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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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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에 집이 없던 나는 과거를 치르러 처음 왔을 때 민가에 값을 치르고 묵었었다.

과거를 쳐서 붙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면 몰라도, 18살짜리 애송이가 과거 시험 치러 가는 것은 그저 경험 쌓는 것으로 생각하기에.

내가 과거 보러 가게 되었을 때 집안에서는 굳이 한양에 집을 살 필요가 있겠냐 하셔서 남의 집에서 신세를 졌던 거다.

"아이고, 김 수찬 나리. 이 집은 어떻습니까? 마음에 드십니까? 면적은 70칸 정도이고 위치는 관광방이라서, 육조와 집현전 그리고 궁에 등청(출근)하기가 어렵지 않다는 것이 장점인 집입니다."

"70칸이라... 내게는 너무 큰 집이 아닌가."

"장차 재상이 되실 수찬 나리신데 이것도 너무 적은 집이 아닌가 소인은 염려가 됩니다만."

"무슨 소리인가? 내가 장차 혼례를 치르고, 살림을 도울 종을 더 둔다 해도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드는데..."

70칸, 이걸 평으로 환산하면 대충 130평 정도다. 관광방이면 서울로 치면 강남 어딘가 정도 되는 중심가이고 말이다.

내가 정6품 벼슬아치라고는 해도, 이런 곳에 마당 포함하여 130평이나 되는 집을 얻는 게 맞는 건지 분에 넘치는 건지 헛갈렸다. 아무래도 좀 더 작은 곳으로 가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게 이 집 정도면, 과장 안 보태고 강남에 100평짜리 아파트 하나를 사는 격이니.

조선 초기 한양이 21세기 한국보다 부동산 가격이 싸다고는 해도, 이 정도의 집은 내게 너무 과한 것 같다.

고민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김만덕이 나에게 귀띔을 해줬다.

"수찬 나리께서 진해 현에서 받은 선물이면 이런 집을 네 채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돈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나는 홑몸이 아닌가? 아직은 처자식도 없고, 데리고 온 종이라 해봤자 저기 돌쇠랑 밥해 줄 계집종 하나가 다인데."

"나리의 명성과 재력이면 솔직히 관광방에 70칸이 아니라 150칸 정도 되는 집을 가지고 계셔야 합니다. 혼인 문제도 그렇습니다. 수찬 나리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여러 명문 가문의 영애 중 아무나 골라 처로 들일 수 있고, 첩이 되고자 하는 미녀들도 줄을 선 마당에... 어찌 70칸 정도밖에 안 되는 집을 크다 말씀하시는 겁니까?"

정략결혼이라는 게 솔직히 내키지 않을 뿐 더러 내 나이가 이제 19살이라 결혼을 미루고 또 미뤄왔다.

조선시대 결혼이라는 건 본인의 뜻보다는 부모 뜻대로 하는 거다. 즉, 아버지가 결정하시면 나는 당장 20살 연상의 여자일지라도 백년가약을 맺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18살에 장원 급제를 하였고 아버지께서는 종9품 자리도 못 해본 분이시라, 조선시대에 걸맞지 않게 내 억지를 들어주고 계셔서 결혼을 안 하고 버틸 수 있던 거지.

원래는 애가 한, 둘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이기는 하다.

김만덕이 눈짓을 하니, 옆에 있는 김겨울도 한마디 거들었다.

"청렴결백도 너무 과하면 좋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 알겠네. 이 집으로 하지."

솔직히 어안이 벙벙하다. 물론 지방에 있는 우리 본가가 여기보다 훨씬 넓기는 하지만... 그건 '지방'이라 그런 거고.

여기는 엄연히 서울, 그것도 땅값 높기로 유명한 북촌의 관광방에 집을 사게 될 줄이야.

내가 집을 사겠다고 결정하니 집주름, 부동산 중개업자가 내 쪽으로 바짝 붙어왔다.

"아이고, 잘 결정하셨습니다. 역시 수찬 나리께서는 보는 눈이 뛰어 나십니다. 이 집은 한때 청백리로 이름 높으신 우헌납 김 절재(김종서) 나리께서 과거에 급제하시고 잠시 사셨던 집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의 김종서는 유능한 노예 후보 중 하나에 불과할 텐데, 저자가 그 사실을 자랑삼아 내게 얘기하는 걸 보면... 집 팔 때 이 집에 누가 살았었는지가 굉장히 중요한가 보다.

하긴, 부동산에서도 같은 아파트면 서울대 합격한 놈이 살았던 집이 1,000만 원이라도 더 비싸게 팔린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으니. 과거에 미친 조선이라면 그런 사실이 집값에 영향을 줄 수도 있겠다.

"관광방 자체가 궁 근처, 운종가(시전) 근처기도 해서 땅값이 좀 비쌉니다. 그러니 70칸이라 하여도 백미로 400섬은 주셔야 합니다."

...... 백미 400섬이라, 엄청나게 큰돈이기는 하지만 내가 못 낼 정도는 아니다. 현감 임기 지내면서 내가 받은 것만 쌀로 바꿔도 대충 2,000섬은 될 테니까.

입지도 좋고 면적도 넓으니 이 정도는 낼만 하지.

"알겠네. 다만, 내가 받은 선물을 시전에서 쌀로 바꾸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

"아이고, 제가 아는 시전 상인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금방 바꿀 수 있습니다."

나는 서울에 별 인맥이 없다. 그래도 집현전 정6품 상대로 집주름 저놈이 아주 크게 해먹을 엄두는 못 낼 것이니... 기껏해야 20%~25% 선에서 삥땅치고 말겠지.

그래도 선물 처분을 저놈에게 맡길 생각은 애초에 없다. 나에게는 운명공동체 김만덕이 있으니까.

내가 김만덕에게 눈짓을 하자, 그는 껄껄 웃으면서 집주름의 양 어깨를 꽉 쥐었다.

"이보게."

"이게 뭐 하는 짓이오? 지금 나는 수찬 나리와 대화 중인데..."

"우리 수찬 나리가 어떤 분인지 몰라서 이래? 무려 과거에 장원 급제하신 분이야."

"그게 뭐 어쨌다는 거요?"

"과거에 장원 급제하고, 목민관으로 재임하던 시절 너무 덕을 많이 쌓으셔서 송덕비까지 받으신 분이라고. 자네도 한양에서 장사 좀 하는 사람이면 상왕 전하께서 검은색 곤룡포를 입고, 진해현에 정학소라는 놈 대가리를 깨부쉈다는 이야기 정도는 알고 있겠지?"

"한양 천지에 그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김만덕이 나를 가리키면서 한쪽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때 상왕 전하께서 정학소 죽이라며 함께 내리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아? '조선은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는 나라여야 한다. 진해 현감이 그러했다.' 였지. 그리고 당신이 집을 팔려 하는 이분이 바로 전 진해 현감 나리이시네."

집주름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그러더니 식은땀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죽기 전까지 남자 손도 못 잡아 본 처녀 귀신에게 자다가 덮쳐져도 저 정도로는 안 떨 거 같은데.

"나도 진해 현에서 장사를 나름 크게 한 놈이라 당신이 남겨 먹으려고 '가격 올려 치는 거' 정도는 잘 알아... 그런데 건드릴 사람을 보고 건드려야지."

"...... 지금 저를 협박하시는 겁니까?"

집주름의 말투가 바뀌었다. 저놈은 김만덕에게 이미 말려 들어간 거다.

"아니, 그냥 그렇다고 말하는 거지. 같은 상인끼리 피 보는 일 없게 말이야."

성종실록을 비롯하여 다른 실록을 보면 장터를 열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적은 것 중 '도적 떼'가 나타나기 때문이라 적혀 있다.

도적이라는 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판타지 게임에 나오는 산에서 출몰하는 몬스터 느낌의 '산적'을 말하기도 하지만, 하는 짓거리가 산적과 다를 게 없어 칼만 안 든 사기꾼이라는 의미에서 장사꾼을 도적이라고도 불렀다는데...

김만덕도 진해 현에서 잔뼈가 굵은 상인이다 보니 사람 협박하는 재주가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얼마라고?"

"백미 350섬. 아니 300섬! 300섬만 주시면 됩니다!"

"가구까지 한다면 얼마인가?"

"아이고, 가구까지 하면 350, 아니 340섬이면 충분합니다."

김만덕이 날 보며 씩 웃었다.

"수찬 나리, 이 정도 가격이면 적당한 것 같습니다."

"그건 그런데, 너무 심하게 후려친 건 아닌가?"

"저놈도 장사꾼입니다. 자기 목에 칼 들이댄 정도로 손해 보는 거래를 하진 않습니다. 원래부터 저 정도가 적당한 가격일 것입니다."

"자네도 참 잔인하군."

"한양에는 고이고 고인 상인들만 모이다 보니, 아예 시전 상인들이 왈패를 고용해서 패싸움을 벌이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숙종, 영조 시기에는 아예 검계라고 해서 조폭들처럼 사람을 쑤시고 다니는 이들이 있어서, 조정에서는 훈련도감을 동원하여 전력으로 때려잡아야 할 정도로 세력의 힘이 컸다 한다.

조선 초기라 해서 그런 식의 무력 집단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겠고 말이다. 거기에 조선은 상업이 천한 거라며 억제해야 한다는 인식이 가득하니...

'용산에서 컴퓨터 파는 깡패 같은 놈들이 넘칠 수밖에.'

나 같은 관료에게도 바가지를 씌우려는 걸 보니, 일반 백성들 상대로는 아주 몽둥이 들고 협박까지 하겠다. 손님, 이거 안 사면 손님 오늘 큰 코 다쳐요하면서 말이다.

이 놈들도 언젠가 싹 다 '교화'시켜버려야 하는데 말이다.

"백미 340섬에 가구까지 들이려면 얼마 걸리겠나?"

"아이고, 수찬 나리. 일주일이면 청소까지 싹 다 해드릴 수 있습니다."

"부탁하네."

이렇게 나는 청소까지 모두 저들에게 맡길 수 있었다.

그리고 매매 명문(계약서)을 작성했다.

김만덕은 매매 명문 작성이 끝난 것을 확인하더니 곧장 자리를 떠나려 하였다.

"저는 시전 도중(조합)에 가입부터 하고, 수찬나리께서 가져온 선물을 시전에 팔러 가겠습니다. 그리고 겨울아."

"네, 아버님."

"수찬 나리께서는 집안의 일을 돌보는 것이 쉽지 않으실 터, 네가 도움을 좀 드리거라."

"걱정하지 마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만덕은 그렇게 돌쇠와 밥하는 계집종(40대) 한 명 그리고 겨울이를 남겨 놓고 쌩하니 가 버렸다.

아니지. 집 청소를 도우라고 자기가 부리는 머슴도 몇 명 놔두고 갔다.

김겨울은 멍때리고 있는 나를 대신하여 빠르게 집안에 필요한 최소한의 살림살이를 챙기기 시작했다.

“장덕 어멈은 어서 밥부터 짓고. 돌쇠랑 다른 머슴들은 시전에 가서 반찬거리를 좀 사 오게.”

...... 마치, 우리 집안의 살림꾼이라도 된 것 같다.

살림꾼이라 생각하니 뭔가 좀 그렇고 그런 게... 젠장 내 몸이 낭랑 19세인지라 조금만 생각이 새어버려도 이상해지네.

그렇게 일을 다 시킨 김겨울은 나에게 시선을 보내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늘 같은 날에는 종들에게 고기와 술을 넉넉하게 먹이는 게 좋아요."

아, 그렇지. 오늘은 집안의 경사로운 날인데, 밥도 제대로 안 먹이면 쓰나.

“아직 집에 가구가 들어오지 않아, 당장 여기서 살 수는 없지만... 오늘은 내가 한양에 집을 마련하게 된 기쁜 날이니, 고기와 술을 양껏 먹을 수 있게 할 것이다. 다들 고생이 많았다.”

나의 지시까지 떨어지자, 다들 서둘러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맙네. 만덕은 그렇다 쳐도, 그대에게까지 도움을 받게 될 줄이야."

"아버님께서 수찬 나리의 일을 우리 집안일보다 더 소중히 여겨라 명하셨습니다. 소녀는 그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역시 그렇겠지. 괜히 드라마 같은 데에서처럼 사랑에 빠지고 뭐 그런 건...

"하지만 소녀도 덕이 높고, 바른 뜻을 가지신 수찬 나리께 도움을 드릴 수 있어 진심으로 기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도라는 말이 유난히 간지럽게 들렸다.

김만덕, 김겨울은 이후로도 종종 우리 집에 찾아와 일을 도와주었다. 하여 나는 별 어려움 없이 집안 이사라는 큰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집안 이사를 마치고 며칠 쉬다 보니 어느새 집현전 첫 출근일이 되었다.

첫 출근이라 긴장감을 가지고 집현전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집현전 부제학 영감이 나를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리 김 수찬, 어서 오게. 자네가 해야만 하는 일이 아주 많아."

...... 진해 현으로 돌려보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