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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py1014 f66fe445bf Initial commit: Novel Agent set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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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349 l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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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전.
“조식의…… 칠보재?”
“일곱 걸음 안에 하이쿠를 읊으면 살아남는, 뭐 그런 겁니까? 별 스킬이 다 있군요.”
00시 정각을 찍은 직후, 살짝 어이가 없어진 바람에 히스토리에와 한참 만담을 나눴다.
그리고 당연히.
“진짜? 진짜 때립니다?”
“그럼.”
직접 실험도 해봤다.
“음……. 근데, 흠, 김율은 가끔 얄밉긴 한데 굳이 감정을 실어서 때리고 싶은 기분은 안 든단 말이죠. 감정 모듈이 고장 난 기분입니다.”
“네 글 구림.”
“용서 못 해!”
진심 어린 히스토리에의 불꽃 싸대기가 AI 특유의 정확성을 가지고 내 뺨에 쇄도했지만.
타박.
“엇, 어엇──”
분명히 나를 향해 올곧게 다가오고 있었고, 난 그저 앞으로 가볍게 한 걸음을 내디뎠을 뿐이었는데.
허공을 붕 가르더니, 그대로 내 몸에 몸통 박치기를 시전했다.
한 걸음 더 걸으면 그것도 피할 수 있나 싶었지만, 차마 인간의 측은지심이란 깡통의 것과 결이 다른지라.
“……고맙습니다.”
“조금 동작을 덜 격하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예.”
생애 처음으로 느껴보는 푹신말랑한 감촉과 더불어서 첫 번째 실험이 허망하게 막을 내렸었다.
그 뒤로도.
“지루하고 현학적인 활자 조합물.”
“네 글을 읽을 바에 군대 다시 입대함.”
“교수님이 써도 이것보단 재밌을 듯.”
영혼을 깎아내리는 폭언과, 진심으로 몰아치는 히스토리에의 맹공을 받아낸 결과.
위기감을 느끼고 밟는 일곱 번의 스탭 동안, 나는 나에게 가해지는 물리적 피해를 대상으로 완전 회피를 할 수 있음을 체득했다.
“……괜찮습니까?”
“괜찮아 보여?”
“아뇨.”
알고 싶지 않은 정보였지만, 쿨타임도 있었다.
대충 한 30분.
뺨에 손자국이 선명하게 아로새겨지면서 체득한 결과였다.
.
.
.
그리고 지금.
단검을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내디딘 한 걸음이 내 목숨을 구했다.
사람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두뇌가 빠르게 회전한다고 하던가, 아니면 헥토르의 가호가 내 사고를 침착하게 유지하게 해주는 것일까.
선명한 죽음이 나를 방금 스쳐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누가 봐도 암살자 같은 복장.
시대에 뒤떨어지는 얼간이 같은 표현.
그리고 명백한 적의.
“호오.”
두 번째 공격, 두 번째 발걸음.
액션 영화에서 볼법한 과장된 움직임과는 달리, 몹시 훈련받은 듯한 절도 있는 움직임이었다.
아마도, 상대는 무수히 많은 사람을 죽여본 암살의 프로일 것이다.
세 걸음, 네 걸음.
괜한 조바심 탓에 조금 더 걸어보고.
찰나를 모두 흘려보낸 다섯 걸음째에서야.
“흐아앗!”
수련용 나무 몽둥이를 휘둘러 암살자의 손목을 노렸다.
내가 생각해도 수학적으로 아주 완벽한 궤도였으며, 내 몸에 남아있는 헤라클레스의 영압 또한 미소 지으면서 엄지를 척 세울만한 일격이었다.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제법이로군요.”
순간적으로 단검의 날에 하얀빛이 휘감기면서 늘어나더니, 내 몽둥이를 두부처럼 싹둑 썰어버렸다는 정도였다.
음.
저것이 바로 절정 고수만 뿜어낼 수 있다던 검기인가.
몽둥이와 더불어서 내 몸이 김/율으로 변해버리기 전에, 나는 한 발짝을 더 내디뎠다.
“흐아아! 누렁아!”
그리고 동시에 목걸이로 만들어서 매달고 있었던 누렁이의 비늘을 쥐고서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그 순간.
“으갹?!”
“컥──”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누렁이가 떨어져서 암살자를 짓뭉갬과 동시에.
내 일곱 번째 걸음이 땅에 닿았다.
그리고.
“뭐야아아! 헤라클레스으으!”
누렁이의 비명이 거리에 울렸다.
* * *
“오늘의 맘마는──!”
제국 수도, 신문을 가장 빠르게 구할 수 있는 기차역 근처의 어느 주택에서.
에스테아는 침대에 뒹굴면서 그녀의 유일한 취미, 소설 감상을 즐기기 위한 예열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신문 연재 소설이 아닌, 오래간만에 맛보는 양장본의 감촉을 만끽하던 중이었다.
율리시스의 멱살을 잡고 흔들길 벌써 몇 주.
- 후…… 이거라도 보십시오.
역시 작가는 쥐고 흔들면 뭐라도 나온다고, 자신의 적극적인 구애에 버티다 못해 그가 다른 곳에 살 때 출판했다는 소설을 주었던 것이다!
하필 누렁이 대응반 히스토리에가 자리를 비운 바람에, 김율이 아껴뒀던 비축용 누렁이 사료를 다 털려버린 비극이긴 했지만.
뭐, 에스테아 본인에게는 희극이었다.
사료다! 맘마다!
“웅히히.”
사실 제목은 별로 끌리진 않았다.
올림포스 이야기라니.
무슨 내용인지 가늠이 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원래 제목이 괴식이라도 작가가 조리했던 다른 요리가 미식이라면, 내용물은 미식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래도 부제목 중 가장 맛있어 보이는 것, ‘헤라클레스 영웅담’을 아주 옴팡지게 맛있게 옹냥냥 먹기 시작한 에스테아였다.
그리고 이내.
팔랑팔랑…….
살랑살랑…….
팡팡!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 꼬리가 흔들리는 소리, 나아가 만족스러운 대목에 도달할 때마다 꼬리가 이불을 두들기는 소리가 조용한 방을 울렸다.
헤라클레스! 좋아!
헤라클레스! 멋있어!
누렁이식 독서법으로 순식간에 와구와구 퍼먹으면서 에스테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피워올렸다.
“식인 말이라니……! 아주 무서운 상상력이야!”
순간적으로 용을 잡아먹는 괴물 말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갑작스럽게.
“어엇?”
에스테아는 그녀의 몸이 공간을 베어내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현상에 당황한 에스테아.
그도 그럴 것이.
자기 비늘을 누군가에게 선물해 본 것이 기나긴 용생에서 최초였으며, 이렇게 빨리 김율이 그 기회를 쓰리라 생각하지도 못했기 때문.
다음 순간.
에스테아는 이불을 돌돌 말고 있는 상태 그대로 허공에 소환되었다.
그리고.
“으갹?!”
바보 같은 비명을 지르며, 소환된 위치 바로 아래에 있던 사람을 무자비하게 깔아뭉개고야 말았다.
그리고.
“뭐야아아! 헤라클레스으으!”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격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폭력 소설의 주인공처럼 난폭하게 변해버리고 만 에스테아가 포효했지만, 그다음 순간.
“크으읏, 이건 또……! 아이사츠는 생략하겠습니다!”
갑자기 자신의 밑에 깔렸던 사내가 뒤로 몸을 빼더니, 달려들며 에스테아에게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려고 했다.
“뭐야, 넌?”
“……!”
에스테아의 눈과 마주치자마자 몸이 돌처럼 굳어버리기 전까지는, 그러려고 했었다.
“으음.”
꼬리를 휘둘러 건방진 사내의 뺨을 툭, 툭 치면서.
에스테아는 드래곤다운 지성과 통찰력을 발휘했다.
상황을 보아했을 때.
이 사내가 율리시스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했고, 그래서 율리시스가 비늘의 힘을 빌려 자신을 불러낸 것이리라.
고작 인간 하나 때문에.
고작 하잘것없는 인간 하나 때문에.
“소설은 이어서 봐야 재밌는 데에에에──!”
“컥──”
사내, 클라펜의 강냉이가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았다.
.
.
.
“그러게, 작가라면 집에서 얌전히 글을 써야지, 왜 밖에 나왔어어!”
의식을 잃은 채 혼절한 클라펜을 의자 대용으로 깔아뭉갠 에스테아가, 꼬리를 연신 바닥에 내리치며 일갈했다.
드래곤의 분노를 정면에서 받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산책 좀 나올 수도 있죠.”
김율은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고 에스테아가 분노 게이지를 조금 더 끌어 올리려는 순간.
“으윽. 갑자기 심리적 스트레스로 내일 휴재할 것 같은──”
“그건 안돼애애!”
에스테아의 분노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그 직후, 누렁이처럼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김율에게 날아가 매달렸다.
“율리시스, 휴재는 죄악이야. 그런 건 존재해서는 안 돼. 으응? 그러니까, 으응?”
이미 하찮은 인간에게 자신이 매달리고 있다는 의식 따위는 완전히 망각해 버린 에스테아였다.
김율은 그 빈틈의 실을 놓치지 않았다.
“으음, 그러면, 부탁 두 개만 들어주면 내일 연참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여, 연참!”
꼬리의 살랑거림이 세 배로 빨라졌다.
누렁이를 위한 완벽한 유혹.
그간 히스토리에가 어화둥둥 에스테아를 업고 다니면서 맘마를 주는 모습을 꾸준히 관찰해 왔던 김율만이 휘두를 수 있었던 미끼였다.
“끄으으…….”
앞니가 없어진 채 신음을 흘리며 꿈틀거리고 있는 암살자 클라펜을 내려다보며.
“혹시, 위대하신 드래곤께서는 사람의 정신 또한 지배 가능하신지요.”
김율은 일부러 극존칭을 덧붙여서 설득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에헴! 당연하지!”
효과는 굉장했다!
“그러면, 얘 좀 털어서 혹시 누가 저 죽이라고 시켰는지 확인할 수 있을지.”
“그쯤이야!”
에스테아가 엣헴, 하면서 벌떡 일어나며 순식간에 꼬리로 클라펜을 휘감았다.
힘 없이 흐느적거리는 클라펜을 순식간에 눈앞으로 가져온 에스테아가, 그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Solam veritatem dicere debes──”
명랑했던 에스테아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짐과 동시에, 영혼을 뒤흔드는 듯한 주문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김율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리고.
의식을 반쯤 잃은 클라펜의 입이 열리며 소리를 빚어냈다.
“베르뚜뜨…… 공장니미…… 디디하뎠…….”
강냉이가 날아간 충격으로 영 어눌한 발음이었지만, 김율은 그 말을 정확히 알아들었다.
“베르투스 공작, 이라.”
김율은 낮은 목소리로 그 이름을 뇌까렸다.
“엣헴! 이 위대하신 드래곤님께서 처리해 줄까?”
에스테아가 가슴을 쭈우욱 펴며 금방이라도 입에서 브레스를 뿜을 것처럼 갸르릉거렸지만.
김율은 조용히 고개를 내저었다.
“복수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게 아닙니다. 제가 직접 엿을 먹여야 진정한 복수죠.”
김율의 눈빛이, 마치 박사 논문을 반려한 지도교수를 상상하는 것처럼 음험하고도 흉악하게 번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