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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 카이사르가 던진 주사위의 눈금은 4였다.
클로에와 내기를 했을 때, 소길 정도의 운이 따라준다는 뜻.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말라는 타짜계의 이론에 의하면, 소길 정도로는 확실하다고는 볼 수 없었으나.
김율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을 그저 맹신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바탕으로 운명을 개척할 줄 아는 사내였다.
애초에 내기에서 진들, 딱히 상관 없었다.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조조 파트와 달리, 유비 파트는 애초에 연의에서도 조금 개변이 많이 발생한 상태였으니까.
소드 마스터 유비.
알고 보면 똑똑한 지능캐인 장비.
서주제일미 미 부인.
그야말로 작가 편의주의적 설정을 다 때려박았던 것.
하물며 원문사극 고사 자체는 정사에도 있는 이야기니, 150보가 300보로 늘어난들 무슨 관계가 있으랴.
그리고.
모사재인 성사재천이라.
일을 꾀하는 것은 사람이로되,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의 뜻이니.
“뭐어? 내기? 재밌겠다! 누구랑? 어디서? 왜?”
결전 당일.
아침부터 누르랑거리며 동네를 뽈뽈 싸돌아다니던 에스테아와 만난 것 또한 하늘의 뜻이었다.
거의 일러바치듯 자초지종을 떠들어댄 김율이었으며, 이야기를 들을수록 에스테아 또한 그의 감정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살짝 결은 달랐다.
“감히! 내 노예를 쥐고 흔드려고 해!”
“노예 아닙니다만……. 그리고 꼬리 튀어나왔습니다.”
꼬리가 파닥이는 소리에 김율의 소심한 첨언이 묻히는 일은 있었지만, 어쨌든 에스테아는 공정해야 할 내기에서 편파 판정을 내릴 마음이 한가득해졌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김율의 입꼬리에 ‘계획대로’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듯한 흉참한 미소가 잠깐 감돌았다.
.
.
.
물론 에스테아는 위대하고 고귀하고 공정한 드래곤.
비록 살짝, 아주 살짝 독점욕이 강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소한 갈등에 그녀의 힘을 남용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이미 김율과 히스토리에가 쌍으로 묶여서 레어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글쓰는 기계로 전락하고 말았으리라.
하지만.
순수 실력으로 따잇당한 2번째 화살까지는 다르게.
클로에의 3번째 화살이 발사되기 직전에, 에스테아는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활대에, 활시위에, 화살에.
바람의 정령의 가호가 깃들고 있었다.
아무리 저 귀잽이가 연약해보일지라도, 정령의 가호가 깃들면 화살은 충분히 저기 꽂힌 창날을 맞히고도 남으리라.
이미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채 김율의 멱살을 쥐고 흔들어서 최신 비축본까지 싹 다 읽었던 에스테아였기에, 이는 부당하게 느껴졌다.
여포는 순수하게 자신의 궁술만으로 이루어낸 업적인데!
어디서 감히 정령의 힘을 써!
순간적으로 그녀의 머리에 뿔이 자라났다가 다시 자취를 감춤과 동시에.
일대에서 정령의 영압이 완전히 사라졌다.
눈금이 4가 나온 것 치고는 생각보다 시시한 승부였다.
그리고 내 환상 또한 와장창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원래 엘프라고 하면 보통 클리셰적으로 활을 잘 다루는 컨셉이 아니던가.
그래서 사실 주사위 눈이 애매하게 나오면 최대한 조건을 말랑하고 간단하게 바꿔버려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생각이었다.
근데 저렇게 허접할 줄이야…….
뭐, 나야 좋아.
“내기, 패배하셨군요?”
티배깅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여기서 너무 자극을 주면 오히려 반발 심리가 튀어나올 수 있다.
영락없는 허접 영애 깐프였지만, 그래도 나름 공작가 출신 아니던가.
작위도 근본도 자산도 없는 평민 출신인 내가 너무 깝쭉거리면 오히려 역풍이 불 수 있다.
원래 살아있는 권력은 조심스럽게 대해야 하는 법.
그러니.
“제 조건은 간단합니다. 여기 준비한 서류에 사인을 해주시면 됩니다.”
미리 준비한 플랜 A를 담은 서류를 내밀었다.
클로에는 힘없이 서류를 받아들어 읽다가.
“와, 왓 더 엘프……! 이게 무슨 극악무도한!”
경악과 더불어서, 이글이글 불타는 눈빛을 내게 던졌다.
“이건 노예 계약인 것이와요……! 말도 안되는 것이와요……!”
“흠.”
패자가…… 말대꾸?
……라고 속삭여주고 싶지만, 아무래도 신체 포기 각서 겸 종신 노예 각서는 당연히 받아들이기 힘들겠지.
하지만.
원래 협상은 이렇게 하는 거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충격적인 요구를 먼저 제시한 후, 그 다음에 그나마 합리적인 제안을 던지는 것.
“흠, 그러면 이건 어떠십니까.”
바들바들 오고곡하는 클로에의 손에 들린 종이를 낚아채서, 또 준비해두었던 플랜 B를 내밀었다.
과연 통할 것인가.
“으으음…… 이 정도라면……? 그, 그래도, 본녀의 위엄이, 으음…….”
“싫으시면 첫번째 안으로 갈까요?”
“그건 싫은 데스와!”
통했네.
데스와는 근데 뭐냐.
이 세계, 아무리 봐도 살짝 맛탱이가 가 있다.
드래곤은 라틴어로 주문을 외우질 않나.
암살자나 엘프는 어설픈 한본어를 쓰질 않나.
심지어 한자들은 마족들의 문자 취급 받고 있었다.
……원래도 대마왕 핑핑이가 지배하는 대륙에서 쓰는 문자였으니, 그건 맞을지도?
어쨌든.
두 번째 요구안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쥐흔하지 말 것.
내 창작 활동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
작품의 프로모션을 적극적으로 제공할 것.
내가 창작 활동을 함에 있어서 필요한 편의를 항상 제공할 것.
여전히 독소조항 천지였지만.
플랜 A였던 ‘몸과 마음, 재산 등 모든 것을 김율에게 귀속할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그, 그래도, 으음, 이것도 너무 많은 것들을 요구하는 것이와요……? 이런 한 번의 내기만으로 이 모든 것을 보장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사와요……?”
아직까지 자존심이 남아 있군.
나는 미리 준비한 비수를 클로에의 가슴에 꽂았다.
“어쩔 수 없죠. 그러면 저는 제국일보에 쪼르르 달려가서 위스페라우드 공작가의 영애가 활을 더럽게 못 쓴다더라, 하는 제보를 한 후에 겸사겸사 차기작 계약까지 하고 오겠습니다.”
“히익……! 그 무슨 극악무도한……!”
물론 제국일보로 환승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업계 1위의 드높은 위상을 자랑하고 있었으며, 진리일보와는 체급 자체가 굉장히 차이 나긴 하지만.
그쪽 스폰서는 무려 황제다.
이런 바보 깐프와 달리, 내가 어떻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도 아닐뿐더러.
지난 번 스카웃 제안을 받았을 때의 조건 또한 처참했다.
- 제국일보는 창작자가 인도한 완전 원고가 완전성이 떨어진다고 객관적으로 판단되는 경우, 원고를 인도받은 날부터 14일 이내에 창작자에게 수정을 요구할 수 있으며 창작자는 이를 수정·보완한 후 제국일보에게 다시 인도해야 한다.
쉽게 요약하면, ‘네 원고 마음에 안 들면 무한대로 수정시킬 거임.’이라는 의미가 담긴 조항과.
- 창작자의 저작물이 제국일보에 출간된 이후로 6개월 이내에 선인세 총액의 80%에 해당하는 금액이 공제되지 않았을 경우, 창작자는 제국일보로부터 지급받은 선인세에서 저작물의 출간일부터 6개월 이내에 발생한 저작권 사용료를 공제한 나머지 금액을 즉시 제국일보에게 배상하기로 한다.
‘미리 돈 줄 건데, 미리 준 돈보다 작품으로 수익이 안나오면 다시 뱉어내야 함’이라는 조항.
현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출판사가 작가를 등처먹는 독소조항들이 깔려 있었다.
이딴 게 업계 1위……?
“후우…… 좋사와요. 본녀는 승부에 깔끔하게 승복할 줄 아는 엘프인 것이와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하지만 이걸로 본녀가 패배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와요! 언제고 다시금 그 콧대를 꺾고, 그 계약서도 무효 처리한 후 본녀의 발밑에서 앙앙대게 만들어주겠다는 것이와요……!”
깐프는 죽음의 메아리를 터트린 후, 황급히 호다닥 사라졌다.
어쨌든.
승리!
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구경꾼들을 향해 돌아섰다.
“저 엘프도 꽤 정신 상태가 이상하지만, 김율은 확실히 귀축적인 면모가 있군요. 에스쟝도 조심하도록 해요.”
“응! 역시 인간은 재미있어!”
뭐.
왜.
일주일 후.
비록 성격은 지랄맞은 개허접 깐프였을지언정, 클로에는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는 1티어 엘프였다.
또다시 편성된 ‘두 영웅’ 시리즈의 특집이 진리일보의 1면을 가득 메웠을 뿐만 아니라.
“오늘 진리일보를 구매하시면 한정판 부록 잡지까지 증정! 여포 외전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주인공이 아니다보니 다소 작품 속에서는 아쉬운 분량으로 실릴 수밖에 없었던 여포 관점의 서술이 담긴 외전까지 동시에 출간되었다.
사소한 차이가 있다면.
‘두 영웅: 여포전’의 작가는 김율이 아니라.
“히스토리에. 넌 확실히 강해졌다. 나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은 아니긴 하지만.”
“덕담을 할 거면 조금 더 부드럽게 해주시면 안됩니까?”
“그러면 또 우리 깡통이 기고만장해져서 ‘인간 문학의 끝이 도래했다’하고 케히힛거릴 거잖아.”
“저는 케히힛과 같은 경박한 웃음을 흘리진 않습니다만.”
진정 처음으로 자신의 글로써 판타지 랜드에 출사표를 던지고자 하는 깡통 작가였다.
김율 가라사대.
패러디를 한 편이라도 써봐야지 작가로서의 영근이 무럭무럭 자란다고 하였다.
심지어 김율은 히스토리에를 이해시키기 위해 여러 사례를 들어서 설득했다.
'동■ 프로젝트' 패러디로부터 출발해 회귀, 빙의, 환생이라는 클리셰를 모두 활용하여 명작을 탄생시킨 작가도.
'내 청■ 코미디' 주인공과 작가물을 결합한 원형으로부터, 연애 파트 빼고 완벽한 작가물을 탄생시킨 작가도.
'해리 ■터 시리즈'에 TS를 묻혀서 말포이로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을 극대화시킨 작품을 완성시킨 작가도 있었다.
그 모든 패러디로부터 출발한 대작가의 사례를 습득하고서 메가 기가 테라 진화를 넘어서 암흑 진화까지 해버린 희대의 망생이.
히스토리에, 필명 ‘히토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