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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부터 김대붕은 이방원이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는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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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붕 본인은 모를 것이지만, 경상도 관찰사 휘하의 판관(사실상 부관찰사)에게 진해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래 보고 오라는 밀명을 내린 적이 있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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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명을 받은 이가 그에게 보내온 장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선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내용뿐이어서 그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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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붕은 고을에 부임한 첫날 관아의 온갖 공문서를 싹 다 확인하더니 공납을 대행하는 땡중들이 세금을 크게 횡령했다면서 절을 때려 부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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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백성들에게 과도하게 걷은 세금이니 돌려준다고 하며 골고루 나눠줬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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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더 놀라운 것은 이전에 바치던 공납의 2.5 배가 넘는 진상품을 조정에 바쳤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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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현에서 바친 진상품이 이전보다 2.5배 늘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는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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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품을 2.5배나 늘려 바쳤음에도 백성들의 부담은 줄어 아주 기뻐하였다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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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에게 아부하고 싶어 안달 난 간신배, 탐관오리라도 장계를 저따위로 조작할 수는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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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관찰사에게 명해서 판관을 몰래 보내어 확인케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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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을 자행한 것이라면 이는 감히 임금을 속인 것이니, 죄를 아주 엄히 물어 기강을 바로잡으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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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관 김명회가 올린 장계에는 백성들이 좋은 현감을 보내주신 성은에 감사하면서 자진하여 잔치를 벌였고, 백성들의 삶은 이전보다 확연히 좋아졌다고 하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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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회의 장계를 읽었을 때 이방원은 너무 놀란 나머지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헷갈리어 애먼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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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알던 공납... 조선... 아니 전조 고려 시절부터 공납은 백성들을 괴롭히는 세금이지만 나라를 운영하기 위해 억지로 걷는 세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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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금을 두 배가 넘게 늘리면서도 중간에 낀 타락한 놈들을 없앤 것으로 백성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니, 자신의 상식선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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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허벅지를 꼬집고 보니 아주 짜릿하게 아픈 것이 생시가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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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너무 기쁜 나머지, 일각(15분)이 넘도록 멈추지 않고 웃음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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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붕이라는 관리가 조선에 나타나다니... 자기 아들이 그처럼 뛰어난 인재를 거느리고 조선을 더욱더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 갈 미래를 생각하니 기쁜 마음에 웃음이 멈추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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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번에는 시장이라,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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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의 손에는 김대붕이 직접 써서 올린 장계가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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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계를 이방원은 세종과도 같이 읽었었고, 자기 혼자 있었을 때도 몇 번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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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이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부분을 찾아 그는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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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생기기 전에는 남편 잃은 한 과부가 밤낮으로 일하여도 자식들 입에 풀칠조차 못 시키기에 절망하여 마음이 찢어졌다 합니다. 그러나 5일마다 장이 선 뒤로는 밤낮으로 농사짓는 일 말고도 자신의 장기인 나물을 잘 캐는 재주를 사용하여 산에서 캔 나물을 장에 내다 팔았다 합니다. 그 뒤로는 식사 때마다 자식에게 보리밥 한 그릇씩을 제대로 먹일 수 있게 되었다 하며 이 사실에 너무나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를 보아 이 과부에게는 지금이 살만한 세상이오, 지금이 태평성대가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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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아름다운 말이었다. 공자, 맹자가 했던 말보다 더 아름다운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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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건국된 이래 이방원이 늘 추구했던 이상, 백성들에게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선사하고 싶다는 뜻이 완벽한 형태로 실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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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참으로 옳구나, 옳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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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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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근정전에 한 걸음씩 가까워질 때마다 그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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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을 좀먹는 자들, 자기 부귀영화를 위해 백성을 착취하는 전조 고려와 같이 죽었어야할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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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소리가 그 안에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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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사헌부 장령 김민호가 한 말이 다소 격한 면이 있기는 하나 이치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시장을 사사로이 여는 것은 국법으로 엄히 금한 일이 맞사옵고, 옛 성현이신 관자(관중)께서는 백성들이 장사와 같은 편한 일에만 종사하면 본업(농사)을 소홀히 여긴다고 이를 엄히 경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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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방원의 아들 이도는 그런 헛소리에 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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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관자는 이렇게 말했다. 백성들이 먹는 것이 족하고, 입는 것이 족해야 예의를 안다고 말이다. 백성들을 교화하자면 우선 먹고사는 게 편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백성들이 굶게 되면 어찌 되는가? 도적이 될 것이고, 유랑민이 될 것이다. 한데 김대붕을 보라. 그는 시장을 열어 백성들이 스스로 먹고 살 수 있게 길을 열어주었다. 그는 이제 회초리를 들지 않고도 백성들을 올바르게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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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은 자기 아들이 몹시 기특했다. 아직 25살밖에 안 된 아이가 조정의 대신들을 상대로 논리를 펼치는데 전혀 밀리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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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이는 장차 성군이 되어 자신보다도 조선을 더 밝게 비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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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아직 내가 필요하기는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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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열어서 백성을 먹여 살리고, 저들에게 희망을 준 김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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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한 일을 반대하는 의도는 단순히 ‘장사치’가 늘어나는 걸 경계하는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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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아들도 그걸 알지만 피를 덜 흘리기 위해 언급하지 않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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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방원의 생각은 달랐다. 썩은 건 반드시 잘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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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왕 전하 납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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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은 성큼성큼 걸어서 세종이 있는 옥좌 근처까지 갔다. 그러고는 자기 오른손에 든 철퇴를 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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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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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바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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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에게는 전조 고려의 망령이 살아 움직이는 게 보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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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자리에서의 세종과 이방원은 평범하게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편전과 같은 공식 자리에서는 격의를 갖춰 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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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이방원이 평생에 걸쳐 지키고자 한 권력과 권위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행동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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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검은 곤룡포를 입고 철퇴까지 들고 나타난 이방원의 살벌한 아우라에 재상들의 어깨는 움츠러들었고 얼굴은 파리해졌으며 고개를 푹 숙인 채 애꿎게도 마른침만 꿀꺽 삼킬 뿐이었다. 재상들의 등에는 식은땀이 쭉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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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전조 고려’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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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조 고려라는 말이 나오면 조선에서는 언제나 피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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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만 해도 권력을 누리며 승승장구하던 이가 하루아침에 변하여 온갖 고문을 받은 끝에 '제발 죽여달라.'고 외치는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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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 나는 전조 고려 시대를 살아왔소. 그 시절의 백성들이 어떠했는지 아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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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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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게을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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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이방원의 말을 듣고 의아했다. 사는 게 힘들었다면, 더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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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찌 게을렀다고 말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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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씨를 뿌리고, 김매기를 하지만 아주 대충하였소. 농사를 아주 대충 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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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조 고려의 백성이나, 조선의 백성이나 다 똑같이 농사를 짓고 사는 이들인데 왜 그랬던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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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조 고려의 백성에게는 희망이 없었기 때문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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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은 끔찍했던 고려 시대를 떠올렸다. 아주 비참하고 처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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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조 고려에는 토지 겸병이 횡행했고, 군대는 썩어빠졌으며, 관리들은 수탈하기에만 급급했소. 하여 이리저리 거둬가는 것이 수확의 9할(90%)에 달했소이다. 열심히 농사를 지어봤자, 손에 쥘 수 있는 곡식만으로는 먹고 사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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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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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조선은 여민동락(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는 정치)을 추구하며 백성들에게 부과된 과도한 세금을 줄이고자 노력했소. 그 결과, 조선의 백성들은 흉년이 들지만 않는다면 농사를 지어 가족을 먹여 살리는 데 큰 지장이 없소이다. 그렇기에 조선의 농민들은 열심히 땀을 흘려 일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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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말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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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고려와 달리 외적의 침입에서 안전하며, 세금을 많이 내기는 하지만 농민들이 배불리는 못 먹어도 굶어 죽지는 않는다. 그러니 이 시대 기준으로 조선만큼 백성이 살기 좋은 나라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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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백성들은 열심히 일했다. 열심히 일하면, 처자식에게 밥을 매일 먹이고 살 수 있는 소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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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이 백성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나라이기를 바라오. 진심으로 그렇게 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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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의 말에 세종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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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대신들을 둘러보며 이방원이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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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백성에게 희망을 주는 나라여야 한다! 내일을 꿈꿀 수 있게 해주어야만 한다. 그것이 조선이 나아가야 할 길이다. 그런데 너희는 어찌하여 진해현 백성들에게 내일을 꿈꾸게 해주고, 조정의 능력이 부족해 미처 돌보지 못하는 과부에게 희망을 가져다준 진해 현감 김대붕이 사사롭게 시장을 열었다는 것으로 그가 잘못했다 말하고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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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이 이를 갈았다. 그 소리는 재상들을 더욱 두려움에 떨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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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붕은 밤낮없이 일해도 자식 입에 풀칠을 못 해주던 과부에게 시장을 열어줌으로 마침내 자식 입에 보리밥을 넣어 주게 만들었다. 풍년이 드는 해가 아니면 늘 배고프게 살아야 했던 백성들의 배고픔을 덜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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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김대붕의 이름을 알게 되었을 때 이방원은 사실 그를 싫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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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평생에 걸쳐, 자신과 뜻을 같이한 이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만든 조선의 세금 제도를 김대붕 더벅머리 선비 놈이 부정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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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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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백성들을 위해주는 나라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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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이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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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마다 철퇴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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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현감 김대붕이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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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 김대붕이 있었으면, ‘제가 백성을 위해준 건 맞지만, 조정을 시끄럽게 한 것 또한 맞으니 이 정도에서 사직하고 낙향하고 싶습니다.’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절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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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불행하게도 김대붕은 이 자리에 낄 수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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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방원의 눈에 김대붕은 이렇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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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식사를 조금 하고, 자기 몸이 갉아 먹혀가는 줄도 모르고 일만 했던 제갈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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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나라를 위해 영원히 일하고 싶은 충신, 종신 영의정 지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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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을 위하는 일에 도적 떼가 늘어난다느니, 백성들이 게을러진다느니 하는 이유를 갖다 붙여 매도하려 했으나. 사헌부 장령 김장호가 올린 상소는 결국. 백성이 장사를 통해 부유해지면, 환곡만으로는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 없는 가장이 양반 가문에 비싼 이자를 내고 추가로 곡식을 빌리지 않게 될까 걱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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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들은 영의정 류정현이 몸을 벌벌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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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는 고리대금업이 합법이긴 하지만, 좋게 보는 행동은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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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는 그것으로 막대한 재산을 쌓아 왔지만, 선을 안 넘었기에 살아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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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철퇴 든 이방원이 한방만 내려치면 자신은 당장에라도 죽임당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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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조선에는 아직도 전조 고려의 망령이 많구나. 불교의 땡중들은 공납으로 백성들의 등골을 빨아먹고, 향촌의 선비는 백성들이 부유해져 자신들에게 곡식을 빌리지 않게 될까 염려하는구나. 이게 전조 고려와 대체 뭐가 다르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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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은 그리 탄식하고서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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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쓰레기 같은 상소를 올린 사헌부 장령 김장호는 삭탈관직에 처한다. 더불어 그를 영구히 서용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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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재상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삭탈관직을 경험한다. 따라서 삭탈관직이 아주 큰 징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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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구히 서용하지 말라.'는 말이 붙으면 어지간해서는 복직이 안 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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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징계로 그는 끈 떨어진 머저리가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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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헌은 김장호에게 진해현의 이야기를 전한 자를 찾아내고, 그자를 한양으로 압송... 아니다. 진해현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특별히 진해현에서 참형에 처하도록 하라. 더불어 그 고려의 잔당 놈의 일족을 모두 노비로 만들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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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에게는 어지간해서는 사형이 내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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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교형도 아니라 목을 자르는 참형이 내려진다? 거기에 가족까지 노비로 만든다는 것은... 이방원은 이 사건을 역모에 준하는 무언가로 보겠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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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조선의 대신들은 이방원의 판결을 반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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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호조 판서는 김대붕이 진해현에서 펼치는 정책을 연구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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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끝으로 이방원은 편전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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