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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벨라가 약속했던대로 가주가 되긴 했지만, 하는 일은 정말로 얼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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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힐다의 수업이 시작되기 전. 아침에 눈을 뜬 이후로 한 발짝도 침대 밖으로 나가지 않고 뒹굴거리며 카렌에게 귀찮게 구는 도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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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곧 자하브로 돌아올 거라는 새 여동생. 유리아에 대해 생각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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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사실 나에게는 여동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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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여동생이 하나 생겼다고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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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하브에 들어오며, 제벨라라는 새 누나가 생긴 것처럼 유리아라는 여동생도 함께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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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카렌아. 유리아는 어떤 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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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아 아가씨 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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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 처음 만나는 거니까 조금 궁금해서 말이야. 역시 제벨라 누님 같은 분위기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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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아무래도 유리아 아가씨는 제벨라 아가씨와 많이 다르시죠. 정확히는 제벨라 아가씨가 다른 자하브의 여식분들과 비교해도 좀 특이한 분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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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벨라 누님에게 그 부분에 관해서는 얼추 들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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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브의 혈계능력은 오직 남자에게서만 발현된다. 하지만 여자라고 하여, 완전한 일반인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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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자하브의 흔적 정도는 남아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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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벨라는 시간이 흐르며 피가 연해지자, 격세유전으로 자하브의 흔적마저 지워버리며 다른 가문의 피가 발현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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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자하브 안에서도 무척이나 특이한 경우였고, 그렇기에 전대 가주인 카인에게 학대당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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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유리아가 제벨라와 크게 닮지 않았다는 소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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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금발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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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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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피부도 갈색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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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건 아닙니다. 피부색은 제벨라 아가씨를 닮으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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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벨라 누님이랑? 혹시 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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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두분 모두 1부인과 전대 가주님의 사이에서 나온 분들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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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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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카렌이 창문을 열어 간단하게 환기를 하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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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아 아가씨는 무재를 타고나셨습니다. 혈계능력은 발현시키지 못하셨기에 신체 능력은 다소 떨어지셨지만……그래도 자하브의 무재를 고스란히 물려받으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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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계능력은 없어도 재능은 유전되기도 하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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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혈계능력 또한 물려받았지만, 발현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제벨라 아가씨와 가주님의 혼인이 약속되어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다른 가문의 혈계능력을 각성하셨지만, 몇번이고 시행된 검사를 통해 자하브의 직계임은 확실하셨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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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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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제벨라와의 결혼 건도 있었네. 이것도 진짜 결혼식을 치르기 전에 어떻게든 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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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이번 생의 아버지마냥 자식만 싸지르고 사라지는 건 좀 그렇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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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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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알겠네. 무재가 있으니, 그걸 키워주기 위해 아카데미에 보낸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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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일단 명목상으로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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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목상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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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나 제 추측이지만, 조금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아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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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네. 이리 와서 좀 자세히 말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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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의 이불을 들어, 옆구리 쪽을 툭툭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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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침대를 가만히 번갈아 바라보던 카렌이었으나, 결국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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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구리 옆에 카렌의 작은 엉덩이가 쏙 들어오는 모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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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우라는 뜻이었는데……이건 이것대로 괜찮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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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망나니 연기도 계속하다 보면 는다는 걸까. 이젠 이것도 꽤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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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과하지 않은 선에서 카렌을 희롱할 수 있는 위치. 꼬리뼈와 허리의 중간쯤 되는 부분을 콕콕 찌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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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카렌 네가 생각한 다른 이유는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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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전대 가주님께서는 후계자 경쟁이 심화될 걸 예상하셨겠죠. 그래서 능력은 있지만 막내라 너무 어린 유리아 아가씨를 아카데미로 일종의 피신을 보낸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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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피신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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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인지는 알겠고, 어느 정도는 동의하지만……설령 그렇다 해도 카인이 유리아를 피신 보냈을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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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은 아직 모르는 모양이지만, 카인은 제벨라의 혈통을 의심하고 가문의 악재로 여기며 상당한 학대를 감행했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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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이 자하브의 흔적이 보인다고는 하나, 제벨라의 친동생인 유리아를 아껴서 멀리 도망 보냈다는 건 조금 신빙성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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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은 카렌과는 조금 다르다. 아마……제벨라가 내보낸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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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제벨라가 일하는 모습을 몇번 지켜봐서 잘 안다. 그녀가 얼마나 말도 안 되게 유능한 사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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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반쯤 감금된 상태고, 한계치까지 몰려있다해도 불온한 분위기를 눈치채고 한사람 내보내는 정도는 가능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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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의 언행에서 추측컨데 유리아는 여자임에도 자하브 가문 안에서 그럭저럭 인정받았던 것 같으니 더욱 쉬웠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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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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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어땠는지는 제벨라나 유리아에게 물어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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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대충 어떤 사람인지는 알겠네. 그럼 성격은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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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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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고민하던 카렌이 무표정한 얼굴 위로 흐릿한 미소를 띄워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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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사람을 잘 챙겨주시는 분이었죠. 연민을 알고, 책임을 아는 분이기도 하셨고요. 다만, 약간 다혈질적인 면모가 있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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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는 자하브 가문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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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 말은 아닙니다만, 대충 그런 느낌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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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브를 모시는 케세프 가문의 일원으로서 자하브의 핏줄에 안 좋은 소리를 하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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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이야기라도 하는 것처럼 작게 속삭이는 카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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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는 기본적으로는 괜찮은 녀석이지만, 성격은 급하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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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제벨라 상대로는 실패했던 가주직 떠넘기기가 먹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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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이라는 건 내 망나니짓을 고깝게 볼 것이며, 성격이 급하다는 건 살짝 긁었을 때 격렬하게 반응한다는 뜻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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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별다른 욕심 없이 나를 가주직에 앉힌 제벨라와 달리 변수가 되어줄 것은 확실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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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전생 현생을 다 합쳐 처음으로 생기는 여동생이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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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 애호하고 싶은 마음과, 마구 괴롭혀 들고 일어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머릿속에서 첨예하게 대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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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내가 정말로 귀족의 피가 섞였는지, 어째서 던전에 들어가면 컨디션이 좋아지는지로 생각할 게 많았던 상황이라 슬슬 머리가 아파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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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몸을 둥글게 말아, 눈앞에 보이는 카렌의 허벅지에 머리를 묻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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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앗! 갑자기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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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카렌아.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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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긴 그럴 때가 되긴 했죠. 가주님도 자하브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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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음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인 카렌이 나쁜 계획이라도 꾸미는 사람처럼 작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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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오늘 수업은 땡땡이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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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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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확 마음이 동했지만, 한참의 망설임 끝에 결국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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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됐어. 힐다 기다리겠다. 빨리 가자. 당장 급했던 계승식도 끝나고, 쉬운 내용이라면 혼자 책도 읽을 수 있게 됐으니, 오러 수련의 비중을 높인다고 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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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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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그대로면서 입만 벌리며 놀란 티를 낸 카렌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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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셨습니다. 이걸로 저를 사람들 보는 앞에서 번쩍 들어 올렸을 때의 앙금은 씻어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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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참 고맙네. 근데 카렌아. 원래 이런 거 신경 쓰는 사람이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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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케세프 가문 출신이고, 가주님의 전속 시종이긴 합니다만 어엿한 한창때의 레이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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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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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의 가슴팍을 바라보았다. 흔들림 없는 편안함이라는 말은 분명 이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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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으면 굉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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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벗어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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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큿! 가주님의 충실한 집사에게 수치를 주실 생각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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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지도 못할 거면서 왜 그런 말을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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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티 나는 거짓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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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이해는 되지 않지만, 슬슬 사람들이 보내오는 존경의 눈빛에 익숙해질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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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직 내가 출생의 비밀에 대해서는 감도 못 잡고있는 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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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있던 손님들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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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뵙겠습니다 자하브 대공 각하. 아카데미의 교관 역을 맡고 있는 델빈이라고 합니다. 학생들에게 실습을 허락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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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야 뭘. 듣자하니 아카데미 재학생 중에 내 동생도 있다면서? 이 정도는 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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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아카데미에서 교관들과 함께 학생들을 보내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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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일은 제벨라 선에서 해결되었지만, 아카데미는 제국의 미래. 그런 곳에서 수십의 학생을 믿고 실습 보냈는데 얼굴조차 안 비칠 수는 없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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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비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좀 삐뚜름하게 앉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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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떨어진 곳에서 힐다가 이쯤 되면 일부러 이러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의 시선을 보내왔지만, 애써 무시하며 눈앞의 학생들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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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대부분 10대 중후반. 하지만, 느껴지는 기세는 꽤나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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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 쪽은 정확히 알아보기 어렵지만……기사 지망생들은 대부분 평기사 수준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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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검에 인생 몰빵한 힐다에 비할 바는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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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자하브를 보필하기 위해 온갖 지원을 받으며 비밀병기 비스무리한 것으로 육성 받은 카렌과 비슷한 수준은 몇몇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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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경험이 부족하고, 단장 노릇을 할 특출난 존재가 부재할 뿐이지 어지간한 정예 기사단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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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의 기억이 있는 나로서는 아무리 싸우는 방법을 가르치는 아카데미라지만, 학생을 던전에 밀어넣는다는 것에 약간 거부감이 있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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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은 곳이라면 던전에 들여보내도 걱정할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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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에는 조금 더 자세히 늘어선 학생들을 살펴보았다. 기세를 훑어보는 것이 아니라 얼굴을 살펴볼 요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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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이지만, 전부 모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한 명. 단 한 명만큼은 초면이면서 묘한 친숙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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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빛나는 것처럼 밝은 금발. 피부는 창백하다시피 하얗지만 그것이 유약함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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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다리를 짚고 선 다리, 반항적인 것을 넘어 위압적인 눈빛, 그리고 전신으로 뿜어내는 사나운 기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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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인간의 법도를 모르는 짐승을 아름다운 여인의 형태에 가둬둔 것 같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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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벨라를 닮은 연보랏빛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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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바로 유리아, 제벨라의 동생이자 내 새 여동생(아님)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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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인데 무어라 말부터 꺼내는 게 좋으려나. 그런 내 고민을 덜어주겠다는 듯이 유리아 쪽에서 먼저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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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그럭.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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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여리한 자신의 몸보다도 큼직한 대검이 알현실의 바닥에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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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유리아로부터 오러가 들끓으며, 목소리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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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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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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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판 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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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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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눈을 끔뻑이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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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겁한 교관 중 한 명이 유리아에게 달려가 그녀를 말리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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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아 학생. 아무리 이곳이 본가라도 공적인 자리고, 제국에서 인정한 대공 각하 앞에서 그러한 언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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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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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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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워! 그냥 닥치고 지켜보기나 해! 내가 다른 연놈들한테 시달릴 때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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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놀랍게도 유리아가 휘두른 주먹에 얻어맞고 멀리 튕겨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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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강한 것은 아니다. 다만, 오러의 사용법이 너무나도 정교하다. 이제 막 오러를 익히기 시작한 나로서는 제대로 이해하기도 힘들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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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방금 튕겨 나간 교관은 신참인지 아니면 다른 전형이 있는 건지 다른 교관에 비해 좀 약해 보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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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래도 교관 아닌가. 조금 다르지만 선생 비슷한 사람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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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을 망설임 없이 줘패고는 내게 삿대질을 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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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겁하는 사이. 쓸데없이 쩌렁쩌렁한 유리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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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판 떠서 내가 이기면 언니는 놔주고 나랑 결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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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들으면 내가 제벨라 누님을 억지로 붙들고 있는 줄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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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시치미 떼기는. 제벨라 언니 같은 사람을 너같이 발정 난 짐승이 가만 놔둘 리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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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지 안 믿을지 모르겠는데 일단 아무 일도 없었거든? 그나저나 유리아야. 내가 이기면 어쩌려고 그런 조건을 내거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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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야 간단하지. 내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해줄게. 너한테는 이 정도면 충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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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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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진짜 다른 사람이 들으면 내가 무슨 근친에 미친 사람인 줄 알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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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쩍 주변을 둘러보자,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물론이요 교관들, 심지어는 형식적으로 세워둔 자하브의 기사들마저 웅성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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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당연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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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 교관에게 손찌검을 하고, 너무도 가볍게 근친 야스를 하니마니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상황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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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설픈 망나니질은 갑질의 연장선상이건만, 유리아의 난장은 진짜 앞뒤 가리지 않고 들이받는 것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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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까지 생각이 닿는 순간. 칼립소에서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며 사라진 줄 알았던 내 안의 유교 드래곤이 슬그머니 고개를 치켜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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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넌 궁디팡팡 확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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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비스듬하게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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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냐. 이 오라비랑 한번 놀아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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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던 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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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의 차이는 확연하다. 어디까지 힘 조절을 해야 하나 고민하며 주먹을 말아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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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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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아가 나보다 약하고, 내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강해진 것이 아니라 저쪽에서 격차를 가늠하긴 힘들지만……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닐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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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유리아의 조건 대로라면 이기건 지건, 유리아 본인은 무조건 나랑 순수한(아님) 자하브 만들기 풀코스를 조져야 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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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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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리아의 눈매와 입가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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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카렌을 관찰하며 다져진 눈썰미가 잡아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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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웃음기라도 참는 것처럼 어색하게 틀어진 입가를. 기대된다는 듯이 묘한 열망으로 반짝이는 동공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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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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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동생이 이렇게 미친년일 리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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