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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저점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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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한 것들이 아닌, 고위 흑마법사를 쓰러뜨린 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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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들이 던전 역류를 직접 일으킬 능력은 없다는 걸 안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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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순수하게 티배깅과, 내 죽음(아님)에 분노해 목숨을 걸어준 유리아를 위해 일종의 쇼맨십이 생중계되고 있었던 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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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아……나는 나약하고 병든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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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약하고 병든 사람은 몬스터 수준으로 변이된 사람을 맨손으로 찢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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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보렴. 육체적인 힘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밤마다 나는 복수라는 허상에 사로잡혀 껍데기뿐인 목표에 시선을 빼앗기고, 돌아가지 못하는 과거를 향해 끝없이 발을 옮기는 망령에 불과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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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도 잘하시네요. 어제도 자하브의 식량 창고를 거덜 낼 기세로 고기만 골라 드시고는, 배를 까놓고 시끄럽게 코 골면서 주무시지 않았습니까. 배불리 먹고, 푹 잔다. 저는 이만큼 속 편한 사람을 알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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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나 코 골아? 아니 애초에 내가 코 골며 자는 건 어떻게 알았니?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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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 건강을 염려하는 것은 집사의 덕목이라 그런 것일 뿐이니, 오해하지 말아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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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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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슨 착각을 하는 거냐는 듯, 별꼴 다 보겠다는 듯이 고개를 까딱이며 이쪽을 훑어보는 카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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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무표정을 유지하는 것이 참 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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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하고 마저 들어. 어디 보자. 어디까지 말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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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븝. 읍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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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손으로 입 막지 말고 그냥 말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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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돌아가지 못하는 과거를 향해 방황하는 망령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가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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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그랬었지. ……그런데 이다음이 뭐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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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저한테 물으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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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가 없다는 듯이 눈을 끔뻑이는 카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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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조금 전의 말은 전생의 내가 지구에서 뒹굴거리며 읽었던 인터넷의 뻘글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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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엄청 수려한 문장으로 헛소리하는 내용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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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그사이에 까먹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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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떠올리려 고민했으나, 여전한 막막함에 그냥 결론만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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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카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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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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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네 볼따구만이 정신적으로 지친 나를,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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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소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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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을 푸욱 내쉰 카렌이 무언가 작성하던 수첩을 잠시 덮고는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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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그렇게 제 볼을 주무르려고 하시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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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사람은 말랑말랑한 걸 만지면 기분 좋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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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여자의 가슴 같은 것 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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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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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까지는 말하지 않았던 터라 순간 버벅이는 목소리. 하지만 정작 스트레이트를 날린 카렌은 태연한 어조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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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그랬군요. 가주님의 취향은 가슴이 말랑한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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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건 또 뭐 하러 기억하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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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슬슬 가주님의 반려분을 물색해 보아야 할 시기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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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벨라 누님은 어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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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반려를 말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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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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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생각은 없고, 상황이 찾아오기 전에 어떻게든 몸을 뺄 생각이지만 아무튼 일단 나는 제벨라와 약혼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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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벌써부터 다음 아내를 찾는다고? 이게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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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가 없어 카렌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니, 그녀가 눈을 끔뻑이며 똑같이 내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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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서로 눈동자를 바라보며 끔뻑이기를 반복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이 입을 벌리는 카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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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최근 가주님께 혼담이 많이 들어와서 일차적으로 거를 필요가 있었을 뿐입니다. 지금 당장 들이자는 의미가 아니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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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렇지? ……잠깐. 혼담? 갑자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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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일전에 가주님께서 보여주신 위업은 이미 제국 전역에서 유명하니 당연한 일 아닙니까. 당연히 혼담이 쏟아질 만하죠. 순수하고 강력한 피를 원하는 귀족은 얼마든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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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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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보 양보해서 자하브령에서, 혹은 남부에서 유명해진 건 이해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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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국 전체에서? 대체 어떻게? 무슨 수로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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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없어하는 내 모습에 카렌이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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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의 피로로 눈치채지 못하셨던 건가요. 그 자리에는 자하브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아카데미의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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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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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내가 아무도 안 볼거라 생각하고 폼 잡으며 했던 모든 언행을 자하브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제국 각지에서 뽑힌 유수의 인재들도 봤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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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또 쪼르르 달려가 본가에 알렸고, 그 탓에 제국의 이름있는 귀족들 대부분이 내가 흑마법사 상대로 반쯤 정신줄을 놓고 싸우는 모습이나, 부활(아님)을 했다는 걸 알고 있다는 소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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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음. 무슨 상황인지 완벽히 이해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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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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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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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이야. 볼따구 이리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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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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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이라는 말에 움찔한 카렌. 이내,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는 느릿하게 이쪽으로 향해 얼굴을 들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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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질끈 감은 것이 표정 변화가 드문 카렌에게서는 보기 힘든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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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카렌의 양쪽 볼을 잡고 천천히 잡아당긴다. 저항 없이 쭉쭉 늘어나는 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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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맛이지. 드디어 좀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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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을 번쩍 들어, 마주 보는 자세로 무릎 위에 앉혀놓고는 마구 볼따구를 주무르며 생각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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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다 살아났다고 착각할 만큼 강한 혈계능력을 보유한 나를 향해 쏟아지는 무수히 많은 악수의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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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나도 모르고 있었지만, 내게는 귀족의 피가. 그것도 상상 이상으로 진하게 흐르고 있던 모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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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게 자하브의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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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내가 지닌 대부분의 힘은 인체실험을 통해 강제로 얻거나, 따로 죽어라 단련해 손에 넣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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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계능력을 타고난 것으로 보이는 건 분명 형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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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도 또 다른 자하브의 혈족이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였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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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정신 나간 생각인 것 같지만, 형님이 갑자기 혈통의 어두운 비밀에 눈을 떠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나를 낳았다는 건 말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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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나는 흑마법사 조직에 팔려 갈 때까지 지구에서의 기억을 제외하면 평범한 아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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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친으로 만들어진 농후한 자하브의 핏줄을 타고났다고 하기에도 문제가 많은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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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이만 어렸지, 머리는 그대로인 내게 어머니와 형님은 그냥 평범한 모자 관계로 모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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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나와 형님의 나이 차이가 고작 1살밖에 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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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내가 귀족 혈통일지는 몰라도 자하브가 아니라는 건 확정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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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황에서 내게 전국적인 관심이 쏠리는 것은 영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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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실각당해 내려와야 한다면 더더욱 그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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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핀치는 찬스. 위기란 곧 기회의 다른 이름인 법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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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브의 남자가 전부 죽었다는 소식에 유리아의 아카데미 생활이 꼬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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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없어 어떻게든 찾아서 가주로 내세운 사생아가 너무 강함’이라는 소식은 다른 이들의 눈에 어떻게 보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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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저점 매수의 기회처럼 보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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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브는 제국의 4대 대공 가문이라 불릴 정도의 명문. 하지만, 최근의 연속된 던전 역류를 막느라 재정적, 군사적 어려움을 겪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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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가주직에 오른 신임 자하브 대공은 사생아 출신이라 배운 것이 없고, 내부에서의 균열도 적잖이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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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지닌 힘은 무시할 수 없으니, 자하브의 권세가 약해진 지금 연을 맺어두면 나중에 더 큰 이득이 되어 돌아올 거라 여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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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게 혼담을 보내오는 귀족들은 지금 당장의 이득이 아니라, 언젠가 찾아올 미래의 떡상을 믿고 내게 투자하려는 것이다! 전생의 내가 처음 주식할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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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생의 나처럼 무릎에서 산 게 아니라, 사실 어깨에서 샀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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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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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마구 만지작대던 카렌의 볼따구를 놓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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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카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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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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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담 그거 다 취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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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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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자하브와 연을 맺고 싶다면 친구비를 내라 그래. 당연한 말이지만 많이 내는 만큼 우정이 깊어질 거라는 말도 덧붙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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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말씀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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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친구비만 내면 다 친구지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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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대답했건만, 어째서인지 카렌이 결연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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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제벨라 아가씨께, 아카데미의 학생들에게, 그리고 서신을 보내오신 모든 귀족가에 그리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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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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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고개를 끄덕이고는 총총걸음으로 멀어지는 카렌의 뒷모습에 씨익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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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이제 남은 건 돈은 받아먹었으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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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바보는 아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내가 뭔가 의도적으로 조지려 하면 오히려 역효과로 좋은 결과만 나온다는 건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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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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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받았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자연스레 불만이 쏟아질 테고, 이는 고스란히 나의 평판 문제로 이어질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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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내 주가는 알아서 떡락한 끝에, 최종적으로는 상장폐지에 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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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의 계획 자체는 합리적이었으나, 문제는 그가 생각치 못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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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아무도 자하브에게 품위라던가, 신의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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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비? 심심하면 근처 영지 삥 뜯는 건 자하브의 오랜 전통이었다. 빌린 돈을 갚으라고 했더니 협박이 날아오는 건 연례행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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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자하브와 연을 맺으려던 가문이 항상 존재해 온 이유는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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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사회에서는 대공 같은 최고위 귀족의 이름을 빌린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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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에녹은 친구비를 받으면 자하브와의 친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금액에 따라 줄까지 세워주겠노라 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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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받은 뒤에는 침묵할 뿐, 너네 돈 좀 많아 보인다? 같은 소리를 하며 더 내놓으라고 깽판을 부리지도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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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고위 귀족과의 연을 트기 위해서는 막대한 뇌물이 필요하단 것은 이 세계의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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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에녹은 암암리에 이루어지던 것을 양지로 끌어 올려 공정한(?) 경쟁을 시킨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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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전 세대의 자하브였다면 여식도 받아 가고, 지참금 명목으로 돈도 뜯어갔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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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은 다 필요 없고 순수하게 돈만 내놓으라고 하는 셈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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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상대적으로 에녹의 평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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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아득히 뛰어넘는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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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를 넘어선 자, 다시 떠오르는 태양을 품은 사내, 흑마법사들이 두려워하는 대적자……그런 사람이 돈만 주면 친구가 되어준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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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에는 돈이라면 썩어 넘치도록 쌓은 집단. 마탑이라는 곳이 존재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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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스승님께 연락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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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탑에는 해결하지 못한 오랜 문제가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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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새로운 친구가 이를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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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을 읽던 아카데미 소속의 유망한 마법사 소녀가 한참의 고민 끝에 명상 중이던 자신의 룸 메이트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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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아. 자하브 대공 각하……그러니까 너네 오빠는 어떤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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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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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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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형부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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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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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렇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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