다.
그중에서도 황희가 특별히 기대하는 특급 인재 김종서에게는 아주 큰 영광이 주어졌다.
바로 호조판서가 직접 갈궈주는 것이었다.
"김 정랑."
"예, 대감."
"김 수찬이 없다고 자네까지 이렇게 빠진 모습을 보여주면 쓰겠나?"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관직 생활 끝나나? 방원법이 다 만들어져? 내가 나 좋자고 이런 이야기를 하겠나? 이게 다 자네 잘되자 하는 얘기고, 종묘사직을 올바르게 받들기 위해 그런 의미로 하는 이야기지. 다음에 이런 실수를 한다면..."
황희는 지금 이 자리에 없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살짝 담아 김종서에게 엄중히 경고했다.
"앞으로 열흘 동안 김 수찬처럼 굴려주겠네."
김대붕은 호조 관원 6명 몫의 일을 혼자서 해냈다.
그것도 몹시 어렵고, 복잡해서 해결책을 찾는 데에만 며칠이 걸릴지 모르는 일을 그에게 맡기면 그는 반 시진(1시간)도 안 되어서 척척 처리해 냈다. 그런 김대붕처럼 굴린다?
김종서가 맞이할 수 있는 결말은 딱 두 가지였다.
호조의 지박령이 되거나, 호조에서 죽거나.
"죄송합니다, 대감."
"죄송할 일 만들지 말게. 내가 다 자네를 각별하게 생각해서 그러는 거니까, 알지?"
황희는 그렇게 말하고 저쪽에서 호조 참판에게 갈궈지는 관리들을 가리켰다.
욕설만 없을 뿐이지, 아주 뼈가 가루가 될 정도로 털리고 있었다.
"...... 감사합니다, 대감."
"앞으로 잘하게. 열심히 하는 건 소용 없으니... 그냥 잘하게나."
그리고 황희는 붓을 잡은 뒤 문서를 보며 생각하였다.
'김대붕 개자식.'
차마 마음속으로라도 이방원을 욕할 수는 없었기에, 자기에게 이런 업무 폭탄을 던져준 원흉 김대붕을 욕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리워했다. 그가 돌아온다면 호조 관원들에게도 다시 휴일이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쉬고 싶다... 그냥 다 필요 없고 쉬고 싶다... 퇴청하고 싶다..."
관원 모두가 피폐해질 정도로 일하고 있는 호조에서 적막을 깨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하께서 어식을 하사하셨습니다! 어식을 다 드시고 오늘은 이만 퇴청해도 좋다 어명을 내리셨습니다."
호조 관리들은 퇴청해도 좋다는 말을 듣고도 천세 소리조차 외칠 기력이 없었다.
김대붕의 말을 빌리자면 이곳은 그야말로 야근 지옥이었다.
종묘사직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자발적으로 벼슬 생활을 시작한 관리들을 마른 걸레 쥐어 짜듯이 혹사시키고, 이걸 '지속가능한 노동'으로 바꾸는 세종대왕님의 은총이 가득한 야근 지옥 말이다.
**
평화로운 강원도 양구현, 김대붕의 집.
이 집의 가장이자 김대붕의 아버지인 김장익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했다.
명예를 위해서라면 죽음이라도 0.1초 망설이지 않고 택하는 것이 미덕인 나라에서... 벼슬 한 번 안 한 자신에게 임금님의 교서가 내려오다니.
이것은 그야말로 가문 대대로 자랑할 만한 영광이다.
"양구현 유생 김장익은 교서를 받들라."
어명을 전하러 온 선전관의 말에 김장익이 교서를 받들기 위해 무릎을 꿇은 뒤 절을 하였다.
선전관이 교서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아아, 과인은 한 때 동전을 발행하여 백성들을 널리 이롭게 하고자 하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백성을 위하고자 한 일이 백성을 죽이는 일이 될 뻔하였도다. 그러나 과인에게는 충신 김대붕이 있어, 그가 죽음을 무릅쓰고 간언함으로써 과오 범하는 것을 면하였도다."
김장익의 눈에서 눈물이 넘쳐흘렀다.
자기 아들이 과거에 장원 급제하고, 진해 현감으로서 선정을 펼쳐 이름을 날린 것만으로도 감개가 무량할 지경인데...
임금께서 직접 자기 아들 덕분에 과오 저지르는 걸 면하였다 말씀하시니 이것은 선비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자 명예가 아닌가.
그리고 이 시대는 아들의 공이 곧 아버지의 공으로 통하는 시대니... 김장익의 이름 역시 덩달아 높아진 것이다.
이제 이 고을에서 제일 이름 높은 선비 자리는 김장익 자신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김대붕이 자기 목숨을 초개와 같이 불사를 각오로 충언을 올릴 수 있던 것은 네가 엄히 가르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여 과인은 나라를 떠받칠 동량지재이자 충신을 키워낸 김대붕의 부친 김장익 너를 크게 칭찬하고자 한다."
김장익은 결심했다. 이 교지는 앞으로 대대손손 우리 집 가보 1호라고.
"그리고 한 가지 청하고자 하는 것은, 충신 근처에는 늘 모함하는 무리가 있기 마련이라. 김대붕을 모함하는 무리가 있어 그로 인해 대붕의 마음이 많이 상한 것을 과인이 알고 있다. 그러니 김장익은 나라를 떠받칠 인재인 집현전 수찬 김대붕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그를 격려해 주기 바란다. 사소해 보이는 일이나, 과인은 김대붕을 제갈공명과 위징(당 태종의 충신), 악비와도 같은 충신으로 여기고 있으니... 김장익은 진심을 다하도록 하라."
교서를 낭독하는 내내 김장익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런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비장하게 답하기를.
"신 양구현 유생 김장익, 어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리하여 김대붕의 아비 김장익은 어떻게 하면 아들을 잘 격려해서 다시 관직으로 돌려보낼 지를 아내와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김대붕은 부모에게도 사직을 가로막히는 신세가 되었다.
자기 아들이 관직에 나서는 걸 진심으로 싫어하고 있다면 망설였겠지만, 여태까지 보여준 행보와 종종 보내온 서찰을 보니...
김대붕은 관직 생활을 하면서 백성을 어루만지는 것에 중독된 상태.
조선을 위해 응당 헌신하게 하는 것이 아비의 도리인데, 어명까지 내려왔으니 더욱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