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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349 l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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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반응을 보인 건 당연하게도 로젤린이었다.
“난데없이 이게 무슨 무례죠? 귀족이나 되어서, 지금 가련하고 연약한 약자를 힘으로 핍박할 셈인가요?”
난데없이 가련하고 연약한 약자가 된 김율이 기침을 켈록 뱉어냈지만, 딱히 로젤린은 그 말을 철회할 의사가 없었다.
그야.
사실이니까.
로젤린의 눈에, 김율은 글은 잘 쓰지만 가끔은 사서 매를 버는, 기묘하게 맷집이 좋은 햄스터 정도로만 보였던 것이다.
실제로도 완력에 있어서 압도적인 출력 차이가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때론 햄스터도 해바라기씨를 까먹는 것 외에 흉포함을 발휘할 때가 있다.
“그만, 로젤린.”
“어, 어?”
얼굴, 탁자 그리고 바닥을 쓰리 쿠션으로 치고 간 장갑을 주워 들면서.
김율은 싱긋 웃었다.
“과연 제국의 가정교육 수준은 우수하군요. 어머니가 여럿이시라 좋으시겠어요.”
그 격조 높은 극찬에.
“이, 이 천한 것이……!”
레기오스는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온몸을 파들파들 떨었다.
그래도 귀족으로서, 수도경비대의 일원으로서 남아있는 일말의 책무감이 열심히 일해준 덕분에.
곧장 검을 뽑아 들어 김율의 목을 치려다가 성녀의 주먹을 맞고 배에 구멍이 뚫린다는 선택지를 피해낼 수 있었다.
공작의 삼남 자리를 야바위 대신 정정당당한 정자 레이스로 따낸 사내다운 회피 기동이었다고 평할 수 있었다.
그 대신.
“설마, 그런 폭언을 내뱉어 놓고서 결투를 거절하는 천박한 짓을 저지르진 않겠지.”
나지막하게 으르렁거렸다.
여기서.
김율은 또다시 로젤린의 기대를 배신했다.
“까짓거, 한 판 뜨죠. 별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시는데.”
“자, 작가님?”
로젤린의 경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김율은 의자에서 일어나 레기오스와 눈을 마주쳤다.
흑요석이 빛을 발하는 듯 불길한 느낌이 드는 시선이 레기오스의 눈높이보다 더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내리꽂혔다.
순간적으로 기세에 밀린 레기오스가, 자신의 감각이 잘못되었나 마나의 흐름을 읽어보았지만.
김율의 신체 내에는 어떠한 마나의 흔적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허세라는 뜻.
“그래도 용기는 쓸만하군. 그럼, 내일 남부 수도경비대로 출석하도록.”
.
.
.
비웃음을 흘린 레기오스의 뒷모습의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찰싹!
“악!”
“작가님! 지금 제정신인가요! 그러다가 손목이라도 다치면 어쩌려고!”
로젤린의 등짝 스매시가 그대로 김율의 척추에 꽂혔다.
반으로 접힌 김율이 부들대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서.
“거봐! 이런 애교 하나 못 버티면서 무슨 결투를 한다고!”
“그, 성녀님, 애교 두 번이면 제가 네 갈래로 찢겨 죽을 것 같은데요…….”
“어쨌든, 상대가 누군지는 아시는 거죠? 설마 알면서 그러신 거예요?”
로젤린의 질문에, 김율은 접혔던 허리를 펴면서 대답했다.
“잘 알죠. 아버지를 닮아 아랫도리를 가장 잘 놀리며, 50등분의 어머니를 가지신 레기오스 경비대장 나으리 아니십니까.”
“……진짜 아네? 저 남자가 그래도 제국 내에서 손꼽히는 검사인 것도 아시죠?”
“뭐, 지가 강해봤자 드래곤보다 강하기야 하겠습니까.”
“드래곤……?”
아직 누렁이 에스테아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꼴을 직관하지 못했던 로젤린이었기에, 뜬금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김율은 이미 필승 플랜을 계획해 두었다.
“이참에 제가 얼마나 강한 남자인지 증명해 보이죠.”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덧붙였다가 또다시 등짝에 성녀 산 손자국을 하나 더 새겼다.
* * *
다음 날.
남부 수도경비대의 연무장에는 아침부터 유쾌함이 감돌았다.
“아니, 진짭니까? 진짜로 결투를 받아들였다고?”
“흐하하! 그것참, 용기가 가상하다고 해야 하나?”
“남자의 대결에 괴물 성녀를 난입시킬 것도 아니고, 그자는 무슨 목숨이 여러 개랍니까?”
“소설을 많이 쓰다 보니까 자신이 영웅이라도 된 것 같은 착란을 일으킨 게 틀림없을 듯.”
레기오스의 부대는 아카데미에서부터 그와 친분을 쌓아온 귀족 집안의 자제들만 모여 있었기에.
그들이 아카데미를 다닐 시절 실력으로도 한 번도 꺾어보지 못했으며, 가문의 권세로만 따지면 올려다볼 수조차 없는 까마득한 곳에 있는 레기오스가 패배할 것이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그저 세상 유쾌하게 떠들어댈 뿐.
“대장? 살살 하심 안됨까? 솔직히 두 영웅, 재밌는데.”
부대원의 농담 섞인 말에, 하루가 지나 분노가 살짝 가라앉은 레기오스 또한 실실 웃음을 흘렸다.
“너도 손모가지 잘라주랴?”
“…….”
물론 레기오스의 입 밖으로 흘러나온 말은 전혀 유쾌하지 않았으니, 부대원은 곧장 입을 다물었다.
.
.
.
잠시 후.
“도망칠 줄 알았는데, 그래도 오긴 왔군.”
“……저 새끼는, 무슨 여자를 저렇게 끼고 다녀?”
“들릴라.”
“와, 보소?”
“너 그러다 죽는다? 저 성녀님께서 얼마 전에 암살단 열다섯 개를 단신으로 처리했다는 이야기 못 들었냐?”
“…….”
부대원의 수근댐처럼.
김율은 두 명의 여인을 대동한 채 도착했다.
최근 제국 수도에서 목격담이 잦은 괴물 성녀, 로젤린.
그리고.
“헤헤, 재밌겠다!”
마냥 해맑게 꺄르륵 웃는 금발의 소녀까지.
곧이어 그녀들이 임시로 마련된 관중석 쪽으로 또각또각 뚜방뽀짝 발걸음을 옮긴 직후.
두 사내.
김율과 레기오스는 연무장에서 마주 섰다.
“계집들이나 우르르 끼고 오다니, 무슨 소풍이라도 나온 것으로 착각한 건가?”
레기오스가 비아냥거렸지만, 김율의 표정은 평온했다.
김율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 혹시 아십니까?”
“그 간교하고 천박한 혓바닥을 놀릴 셈이라면 그만둬라. 여기서 네놈이 처참하게 패배한다는 결론은 변함없을 테니.”
무슨 구차한 소리를 또 지껄이려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레기오스는 개의치 않고 이죽댔다.
어디서 들은 건 있는지.
검을 상대하기 위해 애써 뭉툭한 쇠몽둥이를 하나 구해오는 졸렬한 모습을 보인 사내였다.
하지만 자신의 검은 그깟 쇠뭉치에 꺾일 정도로 나약하게 갈고 닦은 검이 아니었으니, 아무 소용 없으리라.
그런 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율은 태연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주절댔다.
“전장 속에서도 장수 둘이 눈을 마주치면 주변에 있는 병사들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기토가 벌어지는 법. 당신을 한낱 잡병이라고 마음먹는다면, 어찌 그를 상대라고 여길 수 있겠습니까.”
“준비한 도발이라는 게, 겨우 그 정도인가?”
레기오스는 실소를 흘렸다.
그리고 자세를 고쳐잡았다.
굳이 말장난에 어울려 주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빠르게 끝내고 부대원들과 가볍게 술잔을 한 바퀴 돌린 뒤, 눈여겨보았던 여염집 아낙이나 탐할 생각으로 가득 찬 레기오스가.
“덤벼라, 천한 것.”
검신을 김율에게 늘어트리고, 심판을 맡은 부대원이 북을 크게 한 번 둥, 두들긴 순간.
“──!”
뒤에서 휘몰아치는 거대한 중압감에, 레기오스는 순간적으로 검을 놓칠 뻔했다.
그리고 그제야 위화감을 깨달았다.
처음 연무장에 발을 딛고서, 지금까지.
눈앞의 남자, 김율은 단 한 번도 자신을 바라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등 뒤에 있는 무언가에 계속 시선을 맞추고 있었을 뿐.
무엇인가.
도대체 무엇이 존재한단 말인가.
아니, 그런 것은 이제 관계없다.
나는 저 천한 것을 때려눕히고, 본보기로 손목을 자르고, 그리고 승리의 웃음을 지으면 그만이다.
그러니, 네 상대는 나다.
나를 봐라.
나를 봐!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정작 레기오스마저도 등 뒤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존재감, 그리고 전신을 난자할 것만 같은 살기에 후들거리려는 다리를 가까스로 붙들고 있었다.
이를 악문 레기오스와 달리.
마주 선 남자.
김율의 눈은 여전히 침잠한 심연처럼 무심하게 그의 어깨 너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태연함에 짓눌린 탓일까.
“흐아압!”
원래라면 가볍게 놀아줄 생각이었지만, 레기오스는 자신도 모르게 전력을 다해서 일검을 휘둘렀다.
비록 정신은 살짝 주눅이 든 상태였지만.
기나긴 수련의 세월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깔끔함 그 자체라고 평할 수 있는, 제국에서도 명성을 드날린 검이 아름다운 획을 하나 그어냈으며.
이윽고 그 획은 선명한 죽음이 되어 김율을 향해 엄습했다.
그 순간.
김율의 손에 들려 있던 기묘한 몽둥이는 서서히 움직였다.
그리고.
“──!”
레기오스의 눈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자신이 수년에 걸쳐서 단련해 온 검의 궤적과 비교했을 때도 부족하지 않은, 아니, 오히려 더 완벽에 가까운 듯한 궤적이 그의 손에서 펼쳐졌다.
힘을 숨긴 것인가.
아니다, 어찌 마나도 없이 저런 움직임을 낼 수 있단 말인가.
경악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김율이 휘두른 몽둥이는.
쩌저적──!
그가 빚어낸 검격을 말 그대로 집어삼켰다.
그리고도 아무런 힘을 잃지 않은 채, 그가 오래도록 잘 관리해 오던 명검 프람베르그를──
꾸찢──!
“아──”
말 그대로 접어버렸다.
접어버리다 못해, 두 번 다시 이어질 수 없게끔 완전히 끊어버렸다.
그러고도 힘이 남아있는 몽둥이가.
점차, 천천히.
아니, 천천히가 아니라 빠른 속도였지만, 적어도 레기오스가 감각하기로는 너무나도 느리고도 선명하게도.
“컥──!”
레기오스의 허리를 접어버렸다.
몸이 공중에 붕 뜨는 느낌과 함께, 시야가 순간적으로 명멸하더니 흐릿해졌다.
“레기───! ──!”
“──대장이──!”
“───, ───날았───!”
파편화된 소리의 조각이 흐릿하게 그의 고막에 닿았다.
그러나 레기오스는 그 소리를 곱씹을 틈도 없이.
자신을 날려 보낸 사내.
여전히 외양은 유약해 보이는 흑발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공중에 뜨고서야, 레기오스는 어렴풋이 그 형체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건 분명.
금발의 자그마한 소녀──
거기까지 닿았을 때.
레기오스의 기억과 의식이 암전했다.
* * *
방금 어퍼스윙으로 레기오스를 하늘로 퍼 올려 홈런을 쳐버린 사내.
김율은 시원하게 뒤로 빠던을 갈겼다.
이대호 사인 에디션 알루미늄 배트가 호쾌하게 나뒹굴면서 자아내는 소음과 함께.
그는 소리쳤다.
“적장! 물리쳤다!”
정말,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대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