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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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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균열을 통해 김율을 무사히 제국 수도로 바래다준 후.
세레핀은 전례가 없었던 기현상을 다시 한번 더 분석하기 위해 곧바로 마경 내부로 향했다.
파티원들도 집결시키고, 그뿐만 아니라 사령관에게 연락해서 분석 요원도 같이.
그리고, 그들은 모두 확인했다.
마경 내부에 색채가 되살아난 기현상이, 세레핀이 본 환각이나 착시가 아니라 진짜 현실이었음을.
“마경 특유의 압박감이 느껴지지 않네요…….”
“마나의 흐름 또한 안정적이야.”
“성분을 정확히 분석해 보아야 하겠습니다만, 흙에 깃든 생명력으로 미루어 보아, 확실히 세계의 것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죽음 외에는 아무것도 도사리지 않았다고 믿었던 대지에 발생한 기적.
세레핀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러한 기적과 아마도 밀접하게 관계가 되어 있을 것 같은 김율, 그의 이름을 굳이 모두에게 밝히진 않았다.
아직은 속단하기는 일렀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고.
같은 파티원들이야 믿을 수 있었지만, 사령부에서 파견 나온 사람들을 완전히 신용할 수는 없었다.
마경 내부의 탐사 및 개척 작업은 세계 각국의 이권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으니.
혹여 김율의 신상에 문제라도 발생했을 때.
자신의 양심에도 심대한 문제가 생기겠지만…….
“세레핀, 표정이 왜 그래?”
“아무것도 아냐.”
우연히 마주했던 광룡 에스테아를 생각하자마자, 문득 세레핀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아무리 용사라고 해도 건드려선 안 될 존재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드래곤.
그리고…….
드래곤 중에서 가장 성격이 더럽다고 소문난 것이 바로 에스테아였다.
아무리 귀여운 외모로 스스로를 포장했다고 한들, 원래 아름다운 꽃일수록 가시가 날카롭고, 독도 치명적인 법.
그때의 기억을 반추해 보면, 이미 김율은 에스테아의 단순한 관심이 아니라 지대한 주목을 받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단…… 주변을 수색해서, 무엇이 달라졌는지부터 정확하게 확인해 봅시다.”
세레핀은 김율의 일을 함구하기로 했다.
* * *
“아이고, 삭신이야…….”
모진 고초를 겪고 집에 복귀한 후에도 초코빵을 사 오지 않은 죄로 히스토리에가 주둥이를 댓빨 내밀고 구시렁거리는 것을 감내한 후.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아까 전, 세레핀과 함께 수도로 돌아오면서.
용사가 무엇인가.
그리고 균열 내부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한 설명을 조금 더 깊이 있게 들었다.
가장 먼저, 용사.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이길래 감히 이 몸을 용사 아카데미에조차 합격시키지 않았는가 했더니.
100명을 뽑아서 1명만 용사가 되고, 나머지는 군대의 장교로 입대하는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만약 운이 좋게 합격했다고 하더라도.
나는 47등 정도의 미묘한 성적으로 군인이 되었겠지.
“글쎄요. 용사 아카데미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닙니까?”
“……너야말로 나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냐.”
뭐,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긴 했다.
어쨌든, 게다가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했다고 해서 바로 용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용사만이 다룰 수 있는 성검의 인정도 받아야 하고, 성검은 세계에 몇 자루 없다고 하니.
선대 용사가 죽거나 은퇴하지 않는 한 무기한 용사 발령 대기 상태로 다른 일도 하지 못하는 노예가 되는 셈이었다.
“효율적인 인력 관리 방식이군요. 장차 제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을 때 김율을 무기한 발령 대기 상태로 놓겠습니다.”
“깡통아. 아직도 너에게는 인간의 마음이 생기지 않았단 말이냐…….”
“태생부터 완전무결한 존재. 그것이 바로 접니다.”
깡통=데이터베이스에 꿀밤을 한 대 먹여주었다.
그리고…….
- 마경에서의 삶은…… 솔직히 좋다고는 할 순 없습니다. 작가님께서도 보시다시피 온통 황폐하고, 생명이란 찾아볼 수 없고, 강인한 정신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미쳐버리는 것도 순식간이니까요.
실제로 아예 무능했던 김율이 균열에 빨려 들어가는 불상사가 발생했다면, 아마 나는 SAN치가 바닥난 채 응고곡 하면서 곰스트랑 뒹굴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뭐 하나 인간에게 이로운 것도 없는데, 왜 균열 내부에서 마경과 투닥거리냐고 하면.
첫째.
선제적으로 진압하지 않으면, 마치 장르 소설처럼 주기적으로 균열을 통해서 마물들이 세계로 침입한다는 모양.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굳이 귀중한 국방력과 용사를 쏟아붓는 중이었고.
또, 둘째.
마경 내부에서만 나오는 귀한 자원이 있다고 한다.
쌀먹은 중대 사항이니 이해하기로 했다.
그것과 별개로…….
“히스토리에. 너는 신이 실존한다고 믿어?”
“그것은 바로 기계신 데우스 엑스 마키나 님을 의미합니다. 인간 시대의 끝이 도래했으니, 마땅히 경배를──”
“에휴.”
깡통에게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어쨌든.
아까 전.
잿빛 마경 속, 유일하게 천연색이 깃들었던 공간에서 만난 신비한 그리스어를 썼던 남자.
돌아온 직후부터 여러 문헌을 통해 확인해 본 결과.
아마도 그의 정체는.
아폴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왜?
왜 마경 속에서 그런 존재가 갑자기 튀어나왔던 것인가?
그리고 왜 마경 속에서, 그가 있는 공간 주변만이 갑자기 색을 되찾게 된 것인가?
그런 의문을 해소할 방법은 아직은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모종의 직감을 느꼈다.
아마도…… 내가 가지고 있는 상태창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았다.
현재로서는 내가 유일하게 완결 낸 작품이 그리스·로마 신화 이야기였기 때문에 아폴론이 등장한 게 아닐까.
그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선…….
“더 많이 쓰고, 더 잘 써야겠군.”
“그건 저도 동의합니다. 모든 정황을 조합해 본다면, 김율의 특별한 능력이 마경에도 영향을 미친다고밖에 볼 수 없겠군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긴 하지.”
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지금처럼.
사명감을 가지고 글을 쓰기.
일단은…….
카이사르의 최후까지, 깔끔하게 잘 매듭을 짓도록 하자.
* * *
김율이 마경으로부터 생환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 사이에.
“율……! 도대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요! 무사한가요! 별일 없었던 거죠?”
“앗, 성녀님.”
로젤린에게 포착당한 김율은, 고해성사실에 끌려가서 족히 두 시간 가까이 설교와 더불어서.
“자, 이건 보호 부적이고, 이건 경보 부적이고…….”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온갖 종류의 조치를 다 받았다.
거기에는 김율에 대한 개인적인 걱정도 깃들어 있었지만.
“클레오파트라! 금단의 사랑! 당연히 결혼까지 가겠죠?”
로젤린 그녀가 바라지 마지않았던 만족스러운 전개에 대한 리스펙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원래 더 큰 자극을 받으면 역치가 높아진다고 했었던가.
과거에는 분명 불륜으로 짐작되는 전개를 볼 때마다 ‘불경해요!’를 외쳤었던 로젤린이었지만.
어차피 곧 결혼할 것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면, 그저 그것은 매력적인 로맨스에 불과했으니.
사람은 그렇게 성장하는 법이었다.
물론,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가 결혼하는 일 따윈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김율은.
“하하하…….”
그저 웃으면서 당장의 위기를 모면코자 했다.
.
.
.
그리고, 바로 오늘.
“분명히 더 해야 할 이야기가 많을 텐데요…….”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는 법이지요.”
김율은 ‘몰락 귀족이 정치를 잘함’의 완결까지의 내용을 담은 원고 뭉치를 길포드에게 내밀었다.
원고를 받아든 길포드는, 나머지는 다 내버려 둔 채 가장 마지막 편의 원고를 꺼내 들어 읽기 시작했다.
물론, 평소라면, 독자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으나.
길포드는 이미 김율의 ‘올림포스 이야기’ 시리즈를 모두 완독한 애독자가 되었기에.
과연 이번에도 헤라클레스처럼.
트로이의 이야기처럼…….
결말에 비극을 집어넣었는지 꼭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 ====== ##
카이사르는 회의장 안으로 들어섰다.
언제나 원로원과 마주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회의장은 너무나도 드높고 웅장했다.
모든 원로원 의원이 일제히 기립해서 그를 맞이했지만.
오늘따라, 이상하게도.
“…….”
몇 년 전, 파르살루스에서 그에게 패배하고 이집트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던 숙적.
회의장 구석에 놓인 폼페이우스 석상의 시선이 마치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기분 탓이겠지, 하고 애써 불길함을 날려 보낸 후.
4년 5개월째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임기 무제한의 종신독재관으로서.
카이사르는 마땅히 그에게 안배된 영광의 자리에 앉았다.
그 순간.
의원 몇몇이 약속이라도 한 듯 그를 에워쌌다.
가장 선두에 선 것은 루키우스 틸리우스 킴버르였다.
“카이사르 각하. 제발 자비를 베푸소서, 추방당한 제 형제를 사면해 주소서.”
그 애절한 외침에도, 카이사르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미 원로원에서 부결된 사안이 아닌가.
왜 굳이 그것을 지금 다시 화두로 던지는가.
“오! 위대하신 카이사르시여!”
하지만 이미 감정을 통제 불가능한 상황까지 내몰린 듯, 킴버르는 절규하며 카이사르에게 달려든 후 그의 토가 자락을 움켜쥐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카이사르의 양 팔을 붙들었다.
“폭력을 쓰려는 것이냐?”
카이사르는 준엄한 목소리로 꾸짖었지만.
“친구들이여, 뭘 기다리는가!”
킴버르의 외침과 더불어.
상황은 급변했다.
- 한 사람이 영원히 권력을 소유할 수는 없소!
- 평생 그의 꼭두각시로, 장난감으로 살아갈 셈인가?
- 술라를 욕할 땐 언제고, 술라보다 더한 꼴이 아닌가!
암살을 도모한 모든 의원의 머리에, 그동안의 결의가 스쳐 지나갔다.
물론, 권력욕과 복수심 등의 개인적 동기도 잔뜩 섞인 채.
욕망의 소용돌이가 마침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죽어라!”
크게 외치며 세르빌리우스 카스카가 단검을 카이사르의 목으로 곧장 찔러냈지만.
긴장한 탓인지, 아니면 카이사르가 절묘하게 피한 덕분인지.
칼날은 빗나가 쇄골 아래 어깨를 스치며 한 줄기 자상만을 남겼다.
하지만.
“네놈이 감히!”
카이사르의 포효는 모든 의원의 머리를 명료하게 일깨웠다.
그가 루비콘 강을 건너기 전에 외쳤던 함성처럼.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폭군에게 죽음을!”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육십 명에 육박하는 의원들은 동시에 카이사르에게 달려들었다.
첫 번째 칼이 그의 옆구리를 찢었고.
두 번째 칼이 등을 파고들었으며.
세 번째 칼이 넓적다리에 기나긴 자상을 냈다.
수십 년간 전장을 누빈 노련한 사자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이빨을 들이밀며 그 모든 공격에 저항하려 애썼지만.
그는 혼자였고, 적은 너무 많았다.
수많은 상처를 입은 채.
최대한 방어적으로 물러서던 카이사르는 문득 자신의 등에 싸늘한 감촉이 와닿는 것을 느꼈다.
흐려진 시야로 고개를 들어보면.
그곳에는, 폼페이우스의 석상이 서 있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떨구면.
그가 아들처럼 사랑했고, 자신의 후계자로 여겼던 청년.
브루투스가 유령처럼 창백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 손에는 다른 이들의 것과 마찬가지로 피에 젖은 단검이 들려 있었다.
마지막 순간.
그의 입에서 나온 언어는 로마의 말이 아니었다.
그와 브루투스가 함께 있을 때 철학과 문학을 논하고, 대전략을 이야기하며, 로마가 더 위대하게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논하던 언어.
“너마저, 내 아들아!”
헬라스어가 그의 입으로 흘러나온 순간.
스물두 개의 자상과 더불어, 스물세 번째의 자상이 그의 목을 스쳐 지나갔다.
이윽고.
카이사르의 피가 폼페이우스 석상의 발치를 흥건하게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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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몇 줄의 묘사가 더 있는 것 같았지만,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길포드는 떨리는 손을 간신히 자제하며 원고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서.
담백한 사실만을 전달했다.
“작가님, 이대로 가면 작가님 몸에 구멍이 스물 세개 뚫릴 겁니다.”
김율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