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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와일드 헌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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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을 열라는 말에 기겁한 표정을 짓는 이그나투스의 대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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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자하브 대공이시라지만, 저만한 수의 언데드를 어찌 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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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알아? 양학은 자하브의 소양이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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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나는 자하브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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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꺼낸 말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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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모르테우스는 좀 자신이 없어. 이그나투스에게 들어서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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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은 사용하지 못하지만, 드래곤 하트는 여전합니다. 그 막대한 마력 전부를 사기(死氣)를 방출하거나, 거대한 육신을 강화하고 움직이는 데 사용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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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렇지? 단순한 강함에는 나도 자신 있는데, 아무래도 체급 차이라는 걸 무시할 수는 없겠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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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내가 나름 열심히 살아남았고, 오러를 익히며 한층 강해졌다지만 저 거대한 괴물과 드잡이질하는 건 좀 저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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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만 남았다고는 하나, 한때는 드래곤 로드라 불린 고룡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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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른 언데드들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생전에 대단한 영웅들이었다는 건 알지만……어찌됐든 인간 사이즈고 순수 신체 스펙은 나보다 못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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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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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이대로 가면 이도 저도 못 하고 맨몸으로 와일드 헌트를 상대하게 될 거야. 그러니 뭐라도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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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자하브 대공 각하의 계획에 저희 마탑도 동참해 보죠. 저를 포함한 고위 마법사들은 모르테우스를 구속하는 데 집중하겠지만, 그 이하의 마법사들 전부가 대공 각하를 서포트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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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반가운 소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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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식 웃으며 난간에 한쪽 발을 걸쳤다. 이대로 내려가려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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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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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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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브 대공 각하의 헌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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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역량을 넘어선 마도구의 힘에 괴로워하면서도 고개를 깊숙이 숙이는 대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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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기분이 간질간질해져서 퉁명스레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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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은 의무를 지는 자. 당연한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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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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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자의 반응을 일부러 보지 않고 곧장 난간 바깥으로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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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낙법으로 무사히 착지하고는 장벽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밑에서 기다리던 카렌이 여전히 내 곁을 따르는 모습에 손을 휘휘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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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카렌아. 네가 약한 건 아닌데 이번 일에는 부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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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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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놓고 구경하라는 소리가 아니야. 카렌 너는 발이 빠른 편이잖아? 마법사들한테 포션이라도 받아서 나한테 던져. 그거면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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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을 던지라니……대체 무슨 짓을 하시려는 겁니까 가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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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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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를 으쓱이고는 장벽의 앞으로 향했다. 사령부에서 확인한 마탑의 어디에서건 가장 잘 보이는 위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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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 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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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새없이 장벽을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 반투명한 마나 너머로 뼈만 남은 팔다리와 녹슬고 부러진 무기가 날아오다가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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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저 모든 것이 내 목을 노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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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짓거 한 번 해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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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전의를 다졌다. 그리고는 손을 적당히 흔들어 대제자를 향해 신호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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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이 그러했듯, 의아해하던 주변 마법사들의 시선이 경악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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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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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게 얼어붙은 비닐이 뜯겨나가는 소리와 함께 장벽의 일부가 스스로 갈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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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작은 틈을 비집고 새어 나오는 차가운 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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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에서는 느낄 수 없던 추위. 그것도 사기를 머금은 인위적인 냉기에 시선을 앞쪽에 고정하며 입만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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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아. 이번 전투에서의 첫 번째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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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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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생각보다 춥네. 마법사들한테 보온 마법 좀 걸어달라고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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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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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챈 카렌이 굳은 표정으로 땅을 박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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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급이 아닌 그 밑. 메이킨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강한 이들이 모인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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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이 떠나는 것과 동시에 손가락 만하던 작은 균열이 순식간에 크게 갈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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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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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소리와 함께 눈앞에 생겨난 명백한 균열. 요구했던 대로 정확히 사람 한 명 지나갈 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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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말하면, 사람 한 명이 틀어막고 있으면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의 사이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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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실력은 좋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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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낄 웃으며 가장 먼저 균열을 통해 넘어오는 스켈레톤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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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러를 순환시키되, 주먹에 집중시키지는 않은 상태. 힘을 아끼며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확인해 보기 위함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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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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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켈레톤이 들고 있던 도끼의 옆면으로 내 주먹을 막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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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는 부서졌으나, 뼈로 이루어진 몸뚱이는 멀쩡했다. 살이 없기 때문인지 흩날리는 파편에 피해를 입지도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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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내가 놀란 부분은 다 녹슨 주제에 의외로 튼튼한 무기도, 날카로운 파편 세례에도 멀쩡한 스켈레톤의 특성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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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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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힘을 뺐다지만, 겉보기엔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스켈레톤이 내 주먹을 막은 것. 그 자체에 놀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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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영웅들의 시체라는 건 이런 의미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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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도끼 자루를 내던지고 자신의 한쪽 팔을 뽑아 달려드는 스켈레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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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뭉툭한 뼈임에도 도끼의 형상이 엿보이는 것 같다. 그만큼 완벽한 자세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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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이 내리찍는 팔을 집중해서 바라보며……오러를 끌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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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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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에서부터 시작된 문양이 팔을 휘어감고, 때마침 마탑에서 온갖 버프 마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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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머금어 차가웠던 공기가 더는 아리게 느껴지지 않았으며, 시야에 비치는 모든 풍경이 조금 더 느려졌고, 근육에서는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힘이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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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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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기합과 자세를 낮춰, 스켈레톤의 안쪽으로 파고든다. 휘둘러진 팔이 어깨를 두드리는 감각이 들었으나, 타점이 어긋나 별다른 타격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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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틈을 타, 녀석의 두개골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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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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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버티는가 싶더니, 간단하게 부서지는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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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잃은 몸은 여느 언데드가 그러하듯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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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걸로 끝은 아닐 터. 아무리 머리가 부서졌어도, 와일드 헌트의 충만한 사기가 있다면 금세 되살아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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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그저 차갑기만 한 줄 알았던 죽음의 기운이 의지라도 가진 것처럼, 무너진 언데드의 잔해를 회수해 안쪽으로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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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빈 자리를 통해 다음 언데드가 머리를 비집고 달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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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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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주변의 이 사기는 모르테우스에게서 비롯된 것. 그의 의지가 깃들어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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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식 웃으며 다음 스켈레톤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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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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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터운 대검의 옆면을 쳐내고, 비틀거리는 틈을 타, 허리춤을 걷어차려 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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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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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쯤은 흔한 일이라는 듯, 노련하게 자신 또한 몸을 꺾어 박투술로 대항하는 스켈레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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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내가 걷어차려 했으나,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녀석의 주먹에 얻어맞게 생긴 상황이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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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는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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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허리를 꺾어, 날아드는 주먹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뒤.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 팔을 이빨로 강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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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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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신호 삼아 꺾였던 몸을 틀자, 내 이빨에 붙들린 녀석의 몸이 둥근 반원을 그리며 땅에 처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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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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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눈두덩이 사이로 푸른 귀화가 일렁이며 당혹을 토해냈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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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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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브러진 녀석의 머리를 강하게 짓밟아 부수고는, 주인을 잃은 대검을 크게 휘둘러 균열을 넘어오는 다음 상대를 향해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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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스켈레톤이 방금까지 상대한 녀석들처럼 노련한 것은 아닌지, 이번에는 별다른 저항 없이 박살 난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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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균열 너머로 일렁이는 무수히 많은 귀화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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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인 적의. 그 틈에 녹아들어 있는 약간의 사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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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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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은 분명 대의를 위해 싸웠고, 내일을 부르짖으며 죽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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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는 지금도 다를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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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테우스에 의해 눈이 흐려진 저들에게 보이는 것은, 분명 목숨을 걸어서라도 쓰러뜨려야 할 거악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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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죽어서도 이용만 당하는 신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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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분명 이 자리에 선 것은 영웅이라 부르기에 아깝지 않은 자들뿐이니.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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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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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한 전쟁. 그 상대가 되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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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아니면 언데드의 본능에 휩쓸린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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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쌍의 귀화가 거칠게 타오르며 음산한 귀곡성 토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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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새 없이 튀어나오는 스켈레톤들을 가로막으며, 쉴 새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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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딪히는 기예. 첨예하게 대립하는 적의. 그리고 명백하게 갈리는 승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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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 겨우 통과할 법한 좁디좁은 공간이었으나……이곳은 분명 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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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미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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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 있어 이그나투스의 제자가 되었으나, 아직 수련이 부족해 중위 마법이 한계인 메이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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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다른 전투 마법사들 사이에 껴서 방벽을 두드리는 언데드들을 향해, 모든 마력을 쏟아붓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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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정신없이 마법을 시전하고, 또 시전하고, 그러다 마나가 부족해지면 이미 마나 포션을 억지로 마시며 다시 마법을 쥐어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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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같이 힘겨웠지만, 그녀를 가장 힘겹게 만든 것은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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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헌트를 상대하는 건 처음이 아니지만, 그녀의 스승 없이 상대하는 것은 처음이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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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에 대한 불안이 메이킨의 정신을 몰아붙이는 도중. 그녀는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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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의 어디에서나 시야에 닿는 정중앙. 그 앞에 서서, 홀로 언데드를 유인하고, 수많은 언데드를 적수공권으로 때려 부수는 에녹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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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해요……아무리 자하브라도 스승님이 깨어나실 때까지 버티는 건 불가능해요……애초에 자신의 일이 아닌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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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에녹의 뒷모습을. 그 어떤 마법보다도 굳건히 버티고 선 등을 보는 순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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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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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은 자하브의 가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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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하브는 이그나투스와 같은 대공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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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최후의 보루이며, 메이킨과 같은 범인을 아득히 넘어선 힘을 지닌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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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힘으로 기꺼이 스스로를 희생하여 의무를 다하는 고결한 존재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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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부족하지만 이그나투스의 제자라는 이유로 위계는 높은 메이킨이 무언가에 홀린 듯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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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다들 멈추세요! 저희는 이제부터 언데드가 아닌 자하브 대공께 집중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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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의 존재야말로 그 어떤 방벽보다도 중요한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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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탑 여기저기서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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