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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하하하하! 드디어! 드디어 우리의 숙적이 숨을 거두는구나! 두려움을 먹는 자를 두려움에 떨게 하던 존재여! 너 또한 한낱 필멸자임을 자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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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 돼! 오라방! 어째서 나를……차라리 약한 내가 맞았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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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듯이 웃어대는 흑마법사. 브렌트의 뒤틀린 육체 속에 숨어들어, 마법으로 소리를 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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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유리아의 목구멍까지 절망이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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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쓰러진 에녹의 앞에 다가가 무릎을 꿇는 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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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하는 기대에 몸을 의존해 에녹의 상처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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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빛도 반사하지 않고 죄다 흡수하는, 마치 세상에 구멍이 뚫린 것 같은 느낌을 발하는 검이 에녹의 심장을 꿰뚫고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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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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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한 방울조차 흐르지 않지만 상관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에녹의 가슴에 박힌 검에서 풍겨오는 불길함은 유리아의 직감을 맹렬하게 자극하는 중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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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모든 악의와 저주, 그리고 죽음을 억지로 검의 형태로 묶어두면 이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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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아의 발달된 직감은 가까이서 보는 순간 알아차렸다. 저 검은 누군가를 베어 죽이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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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형상은 체내를 비집고 들어가기 위한 것. 진실로 상대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외상이 아닌 내부를……그 근본을 부정하는 부정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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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 뽑아야……아직 늦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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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멍한 표정으로 쓰러진 에녹(진짜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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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직 숨은 붙어있다는 듯이 오르내리는 가슴팍을 보며 유리아는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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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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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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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 자루를 움켜쥐려는 순간. 전신의 솜털이 곤두서며 그대로 팔이 굳는다. 마치 몸이 검에 닿는 것을 거부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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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여! 움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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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팔뚝을 퍽퍽 때려가며 이를 악무는 유리아. 하지만, 무거운 대검조차 제 몸처럼 휘두르던 팔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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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당연한 일이다. 그녀의 가장 큰 무기는 근력이나 의지가 아닌 직감이고, 직감은 결국 생존본능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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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자하브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검을 자하브의 직계인 유리아가 쥐는 순간……그녀는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최후를 맞이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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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는 몰라도 본능적으로 이해한 미래에 몸이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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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연극이라도 보는 기분인 걸까. 마법으로 브렌트를 제약해서라도 이 모든 광경을 느긋하게 감상하는 흑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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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의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결계 안에 울려 퍼진다. 흘러넘치는 희열을 숨기지 못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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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하다. 백의 죽음과, 천의 저주. 그리고 만의 비극을 담아 빚어낸 것이다. 아무리 우리의 대적자라 한들, 일찍이 남부를 밝게 비추었던 자하브의 후예라 한들 찾아올 필멸을 피할 수는 없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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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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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브의 여식이여. 이제 곧 네 차례구나. 급하게 구한 것이라고는 하나 검집이 제 역할을 다했으니, 계약자로서 성의는 보여야 하니. 그래서? 어찌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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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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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원하겠는가? 혹은 무정타 원망하겠는가? 스스로에게 닥친 비극에 짓눌려 흔하디흔한 배우처럼 눈물을 흘리겠는가. 어느 쪽이건 상관없다. 결국 이 안에서 일어난 모든 눈물은 나의 피가 될 터이니 말이다! 흐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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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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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의 광소를 들으며, 조용히 몸을 일으키는 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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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바닥 깊숙이 박아둔 대검을 지팡이 삼아 균형을 잡는가 싶더니, 그대로 뽑아 들어 어깨에 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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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를 한껏 낮추고, 대검은 어깨와 한 손으로 들어 올리며, 다른 한 손은 축 늘어뜨린 기이한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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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이 유리아가 전력을 내기 위한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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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의 힘을 탈력시키고, 남은 모든 힘을 대검에 집중한다. 사람이 대검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대검의 궤적을 그리기 위해 사람이 보조하는 주객전도의 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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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린다. 연보랏빛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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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버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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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의인가. 얼마나 화려하게 피어나느냐가 관건이겠으나 나쁘지 않군. 좋다. 어디 한번 이 목을 벨 수 있으면 베어 보아라. 그런다고 이미 어두운 골짜기를 헤매는 대적자가 돌아오는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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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유리아는 에녹의 옆에 있어야 한다는 직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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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단순히 에녹이 주변 사람에게 무르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간파하여, 그에게 가까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충동 정도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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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이 자신 대신 날아오는 검을 맞고 쓰러진 지금. 유리아는 알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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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직감은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고 예측했을 뿐이라는 걸(그런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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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건만, 질색하면서도 자신의 기행을 받아주는 사람. 그리고 이제는 날아오는 검을 대신 맞기까지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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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아는 그런 이를 모른 척할 만큼 영악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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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모든 오러를 쥐어짠 유리아의 대검이 밝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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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없어. 내가 죽어도 너는 반드시 데리고 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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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아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음을 각오한 전투에 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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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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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칼에 맞아 쓰러진 이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파악할 겸, 분명 내 가슴에 틀어박혔는데 하나도 안 아픈 검에 대해 알아볼 겸. 일단 가만히 누워있어 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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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래서 뭔데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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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이게 내 몸에 무슨 영향을 끼치는지 전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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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 죽음이니 천의 저주니 하는 말을 늘어놓는 것을 보아, 제대로 이를 갈고 준비한 비장의 무기인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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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유리아마저 엄청 충격받은 것처럼 굴고, 검 자루를 제대로 쥐지도 못하는 것을 보아하니 내가 모르는 뭔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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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지. 일단 사람 심장에 칼이 박혔으니 충격받는 건 당연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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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말로 아무렇지 않다. 완전 멀쩡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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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물론이요, 상처조차 남지 않았다. 그저 내 주먹을 통과했듯이 검날은 내 심장을 관통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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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충격으로 뒤로 넘어간 것도 검날이 박힌 충격이 아니라, 검날이 스르륵 통과하고 남은 검 자루가 부딪친 충격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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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리 심각한 부상을 입은 척, 시간을 끌며 정보를 캐내고 몸 상태를 확인해 보아도 달라지는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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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심상치 않은 이야기를 함, 아무튼 멀쩡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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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이 둘로 귀결되었다. 아니,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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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아님)에 분노한 유리아가 눈이 반쯤 뒤집혀 무리해서라도 흑마법사와 브렌트를 상대하려 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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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아가 제법 강하긴 한데……그건 어디까지나 학생 수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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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맞붙는다면 잠깐은 분발할지 몰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흑마법사에게 당하고 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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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죽음을 각오한 비장한 표정이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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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나. 슬슬 일어나는 수밖에. 조금 머쓱한 게 목숨이 위험한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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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래도 날 위해서 목숨까지 걸어보겠다고 나선 건데 너무 무안하게 만드는 것도 좀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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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정도는 맞춰줘도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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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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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어올린 오러를 팔다리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심장 안에서 빠르게 순환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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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무의미한 공회전. 하지만 원래 일부러 일으키는 공회전은 멋있으라고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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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 박힌 곳을 중심 삼아, 가슴팍 위에 그려지는 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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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정제되지 않은 체내 마력이. 지금은 오러가 흐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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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 미숙한 오러 조작 능력으로는 이렇게 막대한 양의 오러가, 이렇게 빠르게 순환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었고. 결국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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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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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 꽂힌 틈새를 통해 불길이 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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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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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소리를 내며 눈을 끔뻑이는 유리아. 흑마법사 녀석은 그래도 짬을 헛으로 먹은 게 아닌지 기겁하면서도 흑마법을 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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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서 엉겨 붙는 어둠이 물리적 실체를 갖고 산성 용액을 뚝뚝 흘리는 송곳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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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지 모를 괴물의 이빨이 그대로 내 머리를 향해 떨어져 내렸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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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은……안 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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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아의 순간 공중에 떠오르더니, 세찬 회전과 함께 휘둘러진 대검이 이를 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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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까지 안 해줘도 내가 막을 수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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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중간하게 들어 올린 팔이 잠시 허공을 방황하다가, 그대로 가슴팍에 꽂힌 검자루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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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단숨에 이를 뽑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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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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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상(아님)을 통해 폭발하듯이 터져 나오는 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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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과 오러를 흩어내는 내 힘에 직격으로 노출된 탓인지, 뽑아낸 검의 날 부분이 힘 없이 녹아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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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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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루만 남은 손잡이를 땅에 떨구고는, 일부러 공회전시키던 오러를 천천히 회수해 정상적으로 운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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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심장에서 흘러나오던 불길이 전신을 휘어감으며 내 몸을 불사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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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불길의 형태로 낭비되던 오러를 회수한 것이지만, 겉보기에는 화염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보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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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멋만 든 흑마법사 놈들이랑 투닥이다 보니 이런 잔재주가 늘었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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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한숨을 푸욱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눈을 땡그랗게 뜬 유리아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파르르 떠는 브렌트와 흑마법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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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정도로 기겁하니 살짝 뿌듯해질 정도. 이만한 기대를 배신하는 건 오히려 멋없는 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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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흑마법사들이 좋아할 법한 지루하고 현학적인 말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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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저물어도 내일이 되면 다시 떠오르는 법. 이런 간단한 이치도 몰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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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부활……!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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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망한 목소리로 뒷걸음질 치는 흑마법사. 그런 녀석에게 다음으로 해줄 말은 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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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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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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