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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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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선에 이제 썩어빠진 화폐 정책은 없어졌다.
조선 백성들은 더 이상 동전 모양의 쓰레기 때문에 생기는 경제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조선의 모든 백성을 구해낸 거다.
이 정도면 후대의 역사학자들은 나를 조선을 구한 영웅이라고 부르지 않을까? 아니지, 조선을 대공황으로부터 구했으니 영웅 맞다.
맨 처음에 출사할 때는 그냥 전시 병과에 합격하고 적당히 사직 상소 올리고 고향에 틀어박혀 살려고 했었는데...
"세상만사, 내 뜻대로 되는 게 정말 하나도 없다니까."
조선의 세금 정책이 문제라고 투덜거리니까 하필이면 그걸 주워들은 게 세종대왕님이라서 과거에서 '장원 급제'를 해버리지를 않나.
진해 현감으로 부임해서 부자가 조금 더 내고, 가난한 사람이 덜 내는 조세 정책과 상업 활성화를 통해서 진해현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또가 되지를 않나.
임기 마치자마자 집현전으로 불려가서 6조 판서들이 돌려쓰는 인간 검색 엔진이 되어서 부려먹혀지고, 끔찍한 업무량에 시달리게 되었었지.
"그리고 화폐 시행하겠다는 걸 조선 최초의 지부상소를 올려서 겨우 막았지."
김만덕이랑 대화를 나누고서, 화폐의 결말을 알면서도 말려야 한다는 상소조차 안 올리면 죽을 때까지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집에 들어가서 화폐를 시행하면 안 된다는 이유를 한자 5,700자 아니 1만 글자 길이가 넘는 장문의 상소를 작성했었다.
다음 날 아침, 모든 관리들이 등청(출근)하는 시간대에 도끼 들고 멍석 깐 다음에 지부상소를 올렸었다. 그 과정에서 이방원이 당장 뜻을 굽히면 중용하겠다고 했지만, 차라리 죽이던가 화폐를 때려치우라 했고...
결국 전옥서로 이감되어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신세가 될 줄 알았는데, 이방원이 와서 날 풀어주고 갔다.
"화폐 대신 대동법. 아니, 방원법이라."
생각만 해도 미소가 지어졌다. 백성들을 죽이는 대신, 그들에게 더 나은 내일을 줄 수 있는 법을 실행할 수 있다니.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 같다.
원래 역사에서도 충청도에 김육이 대동법을 시행하고서, 충청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김육에게 감사하고자 직접 추모를 왔다고 하던데.
바꿔 말하면 대동법이 시행됨으로서 얼마나 큰 희망, 내일을 살아갈 힘을 줬는지 드러내는 것 아니겠어. 물론, 그 과정에서 나도 관리들도 죽어 나갈 거다.
내가 일을 하면 할수록 조선의 백성들만 의미 없이 죽어나가는 일을 할 바에는 좀 더 힘들더라도 모든 이들을 위해주는 일을 하는 게 낫지.
집현전 안으로 들어가자, 집현전 관리들이 내가 있는 쪽으로 방긋 웃으면서 다가왔다.
"김 수찬! 자네는 조선 역사에 길이 남을 충신이야!"
"자네 덕분에 동전 만들려고 조선 전체의 구리 광산을 찾아 나서고, 또 백성들에게 어떻게 역을 부과해서 채굴해야 하는 지도 계산 안 해도 되게 되었어."
"자네가 상소 올리기 전에 동전의 수요를 산관(수학자)들 시켜서 계산해보니까, 조선 전국에 있는 화포를 녹여도 그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다고 해서 어찌 상소를 올려야 할지 걱정했는데... 이제 그 걱정 안 해도 되게 되었으니, 참으로 경사야, 경사."
집현전 학사들이 모두 내 주변으로 몰려와서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
나랑 나이가 거의 비슷하지만 깐깐한 최만리도 내 옆으로 다가왔다.
다가오자마자 고개를 깊이 숙이면서 나를 향한 극찬을 쏟아냈다.
"김 수찬 나리의 충성은 당 태종을 보좌했던 위징이나 남송의 악비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소관은 동전을 주조하는 것이 백성들을 괴롭게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멈춰야 한다고 간언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태종의 저화, 세종이 방금 시행하려고 한 '동전'으로 인해 죽어 나간 피해자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관리, 양반, 부자는 한 명도 안 걸려들었다는 거다.
저들은 대놓고 저화, 동전 안 쓰면 곤장 때려서 죽여버린다는 국법이 세워졌음에도, 쌀과 면포로 거래 잘했다.
그럼에도 나는 저들을 욕할 수가 없는게... 저화니 동전이니 저걸 그대로 믿으면 그냥 자기 재산이 순식간에 날아가는 셈인데. 저 양반들도 살려면 이 악물고 물물교환하고, 자기들끼리 봐줄 수밖에 없었겠지.
"효란 부모를 공경하면서도, 부모께서 잘못된 일을 하시면 공손한 말로서 고칠 것을 말씀드려서 부모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신하의 도리도 마찬가지로, 임금께서 잘못된 정책을 펼치시면 마땅히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간언을 올려야 하는데... 소관은 이 하찮은 목숨을 잃는 것이 두려워 간언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화기애애했던 집현전 분위기가 갑자기 가라앉았다.
최만리가 비겁하게 팩트를 써서 저들의 잘못을 꼬집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저 말자체가 반박의 여지가 하나도 없는 말인지라...
집현전 부제학인 정인지도 저 말에 뭐라 하는 대신 허공을 바라보며 헛기침만 했다.
여기가 21세기 였으면 다들 지킬 가정이 있고, 자기들이 거느린 노비들도 있는데 어찌 목숨을 함부로 하겠냐면서 위로의 말을 건네주겠는데.
이건 진짜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네.
"방법과 순서의 차이가 있었을 뿐 아니겠습니까. 김 응교 나리께서는 이미 조선 전체의 구리 광산에 수천이 넘는 이들을 보내어야 한다고 계산하셨죠. 김 응교 나리께서도 상소를 올리시어 동전의 시행이 어렵다고 간언을 올리시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겠군요."
세종실록에서도 세종대왕님은 시대를 무려 수백 년 앞서 보고 억지로라도 화폐를 시행하려고 하셨다.
그러나 신하들은 이게 왜 안 되는지 아주 집요할 정도로 상소를 올렸고, 어떻게든 부작용을 줄이려고 애를 썼다.
다만, 저들은 경제학을 모르는지라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반대하기 힘들어서 지부상소 올리는 사람이 없었던 거겠지.
조금 찝찝한 분위기 속에서 정인지가 웃으면서 날 불렀다.
"김 수찬."
"예, 부제학 영감."
"듣고 보니 자네... 아직 혼사가 아직이라더군."
"예, 그렇습니다. 소관이 워낙 바빴던지라."
정인지가 날 보면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김 수찬처럼 훌륭한 인재가 혼사가 아직이라니. 이 어찌 통탄스러운 일이란 말인가. 안 되겠군, 내 친척 중에 마침 혼기가 찬 여자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와 혼례를 올리는 건 어떤가?"
"...... 예?"
"나와 자네랑 나이 차이가 고작 7살이니, 우리 둘 다 벼슬한 시기와 품계만 비슷했어도 친구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박제가의 경우 자기랑 제일 친했던 이덕무와 나이차이가 무려 8살이 났지만, 아주 막역한 친구로 지냈다. 친구처럼 친한 형이 아니라, 그냥 말 놓고 사는 친구였다.
왜냐하면 조선에는 상팔하팔이라고 해서 '나이 8살 차이'면 뜻 맞으면 그냥 친구 먹으라는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인지 말이 틀린 게 아니다.
"이제부터 자네는 나를 형이라 생각해도 좋네. 그리고 나에게는 형제자매가 없는데, 마침 자네를 보니 내 동생 같아서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이야."
...... 정인지 친척이랑 결혼? 왠지 몰라도 저 결혼을 받아들였다가는 영의정이 될 때까지 갈려나갈 것만 같다. 정말 죽어도 싫다.
나는 빨리 사직하고서 겨울이랑 연애도 하고, 고향에서 예쁜 아내 맞아들여서 편하게 살 거다.
정인지의 저 제안 직후, 집현전 학사(평균 연령 40대, 대부분 혼인 적령기의 자식이 있음)들이 내 주변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내 이런 말하기는 그렇지만, 내 여식이 제법 미색이 괜찮고 정숙하다네. 자네와 나름 잘 어울릴 듯..."
...... 미치겠다, 진짜. 왜 나이 쳐먹을 대로 쳐먹은 영감들만 나를 좋아하는 거야.
애니나 만화 속에서는 미소녀들이 주인공을 놓고 집착하기 바쁜데, 왜 나한테 집착하는 건 이런 영감들밖에 없냐고. 이게 나라냐?
"소관의 혼사는 아무래도 예법에 따라 부모님과 논의를 해봐야..."
"그 말도 옳군."
잠시만 부모님이 허락하면 이대로 곧장 혼례를 올려야 할 텐데.
정신이 여러모로 어지러워지고 있을 때, 집현전 안으로 얼굴이 죽상이 된 황희 대감이 들어왔다.
황희 뒤에 있는 노비 한 명이 책과 두루마리를 지게로 지고 있었다.
저걸 본 집현전 학사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썩어 들어갔다.
정인지가 저걸 보고서 자기 허벅지를 꼬집으면서 물어봤다.
"대감, 저 수많은 문서들은 대체 무엇입니까?"
"...... 김 수찬이 동전 도입을 멈추는 대신, 새롭게 시행하는 법과 관련된 문서네."
"대체 무슨 법을 시행하려고 하기에 이렇게나 많은 문서가..."
"태상왕 전하께서 방원법을 시행하고자 하시네."
정인지의 표정이 확 굳었다. 임금의 이름을 실명 그대로 부르는 것은 군대에서 공산주의 찬양을 하면서 군사 기밀 팔아먹는 것과 동일한 수준의 범죄이기 때문이다.
"아, 태상왕 전하께서 김 수찬이 상언(임금에게 직접 말을 올리는 것)한 법이 너무 마음에 드신 나머지 아예 전하의 휘(실명)을 붙여서 만든 법이네. 저 법의 이름이 그래서 방원법이 된 거고, 이 법의 명칭을 적을 때에는 피휘를 적용하지 않겠다고 명을 내리셨지."
"방원법..."
황희는 방원법, 즉 내가 이방원에게 제안한 법의 요지를 빠르게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집현전 관리들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굳어갔다.
"...... 아주 좋은 법이기는 한데 말입니다."
황희가 고개를 저었다.
"고생하게. 오늘부터 당분간 육조 관원들에게는 어식이 내려질 것 같더군. 전하께서 6조 관원 모두를 넉넉히 먹인다고 소를 잡으라 명하셨네."
모두의 원망 어린 눈초리가 나한테 향했다.
황희가 나를 확 자기쪽으로 끌어당겼다.
"김 수찬은 호조에 임시로 설치된 방원도감에 배치되었네. 그러니 저기 있는 충신은 우리 호조가 데려가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