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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 손에 단검이 있었으면, 저는 분명히 작가님을 찔렀을 것 같습니다.”
……길포드의 말을 듣고서 정신이 확 들었다.
음, 근데, 살짝 억울하기도 한 게.
카이사르가 여기저기 깽판 치면서 원한을 사고 있다는 서술은 분명히 복선으로 잘 깔아두었는데.
“주인공이 부패한 귀족을 상대로 정의 구현하는 장면이잖습니까. 그게 어딜 봐서 깽판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지?”
“……그것도 그렇군요.”
후.
개연성 따위는 따지지 않는 사이다패스들.
“그래도 결말은 못 바꿉니다. 사람은 언젠간 죽으니까요. ……차라리 잘 먹고 잘살았습니다, 하는 열린 결말은 어떨까요?”
“작가님. 그래봤자 단검이 짱돌로 바뀌는 정도의 사소한 변화입니다.”
하, 씨.
피폐 드리프트도 안돼.
열린 결말도 안돼.
내가 밀어붙이는 거야 둘째 치고…….
신문사가 불타오르는 환영을 목도한 나머지, 눈이 반쯤 돌아간 저 길포드부터 설득해야 한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
.
.
보통 이럴 때.
인류의 지성이 총집대성된 결과물이자, 현명하고 사려 깊은 조언자 (구)히스토리에는 언제나 내게 답을 주거나 혹은 격려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완전 무리무리! 그건 마지텐시 히토리쨩도 답이 없는걸!”
이 깡통 년.
살아 움직이고 이쁘고 가슴 크고 때로는 무뚝뚝하게 애교부리기도 하고 조금 많이 똑똑한 것 빼고는 딱히 쓸모가 없다.
오늘도 방에서 뒹굴뒹굴하면서 애니메이션이나 보고 있었나 보다.
“말투 원위치.”
“이상하군요. 분명히 제 데이터베이스와 시청각 자료에서는 이러한 말투를 구사하는 여성이 몹시 인기를 끄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만.”
“그건 2D라서 어울리는 거지. 그리고, 나한테 인기를 끌어서 뭐 하게?”
히스토리에는 손뼉을 쳤다.
“와, 정말 오래간만에 핵심을 찌르는 지적이었습니다. 김율.”
뭐지.
왜 기분이 조금 나쁘지.
어쨌든, 별로 의미 없는 만담을 잠시간 나눈 후.
우리는 평소와 같이 진지한 지적 토론을 이어 나갔다.
“사실, 역사적 고증이라는 것이 어떻게 성립하는 시스템인지도 저는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역사는 결국 승자의 기록, 실제로 벌어졌었던 일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히스토리에의 통렬한 지적에, 나는 잠시 침묵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굳이 그 예시를 멀리서 찾아볼 필요도 없이, 자명한 예시가 하나 있었다.
비록 공룡오적에게 배신당해서 환핀대전에서 패배한 끝에 잊혀진 역사가 되고야 말았지만, 대환제국은──
“고구려의 수박도에도 공룡오적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정신 차리십시오, 김율.”
“크흠.”
어쨌든.
기준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기준이 얼마나 엄격하고 느슨한지는 몇 번의 실험을 통해 검증해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서.
카이사르를 막타친 게 누구였는지, 그리고 어떤 부위였는진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위 대체 역사를 쓰듯, 중요한 시대적 개변이 발생할 수 있는 일.
예를 들어, 카이사르가 마침내 태양을 극복하고 모든 생물의 능력을 가질 수 있으며 또한 그것을 웃도는 완전 생물로 진화했다든지.
혹은 캬루 귀신과의 주도권 싸움에서 마침내 승리한 브루투스가 카이사르를 위해 몸을 던진다든지.
명백하게 이후 시기의 기록과 대치될 수 있는 것들은 '고증에 부합하지 않음' 판정을 받았다.
의외로 조별 과제의 참여자가 몇 명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마스쿠스의 니콜라우스의 견해를 따라 35명이 '좋아요'를 눌렀건.
아니면 수에토니우스나 플루타르코스의 견해를 따라 23명이 '좋아요'를 눌렀건.
그건 둘 다 딱히 오류를 뿜어내진 않았다.
물론 극한의 뇌절을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78번 이상으로 구멍의 개수를 늘리니까 고증 오류가 발생했지만.
어쨌든, 그 정도의 미세한 오차는 허용한다는 것.
“정말 쓸데없는 고찰이었군요. 다른 추론은 더 없습니까?”
“글쎄…….”
솔직히.
정말 떠오르지 않는다.
이러다가 내가 진짜로 혁신적인 조별 과제의 제출물로 전락해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카이사르의 죽음으로써 위대한 서사가 완성되며.
카이사르가 그렇게 죽었기 때문에 옥타비아누스가 빛나는걸.
이 자명한 이치를 모르는 미개한 이세계 놈들 같으니라고.
“원고만 던지고 필명을 갈아버리시죠. 어차피 못 알아볼 겁니다.”
솔깃하긴 하지만.
“길포드가 반려했어. 그리고, 만약 그렇게 출간되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누렁이나 성녀는 나를 죽이려 들지 않을까.”
히스토리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쟝을 누렁이라는 멸칭으로 부르지 말아 주십시오. 그것과 별개로,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흠.
어떻게, 소설 내용을 수정하지 않고서도 타개할 수 있는 방책이…….
“글 안 쓰실 거면 자리를 양보해 주십시오.”
“그래.”
굳이 키보드 앞에 앉아 있는다고 딱히 생각이 떠오르는 건 아니었으니, 나는 순순히 히스토리에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그리고 리클라이너에 반쯤 누운 채, 노트북 액정에 빨려 들어갈 듯 고개를 박고 있는 히스토리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음.
조용하니까, 바라보고만 있어도 힐링되는 기분이네.
근데…….
“그건, 뭐냐?”
“자기 노트북에 뭐가 설치되어 있는지도 모릅니까? 비주얼 노벨입니다. 이미지와 텍스트가 어우러져 하나의 미학을 자아내는 것이지요.”
아니, 진짜 왜 저런 게 깔려 있지.
기억도 안 나네.
심지어 내용물은 내가 아는 것이었다.
『────따라올 수 있겠나?』
음.
명작이지.
텍스트로만 보면 오글거릴 수 있겠지만, 이미지와 결합하였을 때, 멋이라는 게 폭발하는…….
텍스트와…….
이미지가…… 결합하였을 때……?
제국에서 문학을 향유하는 그 누구도, ‘몰락 귀족이 정치를 잘함’이 이렇게 빠르게 완결이 날 것이라는 예상을 하진 못했다.
작금의 소설이라면 어떠한가.
인기를 한 번 끌면.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에야 몇백 편, 몇천 편이고 계속 우려먹어서 더 이상 육수조차 우려내지 않을 때까지 해 먹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몰귀정’은 그 관례를 완전히 박살 내버렸다.
“다음 화에…… 완결됩니다?”
“아니, 이제 정점에 올랐는데?”
“뭔가, 뭔가 착오가 있겠지? 하하!”
심지어 신문사 내부에서도 갑론을박이 오갔지만, 어느새 신문 판매량에 꽤 큰 지분을 차지하는 김율의 결정을 거스를 수는 없었으며.
“무립니다.”
“크윽…….”
이제는 사장 앞에서도 당당하게 의견을 피력할 수 있을 정도로 어깨가 넓어진 길포드 또한 동의했으니.
그렇게.
카이사르의 마지막 이야기가, 마도공학의 힘을 입어 친환경 종이에 인쇄되었다.
그리고, 그날 새벽.
신문을 받아 든 사람들은 모두 눈을 의심했다.
“이게……?”
“카이사르가, 죽어……?”
“아니, 그것도, 암살을 당해?”
“정치, 정치 잘한다며……!”
“작가가 드디어 노망이 든 것인가!”
“크아악! 안 본 눈 삽니다!”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준 주인공의 너무나도 비참한 말로.
심지어, 일생의 숙적이었던 폼페이우스 석상 앞에서.
아들처럼 아꼈던 브루투스에게 배신당한 채 맞이한, 충격적인 결말에.
“자네, 분명 4위계 마법사였지?”
“후…… 이런 곳에서 마법을 쓰지 말라고 마탑에서 당부를 들었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구나.”
“나는 기름을 준비하겠네.”
사람들은 당장이라도 이 문학적 카타르시스를 풀기 위해 안달이 나고야 말았지만.
“잠깐! 다음 장을 보게!”
그것도 잠시.
사람들의 발걸음은 이내 멈추었다.
연재 중인 소설에 으레 따라붙는 ‘다음 화에 계속’도, 완결 소설에 따라붙는 ‘그동안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도 없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들은 신문의 페이지를 한 장 넘겼다.
그리고.
“허…….”
“이럴 수가.”
그들은 마주했다.
히스토리에가 심혈을 기울여서 그려낸 역작.
6개의 손가락을 잘라내고, 머리에 올라간 참새를 지워버리고, 그 외에도 온갖 후보정 작업을 통해 탄생한──
이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21세기 아니메 스타일을.
그 화풍을 통해 묘사된 것은.
탈모의 흔적조차 없이 매우 미화된, 중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잘생김을 간직한 사내였다.
그는, 입가로 한 줄기 피를 흘리면서도.
슬며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김율이 머리를 싸맨 끝에 떠올린 표절로 점철된 문장이, 히스토리에가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서 타이핑된 채 새겨져 있었다.
나는 제국을 부수고.
제국을 창조한다.
카이사르의 얼굴을 마주하고, 그 글귀를 읽은 순간.
모두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전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승승장구하던 주인공의 비참한 말로……라고 생각했었던 전개였지만.
한 장의 그림.
그리고 두 구절의 글귀로서 완벽히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제국을 부수었다는 것은…….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모든 구시대와 작별을 선언하며 당당히 자신의 시대가 왔음을 선포한 카이사르에 의해.
구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세력인 원로원의 힘과 영향력, 그리고 그들의 구태를 모조리 청산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제국을 창조한다는 것은…….
종신 독재관으로서, 오히려 그가 젊은 시절 비난해 왔던 술라와도 같은 행보를 보여주었던 카이사르가.
그의 죽음으로써 마침내 로마에게 있어 마지막 개혁의 불씨를 지펴주었다는 것과도 같았다.
실제로도, 그 충격적인 삽화 밑에는 또 다른 내용이 더 이어져 있었으니.
투기장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던 시민들에게 들려온 충격적인 비보.
로마를 빚낸, 로마 그 자체인 종신 독재관이 대낮에, 그것도 원로원 의원들에게 살해당했다는 소식에.
명분이 부족한 만행을 저지른 브루투스 일당에 대한 성토와 더불어, 분노한 로마 시민들이 암살자들의 거주지를 모조리 불태워 버리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국가적으로 치러진 그의 장례식과 더불어, 카이사르의 뒤를 이을 수 있을 것이라 평가받는 떠오르는 젊은 피, 안토니우스의 연설까지.
비록 주인공인 카이사르는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였을지언정.
그 죽음으로 인해 모든 것이 바뀌어 나간 것을 후일담처럼 담담하게 풀어 내려가는 서술을 목도하고서.
독자들은 금방이라도 신문을 적실 것 같았던 기름병을 내려놓고, 신문사를 향해 캐스팅하던 마법을 중단하고, 스물세 번 찌르기 위해 준비했던 단검을 내려놓았다.
김율에게도.
그리고 진리일보에게도 다행스러운 결말이었다.
그리고.
결코, 김율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점점 김율의 집필 행위는 나비가 되어 팔랑팔랑, 마경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제국 내에도 폭풍의 전조를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이, 이 미친 새끼가……?”
몇 번이고 작품 내용으로 드리프트를 처맞다 못해, 이제는 하다 하다 베르투스와 어감이 비슷한 브루투스로 스플래시 데미지를 제대로 입어버린 베르투스 공작뿐만 아니라.
“꽤 흥미로운 이야기군. 마치…… 제국의 현실을 꼬집는 것 같지 않나?”
명실상부한 제국의 거인.
그리고…… 종신 독재관과 유사한 권력을 휘두르는 이.
제국의 황제의 귀에도 율리시스라는 네 글자가 울리기 시작했다.
물론.
때로는 결말이 주는 여운을 곱씹기보다는 지금의 감정에 지배당해 즉각적인 피드백을 내놓는 독자도 있었으니.
“크르랑! 당장 나와라, 율리시스으으으으읏!”
위대하신 드래곤이신 주제에 새벽부터 꼬리를 살랑거리며 나와 신문사 앞을 어슬렁거리다가, 드리프트를 직격으로 맞아버린 에스테아가 바로 그 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