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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저점매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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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 내 동생! 여기 있었구나. 누이가 사랑한다고 말했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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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벨라 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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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다짐을 지키기 위해, 오러 수련만 좀 하고 개백수마냥 정원을 산책하던 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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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스커트를 들어 올린 제벨라가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것 같은 스텝을 밟으며 내 쪽을 향해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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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집무실이 됐건, 본인 방이 됐건 항상 실내에만 틀어박혀 있던 제벨라가 별일 없는데도 외출한 것도 놀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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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품위 있게 사뿐사뿐 걸어 다니며, 부드러운 미소 정도만 짓던 제벨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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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통통 튀어오는 모습에는 아무리 나라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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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기분이 좋아 보이는 건가요 제벨라 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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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 에녹도 참. 전부 네 덕분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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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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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니, 제벨라의 뒤를 반보 뒤에서 따라오던 아론 집사장이 고개를 꾸벅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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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벨라 아가씨께서는 가주님께서 과감한 결단으로 자하브의 재정난을 해결해 주신 것에 기뻐하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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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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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체 무슨 소리를 들었나 싶어 눈을 끔뻑이고 있자니, 여전히 헤실거리는 제벨라가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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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에녹 네가 받기로 한 친구비? 라는 게 있잖니. 정말 많은 상단과 귀족들이 우애의 증거를 보내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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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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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다. 동시에 의아함도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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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친구비를 받기로 발표한 직후라면 모를까, 슬슬 아무것도 안 하는 내게 실망해서 한소리 나올 쯤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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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아직도 친구비를 보내오는 곳이 있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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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마다! 약간 규모가 부족한 이들은 줄까지 서가며 서신과 금화 주머니를 보내올 정도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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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그렇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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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그거야 당연한 일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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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갸웃 기울이는 제벨라. 길게 늘어뜨린 백발이 바람결에 살랑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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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야 에녹 네가 자하브의 황금기를 다시 가져다줄 사람이기 때문이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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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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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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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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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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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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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기는. 요즘 나도는 소문을 한번도 못 들어 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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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를 으쓱인 제벨라가 손가락을 꼽아가며 뭔가 심상치 않은 수식어를 나열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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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회귀, 금빛 태양, 흑마법 학살자, 고귀한 짐승,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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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거기까지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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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가 낯부끄러운 중2병 감성의 별명에 손발이 절로 뒤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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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제벨라가 나를 의도적으로 놀리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원래 이런 건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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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판타지 세상에서 중2병스러운 타이틀? 이건 그냥 순수한 칭송의 증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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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정말로 세간 사람들은 나를 아직도 엄청나게 올려 치고 있다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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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그런 별명이 붙은 거죠?! 저 요즘 아무것도 안 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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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아무것도 안 했다고 해봐야 겨우 한 달 남짓 아니니. 이제 막 소문에 불이 붙을 시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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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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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마법은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소수의 특권층에게 허락된 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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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은 입에서 입으로, 가끔은 서신으로 소문이 퍼지는 것이 이 시대의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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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야 내가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본 아카데미 학생들과 그들의 집안에만 퍼졌던 정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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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상인들의 입을 통해 평민들에게도 전해지고, 자연스레 그 지역의 귀족들의 귀에도 들어가기 시작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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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일차적으로 친구비를 보내왔던 이들이 잠잠해질 무렵, 소문을 접하고 뒤늦게나마 친구비를 보내는 이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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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뭔……? 잠깐, 그래도 처음 친구비를 보낸 곳은 불만이 많겠죠? 제가 아무런 대응도 뭣도 없이 가만히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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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리가. 오히려 자신들이 먼저 자하브와 연을 텄다는 것을 사교계에 자랑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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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사교계에서 제 소문이 퍼지고 있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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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이지. 다른 곳은 몰라도 중앙 사교회에서는 에녹 네가 참 뜨거운 감자라는구나. 협력 관계를 맺은 코넬리아 황녀님께서 직접 서신에 담은 내용이니 확실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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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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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알았다. 그냥 제국이 내 적이고, 세상이 나를 억까하는 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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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억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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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으로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던 것도 잠시. 지끈거리는 머리를 쥐어 싸매는 내 귓가에 제벨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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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이렇게 잘 되고 있지만……한가지 고민이 있어 이렇게 에녹 널 찾아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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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고민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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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에녹. 내 동생아. 네가 이 누이를 믿고 대소사를 맡겨준 건 고맙지만, 아무래도 이건 내 선에서 처리하기에 너무 큰 일 같아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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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하며 제벨라가 품에서 고급스러운 서신 하나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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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지 모르겠지만, 묘한 위화감이 느껴지는 걸 보아 평범한 종이가 아니라 모종의 마법이 걸려있는 마법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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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제벨라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꺼내고 내 직감도 잠잠한 걸 보아 별로 위험한 마법은 아닌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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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누이가 읽어줄게. 잠시만 기다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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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이 정도는 이제 스스로 읽을 줄 알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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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몰라도 문맹은 탈출했다는 생각에 약간 으스대며 제벨라에게서 서신을 뺏어 들듯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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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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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면서도, 이내 흡족한 미소를 짓는 제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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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간지러운 기분에 그 시선을 피하고 서신의 내용을 읽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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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요약하면 친구비를 많이 줄 테니, 자기들 영지의 오랜 골칫덩이를 치워달라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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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 일단 대공 아닌가요. 용병도 아니고 이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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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끝까지 읽어보렴. 그럼 이해하게 될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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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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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을 지나 형식적인 인사말. 그리고 구체적인 금액 부분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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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골드요? 이게 얼마나 큰 금액인가요 제벨라 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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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립소가 일종의 수용소긴 하지만, 브로커를 통해 외부와의 은밀한 교류 정도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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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반쯤 고립된 곳이라도 금화는 제대로 화폐로서 성립했다는 소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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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범죄가 판치는 암흑가의 물가에 익숙해진 내게도 100만 골드는 영 감이 안 잡히는 금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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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내가 한창 암살자 길드에게 쫓기고 있던 당시, 내 목에 걸린 의뢰금이 10만 골드였던 건 기억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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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질문에 제벨라가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조심스레 입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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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네……100만 골드라면 자하브 성을 하나 더 지을 수도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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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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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브 성은 주기적으로 터지는 던전 역류를 막아 세우기 위해, 특수 자재로 만들어진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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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재 그 자체도 비싸고, 쌓아 올린 성벽에 인챈트 하는 마법은 더 비싼. 장담컨데 같은 무게의 금과 좋은 승부가 될 법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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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금으로 된 동전을 몇십만, 몇백만 단위로 거래할 만큼 이 세계는 지구에 비해 금이 흔하다지만, 이를 감안해도 말도 안 되는 금액인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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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런 말도 안 되는 금액을 겨우 친구비로 줄 수 있는 곳이……이그나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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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나투스라는 이름은 잘 알고 있다. 자하브에 들어온 뒤, 최소한의 제국 역사를 배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그게 아니더라도 칼립소에서도 이름이 들릴 만큼 유명한 곳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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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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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의 대공이 직접 이런 서신을 보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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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 같구나. 이그나투스 대공이라면 100만 골드도 허언이 아니니,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기 힘들어 에녹 너를 찾고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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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나투스 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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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멸문한 칼립소 대공이나, 어쩌다 보니 내가 달고 있는 자하브 대공의 자리처럼 제국의 4대 대공 중 하나이자, 서부를 다스리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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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국의 유일한 마탑의 주인이며, 비극의 신에게서 살아남은 최후의 드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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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대공 가문이지, 살아있는 다른 드래곤이 없기에 이그나투스 본인의 대에서 끝나는 일대작위나 다름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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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이그나투스는 제국보다도 오래 살아온 존재. 그리고 별일 없다면 앞으로도 천년은 우습게 살아갈 장생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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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쌓아놓은 재산은 차고도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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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먹으면 제국의 경제를 박살 낼 수도 있지만, 황제가 매번 사정사정하는 바람에 참아주고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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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그나투스 대공이라면 100만 골드는 어렵지 않게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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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딱 1만 골드만 슬쩍해도 평생 놀고먹을 돈으로는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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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하브 대공 자리에서 내려왔을 때를 대비한 비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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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생각하자 갑자기 의욕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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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금액이라면 이야기 정도는 들어보는 게 좋겠죠. 무엇보다 이젠 같은 대공이잖아요? 인사도 한번 해둬야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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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 네 뜻이 그렇다면, 조만간 찾아가는 것으로 답장을 넣어두마. 그 사이에 이그나투스 대공의 대리인과 이야기를 해보는 건 어떻겠니? 자세한 사정은 대리인을 통해 전달하겠다고 하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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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대리인이 여기 와있나요? 벌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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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와 서부의 거리, 그리고 소문의 확산 속도를 생각하면 너무 빠른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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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아직 대답도 못 받았는데, 대리인부터 보낼 줄이야……마탑주이자 드래곤이니까 텔레포트라도 쓴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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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질문에 제벨라가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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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 그런 게 아니란다. 놀랍게도 이그나투스 대공의 322번째 제자가 아카데미의 졸업반이었지 뭐니. 심지어 유리아의 룸메이트기도 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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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가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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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오래 사신 분이라 그런 거 아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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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제국의 역사 속에서 322명의 제자밖에 안 들였다면, 오히려 적게 들이는 편이라고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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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알겠어요. 한번 만나서 이야기는 나눠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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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생각했단다. 필요한 게 있다면 뭐든 이 누이에게 말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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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하는 제벨라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유리아의 방을 찾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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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브 성에 있는 방이 아니라, 바깥에 마련해 둔 아카데미 학생들을 위한 숙소의 방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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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메이트라고 하니, 같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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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브 대공의 지위를 이용해 여자 기숙사를 당당하게 정문을 통해 들어갔다. 솔직히 좀 두근거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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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찾는 것이 여동생의 방이라는 게 영 그렇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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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렇게 도착한 유리아의 방문을 여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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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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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메이킨. 드래곤은 도마뱀처럼 총배설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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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절대 스승님 앞에서 그런 이야기 하지 마! 그리고 제자인 내 앞에서 하는 것도 엄밀히 말하자면 시비 거는 셈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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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메이킨 너도 우리 오라방 길이가 몇 센티인지 궁금해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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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이야기거든?!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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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머리의 소심해보이는 인상의 소녀, 메이킨과 눈이 마주쳤다. 총배설강 이야기로 미루어 보아 그녀가 이그나투스의 제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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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흠. 일단 내 키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따로 재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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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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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메이킨이지? 이그나투스 대공의 서신을 받고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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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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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아무래도 걸즈 토크 중이었던 것 같은데 조금 나중에 다시 오는 게 좋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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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름의 배려가 담긴 말이었으나, 아쉽게도 이는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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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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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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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야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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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킨이 비명을 지르며 전신으로 마나를 방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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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소용돌이치는 마나의 폭풍. 그리고 메이킨이 있던 자리에는 주인을 잃은 옷가지와, 그사이에 숨어 몸을 둥글게 만 햄스터만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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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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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마법도 쓸 줄 아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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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옷가지 사이로 슬쩍 보인 속옷은 회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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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정확히 말하자며 햄스터가 줄줄 흘리는 눈물에 젖어 살짝 색이 진해진 회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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