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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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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청의 퇴근은 그 관청에서 제일 높으신 분의 '퇴근'에 맞춰 이뤄진다.
호조에서는 호조판서, 예조에서는 예조 판서, 병조에서는 병조 판서가 퇴근하는 시간에 모든 관원이 일제히 퇴근하는 그런 방식으로.
출근 시간도 '판서'보다는 빨리 오는 게 상식이고 말이다.
드디어 호조에 유시(오후 5시~7시)를 알리는 종소리와 북소리가 들려왔다.
관원들에게 유시를 알리는 소리는 퇴근해도 좋다는 신호와 마찬가지였으니...
위로는 호조 참판부터 밑으로는 호조의 공노비까지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호조판서 황희의 눈치를 살폈다.
그가 퇴근하지 않고 야근한다면 호조의 모든 관원은 야근해야 할 것이고, 황희가 퇴근한다면 모든 이들도 퇴근에 동참하여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모두의 주목을 받던 황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다들 뭐하나? 김 수찬(김대붕) 덕분에 가장 시급한 문제의 지침도 잡혔겠다, 왜 굳이 야근해야 한단 말인가. 숙직자 말고는 모두 퇴청하시게."
그의 말에 관원들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떠올랐다. 등청(출근) 하자마자 중간에 집에서 노비가 가져다준 점심 먹는 시간 말고는 일만 하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는데.
연장근무를 안 하고 퇴청할 수 있다니 이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소중하고 기쁜 일이었다.
다들 속으로 김대붕에게 감사했다. 물론 수 분 안에 자신들의 야근 원인이 김대붕이었다는 걸 떠올리며 속으로 욕을 날릴 것이지만 말이다.
"퇴청하겠습니다, 대감."
"잘 쉬고 내일 제시간에 등청하시게. 본관은 묘시가 거의 끝나갈 즈음에 출근할 것이니, 그리 알고들 있게."
조선 관료의 출근 시간은 시기 별로 다르지만 보통 묘시(새벽 5시~7시)에 이뤄진다. 일이 급하면 묘시가 되자마자 출근하고, 일이 안 급하면 묘시 거의 끝에 출근한다.
따라서 황희가 지금 말한 것은 내일도 야근, 연장근무가 없다는 선언이었으니…. 관원들은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예, 알겠습니다."
"정시 퇴청한다고 기방에서 너무 무리하지는 말게."
그 말을 하고 황희는 곧장 퇴청 길에 올랐다.
귀한 정시 퇴근인데 굳이 관료들 붙잡고 드잡이질을 왜 하겠는가?
집에 가서 편히 쉬어도 모자랄 판인데 말이다.
퇴근하려 황희가 가마에 오르는 데 마침 예조 판서 허조가 보였다.
"예조 판서 대감 아닌가?"
그 말에 허조가 반갑게 답해줬다.
"호조판서 대감도 오늘은 정시 퇴청하는 건가?"
"김 수찬 덕분에 전국 모든 고을에 장시를 어찌 보급할지 방안을 찾게 되었다네. 이제 호조는 당분간 야근을 안 해도 되게 되었어."
"허허, 나 역시 요즘 들어 과거 합격자가 한양에서만 나오는 이유를 알지 못해 곤란했는데, 그에게 물었더니 바로 명쾌한 답을 주지 않겠나. 그래서 정시 퇴청을 할 수 있게 된 거지."
"그런 일이 있었군. 그래 예조 판서 대감은 어떤 답을 들었는가?"
허조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고민을 순식간에 해결해 준 만능 상담 도구, 현시대에 환생한 제갈량 같은 김대붕 덕분에 해답을 찾았을 때의 기쁨이 다시 생각났기 때문이다.
"지금 조선에서는 식년시를 제외한 별시(비정기 시험)의 경우 시험 날짜를 전국에 고지하지 않고 있네. 그러니 별시에 응시하는 이들은 한양에 사는 이들이거나, 관원들과 연이 있는 이들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던 거지."
"듣고 보니 그러하구먼."
"그래서 이제부터는 나라의 경사가 있거나, 관원의 수효를 급히 늘려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라도 어지간해서는 전국 군현에 방(공고문)을 내리고 3달의 여유를 두기로 했네. 그러면 지방에 있는 선비들도 별시를 보러 올 것이니, 한양 선비들만 과거 합격하는 일은 없어지지 않겠는가?"
"역시 김 수찬이군. 그렇게 하면 모든 선비들이 과거 시험이 언제 치러지는지 몰라서 못 치는 일은 없어지겠어. 나는 말이지..."
황희는 자기가 김대붕에게 물어본 문제와 들은 답변을 허조에게 이야기했다. 허조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 김 수찬은 말 그대로 붕새 같은 인재로군. 품계가 있는 관원을 한 번에 364명 늘리자고 제안할 줄이야. 대담하기가 짝이 없어."
"세금을 더 걷어야 백성에게 이로움을 준다 하니... 솔직히 광인처럼 보이기도 하네."
"광인이라, 예조 참하관(종6품 미만의 관원)들이 모여서 김 수찬 뒷담 하는 걸 주워들은 적이 있는데. 그자들은 김 수찬을 보고 재앙과도 같다고 말하더군. 일을 미친 듯이 늘린다고 해서 말이야."
"허허, 뭐 그런 면이 있기는 하지."
"틀린 말은 아니라지만, 감히 참하관 놈들이 참상관(종6품 이상의 관원) 뒷담을 하다니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그래서 내가 시간을 할애하여 예법을 간단히 교육해 줬네."
그 말에 황희는 그냥 웃었다. 김대붕의 행보를 생각하면 어지간한 뒷담 정도는 안 할 수가 없는 건데, 그걸 했다고 가벼운 교육(최소 2시간 이상의 잔소리)을 해 주다니...
이 사건은 예조 전체로 알려졌을 것이니, 그 작자들은 하루 종일 내리갈굼을 당했을 거다.
황희는 그들을 동정했다. 저지른 죄에 비해 너무 심한 벌을 받은 거 같아서 말이다.
"적당히 하게."
"나도 성질 많이 죽었다네. 겨우 1 시진(2시간) 잔소리였네. 그 정도면 내가 많이 절제한 거지."
"...... 말을 말아야지. 그건 그렇고 김 수찬은 수일 내로 영상 대감(류정현)께 아주 호된 소리를 듣게 생겼어."
영의정 류정현, 조선의 '무조건 감세'라는 세금 정책의 최선봉에 선 고리대금업자.
조선의 국법으로 처벌 안 되는 얍삽한 짓거리로 막대한 재산을 모은 황희조차 혀를 내두르는 수전노 재상.
그의 신념과 김대붕이 주장하는 정책은 완전히 반대된다. 즉, 김대붕은 류정현이 이를 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거다.
류정현이 이방원과 세종 눈치를 보고 있어서 그렇지... 그는 처음부터 김대붕을 안 좋아했다. 세금을 더 걷어서 백성을 위한다니?
이건 꼰대 유교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몹시 잘못된 정책이다.
"류 대감의 정책에 호조판서 대감은 반대하는가?"
"예전에는 찬성했었지만, 이제는 아니네."
황희는 김대붕의 이야기를 듣고서 생각을 조금 바꾸었다.
세금을 무작정 많이 걷는 것도 안 좋긴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적게 걷으면 이는 백성을 좀 먹는 결과로 나타난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여 적절히 걷고 올바르게 쓰는 것이 조선을 위하는 일이라 여기게 되었다.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김대붕이 진해 현감을 하면서 직접 보여주지 않았는가?
세금을 4할(40%) 더 걷었는데도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송덕비를 세웠고 사민(양반 포함 모든 백성)이 천인소를 올리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나는 조선의 건국에 함께 하지 못했네."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
"나야 그냥 나라에서 부르니 권력을 탐해서 간 거고, 예조 판서 대감은 다르지 않나. 조선이 건국되자마자 바로 힘을 보탰었지. 나는 더 높은 자리를 바랐기에, 그 자리를 줄 때까지 기다리기만 했었고."
황희는 재물을 탐하기가 탐관오리에 가까운 신하이다. 관직에 오른 후에도 늘 자기 신념을 지켜왔고.
하여 태조 대왕 시절(이성계) 몇 번이나 신념을 지키다가 파직당했었고 말이다.
"영의정 대감께서 김 수찬을 찍어내려고 한다면, 나는 상소를 올려 그걸 막을 것이네. 김 수찬은 진정 이 나라에 필요한 인재가 틀림없네. 더군다나 그는 나와 달리 사리사욕도 없지. 그저 자나 깨나 종묘사직만을 생각하는 충신이라네."
허조는 그의 말을 듣고 씩 웃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라네. 그런 의미에서 정시 퇴청도 했는데, 한 잔 어떤가?"
"좋지. 예조 판서 대감이 사는 건가?"
"나는 가난하네. 누구랑 달라서 말이야."
그야말로 허조는 삼사가 작정하고 털어도 먼지 한 톨이 안 나오는 청백리였다. 그래서 황희는 진짜 할 말이 없었다.
억울하면 각지에서 보내오는 막대한 선물을 안 받으면 되는 건데. 그런데 그걸 못하는 황희이니 그의 선택지는 하나뿐.
"...... 내가 사지."
**
"어떻게 야근만은 피했지만. 젠장, 내가 무슨 검색 엔진이라도 되는 줄 아는 거야?"
오늘은 등청 첫날일 뿐인데 무슨 일을 그렇게 많이 던져주는 거야.
호조에서는 황희가 달려와서 전국 각지에 시장 보급할 방법을 물어보지 않나.
예조에서는 과거 시험 합격자가 한양에만 집중되는 원인을 모르겠다고 대책을 내놓으라 하고.
공조에서는 전국에 제방을 쌓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달라며 보채고...
내가 무슨 GPT도 아니고 이게 뭐냔 말이다.
그래도 뭐, 그렇게 구른 덕분에 엿같은 면신례를 피하기는 했으니.
정확히는 집현전 직제학 나리께서 은근히 각을 봐서 면신례를 준비하라고 말씀하셨지만, 부제학 정인지 영감이 조용히 끌고 나가는 바람에... 가능했던 거였다.
"죽을 거 같네. 진짜로 죽을 거 같아."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나에게 질문을 계속 던질 것 같은데 이게 감당이 될까 모르겠다.
다 필요 없고 지금은 빨리 몸부터 씻고 자고 싶다.
그래야 내일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겠지.
"다녀오셨습니까, 나리."
"오냐, 돌쇠야. 저녁상 좀 봐오라 전해라."
"예, 나리. 그리고 아, 안에 겨울 아씨께서 와계십니다."
"...... 김만덕 이 인간이..."
김만덕은 내 힘을 등에 업어서 반쯤 조폭 단체화된 시전에서 자리를 무사히 잡을 수 있었다.
원래는 시전 도중(조합) 가입을 하려면 막대한 돈을 내야 하지만... 차기 재상 후보인 나와 관계가 깊다는 걸 인정받아서 시전에 거의 공짜로 가입하는 데 성공했다나.
그 후부터 김겨울이 종종 우리 집에 와서 집안일을 도와주곤 한다.
솔직히 고맙기는 한데... 아니지 저렇게 예쁜 여자가 나를 도와주러 종종 나타나다니 나로서는 마구마구 고맙다. 그렇지만 김겨울 심정도 헤아려야겠지.
"하, 겨울이에게 이야기해야겠어. 아버지 때문에 싫은데도 오는 거면 내가 잘 둘러대서 거절하겠다고 말이야."
김만덕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거절할 방법은 많다.
"이것도 이벤트라면 이벤트인가?"
나는 혼자 말로 중얼대고서, 밥상 차려온 것을 맛있게 먹은 뒤 김겨울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