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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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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서부(5)
이그나투스가 내 제안을 받아들인 뒤. 그녀는 즉시 잠들 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잠시 마탑에 머무르며 이를 옆에서 지켜보았고.
별다른 이유는 아니다. 이그나투스가 말했던 것처럼, 100만 골드에 달하는 골드와 현물을 재차 마련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고.
무엇보다 내 기억에 의존해 재현한 마법에 이그나투스가 자신의 미래를 걸고 있으나, 나 몰라라 하면서 돌아가기도 좀 그렇더라고.
하여, 푹신한 의자에 눕듯이 기댄 자세로 열심히 일하는 마탑의 고위 마법사들을 구경하던 중이었다.
이그나투스의 본체가 들어갈 정도로 거대한 건물. 그 내벽을 꼼꼼히 감싸는 복잡한 수식들.
“어째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더 복잡해 보이는데?”
“어쩔 수 없느니라. 이 몸이 사용하기 위해서는 손봐야 할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으니 말이니라.”
마찬가지로 내 옆에서 반쯤 누운 자세로 태연히 대답하는 이그나투스.
누가 보면 휴양지에 놀러 오기라도 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아니, 나야 마법은 문외한이니 그렇다 쳐도 넌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거야?”
“뭘 모르는구나. 아카데미에서도 교수는 감독만 하지 실무는 수제자들이 하느니라. 하물며 마탑은 어떻겠느냐.”
“……마탑주인 너는 누워서 어디 잘못된 부분 없나 확인만 하고, 실제로 마법진 그리는 건 네 제자들이 한다는 소리인가?”
“바로 그러하니라. 아쉽게도 당대의 제자 중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른 아이는 없지만, 다들 고위 마법사이니 마법진 정도는 잘 그릴 것이니라.”
“허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눈앞에서 열심히 작업 중인 마법사들을 살펴보았다.
하나같이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외모. 경지에 오른 기사나 마법사는 노화가 느려지는 것을 감안했을때, 실제 나이는 훨씬 많으리라.
그런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외모의 마법사들이 땀을 뻘뻘 흘려가며 벽과 바닥에 마법진을 새기고 있었다.
심지어 가끔 실수하면 사형으로 보이는 이가 혼내기까지 했다.
“이게 맞나…….”
“마법사들의 유구한 전통이니라.”
이그나투스는 어깨를 으쓱였지만, 내 눈에는 악덕 교수와 대학원생 정도로만 보였다.
심지어 다 늙을 때까지 논문 통과도 안 시켜주는 악덕 교수 말이다.
실로 끔찍하기 그지 없는 풍경이었으나, 이그나투스의 모든 제자들이 마법진 작성에 동원된 것은 아니다.
일부는 마탑 운영을 위해 열외되었고, 일부는 순수하게 경지가 부족하여 작업에서 제외되었으니.
호다닥 뛰어다니며, 사형들의 심부름을 하는 메이킨이 그러했다.
“메이킨. 이 몸이 마실 음료도 같이 내오거라.”
“네? 아, 알겠어요 스승님!”
“항상 마시던 것으로 부탁하느니라.”
“항상 마시던……거요?
“아카데미에 입학한 지 몇 년 됐다고 벌써 잊어버린 게냐?”
막내 제자를 향해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눈빛을 보낸 이그나투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신성력으로 키운 박하 잎을 우려낸 차에 설탕 대신 시럽을 다섯 스푼 추가하고, 토핑으로는 크림과 초코칩을 3:1 비율로 올린 뒤, 가장 위에는 비스킷을 올려오면 되느니라.”
“……네!”
대체 평소에 뭘 먹는 걸까.
박하잎으로 우린 차에 시럽을 듬뿍 섞고, 크림에 초코, 비스킷까지 올리다니.
“아.”
이거 그건가. 뒤지게 달달한데다가 심지어 따뜻하기까지 한 민트초코에 바삭한 비스킷 올려놓은 거?
드래곤의 괴상한 식성에 몸이 절로 떨려왔다.
다만, 나 또한 목이 말랐던 것은 사실이기에 손을 까딱여 카렌을 불렀다.
“카렌카렌아.”
“네, 가주님.”
“난 우유로 가져와.”
“우유……말씀이십니까?”
“어.”
“……알겠습니다.”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카렌. 동시에 주변이 갑자기 웅성이기 시작했다.
“우유라면……역시 그건 뜻이겠지?”
“자하브잖나. 당연히 그런 뜻이겠지.”
“아이고……저 작은 곳에서 나올 게 뭐가 있다고.”
“그러게 말이야.저 정도면 마탑주님과 비슷한 수준이거늘.”
어쩐지 터무니없는 오해를 산 것 같아 황급히 덧붙였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우유라는 건 소의 젖을 말하는 거다?”
“네? 그거야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만.”
“뭐야. 그럼 왜 그렇게 긴장한 표정을 지은 거야?”
“가주님이 질 수 없다는 듯이 복잡한 음료를 주문하실 줄 알고, 한 번에 외우려 집중하다 보니 그렇게 됐을 뿐이에요.”
“……내 입맛이 그렇게 특이하진 않을 텐데.”
“예? 아뇨, 입맛의 문제가 아니라 복잡한 풍미의 음료는 귀족 사회에서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니……아, 혹시 모르셨습니까?”
“몰랐고, 알았어도 그냥 우유나 가져오라고 했을 거야. 내가 먹고 싶은 거 먹어야지, 남들 시선 신경 써서 뭐 해.”
어깨를 으쓱이자, 그제야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꾸벅이고는 멀어지는 카렌.
그 모습에 이그나투스가 의외라는 듯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사람 젖이 아니었다니…….”
“남의 집에 와서 그런 걸 찾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전전대의 자하브는 그랬다만?”
“…….”
“아, 참고로 전전전대의 자하브는 코카트리스의 피를 마시고 싶다고 했느니라.”
“선택지가 극단적인 걸…….”
“무얼. 젖 또한 본래는 피였으니, 사실 일관된 취향이니라. 그대는 아무래도 평범한 소의 젖을 마음에 들어 하는 모양이지만. ……혹시나 해서 묻겠다만 젖소 수인 여성의 젖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
그건 솔직히 좀 궁금했기에 대답 대신에 질문을 돌리기로 했다.
“그나저나 손봐야 한다는 건 어떤 부분이야?”
“별거 아니니라. 본래 타나토스의 침상은 안락하지만, 절대적인 죽음을 선사하기 위한 마법. 그러나 이 몸은 중간에 깨어나야 하니, 마법이 정상 작동하는 선에서 의도적으로 틈을 만드는 것뿐이니라.”
“아하. 근데 원래는 흑마력으로 작동하는 마법인데, 이 부분은 괜찮은 건가?”
“음? 아, 마법에는 문외한이라고 했었구나. 사실 흑마법은 그 자체로 사악한 마법이 아니니라. 당연히 흑마력 또한 마찬가지고.”
“……그건 좀 믿기 어려운 말인데.”
누군가 사람을 죽인다면, 죽인 사람의 잘못이지 도구인 검에는 아무 잘못도 없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껏 흑마법사와 싸우며 수많은 흑마법을 보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확언할 수 있다. 흑마력은 사람의 어두운 면을 자극하고, 흑마법은 잔혹한 방식으로 수련하는 마법이라는 것을.
실제로 흑마법의 대부분은 저주, 네크로맨시, 이차원 간섭 같은 흉흉한 것들뿐이고.
하지만 이그나투스는 내 말을 듣고도 희미한 미소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흑마법이 다른 마법과 다를 것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그저 선악의 구분 이전에 존재하던 것이라는 의미였지.”
“선악의 이전……?”
“애초에 선과 악의 경계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하는 것 아니더냐. 지금이야 대부분의 나라가 네크로맨시를 금지하지만, 비극의 밤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죽음을 다루는 마법이 금기가 아니었느니라.”
“뭐? 그럼 그때는 아무나 언데드를 부렸다고?”
“노예를 부리는 것보다 언데드를 부리는 쪽이 훨씬 효율적인데, 무턱대고 거절할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무엇보다 죽음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는 고대로부터 이어진 필멸자들의 숙원. 기본적인 선은 있었으나, 신들도 네크로맨시 그 자체를 문제 삼진 않았느니라.”
파이어 볼을 익히는 것이 불법은 아니다. 당연히 사용하는 것도 문제는 없고.
하지만 허가 없이 사람을 향해, 누군가의 재산을 향해 파이어 볼을 날리는 건 불법이다.
대충 그런 느낌으로 네크로맨시가 허용된 시기가 있었다고 말하는 이그나투스.
“이 몸이 어린 시절의 일이니라. 만약 그보다 훨씬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더 많은 것들이 허용되었을 터.”
“……무슨 말인지 알겠네. 세대를 거듭하고, 시행착오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많은 규칙이 생겼겠지.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는 금지된 마법이 처음부터 금지된 마법은 아니었던 것처럼.”
“옳다.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고, 또 올라가다 보면 맞닥뜨리는 것을 마법사들은 원류라고 하느니라.”
세세한 학파로 분화되기 이전. 고대 마법을 넘어, 원시 마법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들.
“저주는 공격 마법의 시초였느니라. 남을 해하고자 하는 마음 그 자체가 저주이고, 모든 공격 마법은 여기서 출발하는 거이니.”
“네크로맨시는…….”
“한계를 초월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죽음을 극복하려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니라.”
그 외에도 연금술, 시공간 계통 마법, 계약 마법 등등. 온갖 자질구레한 마법들은 그에 상응하는 흑마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는 이그나투스.
“아무 색이나 되는대로 섞다 보면 결국 물감이 검게 물드는 법. 흑마력 또한 마찬가지이니라.”
“그럼 흑마력에서 느껴지는 사람을 미치게 하는 성질은……마법이 원래 그런 거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필멸자의 눈으로 보면 아무리 친근한 신이라도 광기에 절은 존재라고. 그리고 마법은……필멸자의 몸으로 신위에 닿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니라.”
그래서 신의 이름을 집어넣은 마법이 하나같이 대마법 취급 받으며, 가장 고난이도에 속한다고 덧붙이는 이그나투스.
궁금했던 내용이긴 한데, 정작 이를 듣고 나니 한번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나씩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있자니, 이그나투스가 고개를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그대는 이해하려는 시도는 하는구나. 내 장담하마. 역대 자하브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지성이니라.”
“아니, 갑자기 뭔…….”
난데없는 자하브 디스에 어이가 없었으나, 이어진 이그나투스의 정리에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하게 생각하거라. 흑마법은 사악한 것이 아니라 야만적인 것이니라. 그리고 문명이 자리 잡고, 그만큼 제약으로 둘러싸인 지금 시대에 무절제한 야만은 불필요한 것이지.”
“이제 좀 알겠네. 즉, 흑마법은 지난 시대의 패배자고 흑마법사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분탕종자라는 거지?”
“……꽤나 파격적인 비유지만, 얼추 그러하니라.”
어느새 메이킨이 대령한 입에 담기도 두려운 음료를 한 모금 홀짝인 이그나투스가 말을 이었다.
“뭐어. 비극의 밤 이후. 트라고데아의 축복을 받은 탓에 지금의 흑마법사들은 많이 변질되었지만 말이야.”
“예전에는 달랐다는 건가.”
“법을 어기고, 멋대로 사람을 납치해 인체 실험 재료로 삼으며, 새 마법을 시험해 보겠다며 마을 하나를 몰살시키는 건 예전부터 그러했느니라.”
“……달라진 부분이 있긴 해?”
“과거에는 필요에 의해 저지른 일들이라면 비극의 밤 이후에는 불필요함에도 그것이 더 비극적이라는 이유로 저지르는 경우가 많아졌더구나.”
“아.”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흑마법사들의 과장된 태도.
경지가 높아질수록, 그러니까 자신의 마력에 트라고데아의 신력을 많이 섞을수록 흑마법사의 정신은 변이된다.
말투는 연극투처럼 변하고, 효율이 아닌 흥미를 쫓기 시작하며, 스스로의 죽음마저 유희의 일종처럼 여기는 것.
“에녹, 그대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난 시대의 꿈을 잊지 못한 분탕종자들이 이제는 자신의 의지로 분탕을 치지도 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완벽히 이해했어. 갱생의 가능성은 눈곱만큼도 없으니 보이는 족족 죽이면 된다는 거지?”
“……그래. 다만, 이런 말을 꺼낸 이유는 그대에게 경고하기 위함이니라.”
“경고라고?”
“흑마법사들은 신위에 매료되어 스스로를 광기에 빠뜨린 자들. 그런 이들이 트라고데아의 신성에 휘둘려 한층 본질에서 멀어졌느니라. 이게 무슨 뜻인지 아느냐?”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는 소리겠지.”
“옳다. 그리고 에녹 그대는 흑마법사들의 본부를 무너뜨리고, 수장을 쓰러뜨렸느니라. 이루어질 수 없기에 더욱 집착하는 비원을, 천 년간의 성취를 박살 낸 것이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느냐?”
“당연히 알고 있지.”
어깨를 으쓱이고는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흑마법사 놈들이 나를 두려워해야 한다는 소리잖아.”
“……놈들의 집착이 상상 이상으로 지독할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만, 그럴 필요는 없었던 모양이구나.”
이그나투스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광오하구나. 허나, 그것이 사람의 몸으로 태양을 담은 자하브라는 거겠지.”
“…….”
자하브 아닌데.
***
이후로도 시간은 훌쩍 흘렀다.
와일드 헌트를 한차례 밀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인지, 위험한 낌새도 없었고.
고위 마법사들이 이그나투스의 감독하에 뺑뺑이 치다 보니 타나토스의 침상을 개량하고 준비하는 과정 또한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렇게 내가 마탑에 도착한 지 열흘째 되던 날.
이그나투스는 거대한 레드 드래곤의 모습으로 돌아와, 마법진 위에서 몸을 둥글게 말았다.
-에녹. 이 몸이 잠에 들면 정확히 20시간 뒤에 깨어날 것이니라.
“생각보다 금방이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이 20시간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거든 대신 처리해 줄 수 있겠느냐?
“추가금만 제대로 지급한다면야.”
-후후. 다른 어디도 아닌 드래곤이자, 마탑주인 이 몸 아니더냐. 세월에 묻힌 다른 동족의 레어를 털어서라도 지불할 테니 걱정 말거라.”
“……아니, 그렇게까지는 좀.”
거대한 드래곤이 한참을 키득이더니,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럼 내일 보자꾸나.
“잘 자라.”
짧은 농담과, 그보다도 더 짧은 인사를 마지막으로 건물을 나섰다.
내가 나오는 것과 동시에 문이 닫히며 완전한 암실이자, 밀실이 되는 건물.
나조차 흠칫할 정도로 막대한 마나가 집중되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두터운 벽 너머로 새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밖에서도 숨소리가 들리는 모양.
그나저나 자고 일어나면 덩치가 더 커지는 건가…….
이를 감안하고 건물을 준비했다고 들었지만, 잘 상상이 안 간단 말이지.
픽 웃으며 내게 배정된 방으로 돌아갔다. 20시간이면 나도 한 숨자고 일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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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밤중에 울려 퍼지는 익숙한 괴성에 잠에서 깼다.
—————!!
사룡, 모르테우스의 울음소리였다.
“조졌네.”
와일드 헌트가 시작되었다.
지난 와일드 헌트로부터 고작 열흘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