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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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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소란이 있긴 했지만, 어찌어찌 무난하게 일정을 끝마치고 연무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이제 글공부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간단한 책이라면 혼자서도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 오러 수련의 비중을 늘리기로 했기 때문.

아카데미에서 온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조금 늦었으니, 힐다가 기다릴까 발걸음을 서둘렀으나.

“오라방.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

“아오, 깜짝이야.”

돌연 옆구리 쪽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유리아의 말에 흠칫했다.

분명 피는 이어지지 않았건만, 이상할 정도로 나와 닮은 금발이 사르르 흘러내리며 햇빛에 반짝인다.

“뭐야 뭐야. 내 머리카락이 신경 쓰여? 그으. 살짝이라면 잡아당겨도 괜찮은데.”

내 시선을 눈치챈 걸까. 유리아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하나로 모으더니, 이쪽으로 내밀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헛소리니 유리아야…….”

“아, 미안. 손잡이로 쓸 때는 이렇게 하는 거였던가?”

고개를 갸웃거리면 하나로 묶었던 머리를 쪼개, 두 갈래로 만들어 양옆에서 잡았다.

그냥 손으로 쥐어 고정시켰을 뿐이지만, 흔히들 말하는 트윈테일 스타일. ……그리고 조금 천박하게 말하자면 핸들을 만들어 내 앞에서 살랑였다.

“어때? 오라방은 이런 거 좋아해?”

“…….”

정신 나갈 것 같네.

분명 자하브의 혈계능력은 발현되지 않았다고 했는데, 유리아는 대체 뭘까.

아니지. 그런 식으로 따지면 제벨라도 골 때리는 구석이 있어야 하는데 그냥 나한테 잘해주고, 일 잘하는 누나잖아.

아카데미가 문제라고 하기에는 다른 아카데미 학생들은 제정신으로 보였는데…….

“아.”

이해했다.

그냥 이런 사람이구나.

카렌이 워낙 자하브의 문제아들에게 익숙해져서 이 정도 언행은 귀여운 수준으로 보인 것일 테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며 나름 유리아를 이해한 순간.

불가해한 무언가를 접할 때 느껴지던 거부감이 사르르 녹아내리고,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약간의 위기감이었다.

자하브에서 요구하는 망나니 인재상에는 못 미칠지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하여 망나니 연기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안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그리고 계승식까지 끝난 마당이지만 혹시라도 혈통의 진위를 의심당할지도 모르니까.

즉, 내게는 유리아보다 더 미친 사람처럼 굴 필요가 있다는 소리다.

……쉽지 않을 것 같지만, 어떻게든 해보는 수밖에.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리고는 유리아가 내민 양 갈래머리를 잡아들었다.

“핸들도 좋긴 하지만 내 취향은 좀 다르네.”

“으응? 오라방은 그럼 뭐 좋아하는데?”

“목줄.”

짧게 답하며 유리아의 머리카락을 그녀의 목에 휘감았다.

하얀 목덜미 위를 교차하는 금발. 그렇게 단단히 고정시킨 뒤에는 두 갈래로 나뉜 머리를 다시 합쳐 한 손으로 쥐었다.

마치 유리아 본인의 머리카락을 목걸이이자 목줄처럼 만든 모양새.

유리아의 머리카락이 꽤나 길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순식간에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목을 졸리듯이 붙잡힌 유리아의 연보랏빛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오라방 천재야?! 이런 건 생각도 못 했는데!”

“그럼 그럼. 이 오라비는 언제나 개쩔었단다.”

“철제나 싸구려 가죽이랑 다르게 심하게 쓸리지도 않고, 잡아당기는 것과 동시에 목을 조를 수도 있고, 무엇보다 다른 무엇도 아닌 내 머리카락에 내가 매인다는 사실이 너무 굴욕적이야!”

“……마음에 든 것 같아 다행이네.”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유리아의 모습에 자연스레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일단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자하브는 자식 교육 망했다.

그나마 멀쩡한 제벨라는 학대했지, 유리아는 그냥 제정신이 아니지…….

아!

그래서 서로 후계자 다툼하다가 공멸한 거구나?

완벽하게 이해했다. 그냥 운이 없어서, 혹은 누군지 상상도 안 가는 흑막이 있어서 죄다 죽고 망한 게 아니라 그냥 죽을만해서 죽었고 망할만해서 망한 것이리라.

복잡해졌던 머리가 맑아졌다. 그래. 유리아가 아무리 골 때리는 녀석이라도, 어차피 자하브를 떠날 내게 무슨 상관인가.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내게 목을 내어준 채, 뒷짐을 진 유리아가 고양잇과 동물처럼 사뿐거리는 걸음으로 따라오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오라방 지금 어딜 가는 거야?”

“수업받으러 가는 중이다.”

“수업? 내가 없는 사이에 자하브에도 아카데미 같은 게 생겼나…….”

“아니, 그냥 내 개인 교습. 힐다 경이라고 은사자 기사단 부단장이 나한테 이것저것 가르쳐주고 있거든.”

“흠흠. 힐다 경은 오라방의 애첩……기억해 둘게.”

“……그런 게 아니라 글이랑 예법, 오러 수련을 배우는 거야.”

“오라방 글도 읽을 줄 알아?!”

“내가 그렇게 무식하게 보였어……?”

약간 상처받았다.

너 글 읽을 줄 알아? 문맹 아니었어?

이런 소리는 전생을 포함해도 들어본 적 없는 폭력적인 질문이었으니까.

뭐어. 얼마 전까지의 나는 정말로 문맹이 맞긴 했지만.

나도 모르게 서운함이 겉으로 드러난 걸까. 유리아가 황급히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 아냐! 무식해 보이는 게 아니라 싸움과 여자 말고는 흥미가 없어 보일 뿐이니까! 오해하지 마 오라방!”

“……?”

이게 위로가 맞는 건가?

순간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지만, 애초에 광인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려 해선 안 된다는 걸 뒤늦게 떠올렸다.

지금은 고분고분해진 만큼 크게 도드라지지는 않지만……유리아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사람보다 짐승에 가까웠다.

유리아가 멍청하다거나, 인간 언저리라는 나쁜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성보다 본능이, 지능보다 감각이 발달한 사람 특유의 기세를 풍기고 있다는 소리였지.

칼립소에서 오래 살아남은 이들 중에는 비슷한 부류가 몇몇 있어 잘 안다.

물론, 그중에서도 유리아가 유독 도드라진 케이스 같지만.

“헤에. 오라방 생각보다 열심히 사는구나?”

“하! 가문의 일을 대부분 제벨라 누님께 떠넘기고 놀러 다닐 뿐이야.”

“응? 원래 어려운 일은 제벨라 언니가 하는 거 아냐?”

“…….”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애가 바로 여기 있었다.

“그나저나 오라방 오러 수련을 부기사단장한테 배워? 오라방이 더 강하잖아.”

“강한 것과 기술에 능하냐는 별개니까. 오러는 자하브에 들어와서 처음 익힌 거야. 그러니 기초부터 제대로 다져야지.”

“헤에. 강하다고 바로 오러를 마음대로 쓰고 그런 건 아니구나.”

“당연한 소리를……유리아 너도 어렸을 때는 따로 오러를 배웠을 텐데?”

“으음. 나는 천재라서 오러는 그냥 혼자 깨우쳤어.”

“…….”

맞다. 유리아에게 혈계능력은 없어도 무재는 있었다고 했던가.

내가 무의식적으로 힘을 주어 마나를 집중시키고, 오러를 상대할 수 있었던 것처럼.

유리아는 이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본능적으로 오러를 다루는 법이라도 터득한 거겠지.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유리아는 뭔지 모를 혈통인 나와 달리, 찐 자하브니까.

이 세계의 귀족은 대체로 하나쯤 탈인간급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보면 된다.

혈계능력은 그중 하나일 뿐, 다른 부분에서 이게 같은 사람인가 싶었던 적이 한둘이 아니니까.

지금은 각자 제 갈 길 가고 있지만……한때 같은 고아팸이었던 녀석 중에 몰락귀족 출신이 있어 잘 안다.

혈계능력도 혈계능력이지만, 이를 떼어놓고 봐도 수완이 뛰어난 녀석이었지.

……대신, 대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파멸적이었지만.

괜히 옛날 생각에 추억에 젖는 것도 잠시. 어느새 연무장 앞에 도착했길래 유리아를 향해 손을 휘휘 저었다.

“쉿쉿. 도착했으니까 방해하지 말고 이제 가봐. 여기가 집이라고는 하지만, 지금은 아카데미의 재학생으로서 실습 온 거잖아?”

“가고 싶어도 오라방이 보내줘야 갈 수 있는데?”

자신의 목에 감긴 머리카락을, 이를 이용해 만들어 낸 목줄을 가리키는 유리아.

그제야 내가 유리아에게 목줄을 채우고, 성안을 돌아다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놔줄 테니까 이제 가 봐. 아카데미에 가기 싫으면 제벨라 누님한테라도 가보고.”

“응. 어차피 그럴 생각이었어. 제벨라 언니도 오랜만에 보고 싶었거든.”

고개를 끄덕인 유리아가 순순히 떨어진다. 그리고는 어째서인지 목에 여전히 머리카락을 휘감은 채, 손을 흔들었다.

“그럼 오라방! 다음에 봐!”

“오냐.”

“그때는 제벨라 언니랑 같은 침대 위에서 보는 거지?”

“그럴 일은 없을걸.”

슬슬 익숙해진 유리아의 발언에 대충 답해주고는 연무장의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문밖에서 들린 대화를 전부 들은 힐다가 있었다.

힐다가 처음으로 내게서 시선을 스윽 돌렸다.

“아냐.”

“……저는 기사로서 자하브에 영광이 재림하길 바랄 뿐입니다.”

“아니라고.”

이런 오해는 좀 풀려도 좋지 않을까.


유리아에게 얻어맞고, 에녹이 던진 돌에 한 번 더 얻어맞은 아카데미의 교관.

아니, 전직 교관 브렌트는 입술을 짓씹었다.

“큭……빌어먹을 자하브. 숨겨진 사생아가 있을 줄 내가 알았겠냐고.”

그는 이제 막 골절이 나아, 살짝 저릿함이 남아있는 팔을 부여잡은 자세로 몇 시간 전의 일을 떠올렸다.

섬뜩한 분위기의 집사장, 아론은 두 번 다시 눈에 띄는 순간 팔이 아니라 목이 부러질 것이라 경고했고.

멍하니 닫힌 성문을 올려다보던 브렌트. 그런 그의 짐을 가져다준 아카데미의 책임자인 델빈은 해고 통지서를 함께 건넸다.

유리아의 건이 아니더라도 사소한 부패를 여러 번 저질러 이미 수차례 경고받은 상태. 그렇기에 별다른 절차 없이 최후통첩이 날아온 것이다.

마지막 정이라며 중급 포션을 건네주던 델빈의 싸늘한 표정이 떠올라, 브렌트가 무의식적으로 방금 막 나은 팔을 움켜쥐었다.

뚜둑.

자하브 같은 괴물 딱지에 비하면 손색이 있을 뿐이지, 브렌트 역시 아카데미에 취직할 만큼 나름 실력있는 기사였기에 한 번 부러지며 취약해진 팔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미 정신적으로 몰린 그는 팔이 보내는 고통의 신호를 알아차릴 여유조차 없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이제 더는 돈을 빌릴 구석도 없는데……!”

브렌트가 소소한 뇌물을 받아먹은 이유는 간단하다.

빛나는 진짜 재능들과, 벽에 부딪힌 현실 사이에서 어느새 검을 놓아버린 그가 도박이라는 새로운 취미를 붙였기 때문.

아카데미의 교관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여기저기서 돈을 빌리고, 때로는 뇌물도 받아먹었으나…….

이젠 일자리도 뭣도 없으니 갚을 길이 없어졌잖은가.

이대로 수도에 돌아갔다가는, 그리하여 돈을 빌린 도박장의 사채업자들에게 해고 소식을 들킨다면.

분명 좋지 않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터.

초조해하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브렌트. 그런 그의 앞에 로브를 뒤집어쓴 사내가 나타났다.

“브렌트 디에고. 아카데미의 전직 교관이자, 엘리스 패밀리에게 2만 골드의 빚을 진 도박쟁이. 맞나?”

“누, 누구냐!”

기겁하며 검을 뽑는 브렌트. 그제야 치료가 덜 된 팔에서 올라오는 고통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를 가로막은 사내는 태연했다.

“진정해라. 내 적은 어디까지나 에녹 자하브이니. 만일 네가 나의 일을 도와준다면, 빛을 대신 갚아주고 새로운 신분 또한 준비해 주마.”

“……내가 네놈을 어떻게 믿지?”

“믿지 않으면 네놈에게 남은 길은 하나뿐일 텐데?”

그 말에 브렌트는 깨달았다. 어느 쪽이건 자신에게 미래는 없다는걸.

도망치다가 엘리스 패밀리에게 추적당해 죽느냐, 괜히 나대다가 아론이라는 집사장에게 살해당하느냐.

어차피 둘 중 하나라면 차라리 뭐라도 발버둥 쳐보는 게 좋지 않겠는가.

브렌트는 에녹과 유리아의 얼굴을, 그 벌레를 쳐다보듯 경멸과 무관심으로 가득한 표정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자하브의 그 애송이들을 엿 먹일 수 있고, 내 미래까지 세탁해 준다는데 뭐든 해줘야지.”

“잘 생각했다. 우선 이걸 받아라. 그리고 내가 일러준 곳으로 향해라. 아직 수리 중인 성벽이 있을 거다.”

그리 말하며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는 사내.

이를 받아 든 브렌트는 순간 흠칫했다. 상자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아카데미에서 철저히 배척하라 가르치는 흑마력이었기 때문.

하지만 이미 갈 곳도, 떨어질 곳도 없는 브렌트에겐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흑마법사의 무서움을 아는 만큼 더욱 든든해졌다.

“이거라면…….”

도박쟁이가 인생을 망치는 이유는 보통 자기 스스로 팔자를 꼬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