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67 lines
13 KiB
Markdown
267 lines
13 KiB
Markdown
|
||
던전에 숨어있던 흑마법사들을 쓰러뜨린 뒤.
|
||
|
||
자하브 성으로 돌아온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급하게 준비한 것치고는 성대한 개선식이었다.
|
||
|
||
“와아아! 영주님이 돌아오셨다!”
|
||
|
||
“던전의 흑마법사를 해치우시고 돌아오셨다!”
|
||
|
||
“제 아들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
||
“영주님이라면 한번 대드릴 수도 있어요!”
|
||
|
||
“이런 미친! 자네는 남자잖나!”
|
||
|
||
“하지만 영주님은 자하브신데?”
|
||
|
||
“일리가 있군.”
|
||
|
||
사방에서 들려오는 나에 대한 찬양. 중간중간에 들려오는 섬뜩한 소리에 순간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이게 다 뭔지 이해가 안 되었기 때문.
|
||
|
||
머리를 부여잡으며, 어쩐지 가장 우쭐해하고 있는 힐다에게 물었다.
|
||
|
||
원래라면 카렌에게 물었겠으나……지금은 살짝 토라진 모양이니까.
|
||
|
||
“힐다 경. 표정 좋아 보인다?”
|
||
|
||
“흐흐. 수업 첫날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는 출세하고 싶다고 말입니다. 제가 줄을 잘 서긴 한 모양입니다. 벌써 이렇게 명예로운 자리에 설 줄은 몰랐습니다.”
|
||
|
||
“어이, 칼튼 경. 당신 딸래미 좀 봐. 이거 맞아?”
|
||
|
||
“어흐흑! 드디어 자하브에……그래! 피가 어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 이제야 정상화가 됐을 뿐! 앞으로 더욱 잘 보필해야…….”
|
||
|
||
“…….”
|
||
|
||
슬쩍 돌아본 칼튼은 어찌나 감동한 것인지 대성통곡 수준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이래서야 내 말이 들릴지도 않겠네.
|
||
|
||
중년 아저씨가 눈물 콧물 질질 짜는 모습 같은 건 보고 싶지 않았다.
|
||
|
||
결국 한숨을 푸욱 내쉬며, 주변의 찬양을 한껏 즐기고 있는 힐다의 귓가에 속삭였다.
|
||
|
||
“알았어. 이제 즐기는 건 뭐라고 안 할 테니까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좀 설명해 줘 봐. 우리 분명 제대로 된 발표도 뭣도 없이 다짜고짜 계승식 도중에 박차고 나와 던전에 들어간 거잖아.”
|
||
|
||
“아, 그게 신경 쓰였던 거군요. 줄곧 같이 움직였으니, 저라고 주군이 모르는 걸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한가지 짐작 가는 것이 있긴 합니다.”
|
||
|
||
“뭔데.”
|
||
|
||
“제벨라 아가씨입니다.”
|
||
|
||
“음?”
|
||
|
||
“주군께서도 제벨라 아가씨와 만나보셨고,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대충이나마 알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떠셨습니까?”
|
||
|
||
“솔직히 말해서 나보다 더 가주직에 어울리는 사람이지.”
|
||
|
||
“아니, 그건 아니죠. 자하브의 주인은 모든 분쟁의 선봉장이어야 합니다.”
|
||
|
||
“…….”
|
||
|
||
은근슬쩍 말을 꺼내봤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진짜 장난 없구나 남부의 강자 숭배 풍습.
|
||
|
||
속으로 한숨을 내쉬는 사이. 힐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
“뭐어. 그만큼 주군께서 제벨라 아가씨의 격무에 느끼는 바가 컸다는 뜻이겠죠.”
|
||
|
||
“어. 뭐, 그런 거지. 응.”
|
||
|
||
“제벨라 아가씨는 무척이나 유능하신 분입니다. 계승식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시고는 결론을 내리셨을 겁니다. 주군께서 이쯤이면 승리하고 돌아오시리라고.”
|
||
|
||
“……그런 게 가능하다고?”
|
||
|
||
“그만큼 주군의 힘과 성정을 믿고 계신다면 얼마든 가능하겠죠.”
|
||
|
||
말하는 와중에도 쉴 새 없이 환호하는 영지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때로는 귓속말하느라 붙어있는 나를 과시하는 등.
|
||
|
||
자연스레 주변에 자신을 각인시키던 힐다가 말을 이었다.
|
||
|
||
“제벨라 아가씨께서는 결코 자하브의 가주가 되실 수 없으시지만, 자하브의 안주인으로서는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
||
|
||
“……그렇긴 하지.”
|
||
|
||
근친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제벨라만큼이나 좋은 여자도 없긴 하다.
|
||
|
||
아니, 다른 사람들에게나 근친이고 나한테는 족외혼이긴 한데…….
|
||
|
||
근친명가라는 멸칭이 괜히 붙은 게 아닌 걸까. 어딜 가도 족내혼단으로 가득하다.
|
||
|
||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것도 잠시. 개선식에 잔뜩 들떠있던 힐다의 목소리가 돌연 진지해졌다.
|
||
|
||
“그러니 주군. 절대 제벨라 아가씨를 슬프게 해선 안 됩니다. 이제 정식으로 대공의 지위에 오르셨으니 자하브령에서……아니, 남부 전체에서 주군을 거스를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겠죠. 그럼에도 제벨라 아가씨를 홀대하지 말아 주십시오.”
|
||
|
||
“그럴 생각은 하나도 없었지만, 일단 묻자. 그 정도야?”
|
||
|
||
“예. 그 정도입니다. 장담컨데 제벨라 아가씨가 파업하는 것만으로도 자하브의 재산은 반토막 날 겁니다.”
|
||
|
||
“……그 정도 맞네.”
|
||
|
||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정도로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제벨라가 가주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말이지.
|
||
|
||
하여간 던전 때문에 이게 다 무슨 고생인지.
|
||
|
||
가볍게 혀를 차는 것도 잠시. 여전히 열렬한 환호를 가만히 방치하는 것도 좀 아니다 싶어 손을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려주었다.
|
||
|
||
-와아아아아!!!
|
||
|
||
영지민들의 함성이 더욱 거세졌다.
|
||
|
||
겨우 흑마법사 좀 잡은 걸로 이렇게 칭송받는 건 쪽팔리긴 하지만……솔직히 말해서 약간은 기분 좋기도 했다.
|
||
|
||
과연. 힐다가 이래서 출세하고 싶어 했던 건가.
|
||
|
||
전생은 물론이요, 현생에서도 지금껏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출세의 맛은 꽤나 달콤했다.
|
||
|
||
“아, 근데 힐다 경. 왜 아까부터 나를 주군이라 부르는 거야?”
|
||
|
||
“어차피 잡은 줄. 이제와서 다른 줄로 갈아탈 수 없다면, 남들에게 자랑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
|
||
“…….”
|
||
|
||
내 기사라는 이미지를 알차게 써먹겠다는 뜻이었구나?
|
||
|
||
일전에 나를 다시 보니마니 했던 날 이후로 힐다가 너무 솔직해진 것 같다.
|
||
|
||
***
|
||
|
||
에녹이 한창 흑마법사들을 때려잡는 사이.
|
||
|
||
코넬리아는 코넬리아대로 제벨라와 함께 협상에 참여했다.
|
||
|
||
그리고 깨달았다. 눈앞의 상대는 에녹과는 다른 의미로 괴물이라는 것을.
|
||
|
||
협상이란 결국 서로 취할 것은 취하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며 완성되는 것.
|
||
|
||
하지만 제벨라는 아무리 도중에 변경된 것이라지만, 코넬리아가 준비해 온 모든 조건을 부드럽게 흘려내고 자신의 조건을 들이밀었다.
|
||
|
||
……그리고 그것이 서로에게 훨씬 이득이라는 사실을 코넬리아는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
||
|
||
‘당초에 예상했던 이권은 하나도 챙기지 못했지만……이 정도면 오히려 당장은 더 도움이 될 거예요.’
|
||
|
||
우아한 자세로 찻잔을 들어 한잔 들이켜는 제벨라를 흘깃 바라보는 코넬리아.
|
||
|
||
시선이 마주치자, 빙긋 웃어주는 제벨라의 모습에 코넬리아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
||
|
||
아무것도 모른다는 양 순수한 얼굴을 하고, 얼마나 피도 눈물도 없이 자신의 계획을 쳐부쉈는지 잘 알았기에.
|
||
|
||
장기적으로 이득을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 하나 내어주지 않았으나, 코넬리아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정보와 자금을 순순히 내어준다.
|
||
|
||
함정에 빠졌다고는 하나, 연속된 사업 실패와 몬스터 토벌 실패로 입지가 줄어든 코넬리아로서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
||
|
||
그 대가로 제벨라가 받아 간 것은 아카데미의 학생들.
|
||
|
||
정확히는 실습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아카데미 학생들을 남부의 던전으로 보낸다는 조건이었다.
|
||
|
||
아카데미는 제국의 가장 재능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 그곳에서 실습을 보낼 정도의 이들이라면 모험가들보다 훨씬 고급 인재라고 할 수 있다.
|
||
|
||
그런 이들이 먹여주고 재워주기만 하면 알아서 몬스터를 정리해 준다는데 얼마나 좋은 일인가. 딸깍은 언제나 옳다.
|
||
|
||
결과적으로 자하브는 아직 혼란스러운 집안을 정비할 시간을 벌 수 있었고, 코넬리아는 자신의 적이 누군지 알고 대항할 힘을 얻은 셈.
|
||
|
||
‘한 사람은 가까이 다가가기도 힘든 맹수, 다른 한 사람은 양의 탈을 쓴 늑대. 확실히 대공가는 달라도 다르긴 하네요.’
|
||
|
||
하지만 제벨라를 향한 기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감탄으로 바뀌었다.
|
||
|
||
대공의 혈통이 이 정도로 괴물들이라면, 계승권은 좀 떨어져도 아무튼 황실의 적통인 자신은 더 대단한 사람이었기에……!
|
||
|
||
여러모로 혈통주의자다운 결론.
|
||
|
||
그렇게 한차례 무너졌던 멘탈을 빠르게 수복한 코넬리아가 눈치를 보며 마시던 찻잔을 자신만만하게 내려놓았다.
|
||
|
||
“그러고 보니, 아직 유리아는 아카데미에 재학 중이었던가요. 그럼 이번 실습 때 오랜만에 얼굴을 보실 수 있겠네요.”
|
||
|
||
“어머? 황녀님께서 유리아를 아시나요?”
|
||
|
||
“녜헤? 아, 으흠. 네. 물론이죠. 유리아가 유급하는 바람에 제가 먼저 졸업하긴 했지만 아카데미 동기였는걸요.”
|
||
|
||
“그러셨군요. 아, 차 한잔 더 어떠신가요? 최근에 좋은 찻잎을 하나 구해서 말이죠.”
|
||
|
||
“어어……주시면 감사히 마실게요.”
|
||
|
||
“후후. 대신 유리아가 아카데미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좀 알려주셔야 합니다?”
|
||
|
||
“뭐, 그 정도야…….”
|
||
|
||
“어디 보자. 다과도 차에 어울리는 것이 있으니 새로 내오겠습니다.”
|
||
|
||
“???”
|
||
|
||
유리아 자하브. 아카데미에 가 있는 동생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돌연 태도가 돌변한 제벨라.
|
||
|
||
마치 동생 친구라도 대하는 것 같은 스스럼 없는 태도.
|
||
|
||
‘믿을 수 없어요! 믿을 수 없어요! 그 음험한 여자가 어떻게 이런……!’
|
||
|
||
이제는 콧노래까지 부르는 제벨라의 뒷모습에 간신히 멘탈을 진정시켰던 코넬리아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
||
|
||
‘뭐죠? 진짜 뭐죠?! 설마 차에 독이라도 타려는 건가요??’
|
||
|
||
물론 차에 독을 타는 것은 제벨라의 전문이었으나, 이번에는 예외였다.
|
||
|
||
제벨라 자하브. 스스로의 손으로 아버지는 물론이요, 에녹이 오기 전의 모든 형제자매를……심지어 사생아들까지 꼼꼼하게 몰살시킨 희대의 악녀.
|
||
|
||
하지만 그녀가 진심으로 아끼는 존재가 있었으니.
|
||
|
||
그것이 바로 대숙청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막내.
|
||
|
||
자하브에서 제벨라를 위해 울어주고 분노해 주던 단 한 명뿐인 동생.
|
||
|
||
유리아 자하브였다.
|
||
|
||
아, 물론 이제는 에녹이 추가되어 단 둘뿐인 동생이라고 해야겠지만 말이다.
|
||
|
||
저 멀리서 들려오는 함성 소리에 코넬리아의 떨림이 심해지건 말건 제벨라의 입가에는 한층 더 짙은 미소가 떠올랐다.
|
||
|
||
예상대로 에녹이 승리와 함께 돌아오며 계승식을 끝마쳤고, 이제 곧 유리아 또한 자하브 성을 찾아올 터.
|
||
|
||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가족들과 따뜻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들뜬 탓일까.
|
||
|
||
실수로 너무 많이 따라 찻잔에서 차가 흘러넘쳤다.
|
||
|
||
“이런.”
|
||
|
||
곤혹스러운 미소를 지은 제벨라가 입가에 검지를 가져다 대며 웃어 보였다.
|
||
|
||
“부끄럽네요. 이건 저희끼리의 비밀로 할까요?”
|
||
|
||
“……그, 그러죠.”
|
||
|
||
코넬리아는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
||
|
||
***
|
||
|
||
개선식을 가로질러 도착한 자하브 성.
|
||
|
||
언제나 그러하듯, 제벨라가 자애로운 미소로 나를 맞이했다.
|
||
|
||
“어서오렴 에녹. 금방이었구나.”
|
||
|
||
“그야 누님이랑 약속했으니까요.”
|
||
|
||
어떻게 그런 과거를 겪고도 저렇게 웃을 수 있는 걸까. 분명 천성이 선하기 때문이겠지.
|
||
|
||
어째서인지 급하게 인사를 하고 떠난 코넬리아 황녀의 뒷모습에 키득이던 제벨라가 입을 열었다.
|
||
|
||
“후후. 기대하렴 에녹. 이제 곧 유리아가. 아카데미에 다니던 네 동생이 돌아올 거란다.”
|
||
|
||
“오?”
|
||
|
||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번뜩임.
|
||
|
||
제벨라는 아무래도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보니, 가주직을 너무도 간단히 넘겨주었지만…….
|
||
|
||
어쩌면 동생인 유리아는 다를지도 모르잖은가.
|
||
|
||
만약 유리아가 가주직을 원한다면……분명 지금까지와는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다!
|
||
|
||
들떠있는 제벨라를 향해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
||
|
||
“그거 기대되네요.”
|
||
|
||
“그러니?”
|
||
|
||
“네. 저는 항상 여동생을 가지고 싶었거든요.”
|
||
|
||
뭐어. 이 부분은 진심이다.
|
||
|
||
전생에는 외동이었고, 현생에는 기간제 형이랑 새 누나밖에 없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