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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305 l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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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분명히 소설이 잘 되어서 싱글벙글해야 할 길포드였지만, 그 얼굴은 부쩍 수척해져 있었다.
분명히 시위와 관계가 있는 거겠지.
“휴…… 늘상 있는 관례적 행사입니다. 작가님께서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청야 전술, 이야기가 들리던데요.”
“하하…….”
길포드는 깊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저 귀잽이 년들이 패악질을 부리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심지어 신문을 종이로 만든다고 지랄해대서, 진리일보는 재질이 조금 다르지 않습니까. 그게 다 적잔데.”
레이시즘에 입각한 분노를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신문지들과 달리 진리일보만 유독 질감이 뽀송한 것이.
응급 시 화장지 대용으로 충분히 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근데.
“왜 굳이? 어차피 제국에서 깐, 아니, 엘프들이야 한줌단 아닙니까?”
“진리일보의 가장 큰 스폰서가 위스페라우드 공작가라서 그렇습니다.”
“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저번에 베르투스 공작과 만찬을 즐겼을 때,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던 제국 내 4대 공작 가문에 대한 TMI를 경청한 바 있다.
그중 하나.
깐프들이 주축이 된 위스페라우드 공작가.
거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나는 길포드를 재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메인 스폰서가 극렬 에코-파시스트들인데, 거기다가 대고 전쟁 좋아 외치면서 환경 파괴를 요란하게 벌이는 소설을 출판할 생각을 했다니.
참 언론인이자 참 문학인.
그리고 참된 레이시스트의 귀감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면 저 소요를 어떻게……?”
“아, 뭐. 아까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관례적 행사라서요. 대충 저대로 힘 좀 빼놓고 재발 방지 서약서에 위조 도장 하나 찍어서 던져주면 한동안 조용해질 겁니다.”
“…….”
마치 자극적인 제목으로 어그로 잔뜩 끌어놓고, 반년쯤 뒤에 소리소문없이 정정보도 한 줄 띡 던진 채 입 씻는 현대 언론의 행보가 겹쳐 보이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이 산다는 건 지구나 이세계나 다 비슷한 거겠지.
.
.
.
- 싸워보지도 않고 로마 원로들이 곧장 그리스로 도망친다고요? 너무 편의주의적 전개 아닙니까? 명분을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잖습니까.
고증입니다.
- 그리스에 폼페이우스가 칼을 갈고 있는데, 굳이 이베리아 반도부터 먼저 침공했다고요? 게다가 심지어 소수로 다수를 포위했다가 반격당해서 패배까지? 작가님, 이건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칠 겁니다.
……고증입니다.
- 그…… 기왕이면 직접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의 목을 따는 걸로 하시지. 이러면 대리만족이 부족하다고 분명히 얘기가 나올 것 같은데…….
그 또한 고증입니다…….
깐프들의 심리는 통달하셨지만, 애석하게도 지구 역사에는 문외한인 길포드의 억까를 어떻게든 수비하며 원고를 밀어 넣은 후.
“율리시스를 불태우자!”
“식물에도 인권이 있다!”
“촉수 사육금지법은 악법이다!”
나를 왜 태워, 이 미친 것들아.
촉수 사육금지법은 또 뭐야?
아까보다 다소 과격해진 듯한 깐프 시위대를 조심스럽게 뚫고 다시 광장으로 돌아갔다.
아까보다는 한층 기운이 억제된 듯한 균열과 더불어, 그 근처에 있는 벤치에 늘어진 듯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로젤린이 보였다.
그냥 지나칠까 했지만.
마치 포켓몬 배틀을 신청하는 것처럼 눈이 마주치고야 말았다.
신성력 주머니 위로 부드러운 미소가 호선을 그리는 걸 보니, 저쪽도 이쪽을 인식해버린 듯싶었다.
“휴.”
이쁘긴 이쁜데.
오늘도 사랑사랑 노래를 불러댈 걸 생각하니 조금 머리가 아팠다.
뭐, 그래도.
조만간 클레오파트라 나오니까.
오늘은 떳떳할 수 있었다.
* * *
“사령관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 세레핀 용사님. 팔다리 잘린 곳 없이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하하…….”
볼 때마다 이게 덕담인지 악담인지 헷갈릴 정도의 말을 내뱉는 연합군 서부 사령관 쿠오르디가 내민 손을 잡으며, 세레핀은 애써 웃음을 지었다.
마경의 정복은 몹시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
최전선에서 특공대 역할을 하는 용사 파티가 마물들의 주요 거점이나 괴수들을 처치하면.
전 대륙에서 차출된 연합군이 그 뒤를 따라 진격하며 구심점을 잃은 마물의 대규모 병력과 충돌하며 서서히 밀어낸다.
그렇게 일시적으로 확보한 마경의 땅에.
마력을 퍼부어서 더는 그곳에서 마물이 새로 생기지 않도록 중화한다.
그것이 대 마경 전술의 기본이었다.
“용사님이 청동 거인을 처리해준 덕분에, 조금 더 진격할 수 있었습니다. 이야, 참, 활약이 몹시 대단합니다.”
“저 혼자만의 업적이 아니라 저희 파티 전원이 함께 힘을 합세한 덕분이지요.”
세레핀은 그때의 기억을 회상했다.
성검조차 들지 않고, 공격 하나하나가 치명상을 입힐 정도로 강력한 거인을 상대로.
발목까지 파고들어 그 거인을 구성하는 핵심을 꿰뚫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족히 일곱 번은 넘게 죽을 고비를 넘겼었다.
그동안 마경에서 함께 고난을 버틴 파티원들이 서포트해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 자신은 이 자리에 없었으리라.
또.
우연의 일치일지, 아니면 필연일진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발목이라는 결정적 단서를 건네준 김율 작가의 공도 컸다고 생각한 세레핀이었다.
“다른 곳의 전황은 어떻습니까?”
“남부 전선은 메테오라도 떨어진 듯 거대하게 파인 분지 지형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고, 동부 전선은 끝없이 태어나는 흙 병사들에게 가로막혔다고 하더군요.”
어디 하나 쉬운 곳이 없군.
세레핀은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용사가 죽어 나갈 것이며, 성검의 의지가 이어질 것인가.
당장 자신의 성검.
프라가라흐 또한 벌써 여섯 번이나 주인이 바뀌었으니.
“사령관님은 좀 어떻습니까?”
“크흠, 솔직히 좋지 않습니다. 이전보다 마물이 생겨나는 속도가 빨라서, 자칫 조금 앞으로 무리해서 나아가면 양면 전선이 휘말리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합니다.”
“양면 전선…….”
세레핀은, 불현듯 최근에 읽었던 김율의 소설을 떠올렸다.
군략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세레핀이었지만.
그래도 카이사르가 고난과 역경을 뚫고 불리한 전선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은 사나이의 심금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비록 겉으로는 쾌활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분명히 썩어 문드러지고 있을 이 불쌍한 사령관을 위해서.
“이거, 받으십시오.”
“뭡니까? 뇌물?”
“하하, 그런 건 아닙니다.”
“책……이군요?”
세레핀은 고개를 끄덕여 사령관의 의문에 긍정을 표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입니다. 꽤 시원시원하니, 심심할 때 읽어보십시오.”
“심심할 일이 있겠냐마는…… 하하, 용사님 추천이니 한 번 읽어나 보지요.”
그 뒤로, 최근에 발견된 신종 마물들의 대처법과 관련된 내용을 주제로 한 담소가 이어졌다.
하지만.
“급보! 급보입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전령에 의해, 잠시간의 평화는 깨졌다.
“제국 수도의 대광장에 균열 발생! 용사의 긴급 파견을 요청해왔습니다!”
“허어.”
“으음…….”
사령관과 세레핀은 동시에 침음성을 삼켰다.
하지만, 전례가 없었던 일은 아니었으니.
“올 때 책 말고 맛있는 것 좀 사 오십시오. 초코빵이 먹고 싶군요.”
“하하……. 까먹지 않는다면, 챙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애써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 듯 농담을 건네며 다시금 손을 내밀어준 사령관의 손을 굳게 부여잡은 후.
세레핀은 제국 수도 근처로 이어지는 가장 가까운 대균열을 향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 * *
로젤린의 반응은 김율의 예상대로였다.
“남탕이에요! 남탕!”
성녀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가 어떻게 저런 말일 수 있을까, 하며 김율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팡, 팡!
비어있는 자신의 옆자리를 내려치는 로젤린의 손길에.
김율은 강아지처럼 다소곳하게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폭력은 신성력보다 강하니까.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로젤린은 슬며시 미소 지었다.
.
.
.
그리고 한동안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최근 전개에 사랑은커녕 여인의 흔적조차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 구구절절 아쉬움이 담긴 하소연을 내뱉고.
곧 새로운 히로인이 등장할 것이라는 확답을 받아낸 로젤린이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 뒤로 일상적인 이야기가 잠깐 이어지다가.
“저거, 닫을 수는 있는 겁니까?”
김율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로젤린 또한 눈길을 던졌다.
김율은 정확하게 균열이 발생한 지점을 또렷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요! 그걸 위해 용사가 존재하는 거니까요?”
로젤린은 활짝 웃으며, 김율의 말을 긍정해주었다.
“그럼 저는 이만.”
“조심히 가세요! 작가님!”
살짝 표정에 피곤함이 감돌기 시작한 김율에게, 신성력을 몸소 나누어주며 원기를 북돋아 준 로젤린이었다.
언제나 놀리는 맛이 있는 사내다, 그런 감상을 삼키길 잠시.
그러나…….
“균열이, 보인다고.”
보일 뿐만 아니라.
균열이 내뱉는 마경의 그 지독한 마기까지 느껴진다고 했다.
평범한 사람이, 그럴 수는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터덜터덜 걸어가는 김율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로젤린의 눈동자가.
일순간, 커졌다.
“어, 어……?”
김율이 걸어가고 있는 방향은 소위 빵집 거리.
여러 베이커리들이 집적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옹기종기 모인 곳이었고.
일반적인 통제 구역에 해당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균열과 꽤 가까운 곳이었다.
“율──”
무언가 불길한 느낌에, 로젤린은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쩌어억──
마치 균열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순간적으로 크기를 부풀리더니.
그대로 김율을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