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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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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고, 완벽한 제도나 법 따위도 없다.
21세기의 모든 국가는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지만, 민주주의라고 해서 완벽한 건 절대 아니다.
군주의 역량에만 의존해야 하는 '전제정치'보다 단점이 훨씬 적기에 채택된 것뿐이다.
대동법이라고 당연히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단점의 수와 정도가 공물을 수취하는 것보다 훨씬 적을 뿐이다.
그러니 방원법 시행을 앞두고 단점은 최대한 줄이고, 장점은 극대화 시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호조를 찾아온 류정현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온 것 같지는 않다.
"호조판서."
그의 말에 황희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도 알겠지만, 조선은 도로가 몹시 불편하기 짝이 없네. 여기 있는 관리 중에 조선의 교통이 불편한 것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야. 다들 과거를 보기 위해 고향에서 한양까지 올라오느라 얼마나 고생들이 많았나 이 말이야."
조선 시대 시대극이나 대하드라마 같은 걸 보면 사람들이 산길에 있는 여관에서 여럿이 모여 숙박하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그것도 하룻밤만 묵어가는 정도가 아니라 며칠에 걸쳐서 말이다.
그 시대에 주막을 호텔 삼아 노는 문화가 있거나, 주막을 숙소 삼아 관광하는 문화가 있었던 건 당연히 아니고... 밤낮 가릴 거 없이 산길을 걷다 보면 커다란 호랑이가 불시에 나타나 냐옹하면서 사람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길을 이용하는 것은 불편하기가 이를 데 없고, 평야가 적기에 조금만 멀리 가면 무조건 험한 산길을 통과해야 한다.
나도 과거시험 보러 한양으로 갈 때 참 힘들었었다.
“산길은 험하기 그지없고, 과거 보러 가는 길에 민가에 묵다 보면 심심치 않게 호랑이가 나와서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산길이 아닌 길도 험하기 그지없는 건 마찬가지고 말이야.”
류정현은 의기가 양양하여 내가 있는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무려 영의정씩이나 되는 양반이 내 쪽으로 가까이 와 이렇게 압박을 해대니...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다.
물론, 검은색 곤룡포에 철퇴까지 들고 있는 이방원 앞에서 지부상소할 때 느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네가 무슨 수로 나를 죽일 건데.
이렇게 생각을 바꾸니까 마음이 좀 편해졌다.
사실 저놈은 이방원이 원하는 대로 말을 잘 들어서 이 자리까지 온 자다.
온갖 고발도 주저하지 않았고 ‘심온’을 죽이는 역할까지도 수행하였기에 저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조선 시대 기준으로 보면 임금의 기분에 따라 최대 사형도, 임금의 뜻에 따라 면죄도 되는 죄를 잔뜩 지은 인간이 바로 류정현이다.
고리대금으로 노비 숫자를 잔뜩 늘리고, 전국의 땅을 야금야금 먹어 치운 전조 고려의 간신과도 같은 자식. 심지어 그는 고리대금 잘 걷어오는 놈에게 벼슬도 줬다.
아, 엄밀히 말하면 ‘역승’, 역참 책임자 자리를 주고 일 잘하면 거관(임지, 관직을 옮김)해서 정규 관원으로 만들어 주는 형태지만 말이다.
“길이 이리 험한데, 각 고을에서 걷은 백미를 어찌 나르겠나? 그게 쉬울 것 같나?”
영의정이란 작자가 하는 말이 어쩌면 송시열이 대동법을 반대하고 나섰을 때 했던 말과 이리도 똑같다니.
송시열은 대동법을 이런 이유를 들어 반대했었다.
대동법이요? 취지는 정말 좋은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 백성들의 부담을 줄여주고, 잘 살 수 있게 하자 이런 건데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쌀을 나르는 게 어지간히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조선은 산이 너무 많기에 수레를 쓰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면 그 무거운 쌀을 어떻게 나릅니까?
수운으로 나르면 된다고요? 수운 그거 다 좋은데, 날씨나 환경에 따라 걸핏하면 뒤집히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하니. 그럴 때마다 조세 손실이 만만치 않을 뿐 더러 조졸(조운에 종사하는 이들)들도 끝없이 죽어 나갑니다.
대동법의 취지는 결국 감세가 아닙니까? 그러니 부작용 많은 대동법 하실 바에야 그냥 세금을 1/3로 줄여 백성의 조세 부담을 줄이는 게 낫다 이겁니다.
송시열 그 인간도 조선(정확히는 서인이 다 해 먹는 조선)을 참 사랑한 걸로 아는데, 류정현도 비슷한 말을 하는 걸 보아하니 그 또한 조선 사랑이 지극한 것 같다. 극에 달하면 만류귀종이라고 본질이 같은 거라 하던데...
둘의 논리와 근거가 일맥상통하는 것이 참 신기하다.
"산길에서는 수레를 못 쓰니, 결국에는 백성들에게 역을 내려 지게에 지고 날라야 하는 일이 벌어질 걸세. 어디 보세, 김 수찬."
"예, 대감."
"방원법에 따르면 밭 1결에 백미 18두(되)를 걷는다고 했지? 그러면 밭 1,000결의 경우 18,000두를 걷어야 하고, 이는 백미로 180섬에 달하네.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지."
백미 180섬의 무게는 무려 32.4톤에 달한다. 조선에서 쓰는 소가 끄는 수레(우차) 하나가 대략 500kg 정도를 나를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소 65대가 있어야 나를 수 있는 양이다.
지게에 메고 나르면 한 사람이 보통 100kg 정도를 나르니 이 경우 324명의 지게꾼이 필요하게 된다.
하여 대동법 시행은 수송문제가 심각하게 발목을 잡았다.
"물론, 이걸 다 지게로 나르지야 않겠지. 한양까지 옮길 때는 어지간하면 수운을 쓰려하겠지. 그렇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닌 것이."
류정현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라 있고, 목소리도 나긋나긋하니 다정하기가 이를 데 없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되게 점잖고 품격 넘치는 신사라고 착각할 정도다.
그러나 저 인간의 속내는 절대 상냥하지 않다.
저 인간은 영의정, 대한민국으로 따지면 국무총리까지 올라간 인간이다. 그런 인간이 필요할 때 '착한 척'을 제대로 연기해 내지 못하면 그 자리까지 올라갈 수가 있었겠는가?
"내가 호조판서였던 시절에 말이야, 각 고을로부터 경창(중앙 정부 창고)까지 세곡을 운송하기 위해 조운선 관리를 했었다네. 호조에는 매년 백미 10만 섬 정도가 들어오는데 말이야. 그걸 나르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거든."
대동법 시행을 늦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라, 충청, 경상도의 세곡을 한양으로 나르기 위해 바닷길로 오는데... 태종 시절 조운선 10척을 가지고 세곡을 운송하면 그중 1척은 가라앉았다고 한다.
뭐, 솔직히 이건 누가 봐도 과장해서 쓴 거긴 하다. 실제로 10척 중 1척이 가라앉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솔찮게 배가 계속해서 가라앉고, 사람이 죽어 나가고 그런 건 엄연한 사실이다.
"조운선에 수백 섬의 백미를 싣고 오다가 침몰하는 일이 아주 빈번하네. 매년 5~10척은 가라앉았지. 배 한 척을 건조하는 데 백미 200섬이 들고, 그 안에는 백미가 400~500섬 실려있었으니... 1 척당 무려 700섬의 세곡이 물고기 밥이 된 것이지. 그것뿐이겠나? 거기 타고 있던 조졸도 수십 명이 될 테니, 그들까지도 허망하게 목숨을 잃고 말이야."
"그렇습니까?"
"방원법이 시행되면 지금보다 조운선을 수십 배 더 많이 운용해야 할 것이 아닌가?"
...... 응, 아니야. 애초에 1결당 18두의 쌀을 걷어봤자 그중에서 15~16두는 사또 개인이 먹을 거, 사또가 관리와 친척들에게 명절 선물 보낼 거, 이방들이랑 다른 관아 애들이 해 먹을 거, 지방 세금 등으로 쓰일 거다.
류성룡, 이항복, 이원익 같은 명재상들이 임진왜란 끝나고 대동법을 주장할 때 1결에 '1두' 정도만 받아도 중앙에 보낼 공물은 다 해결되고도 남는다고 괜히 주장했겠어?
그런데 이 인간이 그걸 모를 리는 없을 텐데.
그리고 백미 1두를 걷는다고 그게 '백미' 형태 그대로 한양으로 올라갈 것이냐? 그건 아니다.
백미는 공물로 교환되어서 올라갈 거다.
"영상 대감, 소관이 잠시 진해 현감을 하던 때 보아하니, 공물의 폐단이 극심한 것은 사찰이 사주인(공납에 필요한 대금을 받아, 현지에서 공물로 교환하는 중개인) 역할을 맡아 경주인(사주인이 바친 공물을 궁궐에 올리기 전에 검사하는 역할)에게 넘기는 과정에서 온갖 비리를 저질렀기 때문이었습니다. 경주인들은 일을 공평무사하게 처리하려 하나, 사주인들은 온갖 비리와 악행을 저지르더군요."
사실 사주인도 나쁘고, 경주인도 나쁘다. 둘 다 썩어빠진 놈들이다.
그래도 경주인은 '시전 상인' 중에서도 최고 위치에 올라서 대군, 종친, 재상에게 자기 딸을 첩으로 보낸 건드리기 힘든 자라 언급을 안 한 것일 뿐...
다들 잘 알고 있을 거다. 둘 다 썩은 놈이라는 걸 말이다.
"방원법은 사주인들이 공물을 쌀로 받는 것을 금하고 대신 관아가 법에 따라 공물 값을 직접 쌀로 받는 것입니다. 관아는 걷은 쌀로 직접 공물을 수매하여 한양으로 보낼 것이고요. 그러니 영상대감께서 걱정하시는 것처럼 각 고을에서 공물을 경창에 보내기 위해 조운선을 급히 늘릴 필요가 없습니다."
"......"
"그리고 소관이 진해 현감으로 있을 때 상인들에게 이야기 들어보니, 조선의 조졸들은 국법에 따라 늘 연안으로만 항해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선 팔도, 특히 하삼도는 연안의 바닷길이 험하고 암초가 많아 노련한 이들도 항해를 꺼리는 험악한 바닷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언급된 상인은 바로 김만덕이다. 언젠가 술에 취한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조선의 조졸들은 이래서 불쌍하다면서 한소리를 하는데...
'나리께서 재상이 되시면, 제발 조졸들을 시켜서 연안 항해하는 짓만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이런 말을 했었다. 나도 그의 말에 동의한다.
실례로 정조가 죽은 다음에 세곡 운반을 민간 상선이 맡게 되었는데, 그들은 연안 항해가 아닌 원양항해를 해서 조졸들보다 훨씬 빠르고 쉽게 항해를 해버렸다. 하여 판목 운하고 뭐고 다 큰 의미 없다는 걸 증명해 버렸다.
"그래서 상인들은 종종 바다를 멀리 돌아서 항해하는데, 이리하면 연안으로 항해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류정현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백성들은 지금 부패한 아전과 사주인 노릇을 하는 사찰 때문에 굶어 죽어가는 고통 속에 있는데. 나라의 녹을 받는 자로서 어찌 이를 바로잡는 일에 주저함이 있겠습니까?"
"...... 자네는 다 대책이 있었구만."
"예, 영상 대감."
담담하게 답했다.
"방원법은 조선 백성들에게 더 나은 내일을 열어줄 법이 될 것입니다. 소홀함 없이 추진될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는 문제점을 보완한 뒤, 새로운 방원법이 시행되는 걸 보고 그 뒤에 사직서를 내면 될 것 같다.
이게 다 조선 좋고, 나 좋고... 그런 일이 아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