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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흥의 민족이다.
재미있는 소문이나 일이 터지면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병을 다들 앓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적인 사정과 변화에 민감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관리, 양반, 시전 상인, 한양 백성들은 더 심했으니.
따라서 조선 최초의 지부상소, '내 말 안 들어줄 거면 차라리 내 목을 잘라라.'라는 쇼에 환장할 수밖에 없었다.
"돌쇠야, 그 김 수찬 나리 이야기 알고 있냐?"
"알지. 지부상소 한다면서 상소를 안 들어주면 목을 쳐달라고 하신 그분 이야기를 모르면 그게 왜놈이지 한양 사람이여?"
한양 사는 시민 중에 한자를 대충이나마 읽을 수 있는 이들을 다 합쳐도 채 5%가 안 된다. 물론, 다른 지방 고을에 비하면 이것도 엄청나게 높은 편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유식한 사람은 적다.
그렇지만 똑똑한 것과 별개로 화폐가 뭔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유는 몹시 간단하다. 태종 이방원이 왕이고, 세종이 아직 왕위에 오르지 않았던 시절에 저화를 실시했었고... 양반 관리들은 '규제 대상 외'여서 피해를 안 입었으나.
백성들 상대로는 저화 안 쓰고 다른 거 쓰면 무작정 단속을 하였기 때문에, 한양 사람이라면 규모의 차이는 있어도 피해 안 본 백성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대화하고 있는 이들의 지인, 친척 중에도 저화 쓰다가 안 좋은 일을 겪은 이가 당연히 있고 말이다.
그러니 목숨 걸고 화폐를 반대하고 나섰던 김대붕은 당연히 한양의 영웅, 명재상, 충신으로 떠받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자기들을 대신해서 죽음을 각오하고 저지하려 든 사람이니 나쁘게 보는 이가 있다면 그는 사람도 아니다.
"김 수찬 나리께서 전옥서(감옥)에서 풀려나셨다더군."
"그게 참말인가?"
"태상왕 전하께서 직접 전옥서로 찾아가셔서 김 수찬 나리를 풀어주셨다고 하더군. 그리고 동전인지 뭔지 하는 것도 아예 안 한다고 광화문에 방(게시글)이 붙었어!"
"...... 동전 안 한다는 건 믿겠는데, 태상왕 전하께서 전옥서 가신 건 어떻게 알아?"
"내 사촌의 매형이 전옥서에서 포졸을 하고 있잖아."
"아, 그렇군."
맨 처음에는 별거 아닌 것처럼 받아들였던 남자였지만. 이내 그 빌어먹을 화폐가 시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천세! 천세! 그 엿같은 화폐 때문에 한양이 쑥대밭이 되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그 걱정은 안 해도 되게 되었네."
"이게 다 김 수찬 나리 덕분이지."
"살았다, 살았어."
여기 있는 둘은 한양에서 저화가 실행되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처음에야 쌀보다 들고 다니기 편해서 저화를 쓰는 것이 좋았는데...
언젠가부터 이걸로는 세금도 못 내게 되고. 하여 쓸모가 없다 생각하여 쌀이나 오승포를 써서 거래하다가 걸린 재수 없는 녀석들은 곤장을 맞고 죽거나, 큰 병에 걸렸다.
병이 대충 낫고 나면 가족들과 다 같이 수군으로 끌려가거나, 유배를 가기도 했고.
그래서 무서움에 다들 거래를 아예 안 하게 되니, 한양에서는 떵떵거릴 정도는 아니더라도 나름 잘 살던 상인들이 땅바닥에 나앉는 일까지 비일비재했었다.
물론, 화폐 정지가 된 이상 이제는 완전히 다른 세상 이야기지만 말이다.
한양 곳곳에서 모두가 입을 모아 이 이야기만 하고 있을 때,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김만덕은 그의 장사수완과 통찰력을 발동시켰다.
"...... 자네들, 무슨 이야기를 그리하는가?"
"댁은 누구슈?"
"나는 저기 운종가에서 조그맣게 곶감이랑 멸치, 오동나무 식기 같은 거 파는 십좌(시전 상인의 등급 중 하나) 김만덕이라고 하네."
시전의 최고 계급은 선생, 다음이 오좌, 십좌다. 십좌 정도 되면 한양에서 제법 크게 장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김만덕은 자기 지위와 부를 드러내기라도 하듯 상인 나부랭이가 입으면 '법'에 걸리는 비단 도포에 갓까지 쓰고 있었으니.
방금까지만 해도 말을 편하게 하던 두 남자는 갑자기 공손해졌다.
조선은 신분제 사회지만, 돈 많은 상인을 절대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 수찬 나리랑 내가 좀 각별한 사이라서 그분 이야기에는 흥미가 좀 있네 그려. 그러니 조금만 자세히 이야기를 들려주게."
잡담이나 하고 있던 둘 중 돌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르신은 대체 누구시길래 수찬 나리를 그리 잘 아신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 나는 김 수찬 나리께서 진해 현감이실 때부터 아주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네. 진해 현감을 맡으셨던 시절에는 수찬 나리께서 우리 집에 직접 찾아오신 적도 있지."
김만덕이 시간이 남아돌아서 이런 녀석들과 잡담을 하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것이다.
그 의도 중 하나가 지금 조선의 조정, 한양에서 주가가 급상승하고 있는 김대붕의 어깨에 올라타서 자기 가치와 입지를 높이기 위함이었다.
막말로 한양 시전에서 힘 좀 쓰는 상인 A는 무시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 백성들을 화폐라는 지옥에서 구해낸 충신 김대붕의 총애를 받는 상인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목적으로 김만덕은 진해현에서 굳이 굳이 김대붕을 따라온 것이었다. 투자한 걸 수확할 시기이니, 당연히 소문을 내야만 했다.
"그게 참말이십니까?"
"한양 시전에서 십좌를 맡고 있는 내가 굳이 자네들에게 거짓말을 해서 뭐하겠나? 그리고 김 수찬 나리께서 어떤 분이신데 내가 거짓말로 그분을 욕보이겠어?"
돌쇠와 같이 있는 친구도 사실 이야깃거리가 필요했다. 그러니 이야깃거리(김대붕과 자신의 친분)를 제공할 김만덕과 그들은 서로에게 필요로 하는 것이 딱 맞아 떨어졌다.
"아니, 그 김 수찬 나리께서 정말 진해 현감을 지내셨습니까?"
김대붕의 이름은 현시점 기준으로 류정현, 황희, 맹사성, 허조 같은 재상들보다도 유명하다.
지부상소 사건 이전에는 조정에서만 이름을 좀 날렸을 뿐, 한양 백성들 사이에서는 그런 사람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인지도가 낮았었다.
정6품이라는 그의 품계 한계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에 관한 정보도 기껏해야 '화폐를 반대했다.'가 전부였으니....
새로운 정보를 접한 녀석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진해 현감이시던 시절부터 백성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참으로 깊으셨지. 가난한 백성들의 세금을 줄이시고, 뇌물도 안 받으시고, 환곡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셨다네."
"역시 될 성 푸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더니, 김 수찬 나리는 참 대단하시군요."
어느 시대나 장사꾼들은 홍보, 판매를 위해 약간의 양념을 잘 친다.
김만덕도 당연히 양념을 쳐서 사실과 다른 부분은 없지만, 조금 자극적인 맛을 내는 데에는 도가 튼 사람이었다.
"그뿐이겠나? 주상 전하께서도 김 수찬 나리를 좋게 보셔서 집현전에서 중요한 일을 맡기셨지. 내가 들은 바에 따르면 육조 판서 대감들께서도 중대한 일을 김 수찬 나리와 논한다고 하더군."
"전하께서 저런 훌륭한 분을 못 알아보실 리 없지요."
"애초에 작년 별시 전시에서 김 수찬 나리의 답안을 보고 장원으로 뽑으신 것도 전하시고, 그분을 곧장 진해 현감으로 보내신 것도 전하시네."
임금과 김대붕을 동시에 띄우는 화법을 쓴 덕에 훌륭한 임금님과 훌륭한 미래의 재상이라는 생각이 저들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심어졌다.
김만덕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어가는 것을 보며 씩 미소를 지었다.
김대붕이 재상이 되는 건 이미 확정 사항이다. 아니, 그는 틀림없이 영의정까지도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영의정이 되기 위해서는 유능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정치도 잘해야 하고, 백성들 사이에서 너무 미움받는 사람이어서도 안 된다.
지금 영의정, 재정 결핍을 만드는 달인 류정현은 이방원이 재정 긴축을 위해 특별히 기용한 사람이라 저 자리에 앉아있는 거지... 일반적인 경우라면 저 자리까지 못 올라갔을 거다.
'한양 시전에서도 악평이 자자한 사람이시지.'
그러니 김대붕은 악평이 자자한 사람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더불어 자신의 사리사욕이 더 중요하기는 하지만, 김대붕 같은 사람이 하루라도 빨리 조선의 영의정이 되어야 나라가 좋아지지 않겠는가.
김대붕은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사람이니, 분명 자신의 도움으로 빠르게 출세하게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져 기뻐할 터.
그 과정에서 자신도 큰 이익을 보게 될 테니, 나중에는 장차 시전의 선생(시전의 최고 상인)이 되는 것도 꿈이 아니지 않겠는가.
물론, 김대붕 본인은 그냥 방원법(대동법) 도입하고 빠르게 사직하고 싶을 뿐이지만... 김만덕은 그의 그런 생각을 알 길이 없었다.
아니, 적당히 사직하고 싶은 인간이 저렇게 열심히 일할 수는 없으니까.
분명히 누구보다 영의정이 되고 싶을 테지만, 선공후사의 정신이 너무나도 강력해서 ‘충군애국’을 위해 신념을 굽히지 않을 때가 종종 나타날 뿐이지 말이다.
"진해 현에서는 지극정성 백성을 위하신 분이고, 한양에 와서는 백성들을 생각해서 목숨을 내놓고 상소를 올리는 분인데... 그런 분이 더 높은 곳에 올라가면 나라 사정이 더욱 좋아지지 않겠나?"
"그렇겠죠?"
김만덕은 저들에게 소문 좀 잘 내고 다니라고 업무 추진비, 아니 조그마한 선물을 가져다줬다.
"이건 진해 현에서 만든 곶감이네. 맛이 아주 좋지."
"아이고, 뭘 이런 걸 다."
"한 말(18L) 정도씩 줄 테니, 주변 사람들 맛이나 좀 보게 나눠주게."
뇌물까지 조금 쥐여주니 나머지는 일사천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대붕이 얼마나 훌륭한 관리인지가 한양에 소문이 쫙 나버렸다.
정작 김대붕 본인은 이 사실을 접하고서 크게 좌절했다.
"...... 안 돼, 이러면 사직을 못 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