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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청의 퇴근은 그 관청에서 제일 높으신 분의 '퇴근'에 맞춰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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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에서는 호조판서, 예조에서는 예조 판서, 병조에서는 병조 판서가 퇴근하는 시간에 모든 관원이 일제히 퇴근하는 그런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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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시간도 '판서'보다는 빨리 오는 게 상식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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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호조에 유시(오후 5시~7시)를 알리는 종소리와 북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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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원들에게 유시를 알리는 소리는 퇴근해도 좋다는 신호와 마찬가지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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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는 호조 참판부터 밑으로는 호조의 공노비까지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호조판서 황희의 눈치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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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퇴근하지 않고 야근한다면 호조의 모든 관원은 야근해야 할 것이고, 황희가 퇴근한다면 모든 이들도 퇴근에 동참하여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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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주목을 받던 황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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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뭐하나? 김 수찬(김대붕) 덕분에 가장 시급한 문제의 지침도 잡혔겠다, 왜 굳이 야근해야 한단 말인가. 숙직자 말고는 모두 퇴청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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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에 관원들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떠올랐다. 등청(출근) 하자마자 중간에 집에서 노비가 가져다준 점심 먹는 시간 말고는 일만 하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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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근무를 안 하고 퇴청할 수 있다니 이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소중하고 기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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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속으로 김대붕에게 감사했다. 물론 수 분 안에 자신들의 야근 원인이 김대붕이었다는 걸 떠올리며 속으로 욕을 날릴 것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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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청하겠습니다, 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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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쉬고 내일 제시간에 등청하시게. 본관은 묘시가 거의 끝나갈 즈음에 출근할 것이니, 그리 알고들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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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료의 출근 시간은 시기 별로 다르지만 보통 묘시(새벽 5시~7시)에 이뤄진다. 일이 급하면 묘시가 되자마자 출근하고, 일이 안 급하면 묘시 거의 끝에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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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황희가 지금 말한 것은 내일도 야근, 연장근무가 없다는 선언이었으니…. 관원들은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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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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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 퇴청한다고 기방에서 너무 무리하지는 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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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하고 황희는 곧장 퇴청 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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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정시 퇴근인데 굳이 관료들 붙잡고 드잡이질을 왜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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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서 편히 쉬어도 모자랄 판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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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려 황희가 가마에 오르는 데 마침 예조 판서 허조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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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 판서 대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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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허조가 반갑게 답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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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판서 대감도 오늘은 정시 퇴청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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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수찬 덕분에 전국 모든 고을에 장시를 어찌 보급할지 방안을 찾게 되었다네. 이제 호조는 당분간 야근을 안 해도 되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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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나 역시 요즘 들어 과거 합격자가 한양에서만 나오는 이유를 알지 못해 곤란했는데, 그에게 물었더니 바로 명쾌한 답을 주지 않겠나. 그래서 정시 퇴청을 할 수 있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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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있었군. 그래 예조 판서 대감은 어떤 답을 들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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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조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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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을 순식간에 해결해 준 만능 상담 도구, 현시대에 환생한 제갈량 같은 김대붕 덕분에 해답을 찾았을 때의 기쁨이 다시 생각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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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조선에서는 식년시를 제외한 별시(비정기 시험)의 경우 시험 날짜를 전국에 고지하지 않고 있네. 그러니 별시에 응시하는 이들은 한양에 사는 이들이거나, 관원들과 연이 있는 이들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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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보니 그러하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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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제부터는 나라의 경사가 있거나, 관원의 수효를 급히 늘려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라도 어지간해서는 전국 군현에 방(공고문)을 내리고 3달의 여유를 두기로 했네. 그러면 지방에 있는 선비들도 별시를 보러 올 것이니, 한양 선비들만 과거 합격하는 일은 없어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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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김 수찬이군. 그렇게 하면 모든 선비들이 과거 시험이 언제 치러지는지 몰라서 못 치는 일은 없어지겠어. 나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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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는 자기가 김대붕에게 물어본 문제와 들은 답변을 허조에게 이야기했다. 허조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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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수찬은 말 그대로 붕새 같은 인재로군. 품계가 있는 관원을 한 번에 364명 늘리자고 제안할 줄이야. 대담하기가 짝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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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을 더 걷어야 백성에게 이로움을 준다 하니... 솔직히 광인처럼 보이기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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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이라, 예조 참하관(종6품 미만의 관원)들이 모여서 김 수찬 뒷담 하는 걸 주워들은 적이 있는데. 그자들은 김 수찬을 보고 재앙과도 같다고 말하더군. 일을 미친 듯이 늘린다고 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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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뭐 그런 면이 있기는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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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말은 아니라지만, 감히 참하관 놈들이 참상관(종6품 이상의 관원) 뒷담을 하다니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그래서 내가 시간을 할애하여 예법을 간단히 교육해 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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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황희는 그냥 웃었다. 김대붕의 행보를 생각하면 어지간한 뒷담 정도는 안 할 수가 없는 건데, 그걸 했다고 가벼운 교육(최소 2시간 이상의 잔소리)을 해 주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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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예조 전체로 알려졌을 것이니, 그 작자들은 하루 종일 내리갈굼을 당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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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는 그들을 동정했다. 저지른 죄에 비해 너무 심한 벌을 받은 거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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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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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성질 많이 죽었다네. 겨우 1 시진(2시간) 잔소리였네. 그 정도면 내가 많이 절제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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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을 말아야지. 그건 그렇고 김 수찬은 수일 내로 영상 대감(류정현)께 아주 호된 소리를 듣게 생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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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류정현, 조선의 '무조건 감세'라는 세금 정책의 최선봉에 선 고리대금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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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국법으로 처벌 안 되는 얍삽한 짓거리로 막대한 재산을 모은 황희조차 혀를 내두르는 수전노 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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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신념과 김대붕이 주장하는 정책은 완전히 반대된다. 즉, 김대붕은 류정현이 이를 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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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현이 이방원과 세종 눈치를 보고 있어서 그렇지... 그는 처음부터 김대붕을 안 좋아했다. 세금을 더 걷어서 백성을 위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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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꼰대 유교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몹시 잘못된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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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대감의 정책에 호조판서 대감은 반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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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찬성했었지만, 이제는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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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는 김대붕의 이야기를 듣고서 생각을 조금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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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을 무작정 많이 걷는 것도 안 좋긴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적게 걷으면 이는 백성을 좀 먹는 결과로 나타난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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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적절히 걷고 올바르게 쓰는 것이 조선을 위하는 일이라 여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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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거 다 필요 없고, 김대붕이 진해 현감을 하면서 직접 보여주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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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을 4할(40%) 더 걷었는데도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송덕비를 세웠고 사민(양반 포함 모든 백성)이 천인소를 올리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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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의 건국에 함께 하지 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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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나도 마찬가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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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그냥 나라에서 부르니 권력을 탐해서 간 거고, 예조 판서 대감은 다르지 않나. 조선이 건국되자마자 바로 힘을 보탰었지. 나는 더 높은 자리를 바랐기에, 그 자리를 줄 때까지 기다리기만 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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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는 재물을 탐하기가 탐관오리에 가까운 신하이다. 관직에 오른 후에도 늘 자기 신념을 지켜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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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태조 대왕 시절(이성계) 몇 번이나 신념을 지키다가 파직당했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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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대감께서 김 수찬을 찍어내려고 한다면, 나는 상소를 올려 그걸 막을 것이네. 김 수찬은 진정 이 나라에 필요한 인재가 틀림없네. 더군다나 그는 나와 달리 사리사욕도 없지. 그저 자나 깨나 종묘사직만을 생각하는 충신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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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조는 그의 말을 듣고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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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같은 생각이라네. 그런 의미에서 정시 퇴청도 했는데, 한 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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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예조 판서 대감이 사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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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난하네. 누구랑 달라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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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허조는 삼사가 작정하고 털어도 먼지 한 톨이 안 나오는 청백리였다. 그래서 황희는 진짜 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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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면 각지에서 보내오는 막대한 선물을 안 받으면 되는 건데. 그런데 그걸 못하는 황희이니 그의 선택지는 하나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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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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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야근만은 피했지만. 젠장, 내가 무슨 검색 엔진이라도 되는 줄 아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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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등청 첫날일 뿐인데 무슨 일을 그렇게 많이 던져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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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에서는 황희가 달려와서 전국 각지에 시장 보급할 방법을 물어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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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에서는 과거 시험 합격자가 한양에만 집중되는 원인을 모르겠다고 대책을 내놓으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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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조에서는 전국에 제방을 쌓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달라며 보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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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슨 GPT도 아니고 이게 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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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뭐, 그렇게 구른 덕분에 엿같은 면신례를 피하기는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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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집현전 직제학 나리께서 은근히 각을 봐서 면신례를 준비하라고 말씀하셨지만, 부제학 정인지 영감이 조용히 끌고 나가는 바람에... 가능했던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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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거 같네. 진짜로 죽을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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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나에게 질문을 계속 던질 것 같은데 이게 감당이 될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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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필요 없고 지금은 빨리 몸부터 씻고 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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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 내일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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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오셨습니까, 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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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냐, 돌쇠야. 저녁상 좀 봐오라 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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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나리. 그리고 아, 안에 겨울 아씨께서 와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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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만덕 이 인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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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덕은 내 힘을 등에 업어서 반쯤 조폭 단체화된 시전에서 자리를 무사히 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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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시전 도중(조합) 가입을 하려면 막대한 돈을 내야 하지만... 차기 재상 후보인 나와 관계가 깊다는 걸 인정받아서 시전에 거의 공짜로 가입하는 데 성공했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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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부터 김겨울이 종종 우리 집에 와서 집안일을 도와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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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맙기는 한데... 아니지 저렇게 예쁜 여자가 나를 도와주러 종종 나타나다니 나로서는 마구마구 고맙다. 그렇지만 김겨울 심정도 헤아려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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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겨울이에게 이야기해야겠어. 아버지 때문에 싫은데도 오는 거면 내가 잘 둘러대서 거절하겠다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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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덕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거절할 방법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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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이벤트라면 이벤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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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 말로 중얼대고서, 밥상 차려온 것을 맛있게 먹은 뒤 김겨울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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