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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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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는 대동법이 필요하다. 1분 1초라도 빨리 도입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지금의 조선은 잘못된 공납제도로 인해 백성들이 고통 속에 죽어 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물론, 공납제도가 워낙 당연한 제도라는 공감대가 있기에 착취의 대상이 되는 백성들도 ‘공납 줄여줘.’만 외칠 뿐 제도를 엎을 생각은 일절 못하고 있지만...
백성들 잘 먹고, 잘 살게 하자는 여민동락을 목표로 삼는 나라에서, 백성 죽이는 줄 몰라서 시행되고 있는 거면 할 수 없어도, 알면서도 시행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모든 공물을 쌀로 걷게 하라. 그러면 관아의 재정과 궁에서 써야 하는 특산물이 부족해지지 않겠느냐?”
“오히려 풍족해질 겁니다. 그리고 백성의 부담은 줄어들 것입니다.”
“백성의 부담은 줄어드는데 나라의 재정은 더 풍족해진다. 이것은 말이 안 되지 않느냐?”
내가 말한 내용은 당연히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백성들이 내는 돈의 총량이 줄어드는 데 어떻게 나라의 재정이 더 풍족해지겠는가.
나는 그런 비현실적인 재정정책을 이방원에게 주장하여 제도화할 생각은 없다.
대항해시대, 아니 17세기까지만 해도 어지간한 유럽 열강 국가들보다 강력한 국력을 가졌던 조선이 19세기 말엽이 되었을 때 동네북이 된 이유를 찾자면 여럿 있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유교식 경제학, 공식 세금은 무조건 적게 걷고 나머지는 관리들이 알아서 조달하는 쓰레기 같은 관행 때문이라는 걸 아는데. 내가 그런 정책을 추진하라고 할 리가 없지.
백성 살리자고 지부상소 올린 놈이, 백성 죽이는 정책을 주장해서야 쓰나.
“걷는 양을 줄이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세금을 공정하게 걷자는 것입니다.”
“세금을 공정하게 걷는다... 대붕이 너는 세금을 각 호(가정) 단위로 걷는 지금의 제도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예, 그렇습니다. 지금의 제도는 몹시 공정하지 못합니다.”
나의 말이 어지간히 충격이었는지 이방원은 전옥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세금 제도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말은 조금 빼딱하게 보면 나라의 근간을 부정하는 말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화난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그것으로 보아 그는 나의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시는 걸 보니 몹시 흥미로우신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보거라.”
“지금의 세금 제도는 대호, 중호, 소호, 잔호, 잔잔호로 재산 등급을 나누어 호 별로 군역, 공물, 세금을 걷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눔으로서 많이 가진 자가 많이 내고, 적게 가진 자가 적게 내도록 제도를 정비 하였으나... 이 제도는 소신이 별시 전시 때 답한 것처럼, 가난한 백성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막대한 세금을 부과하고 있사옵니다.”
이방원은 내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소신은 진해 현의 양반들이 공납과 각종 공사 등에 많은 돈을 쓰게 하였고, 그만큼 백성들에게서는 세금을 덜 걷었습니다."
"양반들의 부담이 커져서 원성이 나올 것인데..."
"확실히 다들 처음에는 불만이 컸습니다."
불만이 많아질 것 같아서 나는 진해현의 양반들이 전임 현감들과 손잡고 '세금 횡령'해 먹은 걸 이방원 당신에게 보고한다고 슬쩍 흘렸더니 양반들의 불만이 갑자기 사라지는 마법 같은 일이 생기더라.
나야 일이 틀어진다 해도 '파직'당하거나 아니면 정직하다며 포상을 받게 될 일이라서 마음껏 고발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진해현 양반들은 정학소처럼 슬픈 일을 당할 수 있어서 나의 말을 아주 잘 들었다.
"진해 현 양반들은 매년 자신이 버는 돈의 1할(10%)도 안 되는 금액의 세금을 냈었으나, 소신이 부임하고 나서는 2할 3푼(23%)을 세금으로 내게 되었습니다. 반면, 가난한 백성들에게서 걷는 세금은 이전보다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내가 조선에 누진세를 도입할 수는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누진세를 도입해서 종합소득세 걷듯이 과세 구간 정해놓고 세금을 걷게 되면, 전국 각지의 양반들이 반발하여 조선을 불태우려고 들 테니까.
막말로 영국이 북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식민지를 상대로 이상한 세금 안 매기고, 정치 참여만 좀 보장해줬으면... 미국이 독립하는 시기가 수십, 길면 백 년 이상 늦춰졌을 거다.
왜냐하면 워싱턴이니 뭐니 하는 이들이 '독립'을 주장할 명분과 대의가 없어졌을 테니까.
그런데 영국은 이상한 세금을 만들어서 미국에서 징수하였고, 이에 열받은 미국인들이 보스턴 앞바다에 '홍차'를 쏟아부어 우려낸 참사가 벌어지게 되었고... 마침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된 거다.
이런 현상이 조선 각지에서도 일어날 수가 있다. 공권력을 동원하면 진압이야 금세 될 테지만, 그 대가로 내 목이 날아갈 수가 있다. 아니면 능지형(몸을 다섯조각 냄)을 당하려나.
그러니 현실적인 선을 지키기 위해 대동법을 내놓은 거다. 부유한 이들이 좀 더 내는 방법으로 말이다.
"이리하니 백성들은 살기 편해지고, 진해 현에서 걷은 세금은 이전에 비해 무려 4할이 늘었습니다."
"실로 놀랍구나. 네가 올린 장계를 읽었을 때도 놀랐지만, 이리 다시 들어도 몹시 놀랍다."
이방원이 나를 보는 시선이 조금 끈적해진 것 같다. 뭐랄까, 이것은 대학원생을 보는 교수님의 눈빛이랄까.
아니다, 그럴 리 없지. 모든 신하를 대학원생으로 만드는 능력은 세종대왕님한테 밖에 없잖아. 내가 감옥에 갇혀 있다 보니 몸이 허해져서 잘못 느낀 걸 거다.
"지금의 공물은 저들이 가진 재산이 아닌 호를 기준으로 분배되며, 얼마를 어찌 걷어야 하는가에 대한 절차조차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전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은 엄연히 절차가 있건만, 공납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온갖 해괴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해괴한 일이라..."
"소신이 현감으로 재직했던 진해현의 전임 현감께서는 공물을 구매하기 위해 한 호당 백미 35두를 거두었습니다."
백미 35두면 대충 쌀 3섬 반이다. 성인 남성 3명이 1년 동안 쌀밥만 먹어도 남을 정도의 백미다.
"...... 기군망상이라면 네 너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소신이 태상왕 전하께 왜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소신은 신념을 지키기 위해 지부상소를 올리는 용기를 내보긴 하였으나, 실제로는 워낙 겁이 많은지라... 거짓을 고해 기군망상의 죄를 범하여 죽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옵니다."
아, 사실 일정 정도 거짓말한 게 맞기는 하다. 한 호 평균 35두라서 양반들에게는 10~15두 정도만 거두고, 좀 만만한 녀석들에게 50두씩 거뒀던 정황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이 사실까지 말하면 내 말을 잘 들어준 진해현 양반들이랑 아전들이 무더기로 죽어 나갈 게 뻔히 보여서 그 정황은 숨기는 거다.
조선은 원래 적당히 거짓말하고, 적당히 횡령하여서 명절선물을 윗분에게 갖다 바치는 것이 기본인 '해병식 질서', '긴빠이'가 통용되는 나라니... 나도 어느 정도는 맞춰줘야지.
너무 깨끗한 물에서는 물고기가 살 수 없고, 개혁도 맨 처음부터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수능 1등급을 받고 싶은데 사칙연산도 모른다면, 1등급 애들이 푸는 문제집이 아니라 초등학교 수학부터 다시 해야 하는 것처럼. 천천히 한 단계씩만 발전시켜도 된다.
그것만으로도 수많은 이들을 구할 수 있으니까.
"...... 다른 현감들은 왜 이런 걸... 그렇겠지, 너처럼 청렴결백한 관리가 조선 천지에 또 없으니 그렇겠구나."
이방원이 나를 보는 시선이 조금 더 끈적해졌다. 이성적인 사랑은 분명 아닌데, 왠지 그 눈빛에 빠지면 황희가 되어버릴 것 같다.
대동법이 시행되는 거 지켜보면서 기회를 보아 사직 상소를 올려야겠다.
그래, 사직 상소를 올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겨울이랑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출세가 뭔 의미 있겠는가, 조선에서의 소중한 시간을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는 일. 돈만 어느 정도 있으면 예쁜 아내랑 알콩달콩 사는 게 진짜 제대로 사는 거지. 그런데 나는 재산도 겨울이도 있으니 사직서만 제때 내면 된다.
"가뜩이나 살림이 어려운 백성들에게 한 호당 35두... 35두... 35두라니... 맙소사,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이냐..."
"다른 고을의 사정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매년 이렇게 걷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일이 적지는 않을 겁니다."
"내가 부족한 탓이다."
"바로잡으실 수 있습니다."
사람 목에 칼을 꽂아 넣으면 그 사람은 죽는다. 그러나 꽂아 넣기 직전에라도 뉘우치고, 칼을 거두면 '사람을 죽이는 결과'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여태까지 모르기에 수많은 백성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운 것을, 이제 잘못이라는 걸 알았기에 뉘우친다면... 지금까지 억압받아 희생된 이들까지는 못 구해도, 앞으로 짓밟혀 나갈 수많은 백성은 구할 수 있다.
"과인이 덕이 없고, 지혜가 없으며, 게을렀다. 백성을 사랑하기만 해서 무엇하겠느냐. 그들을 위해주지 못하는데 말이다."
"제도만 바꾸시면 됩니다."
"제도를 바꾼다. 그래, 공물을 쌀로 걷자고 했지. 토지세와 공물 값을 합쳐 받을 생각인 것이냐?"
역시 이방원! 세종대왕님의 아버지이자 고려의 문과에 정정당당하게 합격한 천재다운 발상이다.
내가 공물을 쌀로 받는다 말하니, 그는 토지세와 공물을 합쳐 받는다는 생각을 해냈다.
"예, 그렇습니다. 토지세는 지금처럼 1결에 30두로 하되, 공물은 1결에 18두 정도를 걷으시옵소서."
"1결에 48두가 될 터인데 그러면 너무 많은 것이 아니냐."
저 둘을 다 합쳐봐야 평년작 기준 토지 1결당 세금이 16% 남짓이다.
마음 같아서는 저소득층에게 걷는 세금을 줄이고, 양반들에게는 30% 정도까지 징세하고 싶은데...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지금 걷는 세금 비율, 1결 48두 정도의 단일세율을 추진해서 재정을 채워야 한다.
"소신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말이냐."
"이렇게만 하신다면 백성들의 입에서는 태평가가 절로 흘러나올 것이며, 모두가 희망을 가지고 살게 될 것입니다. 조정의 재정 또한 풍족하여지니 오랑캐로부터 조선을 지키는 데에도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아, 부수적 효과로 상업 또한 미친 듯이 발달할 것이다.
조선의 재정 순환이 잘 이뤄질 것이고, 경제 규모 또한 성장하겠지.
"나는 너를 믿겠다."
이방원은 이 말을 한 뒤에 나를 보며 씩 웃었다.
"너는 이 법의 이름을 대동법이라 했다. 그런데 이 법도는 실로 아름다운 법이기에 대동법이라는 이름보다는 더 어울리는 다른 이름이 있다."
"무슨 이름을 짓고자 하심입니까?"
"내 이름을 따서 방원법이 어떻겠느냐?"
이방원의 이름은 몹시 좋은 뜻을 품고 있다. 공부와는 거리가 먼 이성계가 지은 이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태조대왕께서는 내 이름을 지으실 때 향기로운 냄새가 멀리 퍼져나가는 것처럼, 널리 덕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를 내 이름에 담으셨다."
...... 모든 임금의 이름은 피휘(해당 한자를 절대 쓰면 안되는 법)한다. 그러나 이방원은 자기 이름의 한자가 워낙 많이 쓰이는 것이니 마음껏 쓰라고 했다.
물론, 임금의 이름을 마음껏 쓰는 건 유교적 상식으로 보면 미친 짓이라 향기로울 방, 멀 원이라는 한자를 따로 쓰기만 하지. 두 글자를 붙여 쓰는 짓은 누구도 안 한다.
임금이 허락했어도 지켜야 할 원칙이 피휘인데, 그걸 깨고 내가 만든 법에 '방원'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방원법을 반대하는 작자는 그게 누구든 간에 고려의 망령과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