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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에 집이 없던 나는 과거를 치르러 처음 왔을 때 민가에 값을 치르고 묵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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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쳐서 붙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면 몰라도, 18살짜리 애송이가 과거 시험 치러 가는 것은 그저 경험 쌓는 것으로 생각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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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과거 보러 가게 되었을 때 집안에서는 굳이 한양에 집을 살 필요가 있겠냐 하셔서 남의 집에서 신세를 졌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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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김 수찬 나리. 이 집은 어떻습니까? 마음에 드십니까? 면적은 70칸 정도이고 위치는 관광방이라서, 육조와 집현전 그리고 궁에 등청(출근)하기가 어렵지 않다는 것이 장점인 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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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칸이라... 내게는 너무 큰 집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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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차 재상이 되실 수찬 나리신데 이것도 너무 적은 집이 아닌가 소인은 염려가 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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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인가? 내가 장차 혼례를 치르고, 살림을 도울 종을 더 둔다 해도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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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칸, 이걸 평으로 환산하면 대충 130평 정도다. 관광방이면 서울로 치면 강남 어딘가 정도 되는 중심가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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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6품 벼슬아치라고는 해도, 이런 곳에 마당 포함하여 130평이나 되는 집을 얻는 게 맞는 건지 분에 넘치는 건지 헛갈렸다. 아무래도 좀 더 작은 곳으로 가는 게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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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게 이 집 정도면, 과장 안 보태고 강남에 100평짜리 아파트 하나를 사는 격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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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한양이 21세기 한국보다 부동산 가격이 싸다고는 해도, 이 정도의 집은 내게 너무 과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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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김만덕이 나에게 귀띔을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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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찬 나리께서 진해 현에서 받은 선물이면 이런 집을 네 채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돈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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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홑몸이 아닌가? 아직은 처자식도 없고, 데리고 온 종이라 해봤자 저기 돌쇠랑 밥해 줄 계집종 하나가 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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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의 명성과 재력이면 솔직히 관광방에 70칸이 아니라 150칸 정도 되는 집을 가지고 계셔야 합니다. 혼인 문제도 그렇습니다. 수찬 나리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여러 명문 가문의 영애 중 아무나 골라 처로 들일 수 있고, 첩이 되고자 하는 미녀들도 줄을 선 마당에... 어찌 70칸 정도밖에 안 되는 집을 크다 말씀하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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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략결혼이라는 게 솔직히 내키지 않을 뿐 더러 내 나이가 이제 19살이라 결혼을 미루고 또 미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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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결혼이라는 건 본인의 뜻보다는 부모 뜻대로 하는 거다. 즉, 아버지가 결정하시면 나는 당장 20살 연상의 여자일지라도 백년가약을 맺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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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18살에 장원 급제를 하였고 아버지께서는 종9품 자리도 못 해본 분이시라, 조선시대에 걸맞지 않게 내 억지를 들어주고 계셔서 결혼을 안 하고 버틸 수 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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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애가 한, 둘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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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덕이 눈짓을 하니, 옆에 있는 김겨울도 한마디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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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결백도 너무 과하면 좋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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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겠네. 이 집으로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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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어안이 벙벙하다. 물론 지방에 있는 우리 본가가 여기보다 훨씬 넓기는 하지만... 그건 '지방'이라 그런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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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엄연히 서울, 그것도 땅값 높기로 유명한 북촌의 관광방에 집을 사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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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집을 사겠다고 결정하니 집주름, 부동산 중개업자가 내 쪽으로 바짝 붙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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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잘 결정하셨습니다. 역시 수찬 나리께서는 보는 눈이 뛰어 나십니다. 이 집은 한때 청백리로 이름 높으신 우헌납 김 절재(김종서) 나리께서 과거에 급제하시고 잠시 사셨던 집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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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의 김종서는 유능한 노예 후보 중 하나에 불과할 텐데, 저자가 그 사실을 자랑삼아 내게 얘기하는 걸 보면... 집 팔 때 이 집에 누가 살았었는지가 굉장히 중요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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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부동산에서도 같은 아파트면 서울대 합격한 놈이 살았던 집이 1,000만 원이라도 더 비싸게 팔린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으니. 과거에 미친 조선이라면 그런 사실이 집값에 영향을 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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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방 자체가 궁 근처, 운종가(시전) 근처기도 해서 땅값이 좀 비쌉니다. 그러니 70칸이라 하여도 백미로 400섬은 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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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미 400섬이라, 엄청나게 큰돈이기는 하지만 내가 못 낼 정도는 아니다. 현감 임기 지내면서 내가 받은 것만 쌀로 바꿔도 대충 2,000섬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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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지도 좋고 면적도 넓으니 이 정도는 낼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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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네. 다만, 내가 받은 선물을 시전에서 쌀로 바꾸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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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제가 아는 시전 상인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금방 바꿀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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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울에 별 인맥이 없다. 그래도 집현전 정6품 상대로 집주름 저놈이 아주 크게 해먹을 엄두는 못 낼 것이니... 기껏해야 20%~25% 선에서 삥땅치고 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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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선물 처분을 저놈에게 맡길 생각은 애초에 없다. 나에게는 운명공동체 김만덕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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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만덕에게 눈짓을 하자, 그는 껄껄 웃으면서 집주름의 양 어깨를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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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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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 하는 짓이오? 지금 나는 수찬 나리와 대화 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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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수찬 나리가 어떤 분인지 몰라서 이래? 무려 과거에 장원 급제하신 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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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뭐 어쨌다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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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장원 급제하고, 목민관으로 재임하던 시절 너무 덕을 많이 쌓으셔서 송덕비까지 받으신 분이라고. 자네도 한양에서 장사 좀 하는 사람이면 상왕 전하께서 검은색 곤룡포를 입고, 진해현에 정학소라는 놈 대가리를 깨부쉈다는 이야기 정도는 알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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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천지에 그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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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덕이 나를 가리키면서 한쪽 입꼬리를 씩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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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상왕 전하께서 정학소 죽이라며 함께 내리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아? '조선은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는 나라여야 한다. 진해 현감이 그러했다.' 였지. 그리고 당신이 집을 팔려 하는 이분이 바로 전 진해 현감 나리이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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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름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그러더니 식은땀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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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까지 남자 손도 못 잡아 본 처녀 귀신에게 자다가 덮쳐져도 저 정도로는 안 떨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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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진해 현에서 장사를 나름 크게 한 놈이라 당신이 남겨 먹으려고 '가격 올려 치는 거' 정도는 잘 알아... 그런데 건드릴 사람을 보고 건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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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저를 협박하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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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름의 말투가 바뀌었다. 저놈은 김만덕에게 이미 말려 들어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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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냥 그렇다고 말하는 거지. 같은 상인끼리 피 보는 일 없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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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을 비롯하여 다른 실록을 보면 장터를 열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적은 것 중 '도적 떼'가 나타나기 때문이라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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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이라는 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판타지 게임에 나오는 산에서 출몰하는 몬스터 느낌의 '산적'을 말하기도 하지만, 하는 짓거리가 산적과 다를 게 없어 칼만 안 든 사기꾼이라는 의미에서 장사꾼을 도적이라고도 불렀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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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덕도 진해 현에서 잔뼈가 굵은 상인이다 보니 사람 협박하는 재주가 장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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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얼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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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 350섬. 아니 300섬! 300섬만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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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까지 한다면 얼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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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가구까지 하면 350, 아니 340섬이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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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덕이 날 보며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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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찬 나리, 이 정도 가격이면 적당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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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런데, 너무 심하게 후려친 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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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도 장사꾼입니다. 자기 목에 칼 들이댄 정도로 손해 보는 거래를 하진 않습니다. 원래부터 저 정도가 적당한 가격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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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도 참 잔인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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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에는 고이고 고인 상인들만 모이다 보니, 아예 시전 상인들이 왈패를 고용해서 패싸움을 벌이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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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영조 시기에는 아예 검계라고 해서 조폭들처럼 사람을 쑤시고 다니는 이들이 있어서, 조정에서는 훈련도감을 동원하여 전력으로 때려잡아야 할 정도로 세력의 힘이 컸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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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라 해서 그런 식의 무력 집단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겠고 말이다. 거기에 조선은 상업이 천한 거라며 억제해야 한다는 인식이 가득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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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서 컴퓨터 파는 깡패 같은 놈들이 넘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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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관료에게도 바가지를 씌우려는 걸 보니, 일반 백성들 상대로는 아주 몽둥이 들고 협박까지 하겠다. 손님, 이거 안 사면 손님 오늘 큰 코 다쳐요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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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놈들도 언젠가 싹 다 '교화'시켜버려야 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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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 340섬에 가구까지 들이려면 얼마 걸리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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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수찬 나리. 일주일이면 청소까지 싹 다 해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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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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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나는 청소까지 모두 저들에게 맡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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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매매 명문(계약서)을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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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덕은 매매 명문 작성이 끝난 것을 확인하더니 곧장 자리를 떠나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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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전 도중(조합)에 가입부터 하고, 수찬나리께서 가져온 선물을 시전에 팔러 가겠습니다. 그리고 겨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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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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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찬 나리께서는 집안의 일을 돌보는 것이 쉽지 않으실 터, 네가 도움을 좀 드리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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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지 마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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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덕은 그렇게 돌쇠와 밥하는 계집종(40대) 한 명 그리고 겨울이를 남겨 놓고 쌩하니 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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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지. 집 청소를 도우라고 자기가 부리는 머슴도 몇 명 놔두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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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겨울은 멍때리고 있는 나를 대신하여 빠르게 집안에 필요한 최소한의 살림살이를 챙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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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 어멈은 어서 밥부터 짓고. 돌쇠랑 다른 머슴들은 시전에 가서 반찬거리를 좀 사 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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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우리 집안의 살림꾼이라도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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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꾼이라 생각하니 뭔가 좀 그렇고 그런 게... 젠장 내 몸이 낭랑 19세인지라 조금만 생각이 새어버려도 이상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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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일을 다 시킨 김겨울은 나에게 시선을 보내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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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같은 날에는 종들에게 고기와 술을 넉넉하게 먹이는 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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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지. 오늘은 집안의 경사로운 날인데, 밥도 제대로 안 먹이면 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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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집에 가구가 들어오지 않아, 당장 여기서 살 수는 없지만... 오늘은 내가 한양에 집을 마련하게 된 기쁜 날이니, 고기와 술을 양껏 먹을 수 있게 할 것이다. 다들 고생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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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시까지 떨어지자, 다들 서둘러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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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네. 만덕은 그렇다 쳐도, 그대에게까지 도움을 받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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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께서 수찬 나리의 일을 우리 집안일보다 더 소중히 여겨라 명하셨습니다. 소녀는 그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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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렇겠지. 괜히 드라마 같은 데에서처럼 사랑에 빠지고 뭐 그런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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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소녀도 덕이 높고, 바른 뜻을 가지신 수찬 나리께 도움을 드릴 수 있어 진심으로 기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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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라는 말이 유난히 간지럽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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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덕, 김겨울은 이후로도 종종 우리 집에 찾아와 일을 도와주었다. 하여 나는 별 어려움 없이 집안 이사라는 큰 일을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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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이사를 마치고 며칠 쉬다 보니 어느새 집현전 첫 출근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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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근이라 긴장감을 가지고 집현전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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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집현전 부제학 영감이 나를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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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김 수찬, 어서 오게. 자네가 해야만 하는 일이 아주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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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해 현으로 돌려보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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