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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류정현은 지금 조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몹시 불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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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대감께서는 방원법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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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이원은 한 때 영의정을 지냈던 인사이기도 했고, 류정현과는 나름 재정에 관한 신념이 비슷하기도 한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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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류정현은 삼정승 중 이원만큼은 자신의 편을 들어줄 것으로 생각하고 물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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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이 아무리 방원법을 밀어붙이고자 해도 삼정승 중에서 2명이 반대하고 나서면, 방원법 실행을 완전히 막지는 못하더라도... 시행을 늦출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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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어의를 통해 전해 들은 정보에 따르면 이방원의 건강이 요즘 들어 눈에 띌 만큼 악화되고 있다 하니... 이대로 몇 년만 버티면 방원법은 흐지부지될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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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원법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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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가 시행되면 조선 경제가 완전히 무너질 것이 류정현의 눈에도 훤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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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는 세종실록에 적혀있는 것처럼 일부러 '화폐 시행'을 말도 안 되게 엄격한 잣대를 대며 시행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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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엄격한 잣대의 대상은 류정현이 죽여도 별다른 문제가 없는 '갖바치' 나부랭이, 힘없는 백성 나부랭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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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할 게 뻔한 정책(전 재산을 쌀로 모으는 양반들에게도 최악의 정책이었다)을 일부러 엄하게 몰아붙였다. 화폐로 인해 백성만 죽어 나간다고 하면 선량한 세종이 반드시 시행을 멈출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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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조선에서는 김대붕의 지부상소로 세종의 화폐 시행 자체가 아예 무산되었으니, 류정현 입장에서도 쌀의 가치를 가지고 거래가 가능하게 되어 재산은 보전된 셈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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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그에게는 방원법을 반대해야만 하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몹시 이기적인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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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원법이라, 제도 자체는 몹시 괜찮은 것 같지 않습니까? 나주는 배가 유명하지만, 실제로 과수원을 운영하는 이는 고작 인구의 1푼(1%)도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백성은 벼농사를 짓죠. 그러면 대부분의 백성은 공납을 위해 자기들이 직접 생산하지도 않는 배를 사려고 발품을 팔아야만 하는데... 이 경우 그 수고와 번거로움이 너무 크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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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는 합니다. 그래서 작년에 백성들을 위해 사찰에서 공물을 대신 구매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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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백성들이 져야 하는 부담이 줄기는 했죠. 이전에는 공물을 사기 위해 1호당 쌀 2섬을 내야 했다면, 이제는 1섬 정도로 줄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방원법은 중간에 간악한 상인이나 사찰이 끼어들 구석이 없으니... 토지 1결에 백미 18되만 걷으면 충분할 것이라 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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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는 충분한 양이란 지방의 수령이 중앙의 관리, 친척, 아는 지인에게 '선물'로 바칠 공물과 지방 관아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비용 등등까지 합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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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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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 저 양반도 청백리는 절대 아니고, 이방원이 임금이던 시절에 권세를 써서 상인의 딸을 억지로 들여 첩으로 삼는 짓거리를 했던 인간인데. 지금 자신의 앞에서 왜 저렇게 깔끔한 척을 떠는 건지 이해가 잘 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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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말하지 않아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아들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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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납 제도를 대동법으로 바꾸게 되면 백성들에게 지어지는 부담이 줄어들 것이고, 그러면 흉년이 드는 게 아니고서야 백성들이 '굶게 되는 일'이 없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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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도 고리대금을 빌리는 게 제 살 깎아 먹기라는 걸 알고 있으니, 당장 처자식이 굶어 죽을 판이 아니면 고리대금을 빌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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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대를 빌리면 그 끝은 전 재산 탕진에다가 일가족 모두가 노비가 되는 길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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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뜻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공물을 백미로 받으면 그걸 어떻게 다 수송하겠다는 겁니까? 차라리 세금을 낮추고, 절용(예산을 절감)하는 것만이 좋은 방법일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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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의견에는 동의합니다만, 태상왕 전하께서 뜻을 세우셨는데. 어찌 이를 막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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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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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조선의 일인지하 만인지상만이 쓸 수 있는 특권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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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자기 퇴근 시간을 자기 멋대로 정하여 퇴근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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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대로라면 당연히 안 되는 일이지만, 류정현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병가를 내고 자기 스스로 결재한 다음 퇴청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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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간 그는 곧장 방원법의 허점을 찾아내는 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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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이 법의 시행을 늦추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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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에 출근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일에 찌들어 후줄근한 관원들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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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관리들을 대학원생처럼 부려 먹으시는 세종대왕님의 신묘한 업무 할당법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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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원들은 피곤에 찌들어 힘들어 보이긴 했지만, 어떻게든 일하는 데는 지장이 없는 상태인지라 악으로 깡으로 버티며 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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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정시 퇴청은 글러 먹은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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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흘만 이렇게 일하면 휴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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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뒤에는 잠을 실컷 잘 수 있겠군. 사직 상소 쓸 시간은 있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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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진해 현령보다는 낫지 않겠나? 그 작자는 지금 김 수찬이 벌여놓은 일 뒷감당하느라, 하루에 7시진(14시간)을 쉬지도 못하고 일만 하고 있다더군. 심지어 휴일에도 쉬지 못한다고 하네. 덕분에 자기는 재산 챙길 시간도 없고, 다른 수령들처럼 기녀들 데리고 술도 못 마신다며 이게 인간 세상의 지옥이지 뭐냐면서 한탄하고 있다 하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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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관원들과 나 사이의 거리는 고작 15미터 정도다. 즉, 호조에 새로운 사람이 왔으니 새로운 사람인 나를 인식하고서 뭔가 반응을 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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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사람들이 일에 얼마나 찌들어서 정신까지 피폐해졌으면, 그 어떤 반응도 안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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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황희가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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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방원법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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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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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위대한 법이네.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고, 조선의 재정을 풍족하게 할 수 있는 법이라. 그런데 현실적으로 문제가 좀 많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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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모든 법이 어찌 영구불변하겠으며, 어찌 완벽할 수가 있겠습니까? 당 시절 조용조가 만들어졌을 때만 해도 백성들은 모두 그 법을 가벼이 여기며 기뻐했으나, 지금은 조선 백성들을 좀먹는 악법이 되었으니... 법 또한 결국에는 의복과도 같은 것이라, 해지면 벗고 지금까지보다 좋은 법으로 바꾸는 수고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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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점을 대략 알고 있는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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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잘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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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원법을 입안한 사람이 바로 나다. 바꿔 말하면, 이 법이 어떤 부분에서 문제인지도 아주 잘 알고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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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 머릿속에는 문제들을 어떤 방향으로 해결 혹은 개선할 수 있는지까지가 다 입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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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의 사정에 맞게 제도를 손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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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금만 고생하면 수많은 백성에게 희망을 선물해 줄 수 있고, 세종대왕님의 조선은 더욱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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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이야 굉장히 많겠지만 나는 딱 거기까지만 하고 사직상소를 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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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기로 세종대왕님은 황희, 조말생처럼 심각한 죄를 저지른 사람이 아니고서는 '종신복무'를 명하시지는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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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죄를 저지른 게 없으니 이방원도 세종대왕님도 아쉽겠지만 내 사직을 허락해 주실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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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인륜지대사인 혼례를 핑계로 물러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이다. 그러고 영원히 복직하겠다고 말하지 않으면 그만인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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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관은 방원법이야말로 지금도 움집에 살고 있는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하여 저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선물해 줄 수 있는 법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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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의 가슴 속에는 대붕과도 같은 큰 뜻을 품고 있군. 하긴, 그런 큰 뜻을 품고 있으니 태상왕 전하의 철퇴 앞에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충언을 할 수 있었겠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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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역사학자는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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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시대만 해도 백성들 대다수는 움집에서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종 시대부터는 백성들의 사정이 좋아지면서 다들 '초가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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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집도 초가집도 초라한 집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이는 한국으로 치면 전기도 안 통하는 5평 옥탑방에서 20평 정도 되는 단독주택으로 이사 간 셈이라 생각하면 된다고 하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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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세종대왕 시기가 조선이 가장 빠르게, 안정적으로 발전했던 때라 여겨 모두가 이상향으로 보는 시대라고 들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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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정이다 보니 사람들은 세종대왕님 사후 50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그분을 그리워하고, 존경하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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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장난인지, 아니면 그냥 우연인지 몰라도 지금의 나에게는 세종대왕님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선사할 수 있는 힘과 지식이 갖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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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과를 졸업한 나는 한때 조선의 명재상들처럼 훌륭한 정치인이 되겠다고, 행정고시를 쳐서 합격했다가 현실의 쓴맛을 보고 좌절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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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수찬, 자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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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가 멍때리고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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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합니다, 대감. 소관이 지금 생각나는 문제가 있어서... 그리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생각하다 보니, 이걸 어찌 정리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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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가 나를 미친놈 바라보듯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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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나는 그냥 평범하게 문제가 될 법한 것들을 떠올렸을 뿐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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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호조에 조선 최고의 고리대금업자이자 조선의 영의정을 겸하고 있는 인물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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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원법의 취지는 좋지만... 이런 문제들이 있으니. 호조에서는 이것들까지 검토하도록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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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현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여유로운 몸짓으로 문서 하나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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