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65 lines
16 KiB
Markdown
265 lines
16 KiB
Markdown
|
|
류정현은 호조를 나오면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
|
|
|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감히 정6품 따위가 자기가 하는 말에 또박또박 말대답을 했기 때문이다.
|
|
|
|
말대답을 한 것만으로도 속이 뒤집히다 못해 머리 뚜껑이 열릴 판인데.
|
|
|
|
더 심각하게 그를 화나게 만든 것은 김대붕 저 젊은 애송이한테 논리에 밀려 자신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
|
|
|
"이런 괘씸한 놈을 봤나."
|
|
|
|
지부상소를 올려서 화폐를 막았을 때만 해도 내심 녀석에게 고마운 마음이 조금 있었다.
|
|
|
|
화폐가 시행되면, 쌀로 치부해 온 자신에게 제법 큰 타격이 오니 말이다.
|
|
|
|
쌀을 써서 비단과 가축 그리고 땅과 노비까지 사야 돈이 돈을 낳아 재산이 눈덩이 굴리듯이 불어나는 건데.
|
|
|
|
쌀을 쓰는 거래를 국법으로 막아버리면 쌀로는 더 이상 재산을 불릴 수가 없어, 쌀은 그저 창고에 쌓여 썩을 뿐인 애물단지가 돼버린다.
|
|
|
|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거래 단속하는 녀석들은 '양반'의 거래는 발견하지 못하는 눈뜬장님이니... 국법으로 엄히 금지해도 암시장 형태로 거래하면 되니까 애물단지가 될 일까지는 없다.
|
|
|
|
그러나 이전에는 쌀 1섬으로 비단 한 필을 살 수 있었다면, 암시장 거래가 시작되면 쌀 1섬 3말은 주어야만 살 수 있다. 3할이 할증된다는 거다.
|
|
|
|
이는 재산 불리는 게 삶의 낙인 류정현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다. 그런데 녀석이 이걸 목숨 걸고 막아줬으니 고마움을 느꼈던 거다.
|
|
|
|
녀석이 정창손처럼 뜻을 바로 세운 자라면 아주 크게 키워줄 생각도 있다.
|
|
|
|
"정 부정자처럼 나이 어리지만 올바른 뜻을 가진 이들이 관직에 많이 등용되어야 할 텐데."
|
|
|
|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한 사람을 기다렸다.
|
|
|
|
"내가 이런 인사와도 손을 잡아야 한다니... 참으로 세상이 야속하구나. 썩어빠진 전조 고려를 치웠는데도 조정엔 이토록 간신이 많으니..."
|
|
|
|
속으로 혼자 투덜거리고 있을 때, 류정현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남자가 드디어 나타났다.
|
|
|
|
"영의정 대감이 소인을 찾으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
|
|
|
"나도 청강(김점의 호, 작가 창작)을 만나 국사를 논하게 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
|
|
|
|
"허허, 우리 둘은 따지고 봤을 때 같은 까마귀가 아닙니까. 그런데 왜 영의정 대감은 백로인 척을 하십니까?"
|
|
|
|
"나는 자네처럼 참혹하게도 장물 횡령은 하지 않았어. 장리(이자율 50% 이상의 대출), 갑리(이자율 100%)는 엄연히 국법에 허용된 것이네."
|
|
|
|
김점은 평안도 관찰사 재직 시절 막대한 뇌물을 받아먹은 죄로 고소된 바 있는 역사에 길이 남을 쓰레기이다.
|
|
|
|
보통 호조판서까지 역임한 인간을 평안도 관찰사로 보내는 것은 좌천성 인사임과 동시에 노후 자금으로 한 N조 원 정도 당겨도 된다는 배려이기도 한데...
|
|
|
|
김점 저 인간은 뇌물이 당연한 조선에서도 경악, 공포, 혼란을 일으킬 정도로 엄청나게 많이 해먹은 쓰레기이다. 오죽하면 자기 아내가 명나라 영락제 후궁과 혈연관계가 있음에도 '사형' 탄원까지 받았겠는가.
|
|
|
|
류정현은 그래서 김점이 싫었다. 자기처럼 정정당당하게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고리대만 놓아도 돈은 끝없이 복사되고, 노비 역시 복사가 되는데.
|
|
|
|
조선의 관리라는 인간이 왜 그렇게 탐욕스러워 그토록 많이 해쳐 먹은 건지.
|
|
|
|
'나같이 청렴결백하게 살아야지. 이 더러운 인간 같으니!'
|
|
|
|
"영상 대감께서는 그래서 무슨 일로 소인을 찾으신 것입니까?"
|
|
|
|
"인사말도 안 하나?"
|
|
|
|
"대감이랑 소인이 어디 그럴 사이입니까?"
|
|
|
|
김점이 평안도 관찰사를 하며 뇌물 먹은 일을 아주 적극적으로 탄핵하고 나선 이가 바로 류정현이었다. 그러니 둘의 사이는 좋을 수가 없다.
|
|
|
|
"그렇기는 하지. 좋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나랑 같이 일 좀 하세."
|
|
|
|
"무슨 일 말입니까?"
|
|
|
|
"김대붕 그 자식이 방원법을 시행하여 조선의 경제질서를 망치려 하고 있어."
|
|
|
|
"김대붕이라. 지부상소라는 걸 들고 나와서 민심을 소란케 한 그 미친 개같은 작자를 말하시는 거군요. 충신인 척하는 천하의 간신배이며 조고와도 같은 쓰레기라고 들었습니다."
|
|
|
|
김대붕은 진해 현감으로 있을 때 뇌물은 안 받으려 최대한 노력했었고, 언제나 청렴결백하기 위해 힘을 썼었다.
|
|
|
|
그렇기에 어디로 봐도 충신 그 자체였지만... 그런 객관적 사실은 저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
|
|
|
공자가 한 말에서 ‘인간은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으니 선한 사람에게 사랑받고 악한 사람에게 미움받는 인간이 되어라.’라는 말이 그대로 적용되는 사례이다.
|
|
|
|
악한 인간은 당연히 김점과 류정현이다.
|
|
|
|
"저 작자가 방원법을 시행하면 조선이 어찌 되겠나?"
|
|
|
|
김점이 피식 웃었다.
|
|
|
|
"이 자리에는 소인과 영상 대감 외에 없습니다. 허심탄회하게 속을 다 풀어놓아도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굳이 말을 돌리지 마십시오."
|
|
|
|
"...... 백성들이 더 이상 고리대를 빌릴 필요가 없어진다는 얘기지. 그러면 나부터 더 이상 이제까지처럼 재산을 불리지 못하게 될 것이야. 청강 자네 역시 같은 처지가 아닌가?"
|
|
|
|
"예, 그렇기는 합니다. 저도 김대붕의 정책에는 불만이 좀 많습니다. 저 작자가 방원법을 시행하면, 소인을 존경하여 지방 수령들과 양반들이 보내오는 선물이 크게 줄 거 같으니 말입니다."
|
|
|
|
"자네는 참 탐욕스럽군."
|
|
|
|
"칭찬 감사합니다. 대감 덕분에 관직을 잃어보니, 결국에는 돈이 최고라는 걸 알게 되어서 말입니다."
|
|
|
|
김점은 누구보다 돈을 사랑했다. 돈을 사랑했기에 평안도 관찰사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온갖 욕을 들어먹을 정도로 과하게 뇌물을 챙긴 것이다.
|
|
|
|
"나를 도와주겠다 약조하면, 내가 방원법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자네가 꼭 필요하다고 상소를 올리겠네. 그러면 자네는 호조판서로 복직할 수 있을 것이야."
|
|
|
|
"통이 크시군요."
|
|
|
|
"청강 자네가 호조판서로 있으면서 태상왕 전하께서 승하하실 때까지만 버틴다면 우리가 이기는 거네. 그리고 김대붕에게 온갖 이유를 붙여서 '트집 안 잡히게' 괴롭히는 거지. 어차피 그 녀석은 재상이 되고 싶어 환장한 놈이니, 어지간하면 다 버틸 것이네."
|
|
|
|
정작 김대붕은 방원법 시행안만 잘 만든 뒤 사직상소를 올리고 낙향할 생각이다.
|
|
|
|
세종에게 잡혀 황희, 맹사성, 장영실 당하기 싫었기 때문에.
|
|
|
|
그러나 저들은 지극히 상식적인 사고를 통해 김대붕이 '황희' 당하고 싶어서 환장한 작자라고 결론지었다.
|
|
|
|
"어찌 도우면 되겠습니까?"
|
|
|
|
"자네와 나의 입김이 닿는 한양 시전 상인들에게서 정보를 모으고, 한양에 죽치고 앉아서 사랑방만 지키는 한가한 양반들에게 주야장천 상소를 올리라고 독려하면 되네."
|
|
|
|
"트집 잡을 구석이 있나 봅니다?"
|
|
|
|
"김대붕 그놈이 시전 십좌를 맡고 있는 김만덕과 아주 친하다더군. 그러니 방원법이 시행되면 진해의 공납을 김만덕 그자와 결탁하여 처리함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길 거라고 '합리적인 이유'를 내세워 탄핵하는 걸세."
|
|
|
|
"상소를 올린 놈들은 죽을 수가 있겠습니다."
|
|
|
|
"그러니 버려도 되는 놈만을 골라서 쓰게."
|
|
|
|
김점, 류정현 둘은 모두 인간쓰레기였다. 그래서 자기를 대신하여 상소를 올리는 머저리들이 죽든지 말든지는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
|
|
|
중요한 건 자기 가문의 영광, 더 중요한 건 돈을 버는 것. 그것만이 중요했다.
|
|
|
|
"방원법을 막아야 하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이야.”
|
|
|
|
그리고 며칠 뒤, 한양 곳곳에서는 지부상소를 올린 김대붕을 탄핵하는 상소가 올라왔다.
|
|
|
|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
|
|
|
'김대붕은 시전 십좌 김만덕과 아주 친밀한 관계에 있고, 김만덕의 딸과도 밀접한 관계이다. 그러니 방원법이 시행되면 진해의 공납을 김만덕 그에게 맡겨 큰 이익을 취하려 한다!'
|
|
|
|
**
|
|
|
|
조선은 탄핵의 나라다.
|
|
|
|
어떤 놈이 잘못하면 사헌부가 탄핵한다.
|
|
|
|
이렇게 말하면 삼사가 탄핵해야지, 왜 관청 한 개가 하냐고 물을 텐데...
|
|
|
|
삼사는 언론의 기능을 대충 수행하는 것이지, 그곳이 현대 국가의 언론처럼 잘못한 정치인(관리) 탄핵하고 뉴스 내는 기관이 아니라서 그렇다.
|
|
|
|
따라서 상소가 저렇게 많이 올라온다는 건 사헌부에서도 나를 탄핵한다는 얘긴데.
|
|
|
|
"이보게, 김 수찬."
|
|
|
|
"예, 호조판서 대감."
|
|
|
|
황희는 내가 있는 자리까지 와서는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하였다.
|
|
|
|
1각(15분) 전까지는 야근하면서 죽어라 구르고 있던 정6품 호조 정랑보고 일처리가 느리다 하면서 김대붕 반의반이라도 하라고 욕하던 그 사람이 맞나.
|
|
|
|
"관리 생활을 하다 보면 탄핵당하는 일 정도야 비일비재한 것이니 크게 마음 쓰지 말게나. 주상 전하와 태상왕 전하의 자네를 향한 총애가 얼마나 큰가. 고작 이런 일 정도로 파직되는 일은 없을 걸세. 얼마 전에 호조 경시서 김 봉사만 해도 지전 오좌의 딸을..."
|
|
|
|
우리가 호조하면, 흔히 호조 본청만을 떠올리는데... 사실 그건 틀린 구분이다.
|
|
|
|
기획재정부 밑에 통계청을 비롯한 다양한 관청이 있듯이, 호조 밑에도 엄청나게 많은 수의 속아문이 존재한다. 그래서 호조에서 근무하는 관원의 수가 의외로 많다.
|
|
|
|
"그러니 신경 쓰지 말게. 자, 오늘은 특별히 빨리 퇴청..."
|
|
|
|
...... 이번 탄핵을 주도한 게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분명한 게 하나 있으니.
|
|
|
|
방원법은 반드시 시행될 것이고, 나는 내가 목표로 한 일을 거의 다 끝냈다는 거다.
|
|
|
|
내가 자유를 찾아 떠날 날이 머지않았다.
|
|
|
|
"소관이 부덕한 탓에 이런 탄핵을 당하게 되었으니, 이런 불충한 짓을 저지르고도 어찌 관직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
|
|
|
황희가 세상 다 끝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
|
|
|
|
"성은에 보답하지 못하는 것이 통탄스럽기 그지없으나, 전하께 더 이상 불충을 저지를 수 없으니. 저는 방원법의 기틀을 마련하고 난 뒤에 마땅히 사직상소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
|
|
|
은퇴각이다, 은퇴각!
|
|
|
|
은퇴하고 나면 고향으로 내려가서 고향 양반집 색시를 아내로 맞이할 거고, 김겨울은 첩으로 들일 것이다. 양손에 꽃을 쥔 셈이다.
|
|
|
|
이게 바로 조선식 지상낙원이지.
|
|
|
|
부모님께 집안은 신경 쓰지 말고 양반 가문의 여식 중에서 미색이 뛰어난 사람으로 골라달라고 잘 말씀드려야겠다.
|
|
|
|
장원 급제에 지부상소까지 해서 집안 명성을 확 띄워준 공이 있는데 이 정도는 들어주시겠지.
|
|
|
|
황희는 사직하겠다는 나의 말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는지 크게 놀라며.
|
|
|
|
“김 수찬, 김 수찬!! 어딜 간다고 하는가! 가면 안 되네! 자네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사직상소를 내고 낙향한다는 말인가! 절대로 안 되네!! 자네는 호조의 기둥과도 같은 인재라고!”
|
|
|
|
응, 나는 낙향해서 행복하게 살 거야. 내가 이러려고 진해 현에서 선정을 베푼 거거든.
|
|
|
|
꼬우면 당신도 착하게 살았어야지.
|
|
|
|
그리고 방원법의 기틀을 다 짜고 난 뒤 나는 지체하지 않고 사직상소를 올렸다.
|
|
|
|
나는 이제 자유의 몸이다.
|
|
|
|
**
|
|
|
|
원래 참상관의 사직상소는 임금이 읽지도 않고 옥새를 찍어주어 승낙해 주는 게 관례다.
|
|
|
|
따라서 김대붕은 자신이 사직상소를 내기만 하면 당연히 사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
|
|
|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
|
|
|
이방원이 김대붕을 너무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
|
|
|
“...... 도야.”
|
|
|
|
“예, 아바마마.”
|
|
|
|
“김대붕은 사리사욕이 없고, 권력에 대한 욕심도 없는 청렴결백한 자이다. 장차 나라의 대들보 같은 재상이 되겠지.”
|
|
|
|
이방원은 김대붕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정도전, 정몽주가 살아 돌아와도 김대붕보다는 못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
|
|
|
그런 김대붕이 자기가 만든 조선에 충성을 다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말이다.
|
|
|
|
“너는 왜 김대붕이 사직상소를 냈다 생각하느냐?”
|
|
|
|
“방원법의 공을 오로지 아바마마께 돌리고자 함이 아니겠습니까?”
|
|
|
|
김대붕이 들으면 ‘그건 오해다. 나는 고향이 좋아 낙향하고 싶은 거다.’라고 답했을 것이다.
|
|
|
|
그러나 이미 지부상소를 통해 김대붕을 ‘충신 중의 충신’이라고 생각하게 된 이방원과 세종은 김대붕의 진심을 헤아릴 수 없었다.
|
|
|
|
“그런데 자신을 탄핵하는 상소가 올라오니, 방원법에 폐가 될 것으로 생각하여 사직상소를 올린 것 같사옵니다.”
|
|
|
|
“내 생각도 너와 같다. 그러나 나는 이번만큼은 그의 상소를 윤허해 줄 생각이다.”
|
|
|
|
세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 진짜 김대붕을 놓아줄 생각인 건가 싶었다.
|
|
|
|
“김대붕은 사리사욕 하나 없이 나랏일에만 매진하다가, 고려의 망령과도 같은 간신들에게 탄핵을 받았기에 마음이 몹시 상했을 것이다. 그러니 고향에서 잠시 쉬는 정도는 허락해 줘야겠지.”
|
|
|
|
세종이 귀를 쫑긋 세웠다. ‘잠시’라는 말에 큰 의미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
|
|
|
“그리고 너와 내가 얼마나 그를 총애하는지를 알려주어서, 가족들 앞에 면목을 세워준다면 그의 마음속 아픔이 비로소 씻겨나갈 것이다.”
|
|
|
|
이방원은 고려에서 과거를 쳐 문관으로 벼슬 생활을 시작했었다.
|
|
|
|
이성계가 무관이라서 면신례도 혹독하게 당했었고, 새로 대두하기 시작한 이성계를 곱게 보지 않던 이들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그를 괴롭혔었다.
|
|
|
|
그때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방원은 몸서리가 쳐졌다.
|
|
|
|
“나 역시 벼슬 생활이 참으로 고단하였지만, 전조 고려 시절 내가 문과에 처음 합격했을 때 태조대왕께서는 참으로 기뻐하셨다. 그 덕분으로 고된 면신례니 뭐니 하는 걸 다 버틸 수 있었다.”
|
|
|
|
이성계는 죽을 때까지 이방원을 싫어했지만, 이방원은 이성계를 아버지로서 존경하고 사랑했다.
|
|
|
|
그 과정에서 자기 형제 몇 명을 죽이고, 정몽주, 정도전까지 죽임으로 관계가 완전히 틀어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
|
|
|
“김대붕 그 녀석도 사람일진대, 마음이 아플 때는 가족에게 위로를 받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 그의 어미와 아비에게 교지를 써서, 아들을 나라의 동량지재로 키워낸 공을 칭찬하고 조선에 그가 꼭 필요하니 마음을 어루만져 달라하면... 김대붕 그 녀석도 다시 일어설 수 있지 않겠느냐?”
|
|
|
|
마음의 위로도 위로지만, 사실 여기에는 한 가지 노림수가 더 있었다.
|
|
|
|
“임금이 부모의 체면을 세워주고, 부모가 자식을 격려해 벼슬로 나아가게 하는데... 그 어떤 관리가 감히 사직할 생각을 하겠느냐?”
|
|
|
|
조선은 효의 나라다.
|
|
|
|
아버지가 범죄를 저지르면 아들이 곤장을 대신 맞는 게 ‘효의 일환’으로서 권장되기도 한다.
|
|
|
|
그런 효도의 나라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간절한 권고를 물리친다?
|
|
|
|
그건 있을 수 없다.
|
|
|
|
세종의 얼굴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
|
|
|
반면 류정현은 김대붕이 사직서를 내고 낙향했다는 말을 듣고서 등골이 서늘해졌다.
|
|
|
|
"......몸이 허해진 건가, 왜 이리 추운 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