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153 lines
12 KiB
Markdown
153 lines
12 KiB
Markdown
|
|
조선의 지부상소는 의병장 조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
|
|
|
왜놈들 혐오하기로 유명한 남명 조식의 수제자이자 왜구의 악몽답게 임진왜란을 가장 먼저 예언했던 '선구자'.
|
|
|
|
조식 자체도 상당히 과격한 사람이었지만 조헌은 한술 더 뜨는 사람이었다.
|
|
|
|
하지만 이제부터 조선의 지부상소 시초는 나다.
|
|
|
|
"전하께서 화폐를 만들어 백성을 널리 이롭게 하시려는 그 마음이 실로 거룩합니다. 그 마음은 가히 요순과 견주어도 될 것입니다."
|
|
|
|
세종도 이방원도 화폐를 시행할 때는 굉장히 좋은 목적을 가지고 시작했다. 결과는 지옥이었지만, 시행한 이유는 선의만이 가득했다.
|
|
|
|
전조 고려와 원나라를 잘 기억하던 이방원은 '화폐'를 쓰면 원나라처럼 번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
|
|
|
실제로 상평통보가 조선에 널리 퍼졌을 때는 상업 발달에 큰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명나라에서 장거정이 모든 인두세를 은으로 받는 제도를 실시한 뒤에 명나라의 경제가 급성장한 걸 감안하면...
|
|
|
|
이방원과 세종이 화폐를 발행하며 기대했던 결과는 틀리지 않았다.
|
|
|
|
문제는 결과만 알고 올바른 실행방법을 몰랐던 것에 있었다.
|
|
|
|
"그러나 백성을 위하여 시작한 일이 오히려 백성을 고통 속에 몰아넣는 일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하여, 소신이 목숨을 걸고 간언을 올리고자 합니다."
|
|
|
|
중세 유럽이 그렇고 조선도 그런 것이 참 보고 즐길 거리가 없다. TV도, 신문도, 라디오도 없는 세상이라 특이하게도 죄인을 처형하는 것이 백성들 사이 큰 구경거리가 되었다.
|
|
|
|
그런 세상에서 상소, 그것도 유능하기로 소문난 젊은 관원이 안 들어줄 거면 자기 목을 쳐달라고 상소를 하면... 당연히 이목을 끌기에 사람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다.
|
|
|
|
상소 내용이 뭔지 그것까지는 이해 못 하더라도, 어쨌든 재미있고 신기한 구경거리인 것은 맞다.
|
|
|
|
내 예상대로 지부상소를 올리는 내 주위로는 수많은 관리와 양반 그리고 백성들이 와글와글 몰려들었다.
|
|
|
|
"전하께서는 전국 모든 고을에 화매소를 설치하여 쌀, 면포를 가져오면 그것을 동전으로 바꾸어 주겠다 하셨사옵니다. 지난번 저화를 시행하였을 때는 한양과 개성에서만 저화를 바꿔주었기에 전국의 백성들이 저화를 손에 넣는 것이 몹시 어려웠으나. 이번에는 전국의 모든 고을에서 쉽게 동전을 구할 수 있게 하셨으니, 이는 몹시 좋습니다."
|
|
|
|
저화를 이전에 실시했을 때는 개성과 한양에서만 교환이 되었다. 한양과 개성 주변에 사는 백성들이야 쌀, 면포 같은 걸 가져와서 저화로 교환할 수가 있었다지만...
|
|
|
|
중세 유럽인 중 평생 자기 고향에서 80km 이상 떨어진 곳에 가보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2% 미만이었듯, 조선 사람 중 대다수도 평생 자기가 태어난 고을 바깥으로 나가보지 않는다.
|
|
|
|
그러니 전라도에 사는 사람이 무슨 수로 한양까지 가서 저화를 교환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당장 써야 할 것이 있으니 매매는 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물물교환'을 하게 된 거다.
|
|
|
|
그런데 물물교환을 하다 걸린 백성은 아주 엄한 처벌을 받았다.
|
|
|
|
이것은 현실적인 상황을 하나도 고려하지 않았기에, 이방원이 백성들을 죽여버린 것과 진배없다 하겠다.
|
|
|
|
그나마 내가 상업을 활성화하면 백성들에게 좋다는 것을 증명한 덕분에, 전국 고을에 화매소를 만들겠다 밝힌 것이니... 원 역사보다 그래도 나아지긴 한 거다. 조선통보도 교환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
|
|
|
"더 나아가서, 전하께서는 동전 1문(무게로 치면 1냥)에 쌀 한 되라고 하였는데. 지금 조선에서는 구리 3냥에 쌀 한 되가 거래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이를 어찌 생각하겠습니까?"
|
|
|
|
조선통보가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이거다.
|
|
|
|
구리 1냥을 현물로 교환하면 쌀이 1/3되밖에 안 되지만, 구리 1냥으로 동전을 만들면 가치가 3배로 뛰게 된다.
|
|
|
|
백성들 대다수가 천자문도 못 읽는 문맹이긴 하지만, 구리가 모양을 바꿔 동전이 되기만 하면 3배 가치를 갖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걸 모를 정도로 무식하지는 않다.
|
|
|
|
하여 시장에서는 구리 동전 3개에 쌀 1되가 거래되었고... 여전히 세종은 동전 하나에 쌀 1되를 강요하였기에. 그 사이에서 애꿎은 백성들만 쥐잡듯이 잡힌 거다.
|
|
|
|
결과는 뭐, 조선왕조실록에 '동전 때문에 경제가 망하리라는 것이, 동전 나왔을 때 바로 예견되었다.'라고 기록될 만큼 처참했다.
|
|
|
|
"설령 동전의 가치를 실제로 사용한 구리 무게와 비슷하게 정한다 한들, 조선에서 화폐로 쓰기에 충분한 구리를 어찌 확보할 수 있겠사옵니까? 쌀 한 섬을 구리로 바꾸려면 구리 2근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소신이 진해 현에서 걷은 장세만 해도 백미가 1천 섬이고, 거래되는 물건의 가치를 족히 따졌을 때 백미 1만 섬이 넘었습니다. 진해현이라는 작은 고을에서 이뤄지는 거래만 계산해 보아도 족히 2만 근이 넘는 구리가 필요할 찐데, 과연 조선 팔도에서 동전 유통 시 필요한 구리가 얼마나 될지 가늠해 보셨습니까? 그 많은 구리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
|
|
|
군기시에서 전쟁을 대비하여 화포 제작을 할 때 쓰이는 구리가 만 근 정도일 거다. 그런데 2만 근이라고? 지금 조선의 체급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양이다.
|
|
|
|
그런데 이게 전국 규모가 되면 최소 수백 만근 어치의 구리가 쓰여야 할 텐데. 이게 가능할 리 없다.
|
|
|
|
차라리 연애 경험 없는 남자가 F컵 미소녀(처녀)면서 모태 솔로이고, 나만을 바라보는 데다가 자신의 생계까지 책임져 줄 소녀를 찾는 게 더 현실적이다.
|
|
|
|
그건 확률적으로 아예 없는 이야기까지는 아니니까.
|
|
|
|
"더불어 동전을 화폐로 쓰려면 쌀 대신 동전으로도 세금을 받아야 백성들이 화폐의 쓸모를 믿을 것입니다. 이번에 반포하시는 화폐에 관한 내용에서는 화폐로 세금 내는 것을 불허한다고 하셨습니다."
|
|
|
|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화폐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만원이라 써진 종이조각을 정부에 가져다주면, 내가 내야 할 세금 만 원을 납부한 걸로 인정해 준다.
|
|
|
|
그래서 다들 화폐를 믿는다. 정부에 내야 할 세금도 화폐로 받으니까.
|
|
|
|
그런데 조선에서는 세금을 화폐로 받지 않았으니, 이런 화폐는 당연히 망할 수밖에 없는 거다. 나라에서도 화폐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데 백성들이 어떻게 믿겠는가.
|
|
|
|
"나라가 화폐를 한낱 구리 조각만도 못하게 여기는데, 백성들이 그 구리 조각을 어찌 화폐라 여기겠습니까!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
|
|
|
나는 그렇게 외쳐댔다. 목이 마르면 돌쇠보고 물을 떠오라 하여 마셨다. 목이 쉴 거 같으면 외치는 것을 잠시 멈추고, 임금님이 계신 쪽을 향해 절을 올렸다. 계속해서 말이다.
|
|
|
|
**
|
|
|
|
김대붕이 지부상소를 올린 것은 당연하게도 이방원의 귀에 들어갔다.
|
|
|
|
이방원은 이 소식을 들었을 때 김대붕을 몹시 괘씸하게 여겼다. 세종도 마찬가지였다.
|
|
|
|
화폐가 널리 시행되면 백성들에게 몹시도 이로울 것인데, 어찌하여 자신이 아끼는 김대붕이 자신들의 큰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참으로 괘씸하고 아쉬웠다.
|
|
|
|
간만에 편전 회의(조회)에 참석한 이방원이 한숨부터 내쉬었다.
|
|
|
|
"참으로 안타깝구나. 안타까워, 과인과 주상이 동전을 만들어 백성을 널리 이롭게 하려 했거늘... 어찌하여 김대붕 같은 현명한 이가 눈앞의 일만을 보고, 멀리 보지 못하기에 반대하고 나섰다는 것인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일세."
|
|
|
|
황희를 비롯한 다른 신하들은 감히 답할 수 없었다.
|
|
|
|
화폐 시행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것 같은 이방원이 '검은색 곤룡포'를 입고 '철퇴'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
'반항하면 죽는다. 반드시 죽는다.'
|
|
|
|
그러나 김대붕을 멀리 치우는 게 중요한 류정현의 생각은 달랐다.
|
|
|
|
이방원에게 밉보인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
|
|
|
"태상왕 전하, 소신이 생각해 보니. 집현전 수찬 김대붕은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것을 이뤘습니다. 소년등과면 부득호사라고, 어렸을 때 과거에 합격한 이들이 교만해지기가 쉽기에 곱게 죽지 못한다는 말처럼... 김대붕은 너무 교만해져서, 자기 신념이 무조건 맞다 여기며 이를 '충언'이랍시고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
|
|
|
이방원의 심기를 전혀 거스르지 않으면서 그가 원하는 걸 제대로 꼬집은 말이었다.
|
|
|
|
이방원은 김대붕을 죽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만 겁만 주고 싶었다.
|
|
|
|
그처럼 유능한 신하, 충성스런 신하, 조선만을 위하는 신하가 어디 있겠는가?
|
|
|
|
황희, 맹사성, 조말생, 허조 같은 이들보다 훨씬 크고 훌륭한 명재상이 될 것이 눈에 훤하다.
|
|
|
|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신이 사라진 후, 아직 어린 임금을 보좌할 최고의 왕좌지재가 바로 김대붕이라 본 것이다.
|
|
|
|
"어린아이는 잘하면 부모에게 칭찬을 받고, 잘못하면 회초리를 맞으며 사람으로서 서서히 완성되어 갑니다. 태상왕 전하께서는 지금 김대붕을 위해 회초리를 드실 때라 여겨지옵니다."
|
|
|
|
"회초리라."
|
|
|
|
이방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
"...... 그 말이 옳은 것 같군. 김대붕이라고 완벽할 수는 없겠지. 모든 걸 알 수도 없고 말이야."
|
|
|
|
"예, 그렇습니다."
|
|
|
|
그때 황희가 반박하고 나섰다.
|
|
|
|
"태상왕 전하, 김대붕이 한 말을 따지고 보면 일리가 없지 않습니다. 목숨을 걸고 올리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이시어 충분히 검토해 보시옵소서. 그 뒤에 화폐를 시행한다 하여도 나쁠 것은 없습니다. 지금 조정에서 화폐와 상업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이가 있다면 그가 누구겠습니까?"
|
|
|
|
"김대붕이겠지."
|
|
|
|
"그가 태상왕 전하와 주상 전하의 명임을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충언 올리는 것은 마땅히 재고해야 할 부분이 있어서 일 겁니다. 그러니 그의 의견을 경청하시고, 그를 주전도감이나 경시서에서 일하게 하여 발행할 화폐가 문제가 될 부분이 있는지를 감찰하게 하소서."
|
|
|
|
"그 말도 일리 있도다. 그러나 과인의 명을 저리 대놓고 거스르다니, 이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 볼 것이다."
|
|
|
|
류정현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렇게 하나, 둘씩 해나가면 된다.
|
|
|
|
느리더라도 꾸준하게 김대붕의 신념, 김대붕의 정책을 이런 식으로 꺾어나가다 보면 조선은 영원히 양반 사대부만을 위한 나라로 남을 것이다.
|
|
|
|
"상소를 받았으니, 답을 하러 가야겠지. 안 그렇소, 주상?"
|
|
|
|
"예, 그렇습니다."
|
|
|
|
말을 마친 이방원은 검은 곤룡포를 휘날리며, 근정전을 나섰다.
|
|
|
|
세종과 문무백관이 그 뒤를 따랐다.
|
|
|
|
이방원이 광화문에서 지부상소를 하는 김대붕에게 하교하였다.
|
|
|
|
"...... 지금이라도 뉘우친다면 가벼운 벌만 내리고 용서할 것이며, 너를 아주 중히 쓸 것이다."
|
|
|
|
김대붕이 답했다.
|
|
|
|
"소신은 그리할 수 없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