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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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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소설이 잘 되어서 싱글벙글해야 할 길포드였지만, 그 얼굴은 부쩍 수척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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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시위와 관계가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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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늘상 있는 관례적 행사입니다. 작가님께서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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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야 전술, 이야기가 들리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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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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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포드는 깊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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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귀잽이 년들이 패악질을 부리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심지어 신문을 종이로 만든다고 지랄해대서, 진리일보는 재질이 조금 다르지 않습니까. 그게 다 적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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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시즘에 입각한 분노를 토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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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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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신문지들과 달리 진리일보만 유독 질감이 뽀송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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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 시 화장지 대용으로 충분히 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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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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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굳이? 어차피 제국에서 깐, 아니, 엘프들이야 한줌단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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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일보의 가장 큰 스폰서가 위스페라우드 공작가라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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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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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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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베르투스 공작과 만찬을 즐겼을 때,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던 제국 내 4대 공작 가문에 대한 TMI를 경청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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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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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프들이 주축이 된 위스페라우드 공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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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나는 길포드를 재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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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스폰서가 극렬 에코-파시스트들인데, 거기다가 대고 전쟁 좋아 외치면서 환경 파괴를 요란하게 벌이는 소설을 출판할 생각을 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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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언론인이자 참 문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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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참된 레이시스트의 귀감이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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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저 소요를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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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뭐. 아까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관례적 행사라서요. 대충 저대로 힘 좀 빼놓고 재발 방지 서약서에 위조 도장 하나 찍어서 던져주면 한동안 조용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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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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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자극적인 제목으로 어그로 잔뜩 끌어놓고, 반년쯤 뒤에 소리소문없이 정정보도 한 줄 띡 던진 채 입 씻는 현대 언론의 행보가 겹쳐 보이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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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산다는 건 지구나 이세계나 다 비슷한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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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워보지도 않고 로마 원로들이 곧장 그리스로 도망친다고요? 너무 편의주의적 전개 아닙니까? 명분을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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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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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에 폼페이우스가 칼을 갈고 있는데, 굳이 이베리아 반도부터 먼저 침공했다고요? 게다가 심지어 소수로 다수를 포위했다가 반격당해서 패배까지? 작가님, 이건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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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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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기왕이면 직접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의 목을 따는 걸로 하시지. 이러면 대리만족이 부족하다고 분명히 얘기가 나올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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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또한 고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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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프들의 심리는 통달하셨지만, 애석하게도 지구 역사에는 문외한인 길포드의 억까를 어떻게든 수비하며 원고를 밀어 넣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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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를 불태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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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도 인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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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수 사육금지법은 악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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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왜 태워, 이 미친 것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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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수 사육금지법은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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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보다 다소 과격해진 듯한 깐프 시위대를 조심스럽게 뚫고 다시 광장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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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보다는 한층 기운이 억제된 듯한 균열과 더불어, 그 근처에 있는 벤치에 늘어진 듯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로젤린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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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지나칠까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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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포켓몬 배틀을 신청하는 것처럼 눈이 마주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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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력 주머니 위로 부드러운 미소가 호선을 그리는 걸 보니, 저쪽도 이쪽을 인식해버린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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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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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쁘긴 이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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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사랑사랑 노래를 불러댈 걸 생각하니 조금 머리가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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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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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클레오파트라 나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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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떳떳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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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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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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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세레핀 용사님. 팔다리 잘린 곳 없이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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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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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때마다 이게 덕담인지 악담인지 헷갈릴 정도의 말을 내뱉는 연합군 서부 사령관 쿠오르디가 내민 손을 잡으며, 세레핀은 애써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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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경의 정복은 몹시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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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선에서 특공대 역할을 하는 용사 파티가 마물들의 주요 거점이나 괴수들을 처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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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륙에서 차출된 연합군이 그 뒤를 따라 진격하며 구심점을 잃은 마물의 대규모 병력과 충돌하며 서서히 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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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일시적으로 확보한 마경의 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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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을 퍼부어서 더는 그곳에서 마물이 새로 생기지 않도록 중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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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대 마경 전술의 기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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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님이 청동 거인을 처리해준 덕분에, 조금 더 진격할 수 있었습니다. 이야, 참, 활약이 몹시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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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혼자만의 업적이 아니라 저희 파티 전원이 함께 힘을 합세한 덕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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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핀은 그때의 기억을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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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검조차 들지 않고, 공격 하나하나가 치명상을 입힐 정도로 강력한 거인을 상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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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까지 파고들어 그 거인을 구성하는 핵심을 꿰뚫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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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히 일곱 번은 넘게 죽을 고비를 넘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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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마경에서 함께 고난을 버틴 파티원들이 서포트해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 자신은 이 자리에 없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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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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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일치일지, 아니면 필연일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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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발목이라는 결정적 단서를 건네준 김율 작가의 공도 컸다고 생각한 세레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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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의 전황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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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전선은 메테오라도 떨어진 듯 거대하게 파인 분지 지형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고, 동부 전선은 끝없이 태어나는 흙 병사들에게 가로막혔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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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하나 쉬운 곳이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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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핀은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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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용사가 죽어 나갈 것이며, 성검의 의지가 이어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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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자신의 성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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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가라흐 또한 벌써 여섯 번이나 주인이 바뀌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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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님은 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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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흠, 솔직히 좋지 않습니다. 이전보다 마물이 생겨나는 속도가 빨라서, 자칫 조금 앞으로 무리해서 나아가면 양면 전선이 휘말리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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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면 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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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핀은, 불현듯 최근에 읽었던 김율의 소설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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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략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세레핀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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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카이사르가 고난과 역경을 뚫고 불리한 전선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은 사나이의 심금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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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겉으로는 쾌활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분명히 썩어 문드러지고 있을 이 불쌍한 사령관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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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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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뭡니까? 뇌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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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그런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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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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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핀은 고개를 끄덕여 사령관의 의문에 긍정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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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입니다. 꽤 시원시원하니, 심심할 때 읽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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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할 일이 있겠냐마는…… 하하, 용사님 추천이니 한 번 읽어나 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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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최근에 발견된 신종 마물들의 대처법과 관련된 내용을 주제로 한 담소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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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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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보! 급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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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등장한 전령에 의해, 잠시간의 평화는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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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수도의 대광장에 균열 발생! 용사의 긴급 파견을 요청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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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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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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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과 세레핀은 동시에 침음성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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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례가 없었던 일은 아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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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때 책 말고 맛있는 것 좀 사 오십시오. 초코빵이 먹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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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까먹지 않는다면, 챙겨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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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 듯 농담을 건네며 다시금 손을 내밀어준 사령관의 손을 굳게 부여잡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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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핀은 제국 수도 근처로 이어지는 가장 가까운 대균열을 향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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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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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젤린의 반응은 김율의 예상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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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탕이에요! 남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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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가 어떻게 저런 말일 수 있을까, 하며 김율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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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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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 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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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있는 자신의 옆자리를 내려치는 로젤린의 손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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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율은 강아지처럼 다소곳하게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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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신성력보다 강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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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로젤린은 슬며시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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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동안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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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개에 사랑은커녕 여인의 흔적조차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 구구절절 아쉬움이 담긴 하소연을 내뱉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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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새로운 히로인이 등장할 것이라는 확답을 받아낸 로젤린이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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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일상적인 이야기가 잠깐 이어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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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닫을 수는 있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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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율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로젤린 또한 눈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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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율은 정확하게 균열이 발생한 지점을 또렷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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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그걸 위해 용사가 존재하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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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젤린은 활짝 웃으며, 김율의 말을 긍정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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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는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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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히 가세요!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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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표정에 피곤함이 감돌기 시작한 김율에게, 신성력을 몸소 나누어주며 원기를 북돋아 준 로젤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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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놀리는 맛이 있는 사내다, 그런 감상을 삼키길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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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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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열이, 보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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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 뿐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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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열이 내뱉는 마경의 그 지독한 마기까지 느껴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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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이, 그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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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하면서, 터덜터덜 걸어가는 김율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로젤린의 눈동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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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간,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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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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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율이 걸어가고 있는 방향은 소위 빵집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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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베이커리들이 집적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옹기종기 모인 곳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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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통제 구역에 해당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균열과 꽤 가까운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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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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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불길한 느낌에, 로젤린은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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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어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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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균열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순간적으로 크기를 부풀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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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김율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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