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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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써보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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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가 쓰고 있던 건 글이 아니라 활자 무더기라도 된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건 아니고, 무슨 글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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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뜻도 맞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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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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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율이 분노의 체어샷을 맞고 허리가 살짝 꺾였다는 사소한 이슈가 있긴 했지만, 어쨌든 김율의 제안으로부터 출발한 히스토리에 데뷔 작전은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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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수도의 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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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까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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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정치 혹은 전쟁을 중심 소재로 하는 소설들을 향유하는 독자들과 예비 문인들, 그리고 정체를 숨긴 문인이 모인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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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같은 소재라도 작가가 달라지면 맛이 완전히 달라지는군. 아니면 굳이 연재 소설의 형식을 지키려 들지 않아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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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에서 다루지 않은 이야기를 제대로 조망했으니, 그 나름 별미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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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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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율과 히스토리에가 마주 앉은 채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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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나보고 웃음소리가 이상하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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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숙하고 단아하게 미소 짓고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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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요즘 정수기 물맛이 좀 이상하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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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수기가 갑자기 왜 나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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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만이 제대로 향유할 수 있는 실생활 속의 언어유희에 순간적으로 사고 모듈이 고장이 난 히스토리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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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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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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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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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정말 입만 다물면……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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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등을 찰지게 후리는 소리와 더불어서 한숨이 테이블 위를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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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만담도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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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두 남녀는 귀를 쫑긋 세우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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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작에서 보여준 행보와 비교했을 때는, 조금 여포가 지나치게 미화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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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그런 목적으로 집필된 외전이 아니겠소? 공식 작가가 쓴 것이 아니니 그를 너무 완벽하게 맹신할 필요도 없을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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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동탁을 죽였을 때의 자세한 정황은 꽤 멋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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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여자에 홀린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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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실례에요! 낭만이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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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스토리 자체는 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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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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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 시대 최강의 AI답게, 온갖 종류의 삼국지 매체를 잘 비비고 흔들고 섞어서 완벽한 각색을 마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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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 및 연의에서 욕먹었던 여포의 행동들에 일일이 당위성과 개연성을 부여해 주는 작업을 거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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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무신이라는 표현에 걸맞은 사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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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스토리적 완성도 및 캐릭터의 매력을 살려냈다는 점에서, 히스토리에의 외전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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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흫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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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터져 나온 푼수 같은 웃음을 보고 김율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깐족대지 않고 넘어간 김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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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깐프의 귀를 잡고 흔들어서 지면을 할애받고, 그 천금과 같은 기회를 히스토리에에게 양보해 준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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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점점 그냥 쉼 청년으로 암흑 진화를 거듭하려고 하는 히스토리에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기 위한 목적도 있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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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가 정말 글 쓰다가 죽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위기의식에 봉착한 나머지, 장기적으로는 공동 작가 타이틀을 내걸고서 업무량을 줄여보겠다는 계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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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대학원생을 활용한 이세계 상숑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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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피조물을 아끼는 창조주가 또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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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시는 이유는 뭡니까, 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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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요즘 칭찬이 고프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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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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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다른 의도가 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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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 만능주의적 전개를 휘두를 때마다 조조의 주가가 바닥을 치고, 나아가 작가에 대한 비판의 수위가 거세졌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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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라는 캐릭터로 소위 ‘자캐딸’을 치는 것 아니냐는 공격적인 언사가 최근 김율의 가슴 한복판을 관통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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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해 보이는 악역에게 고전한다면 그야말로 소설의 하차 포인트가 따로 없겠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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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과 낭만으로 무장한, 유능해 보이는 악역에게 고전한다면 그 또한 극복을 위한 멋진 빌드업 단계로 비칠 수도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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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모든 동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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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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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례적으로 김율이 평범하게 웃으면서 질문을 던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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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받는다는 것은, 이렇게 좋은 기분인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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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집에서 잘 나가지 않았던 히스토리에였지만, 오늘만큼은 ‘성취감’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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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입가에도 환한 미소가 달처럼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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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율, 그리고 히스토리에의 합작으로 인해 소설은 문제 없이 순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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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달이 차면 언젠간 기우는 법이고, 꽃이 피면 언젠간 지는 법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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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첨단 AI를 활용한 세탁기를 잘 돌린다고 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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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를 셋 갈아탄 버릇을 채 고치지 못한 여포를 억제하기에는 세상은 너무 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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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여포를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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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여포가 생각보다 허망하게 패배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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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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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에엑! 유비! 유비야! 그놈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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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제정신인가? 옆에서 배신으로 무슨 난리가 났는지 알면서도 여포를 받아들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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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잘 선 무기니까 버리긴 아깝긴 하지만, 유비가 어떻게 인덕으로 여포를 감화시키는 지도 꽤 주목할 만한 부분이 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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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화 따윈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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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럴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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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배신하는 거냐! 여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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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실리적이고 현실적인 전략가라지만, 그렇다고 후의를 베풀어 준 유비까지 배신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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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중간에 원문사극과 같은 세탁기가 돌아가는 에피소드도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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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여포가 받아준 유비를 통수치고 서주를 홀라당 날로 처먹은 천하의 후레자식이라는 여론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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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우상향할 줄만 알았던 유비 코인이 와장창 무너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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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이! 김유우울! 하이엘프는 결코 저런 배신자들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와요에에에에에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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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에의 발악 또한, 김율 비전 깐프 귀 잡아당기기 신공에 진압당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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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군웅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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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의 흔한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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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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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만 남은 황제라고 해도, 그를 손에 쥐는 것만으로도 능히 천하에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을 가질 수 있다,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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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있던 신문을 덮으며, 황제는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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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귀족들보다 평민들이 나를 더 좋아하는 것 같군. 그렇지 않소,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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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가 숨겨져 있는 것 같은 그 말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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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는 하나, 그래도 귀족들의 충성심은 당연히 평민보다 더 강렬할 것입니다.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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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말 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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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투스 공작은 태연하게 그 말을 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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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둘은 전장에서 한솥밥을 같이 먹었던 전우였기에, 이미 서로는 서로의 속내를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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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도 그 충성심이 살아있는 권력에게 향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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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고 있으니,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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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방향이란 해석하기에 따라 너무 주관적인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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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이들은 모두 흐름을 다 이해하고 있으니, 결국 마지막에 도달할 곳은 같을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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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적인 표현으로 치장되어 있었지만, 이야기의 본질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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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깔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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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데? 이게 맞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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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맞고 싶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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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그런 거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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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공작이 역심을 안 숨김’ 메타의 당당함에, 황제는 살짝 주먹을 말아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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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공작의 얼굴을 한 대 냅다 후려쳐야 속이 풀릴 것 같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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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대로 휘둘러도 되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제국은 넓어졌으나 오히려 황제의 힘은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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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황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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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등장한 ‘헌제’라는 황제의 모습과 상황에 공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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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보다는 상황이 조금 더 나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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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날을 세우지 않고 한 수 접고 들어갔다면, 아마 헌제나 자신이나 동일하게 권력을 상징하는 장식품이 되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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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대화를 통해 황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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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에 내전이 임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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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베르투스 공작의 죽빵을 돌린다면, 아마도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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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몇 달 정도의 유예가 주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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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장식품으로 전락한다면 승냥이 같은 주변 국가들을 견제하면서도 국체를 보존할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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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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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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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청하신 조사 기록입니다,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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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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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비서장을 시켜 수집한 한 인물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받아서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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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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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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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국의 성녀가 베르투스 공작의 음모를 귀띔하여 준 이후, 도대체 그녀는 어떻게 그런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나 하여 뒷조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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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이내 의문의 연결고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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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까지도 자신이 읽고 있었던 소설, ‘두 영웅’을 집필한 작가, 율리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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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파고들자, 작가 율리시스가 베르투스 공작의 초청을 받아 성국의 성녀를 대동한 채 단독으로 베르투스 공작과 식사 자리를 가졌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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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베르투스 공작을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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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 평민 따위에게 그러한 관심을 줄 정도로 자비로운 인물이 아님을 몹시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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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의 조사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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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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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쪽 광장에서 위스페라우드 공작가의 장녀, 클로에 폰 위스페라우드의 귀를 잡고 질질 끌고 다닌 모습이 관찰됨. 친우 이상의 친밀한 모습이었다고 증언이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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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확히 규명되지는 않았으나, 폭룡 에스테아의 인간화 모습으로 문헌에 남아있는 소녀를 목말 태운 채 거리를 돌아다닌 모습이 관찰됨. 파닥이는 꼬리를 보았다는 증언이 있으나, 진위는 확실치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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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국의 괴물 성녀 로젤린과 종종 밀회를 가지는 것으로 보아, 불순한 관계를 맺고 있을 것이라는 첩보 결과가 보고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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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마족의 전통 복색을 한 신원 미상의 붉은 머리 여인과 동행하는 모습이 종종 관찰됨. 관계는 불명이나,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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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엘프, 성녀, 그리고 마족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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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 개인이 엮일 수 있는 단어들의 조합이 맞나, 하고 황제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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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보고서에 적힌 내용이 바뀌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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