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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저점매수(4)
내 아기씨……그러니까 정액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조금 기겁하긴 했으나, 결국 이그나투스 대공의 요청에 응하기로 했다.
당초의 목적이었던 100만 골드 중 일부를 비자금으로 만들겠다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그나투스 대공이라면, 제국의 탄생 이전부터 살아온 드래곤이라면 나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는게 있을 거라는 기대가 가장 큰 이유다.
어쩌다 보니 자하브의 혈계능력과 비슷한 힘을 각성한 것? 이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애초에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만약 변이를 감당하지 못했다면 이렇게 살아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경 쓰이는 점은 그 외의 부분.
대공가의 시조에 버금갈 정도로 진한 피를 타고났다는데, 정작 내 혈계능력이 무엇인지는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대체 어떤 이유로 몬스터도 아니건만, 던전 내부에서 더 강해지는 것인지.
이그나투스라면 이 둘에 대해 답을 모르더라도 실마리 정도는 알고 있으리라.
……그 과정에서 당연히 이그나투스에게 내가 자하브의 혈족이 아님을 들킬 가능성이 높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름 생각해둔 것이 있다.
하여, 이그나투스 대공령으로 향하기로 정하고 나름의 짐을 싸는 도중이었다.
“좋아. 이걸로 다 챙겼나.”
“으음. 하나 빠뜨리지 않았니?”
내가 짐을 싸는 것을 도와주던 제벨라가 고개를 갸웃거리길래, 다시 한번 가방을 뒤적여 보았다.
“흠……다 챙긴 것 같은데요? 애초에 자잘한 건 카렌이 준비했을 테니, 저는 그냥 몸만 가도 충분할 것 같은데.”
“잘 생각해 보렴. 정말 없니?”
“???”
뭔가 싶어 계속해서 가방을 뒤적이고, 침대와 책상도 살펴보았으나 별다른 이상은 찾을 수 없었다.
하여,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자니 제벨라가 장난스레 미소 지으며 양팔을 벌렸다.
“이 누이에게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지 않았잖니.”
“……예?”
“이리 오렴. 어서.”
이게 맞나 싶어 쭈뼛쭈뼛 다가가자, 냉큼 이쪽을 끌어안는 제벨라. 남부 특유의 얇은 옷 너머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살결. 꽃을 닮은 체향이 번져오며 따스한 체온이 몸을 달군다.
“어찌됐든 에녹 네가 자하브에 온 뒤에 처음으로 성을 멀리 떠나는 일이잖니.”
“아.”
그랬다. 내가 자하브에 머무른 지 벌써 두어 달은 지난 것 같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성안에서 보냈으니까.
가끔 외출한다고 해도 기껏해야 던전에 드나드는 정도.
제벨라가 나를 안고 있는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꾸욱.
가슴팍에 짓눌리는 부드러운 감촉. 하지만 왜일까. 지금은 제벨라가 등을 토닥이는 감각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별로 위험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몸조심해서 다녀오렴.”
“……네.”
어색한 움직임으로 나 또한 제벨라의 등을 토닥이는 사이.
제벨라의 작게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그런데 요즘 도는 소문은 어떻게 된 거니?”
“……네?”
“있잖니. 유리아의 룸메이트이자, 이그나투스 대공의 가장 어린 제자를 마구 범해서 부끄러운 말을 큰 소리로 외칠 만큼 타락시켰다는 소문 말이란다.”
“…….”
아니, 그 소문이 왜 벌써 제벨라의 귀에 들어간 건데.
평소에는 내가 뭘 하건,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좋게만 해석하던 사람이지만……아무리 그래도 이런 소문까지 좋은 방향으로 해석할 것 같진 않아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내 동생들……에녹과 유리아의 말을 믿는단다. 실제로 이그나투스 대공의 조건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약간 문제가 생긴 것일 수도 있지. 메이킨이라는 아이는 아직 어린 나이고, 부끄러움이 심한 아이 같으니 말이야.”
정작 돌아온 것은 괜찮다고, 이해한다는 식의 내용.
하긴, 제벨라라면 오히려 이런 소문에 시달리는 나를 위로해 주려던 것이리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나……그것이 너무 빠른 판단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소문이 진짜라면. 그러니까 에녹 너도 자하브고 남자니까 어느 날 갑자기 마음에 드는 여자를 3일 밤낮으로 조교 해서 머릿속에 아기씨 조르는 것밖에 없는 상태로 만들고 싶은 기분이 들 수도 있잖니.”
“……?”
대체 그런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적어도 나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기분이라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피임은 꼭 하렴. 일단은 에녹 네가 가주고, 이 누이가 첫째 부인이 될 예정이잖니. 만약 사생아가 먼저 태어난다면 여러모로 곤란해질 테니까.”
“그쪽이 문제에요?!”
나는 일종의 질투나 독점욕 같은 건 줄 알았다. 그게 아니더라도 가문의 위신이 어쩌구 하면서 줄을 세우려는 내용이라던가.
하지만 그냥 사생아가 정실 혈통보다 먼저 태어나면 복잡해지니 조심하라는 걸로 끝이라니.
심지어 다른 여자랑 뒹굴지 말라는 것도 아니라 피임만 제대로 하라는 소리였다.
이게……맞나?
언젠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가주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지만, 그전까지는 내가 자하브의 핏줄이 아니라는 걸 들켜서는 안 된다.
하여, 아직 자하브의 다른 형제들이 살아있던 시절에는 어땠는지 따로 알아보았으나.
대부분이 검열되거나, 기록 삭제되어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그저 생긴 것처럼 금태양 집안이라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
어쩌면……내 생각보다 훨씬 미친 집안이었을지도 모르겠네.
……아, 그래서 아카데미에 그렇게 소문이 빨리 퍼진 건가.
작은 깨달음과 함께 제벨라를 부드럽게 밀어내며 말했다.
“걱정마세요. 절대로 그럴 일은 없으니까.”
“어머나…….”
어째서인지 얼굴을 붉힌 제벨라. 그녀가 잠시 스스로의 뺨을 문지르더니, 이내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흐흠. 아무튼 이걸로 깜빡한 마지막까지 제대로 챙겼구나. 마음 같아서는 성문 앞까지 마중 나가고 싶지만…….”
“일이 바쁜 거죠? 이해해요.”
아직까지도 쏟아지는 친구비의 향연. 제벨라는 이를 최대한 유용하게 써먹기 위해, 매일 같이 밤을 새며 일한다고 들었다.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마탑에는 특이한 아티팩트가 많다고 들었어요. 제벨라 누님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으면 하나 구해올게요.”
“정말이니? 고맙단다 에녹. 이 누이를 그렇게나 생각해 줄 줄이야. 정말 착한 아이구나. ……그래. 정말 착한 아이인데.”
흐뭇한 표정으로 내 옷매무새를 다듬어 주던 제벨라였으나, 어째서인지 그 손길이 내 심장 어림을 스치는 순간.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지는 것처럼 보였다.
워낙 순식간에 지나간 변화라 잘못 봤나 싶어 눈을 비비는 사이. 포옹을 하며 잠시 흐트러졌던 옷을 바로 잡아준 제벨라가 반보 뒤로 물러섰다.
“응. 이거면 충분하겠구나. 어서 가보렴. 이그나투스 대공이라도 텔레포트 게이트를 오래 유지하는 것은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일 테니 말이야.”
“예.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누님.”
가볍게 고개를 꾸벅이고는 방을 나서, 광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내가 미처 챙기지 못했을 것들을 챙긴 카렌과, 여전히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메이킨.
그리고 나를 배웅하기 위한 가신들과 기사단이 도열해 있었다.
아쉽게도 힐다도 나와 동행하는 대신, 저 사이에 끼어있다.
던전 실습으로 온 아카데미 학생들을 관리 감독하고, 연속된 던전 역류 때문에 완전히 박살 난 방어선을 재건하느라 기사단의 인원을 줄이기 힘들었기 때문.
뭐, 카렌만 있어도 충분하겠지. 내가 내 한 몸 지킬 실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쿠웅!
내가 지나갈 때마다 양옆으로 물러서 경례를 하는 가신들. 자연스레 사람으로 이루어진 길이 열리는 모습은 몇 번 본 적 있음에도 장관이었다.
나만 그리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시선을 피할 뿐이던 메이킨이 고개를 푹 숙이기 시작했다.
좀 위압감이 느껴지는 광경이긴 해.
속으로 헛웃음을 지으며, 메이킨의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고개 들어.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잖아?”
“네? 아, 네엡!”
고개를 연신 꾸벅인 메이킨이 품에서 작은 수정구 하나를 꺼내 마나를 불어넣고. 무어라 중얼거린다.
모종의 보안 장치라도 있는 것인지 수정구의 안쪽이 보이지도, 무슨 대화를 나누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메이킨의 통신 상대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마 이그나투스 대공이겠지.
그렇게 잠시 이야기를 나눈 끝에 메이킨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준비는 끝났어요오……다들 조금만 물러서 주세요. 휘말리면 위험하거든요.”
“…….”
“…….”
“…….”
“지, 진짜 위험한데…….”
안절부절못하며 주변을 둘러싼 자하브의 가신들을 바라보는 메이킨. 그런 그녀 대신 내 쪽에서 나섰다.
“들었지? 다들 세 걸음씩 물러나.”
“““예!!”””
우렁찬 대답과 함께 그제야 거리를 벌리는 가신들.
이에 메이킨이 감탄과 억울함이 섞인 표정이 되었으나, 할 일은 하려는 건지 공터에 방금까지 쥐고 있던 수정구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수정구를 중심으로 터져 나오는 마나의 격류.
메이킨 수준으로 어찌할 수 있는 양의 마나가 아니다. 당연히 마도구 따위가 버틸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쩌적.
돌연 금이 가는 수정구. 그 사이로 훨씬 더 많은 마나가 쏟아져나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패턴을 그리기 시작했다.
우웅-
공명음과 함께 완성된 것은 거대한 타원형의 거울을 닮은 무언가.
하지만 진짜 거울은 아닌지, 너머에서 일렁이는 풍경이 자하브령과 완전히 달랐다.
“저기가 서부인가.”
처음 보는 고위 마법에 내심 감탄하며, 메이킨을 따라 카렌과 함께 텔레포트 게이트로 몸을 던졌다.
약간의 부유감. 그리고 살짝 선선해진 기온. 텔레포트는 성공적이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자.
“잘 왔구나. 본인이야말로 이그나투스 대공. 태양의 후예여, 그대를 초청한 최후의 용이니라.”
“……음?”
그곳에는 위엄 넘치는 레드 드래곤 대신. 바닥을 뒹굴거리는 붉은 머리의 꼬맹이가 있었다.
높게 솟은 뿔과 오동통한 꼬리를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이그나투스 대공?”
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