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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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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현은 호조를 나오면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감히 정6품 따위가 자기가 하는 말에 또박또박 말대답을 했기 때문이다.

말대답을 한 것만으로도 속이 뒤집히다 못해 머리 뚜껑이 열릴 판인데.

더 심각하게 그를 화나게 만든 것은 김대붕 저 젊은 애송이한테 논리에 밀려 자신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괘씸한 놈을 봤나."

지부상소를 올려서 화폐를 막았을 때만 해도 내심 녀석에게 고마운 마음이 조금 있었다.

화폐가 시행되면, 쌀로 치부해 온 자신에게 제법 큰 타격이 오니 말이다.

쌀을 써서 비단과 가축 그리고 땅과 노비까지 사야 돈이 돈을 낳아 재산이 눈덩이 굴리듯이 불어나는 건데.

쌀을 쓰는 거래를 국법으로 막아버리면 쌀로는 더 이상 재산을 불릴 수가 없어, 쌀은 그저 창고에 쌓여 썩을 뿐인 애물단지가 돼버린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거래 단속하는 녀석들은 '양반'의 거래는 발견하지 못하는 눈뜬장님이니... 국법으로 엄히 금지해도 암시장 형태로 거래하면 되니까 애물단지가 될 일까지는 없다.

그러나 이전에는 쌀 1섬으로 비단 한 필을 살 수 있었다면, 암시장 거래가 시작되면 쌀 1섬 3말은 주어야만 살 수 있다. 3할이 할증된다는 거다.

이는 재산 불리는 게 삶의 낙인 류정현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다. 그런데 녀석이 이걸 목숨 걸고 막아줬으니 고마움을 느꼈던 거다.

녀석이 정창손처럼 뜻을 바로 세운 자라면 아주 크게 키워줄 생각도 있다.

"정 부정자처럼 나이 어리지만 올바른 뜻을 가진 이들이 관직에 많이 등용되어야 할 텐데."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한 사람을 기다렸다.

"내가 이런 인사와도 손을 잡아야 한다니... 참으로 세상이 야속하구나. 썩어빠진 전조 고려를 치웠는데도 조정엔 이토록 간신이 많으니..."

속으로 혼자 투덜거리고 있을 때, 류정현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남자가 드디어 나타났다.

"영의정 대감이 소인을 찾으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나도 청강(김점의 호, 작가 창작)을 만나 국사를 논하게 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

"허허, 우리 둘은 따지고 봤을 때 같은 까마귀가 아닙니까. 그런데 왜 영의정 대감은 백로인 척을 하십니까?"

"나는 자네처럼 참혹하게도 장물 횡령은 하지 않았어. 장리(이자율 50% 이상의 대출), 갑리(이자율 100%)는 엄연히 국법에 허용된 것이네."

김점은 평안도 관찰사 재직 시절 막대한 뇌물을 받아먹은 죄로 고소된 바 있는 역사에 길이 남을 쓰레기이다.

보통 호조판서까지 역임한 인간을 평안도 관찰사로 보내는 것은 좌천성 인사임과 동시에 노후 자금으로 한 N조 원 정도 당겨도 된다는 배려이기도 한데...

김점 저 인간은 뇌물이 당연한 조선에서도 경악, 공포, 혼란을 일으킬 정도로 엄청나게 많이 해먹은 쓰레기이다. 오죽하면 자기 아내가 명나라 영락제 후궁과 혈연관계가 있음에도 '사형' 탄원까지 받았겠는가.

류정현은 그래서 김점이 싫었다. 자기처럼 정정당당하게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고리대만 놓아도 돈은 끝없이 복사되고, 노비 역시 복사가 되는데.

조선의 관리라는 인간이 왜 그렇게 탐욕스러워 그토록 많이 해쳐 먹은 건지.

'나같이 청렴결백하게 살아야지. 이 더러운 인간 같으니!'

"영상 대감께서는 그래서 무슨 일로 소인을 찾으신 것입니까?"

"인사말도 안 하나?"

"대감이랑 소인이 어디 그럴 사이입니까?"

김점이 평안도 관찰사를 하며 뇌물 먹은 일을 아주 적극적으로 탄핵하고 나선 이가 바로 류정현이었다. 그러니 둘의 사이는 좋을 수가 없다.

"그렇기는 하지. 좋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나랑 같이 일 좀 하세."

"무슨 일 말입니까?"

"김대붕 그 자식이 방원법을 시행하여 조선의 경제질서를 망치려 하고 있어."

"김대붕이라. 지부상소라는 걸 들고 나와서 민심을 소란케 한 그 미친 개같은 작자를 말하시는 거군요. 충신인 척하는 천하의 간신배이며 조고와도 같은 쓰레기라고 들었습니다."

김대붕은 진해 현감으로 있을 때 뇌물은 안 받으려 최대한 노력했었고, 언제나 청렴결백하기 위해 힘을 썼었다.

그렇기에 어디로 봐도 충신 그 자체였지만... 그런 객관적 사실은 저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공자가 한 말에서 ‘인간은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으니 선한 사람에게 사랑받고 악한 사람에게 미움받는 인간이 되어라.’라는 말이 그대로 적용되는 사례이다.

악한 인간은 당연히 김점과 류정현이다.

"저 작자가 방원법을 시행하면 조선이 어찌 되겠나?"

김점이 피식 웃었다.

"이 자리에는 소인과 영상 대감 외에 없습니다. 허심탄회하게 속을 다 풀어놓아도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굳이 말을 돌리지 마십시오."

"...... 백성들이 더 이상 고리대를 빌릴 필요가 없어진다는 얘기지. 그러면 나부터 더 이상 이제까지처럼 재산을 불리지 못하게 될 것이야. 청강 자네 역시 같은 처지가 아닌가?"

"예, 그렇기는 합니다. 저도 김대붕의 정책에는 불만이 좀 많습니다. 저 작자가 방원법을 시행하면, 소인을 존경하여 지방 수령들과 양반들이 보내오는 선물이 크게 줄 거 같으니 말입니다."

"자네는 참 탐욕스럽군."

"칭찬 감사합니다. 대감 덕분에 관직을 잃어보니, 결국에는 돈이 최고라는 걸 알게 되어서 말입니다."

김점은 누구보다 돈을 사랑했다. 돈을 사랑했기에 평안도 관찰사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온갖 욕을 들어먹을 정도로 과하게 뇌물을 챙긴 것이다.

"나를 도와주겠다 약조하면, 내가 방원법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자네가 꼭 필요하다고 상소를 올리겠네. 그러면 자네는 호조판서로 복직할 수 있을 것이야."

"통이 크시군요."

"청강 자네가 호조판서로 있으면서 태상왕 전하께서 승하하실 때까지만 버틴다면 우리가 이기는 거네. 그리고 김대붕에게 온갖 이유를 붙여서 '트집 안 잡히게' 괴롭히는 거지. 어차피 그 녀석은 재상이 되고 싶어 환장한 놈이니, 어지간하면 다 버틸 것이네."

정작 김대붕은 방원법 시행안만 잘 만든 뒤 사직상소를 올리고 낙향할 생각이다.

세종에게 잡혀 황희, 맹사성, 장영실 당하기 싫었기 때문에.

그러나 저들은 지극히 상식적인 사고를 통해 김대붕이 '황희' 당하고 싶어서 환장한 작자라고 결론지었다.

"어찌 도우면 되겠습니까?"

"자네와 나의 입김이 닿는 한양 시전 상인들에게서 정보를 모으고, 한양에 죽치고 앉아서 사랑방만 지키는 한가한 양반들에게 주야장천 상소를 올리라고 독려하면 되네."

"트집 잡을 구석이 있나 봅니다?"

"김대붕 그놈이 시전 십좌를 맡고 있는 김만덕과 아주 친하다더군. 그러니 방원법이 시행되면 진해의 공납을 김만덕 그자와 결탁하여 처리함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길 거라고 '합리적인 이유'를 내세워 탄핵하는 걸세."

"상소를 올린 놈들은 죽을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니 버려도 되는 놈만을 골라서 쓰게."

김점, 류정현 둘은 모두 인간쓰레기였다. 그래서 자기를 대신하여 상소를 올리는 머저리들이 죽든지 말든지는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자기 가문의 영광, 더 중요한 건 돈을 버는 것. 그것만이 중요했다.

"방원법을 막아야 하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이야.”

그리고 며칠 뒤, 한양 곳곳에서는 지부상소를 올린 김대붕을 탄핵하는 상소가 올라왔다.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김대붕은 시전 십좌 김만덕과 아주 친밀한 관계에 있고, 김만덕의 딸과도 밀접한 관계이다. 그러니 방원법이 시행되면 진해의 공납을 김만덕 그에게 맡겨 큰 이익을 취하려 한다!'

**

조선은 탄핵의 나라다.

어떤 놈이 잘못하면 사헌부가 탄핵한다.

이렇게 말하면 삼사가 탄핵해야지, 왜 관청 한 개가 하냐고 물을 텐데...

삼사는 언론의 기능을 대충 수행하는 것이지, 그곳이 현대 국가의 언론처럼 잘못한 정치인(관리) 탄핵하고 뉴스 내는 기관이 아니라서 그렇다.

따라서 상소가 저렇게 많이 올라온다는 건 사헌부에서도 나를 탄핵한다는 얘긴데.

"이보게, 김 수찬."

"예, 호조판서 대감."

황희는 내가 있는 자리까지 와서는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하였다.

1각(15분) 전까지는 야근하면서 죽어라 구르고 있던 정6품 호조 정랑보고 일처리가 느리다 하면서 김대붕 반의반이라도 하라고 욕하던 그 사람이 맞나.

"관리 생활을 하다 보면 탄핵당하는 일 정도야 비일비재한 것이니 크게 마음 쓰지 말게나. 주상 전하와 태상왕 전하의 자네를 향한 총애가 얼마나 큰가. 고작 이런 일 정도로 파직되는 일은 없을 걸세. 얼마 전에 호조 경시서 김 봉사만 해도 지전 오좌의 딸을..."

우리가 호조하면, 흔히 호조 본청만을 떠올리는데... 사실 그건 틀린 구분이다.

기획재정부 밑에 통계청을 비롯한 다양한 관청이 있듯이, 호조 밑에도 엄청나게 많은 수의 속아문이 존재한다. 그래서 호조에서 근무하는 관원의 수가 의외로 많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말게. 자, 오늘은 특별히 빨리 퇴청..."

...... 이번 탄핵을 주도한 게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분명한 게 하나 있으니.

방원법은 반드시 시행될 것이고, 나는 내가 목표로 한 일을 거의 다 끝냈다는 거다.

내가 자유를 찾아 떠날 날이 머지않았다.

"소관이 부덕한 탓에 이런 탄핵을 당하게 되었으니, 이런 불충한 짓을 저지르고도 어찌 관직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황희가 세상 다 끝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성은에 보답하지 못하는 것이 통탄스럽기 그지없으나, 전하께 더 이상 불충을 저지를 수 없으니. 저는 방원법의 기틀을 마련하고 난 뒤에 마땅히 사직상소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은퇴각이다, 은퇴각!

은퇴하고 나면 고향으로 내려가서 고향 양반집 색시를 아내로 맞이할 거고, 김겨울은 첩으로 들일 것이다. 양손에 꽃을 쥔 셈이다.

이게 바로 조선식 지상낙원이지.

부모님께 집안은 신경 쓰지 말고 양반 가문의 여식 중에서 미색이 뛰어난 사람으로 골라달라고 잘 말씀드려야겠다.

장원 급제에 지부상소까지 해서 집안 명성을 확 띄워준 공이 있는데 이 정도는 들어주시겠지.

황희는 사직하겠다는 나의 말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는지 크게 놀라며.

“김 수찬, 김 수찬!! 어딜 간다고 하는가! 가면 안 되네! 자네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사직상소를 내고 낙향한다는 말인가! 절대로 안 되네!! 자네는 호조의 기둥과도 같은 인재라고!”

응, 나는 낙향해서 행복하게 살 거야. 내가 이러려고 진해 현에서 선정을 베푼 거거든.

꼬우면 당신도 착하게 살았어야지.

그리고 방원법의 기틀을 다 짜고 난 뒤 나는 지체하지 않고 사직상소를 올렸다.

나는 이제 자유의 몸이다.

**

원래 참상관의 사직상소는 임금이 읽지도 않고 옥새를 찍어주어 승낙해 주는 게 관례다.

따라서 김대붕은 자신이 사직상소를 내기만 하면 당연히 사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이방원이 김대붕을 너무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 도야.”

“예, 아바마마.”

“김대붕은 사리사욕이 없고, 권력에 대한 욕심도 없는 청렴결백한 자이다. 장차 나라의 대들보 같은 재상이 되겠지.”

이방원은 김대붕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정도전, 정몽주가 살아 돌아와도 김대붕보다는 못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김대붕이 자기가 만든 조선에 충성을 다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말이다.

“너는 왜 김대붕이 사직상소를 냈다 생각하느냐?”

“방원법의 공을 오로지 아바마마께 돌리고자 함이 아니겠습니까?”

김대붕이 들으면 ‘그건 오해다. 나는 고향이 좋아 낙향하고 싶은 거다.’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부상소를 통해 김대붕을 ‘충신 중의 충신’이라고 생각하게 된 이방원과 세종은 김대붕의 진심을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런데 자신을 탄핵하는 상소가 올라오니, 방원법에 폐가 될 것으로 생각하여 사직상소를 올린 것 같사옵니다.”

“내 생각도 너와 같다. 그러나 나는 이번만큼은 그의 상소를 윤허해 줄 생각이다.”

세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 진짜 김대붕을 놓아줄 생각인 건가 싶었다.

“김대붕은 사리사욕 하나 없이 나랏일에만 매진하다가, 고려의 망령과도 같은 간신들에게 탄핵을 받았기에 마음이 몹시 상했을 것이다. 그러니 고향에서 잠시 쉬는 정도는 허락해 줘야겠지.”

세종이 귀를 쫑긋 세웠다. ‘잠시’라는 말에 큰 의미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와 내가 얼마나 그를 총애하는지를 알려주어서, 가족들 앞에 면목을 세워준다면 그의 마음속 아픔이 비로소 씻겨나갈 것이다.”

이방원은 고려에서 과거를 쳐 문관으로 벼슬 생활을 시작했었다.

이성계가 무관이라서 면신례도 혹독하게 당했었고, 새로 대두하기 시작한 이성계를 곱게 보지 않던 이들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그를 괴롭혔었다.

그때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방원은 몸서리가 쳐졌다.

“나 역시 벼슬 생활이 참으로 고단하였지만, 전조 고려 시절 내가 문과에 처음 합격했을 때 태조대왕께서는 참으로 기뻐하셨다. 그 덕분으로 고된 면신례니 뭐니 하는 걸 다 버틸 수 있었다.”

이성계는 죽을 때까지 이방원을 싫어했지만, 이방원은 이성계를 아버지로서 존경하고 사랑했다.

그 과정에서 자기 형제 몇 명을 죽이고, 정몽주, 정도전까지 죽임으로 관계가 완전히 틀어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김대붕 그 녀석도 사람일진대, 마음이 아플 때는 가족에게 위로를 받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 그의 어미와 아비에게 교지를 써서, 아들을 나라의 동량지재로 키워낸 공을 칭찬하고 조선에 그가 꼭 필요하니 마음을 어루만져 달라하면... 김대붕 그 녀석도 다시 일어설 수 있지 않겠느냐?”

마음의 위로도 위로지만, 사실 여기에는 한 가지 노림수가 더 있었다.

“임금이 부모의 체면을 세워주고, 부모가 자식을 격려해 벼슬로 나아가게 하는데... 그 어떤 관리가 감히 사직할 생각을 하겠느냐?”

조선은 효의 나라다.

아버지가 범죄를 저지르면 아들이 곤장을 대신 맞는 게 ‘효의 일환’으로서 권장되기도 한다.

그런 효도의 나라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간절한 권고를 물리친다?

그건 있을 수 없다.

세종의 얼굴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반면 류정현은 김대붕이 사직서를 내고 낙향했다는 말을 듣고서 등골이 서늘해졌다.

"......몸이 허해진 건가, 왜 이리 추운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