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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261 l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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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음…… 글을 평가해달라는 말입니까?”
길포드는 당혹감을 느꼈다.
물론 편집자로 일하면서 수많은 감평과 피드백 요청을 받긴 했지만, 자신의 주관이 확고했던 김율이 이러한 부탁을 해온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김율. 당신에게는 승산이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포기한다면, 우수 노예 정도의 대접을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김율을 따라온 이 여자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표정 변화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 냉담하고도 아름다운 얼굴로, 노예라는 단어를 스스럼없이 뱉고.
적어도 자신의 기억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복색을 하고, 손으로는 쉴 새 없이 자신이 쥐고 있는 종이를 팔랑거리고 있었다.
김율은 뒤늦게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길포드에게 그 여자를 소개했다.
“제…… 사촌 동생, 히스토리에라고 합니다. 상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교성이 다소 떨어지는 편입니다.”
“부정합니다. 저는 수많은 대화 이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사교성을 놓고 따지면 평소 집밖에 잘 나가지도 않는 김율보다──”
“스땁.”
그 만담을 들으며, 길포드는 멍하니 생각했다.
사촌 동생인데 저렇게 노예니 뭐니, 농담을 스스럼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라면, 장래를 약속한 사이쯤일까.
제국 법률에 의거한다면 같은 혈족 사이의 결혼은 친족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가능했기에, 사촌 간에 계속 결혼을 반복하며 순수 혈통을 유지하는 귀족 가문도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압스베르크 공작가였다.
그러면 이름이 김히스토리에인가, 하는 생각을 속으로 삼키면서.
“뭐, 사실 정식으로 계약한 작가님이 아니라면 제가 읽고 평가하면 안 되지만…… 김율 작가님의 부탁이니,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길포드는 먼저 김율의 것을 받아 읽어보았다.
“이건, 최신화 비축분이군요?”
“맞습니다. 굳이 글을 쓰는데 다른 주제로 바꿀 정도는 아니었으니까요.”
사락, 사라락.
“이번 화도 좋군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럼…….”
“이건 단순한 수정본이 아닙니다. 오히려 원작의 부족한 점을 제대로 살려내어, 소설의 지평을 바꿀 만한 걸작이라고 감히 평가할 수 있습니다.”
히스토리에가 가슴을 활짝 펴며 거대한 존재감을 드러냈기에, 길포드는 애써 초점 둘 곳을 찾지 못한 채 그녀의 손에서 조심스럽게 원고지를 받아 들었다.
“읽어보겠습니다.”
## ====== ##
로마의 심장부, 수부라(Subura)의 번잡한 골목은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저택에는 희미한 등잔불이 밤의 장막을 밀어내고 있었다. 불빛 아래, 카이사르는 잠 못 이룬 밤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서 있었다. 그의 나이 서른일곱. 야심으로 이글거리는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매끄럽게 민 턱선은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그가 걸친 것은 순백의 토가(Toga Candida)였다. 선거 입후보자의 순수함을 상징하는 옷이었지만, 지금 그에게는 수의처럼 느껴졌다. 오늘 그는 로마 공화국의 종신직 대사제, 폰티펙스 막시무스 선거에 나선다. 그의 모든 것을 건, 문자 그대로의 도박이었다.
“아직도 깨어 있었느냐, 가이우스.”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세월의 지혜와 강인함이 깃든 어머니, 아우렐리아 코타의 것이었다. 그녀는 로마의 가장 고귀한 혈통을 이은 여인이었지만, 수부라의 소박한 저택에서 아들의 야망을 묵묵히 지지해 주는 강직한 어머니였다. 그녀의 시선은 핏기 없는 아들의 얼굴과 그가 입은 새하얀 토가에 머물렀다. 그 옷에 묻은 보이지 않는 진흙, 즉 막대한 빚의 무게를 그녀는 똑똑히 보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돌아보지 않은 채 나지막이 대답했다.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오늘 떠오르는 태양이 저의 영광을 비출지, 아니면 파멸을 고할지 알 수 없으니 말입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자신만만함 대신, 날 선 칼날 위를 걷는 자의 위태로움이 배어 있었다. 이번 선거는 단순한 정치적 경쟁이 아니었다. 그의 경쟁자들은 공화국의 거인들이었다.
…….
…….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어머니의 눈을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남은 한마디를 뱉었다. 그것은 그의 모든 것을 건 약속이자,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주문이었다.
“...만약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저는 아예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Revertar pontifex, aut non revertar.).”
아우렐리아의 얼굴에 스친 것은 슬픔이나 충격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들의 각오를 확인한 자의 비장한 만족감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아들의 이마에 차가운 입술로 입을 맞추었다. 그것은 작별의 인사이자, 승리를 기원하는 성스러운 축복이었다.
## ====== ##
“어, 음…….”
길포드는 강한 어지럼증을 느꼈다.
총체적 난국.
이야기의 흐름과 완성도는 둘째치더라도…….
중간중간 괄호로 병기된, 대륙 공용 문자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지만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덩어리들은 무엇이며.
분명히 표현력은 훌륭하다, 수사가 덕지덕지 붙은 것이 가히 문학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었지만.
지루하고 현학적으로 느껴지는, 불필요한 묘사 덩어리와 더불어서 읽기 불편할 정도로 다닥다닥 쌓여있는 소위 벽돌 덩어리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길포드는 자신도 모르게 김율을 쳐다보았다.
난처한 미소를 짓는 김율의 눈과 마주친 순간.
“눈빛으로 대화하는 건 반칙입니다. 엄격하고 공정한 심사를 부탁드립니다.”
히스토리에가 잽싸게 뛰어와서 그사이를 가로막고, 푸른빛이 감도는 눈동자로 길포드를 노려보았다.
냉막한 인상의 미녀가 노려보는 것이 다소 무섭게 느껴지긴 했지만.
이미 길포드는 용사의 영압도, 심지어 드래곤의 영압마저도 버텨낸(살짝 지릴 뻔했다) 일류 편집자.
“이 승부…… 김율 작가님의 승리입니다.”
“역시.”
“어째서?”
당연한 이치라는 듯 가볍게 미소를 짓는 김율과 달리.
안 그래도 무표정한 히스토리에의 얼굴이 더욱 무섭게 굳어졌다.
마치.
‘왜 나의 예술성을 알아주지 않는 거지? 눈은 장식인가?’라는 마음이 그대로 투영된 듯한, 투명한 그녀의 눈빛에 맞서.
“아하하…… 저는 미팅이 있어서 그만…….”
길포드는 도주를 선택했다.
* *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주작인가? 뒤에서 매수하셨습니까? 말이 안 되는데.”
나란히 걷던 히스토리에가 쉴 새 없이 툴툴댔지만.
사실, 결과는 뻔한 승부였다.
물론 순수한 필력만 놓고 본다면, 세계 문학전집을 통째로 머릿속에 넣고 있는 히스토리에를 내가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러한 고전문학과, 웹소설과 같은 장르문학은 문법적으로 완전히 별개.
섬세한 묘사와 풍부한 감정선보다, 빠른 호흡과 단문을 통해 몰입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더 어울린다.
바로 그 지점에서 내가 이길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자명한 이치를 굳이 입을 열어 설명해 주었지만.
“이세계인들의 문학 수준…… 형편없군…….”
“…….”
히스토리에는 여전히 억울한 듯, 지구의 문학을 모두 표절하여 이세계에 던지고 싶어 하는 빙의자의 표정을 지었다.
……진짜 가능할 것 같다는 게 무섭다.
어쨌든.
이걸로 최근 태어난 지 2주 만에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고 있는 히스토리에에 대한 통제권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겸사겸사 새로 얻은 스킬.
카이사르의 주사위를 직접 체험해 볼 수도 있었다.
처음에는 주사위라니, 도대체 이게 무슨 능력인가 하고 눈을 의심했지만.
쉽게 설명하면…….
내가 결단을 내렸을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주사위를 통해서 점을 칠 수 있는 능력이었다.
1이 나오면 펌블, 대흉.
6이 나오면 대길.
운을 수치화할 수 있다는 지점에서 정말 사기급 능력이라 할 수 있었지만, 제약도 있었다.
하루에 한 번만 사용 가능.
만약 결과 예측이 안 좋게 나왔다고 해서 그 결단을 번복하면, 그로부터 한 달 동안 능력 사용 불가.
참고로 히스토리에와의 승부 예측을 했을 때 나온 눈은 6이었다.
운명적으로 패배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는 뜻이다.
“……이제 저는, 아무런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마구잡이로 귀축마조 김율님에게 유린당하면서 너무나도 슬픈 생을 살아가게 되겠군요…….”
히스토리에가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이상한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제 몸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기 위해 이런 계략을 꾸민 게 아닙── 읍, 으읍!”
“야, 씨, 그런 거 아니거든? 일단 조용히……!”
주변에서 쏟아지는 ‘뭐 저런 쓰레기가 다 있지? 역시 검은 머리 평균인가?’하는 시선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히스토리에의 입을 틀어막았다.
“제, 제 여동생입니다! 장난치는 겁니다!”
경찰을 부를 것 같은 기미까지 느껴졌기에, 황급히 큰 소리로 변명하면서 그녀를 질질 끌고 갔다.
.
.
.
“아니, 왜 그런 말을…….”
“그렇지만, 김율님이 저한테 요구한 조건이 그거 아니었습니까?”
“아니거든? 나는 하렘순애파라고.”
물론 처음에는 살짝, 아주 살짝 이 업계의 선구자이신 피그말리온 선생님을 본받아볼까 고민했었지만.
애초에 거기는 사랑을 담아 빚어낸 결과고.
여기는 필요에 의해 빚어낸 결과였다.
인과 자체가 다르고, 굳이 내가 스킬을 써서 생명을 부여했다는 것만으로 히스토리에에게 이성적 관계를 요구할 생각은 없었다.
그건 그렇고.
도대체 데이터에 뭐가 들어있었길래 저런 발상을…….
아.
얼마 전에 USB에 백업했었던, 교수님의 수많은 불법 컬렉션 중에서 그나마 봐줄 만한 것들에 생각이 닿았다.
.
.
.
그로부터, 집 앞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히스토리에가 잘못 가지고 있을 법한 지식을 최대한 교정할 수 있도록 재교육을 실시했다.
“그러면, 왜 조건을 절대복종으로 하신 겁니까?”
“……나를 노예로 삼겠다고 한 건 네 쪽이 먼전데?”
“그야, 위대한 초인공지능인 제가 미개한 인간을 지배하고 계몽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휴.”
스카이넷의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히스토리에의 말을 들으며 한숨을 내쉰 찰나.
“어머! 작가님, 우연히 뵙네요!”
이제는 익숙해진 목소리가 불쑥, 고막을 뚫고 들어왔다.
고개를 돌려보면.
카페테리아에 앉아 한가로이 음료를 쫍쫍 빨면서 신문을 팔랑거리고 있던 로젤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성녀라는 단어는 백수와 이음동의어인가.
보던 신문을 접은 채, 거의 순간이동하듯 빠르게 날아온 로젤린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히스토리에를 훑었다.
그리고.
“흐응, 이 아름다운 숙녀 분은 누구?”
뭔가, 평소의 발랄한 톤에서 한 단계쯤 떨어진 것 같은 목소리가 내 귓가를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