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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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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하하하하! 드디어! 드디어 우리의 숙적이 숨을 거두는구나! 두려움을 먹는 자를 두려움에 떨게 하던 존재여! 너 또한 한낱 필멸자임을 자각하라!]

“아, 안 돼! 오라방! 어째서 나를……차라리 약한 내가 맞았어야 했는데……!”

미친 듯이 웃어대는 흑마법사. 브렌트의 뒤틀린 육체 속에 숨어들어, 마법으로 소리를 내기 때문일까.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유리아의 목구멍까지 절망이 차올랐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쓰러진 에녹의 앞에 다가가 무릎을 꿇는 유리아.

혹시나 하는 기대에 몸을 의존해 에녹의 상처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보았다.

아무런 빛도 반사하지 않고 죄다 흡수하는, 마치 세상에 구멍이 뚫린 것 같은 느낌을 발하는 검이 에녹의 심장을 꿰뚫고 있는 것을.

“아…….”

피는 한 방울조차 흐르지 않지만 상관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에녹의 가슴에 박힌 검에서 풍겨오는 불길함은 유리아의 직감을 맹렬하게 자극하는 중이었으니까.

이 세상 모든 악의와 저주, 그리고 죽음을 억지로 검의 형태로 묶어두면 이러할까.

유리아의 발달된 직감은 가까이서 보는 순간 알아차렸다. 저 검은 누군가를 베어 죽이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는 것을.

날카로운 형상은 체내를 비집고 들어가기 위한 것. 진실로 상대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외상이 아닌 내부를……그 근본을 부정하는 부정 그 자체였다.

“뽀, 뽑아야……아직 늦지 않았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멍한 표정으로 쓰러진 에녹(진짜 모름).

하지만 아직 숨은 붙어있다는 듯이 오르내리는 가슴팍을 보며 유리아는 손을 뻗었다.

하지만.

“큿!”

검 자루를 움켜쥐려는 순간. 전신의 솜털이 곤두서며 그대로 팔이 굳는다. 마치 몸이 검에 닿는 것을 거부하는 것처럼.

“움직여! 움직이라고……!”

자신의 팔뚝을 퍽퍽 때려가며 이를 악무는 유리아. 하지만, 무거운 대검조차 제 몸처럼 휘두르던 팔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그녀의 가장 큰 무기는 근력이나 의지가 아닌 직감이고, 직감은 결국 생존본능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것.

오로지 자하브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검을 자하브의 직계인 유리아가 쥐는 순간……그녀는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최후를 맞이하게 되리라.

머리로는 몰라도 본능적으로 이해한 미래에 몸이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연극이라도 보는 기분인 걸까. 마법으로 브렌트를 제약해서라도 이 모든 광경을 느긋하게 감상하는 흑마법사.

녀석의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결계 안에 울려 퍼진다. 흘러넘치는 희열을 숨기지 못하는 것처럼.

[무용하다. 백의 죽음과, 천의 저주. 그리고 만의 비극을 담아 빚어낸 것이다. 아무리 우리의 대적자라 한들, 일찍이 남부를 밝게 비추었던 자하브의 후예라 한들 찾아올 필멸을 피할 수는 없을 터.]

“…….”

[자하브의 여식이여. 이제 곧 네 차례구나. 급하게 구한 것이라고는 하나 검집이 제 역할을 다했으니, 계약자로서 성의는 보여야 하니. 그래서? 어찌하겠는가?]

“…….”

[애원하겠는가? 혹은 무정타 원망하겠는가? 스스로에게 닥친 비극에 짓눌려 흔하디흔한 배우처럼 눈물을 흘리겠는가. 어느 쪽이건 상관없다. 결국 이 안에서 일어난 모든 눈물은 나의 피가 될 터이니 말이다! 흐하하하!]

“…….”

흑마법사의 광소를 들으며, 조용히 몸을 일으키는 유리아.

그녀가 바닥 깊숙이 박아둔 대검을 지팡이 삼아 균형을 잡는가 싶더니, 그대로 뽑아 들어 어깨에 걸친다.

자세를 한껏 낮추고, 대검은 어깨와 한 손으로 들어 올리며, 다른 한 손은 축 늘어뜨린 기이한 자세.

하지만 이것이 유리아가 전력을 내기 위한 자세다.

전신의 힘을 탈력시키고, 남은 모든 힘을 대검에 집중한다. 사람이 대검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대검의 궤적을 그리기 위해 사람이 보조하는 주객전도의 검술.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린다. 연보랏빛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난다.

“……죽여버리겠어.”

[살의인가. 얼마나 화려하게 피어나느냐가 관건이겠으나 나쁘지 않군. 좋다. 어디 한번 이 목을 벨 수 있으면 베어 보아라. 그런다고 이미 어두운 골짜기를 헤매는 대적자가 돌아오는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일찍이 유리아는 에녹의 옆에 있어야 한다는 직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이는 단순히 에녹이 주변 사람에게 무르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간파하여, 그에게 가까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충동 정도였으나…….

에녹이 자신 대신 날아오는 검을 맞고 쓰러진 지금. 유리아는 알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직감은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고 예측했을 뿐이라는 걸(그런 적 없다).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건만, 질색하면서도 자신의 기행을 받아주는 사람. 그리고 이제는 날아오는 검을 대신 맞기까지 한 사람.

유리아는 그런 이를 모른 척할 만큼 영악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

남은 모든 오러를 쥐어짠 유리아의 대검이 밝게 빛났다.

“상관없어. 내가 죽어도 너는 반드시 데리고 갈 테니까.”

유리아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음을 각오한 전투에 임한다.


내가 칼에 맞아 쓰러진 이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파악할 겸, 분명 내 가슴에 틀어박혔는데 하나도 안 아픈 검에 대해 알아볼 겸. 일단 가만히 누워있어 봤는데…….

‘아니, 그래서 뭔데 이게.

여전히 이게 내 몸에 무슨 영향을 끼치는지 전혀 모르겠다.

백의 죽음이니 천의 저주니 하는 말을 늘어놓는 것을 보아, 제대로 이를 갈고 준비한 비장의 무기인 것 같긴 하다.

심지어 유리아마저 엄청 충격받은 것처럼 굴고, 검 자루를 제대로 쥐지도 못하는 것을 보아하니 내가 모르는 뭔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지. 일단 사람 심장에 칼이 박혔으니 충격받는 건 당연한 일인가.

하지만 정말로 아무렇지 않다. 완전 멀쩡한 상태다.

고통은 물론이요, 상처조차 남지 않았다. 그저 내 주먹을 통과했듯이 검날은 내 심장을 관통했을 뿐.

애초에 충격으로 뒤로 넘어간 것도 검날이 박힌 충격이 아니라, 검날이 스르륵 통과하고 남은 검 자루가 부딪친 충격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심각한 부상을 입은 척, 시간을 끌며 정보를 캐내고 몸 상태를 확인해 보아도 달라지는 건 없다.

‘아무튼 심상치 않은 이야기를 함, 아무튼 멀쩡함.

그냥 이 둘로 귀결되었다. 아니,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내 죽음(아님)에 분노한 유리아가 눈이 반쯤 뒤집혀 무리해서라도 흑마법사와 브렌트를 상대하려 했기에.

유리아가 제법 강하긴 한데……그건 어디까지나 학생 수준의 이야기.

제대로 맞붙는다면 잠깐은 분발할지 몰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흑마법사에게 당하고 말겠지.

아무리 봐도 죽음을 각오한 비장한 표정이긴 한데…….

어쩔 수 없나. 슬슬 일어나는 수밖에. 조금 머쓱한 게 목숨이 위험한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아니, 그래도 날 위해서 목숨까지 걸어보겠다고 나선 건데 너무 무안하게 만드는 것도 좀 그런가.

조금 정도는 맞춰줘도 괜찮겠지.

우웅-

끌어올린 오러를 팔다리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심장 안에서 빠르게 순환시켰다.

어찌보면 무의미한 공회전. 하지만 원래 일부러 일으키는 공회전은 멋있으라고 하는 거다.

검이 박힌 곳을 중심 삼아, 가슴팍 위에 그려지는 문양.

예전에는 정제되지 않은 체내 마력이. 지금은 오러가 흐르는 길이다.

하지만 내 미숙한 오러 조작 능력으로는 이렇게 막대한 양의 오러가, 이렇게 빠르게 순환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었고. 결국에는.

화르륵.

검이 꽂힌 틈새를 통해 불길이 치솟는다.

“……에?”

멍청한 소리를 내며 눈을 끔뻑이는 유리아. 흑마법사 녀석은 그래도 짬을 헛으로 먹은 게 아닌지 기겁하면서도 흑마법을 시전한다.

허공에서 엉겨 붙는 어둠이 물리적 실체를 갖고 산성 용액을 뚝뚝 흘리는 송곳니가 된다.

무엇인지 모를 괴물의 이빨이 그대로 내 머리를 향해 떨어져 내렸으나.

“두 번은……안 당해!”

유리아의 순간 공중에 떠오르더니, 세찬 회전과 함께 휘둘러진 대검이 이를 쳐낸다.

……그렇게까지 안 해줘도 내가 막을 수 있었는데.

어중간하게 들어 올린 팔이 잠시 허공을 방황하다가, 그대로 가슴팍에 꽂힌 검자루를 잡는다.

그리고 단숨에 이를 뽑아낸다.

화아악!

검상(아님)을 통해 폭발하듯이 터져 나오는 불길.

마법과 오러를 흩어내는 내 힘에 직격으로 노출된 탓인지, 뽑아낸 검의 날 부분이 힘 없이 녹아내린다.

절그럭.

자루만 남은 손잡이를 땅에 떨구고는, 일부러 공회전시키던 오러를 천천히 회수해 정상적으로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심장에서 흘러나오던 불길이 전신을 휘어감으며 내 몸을 불사른다.

정확히는 불길의 형태로 낭비되던 오러를 회수한 것이지만, 겉보기에는 화염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보일 터.

겉멋만 든 흑마법사 놈들이랑 투닥이다 보니 이런 잔재주가 늘었단 말이지.

속으로 한숨을 푸욱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눈을 땡그랗게 뜬 유리아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파르르 떠는 브렌트와 흑마법사가 있었다.

저 정도로 기겁하니 살짝 뿌듯해질 정도. 이만한 기대를 배신하는 건 오히려 멋없는 짓이겠지.

히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흑마법사들이 좋아할 법한 지루하고 현학적인 말을 해주었다.

“태양이 저물어도 내일이 되면 다시 떠오르는 법. 이런 간단한 이치도 몰랐나.”

[부, 부활……! 어떻게…….]

황망한 목소리로 뒷걸음질 치는 흑마법사. 그런 녀석에게 다음으로 해줄 말은 정해져 있었다.

“몰랐다고?”

그럼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