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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영영이 의각에 나타난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잠깐 남궁유린과 인사 나누는 사이 진료 시간이 되어 있었으니까.
“다 끝났으니 이쪽으로 오십시오.”
유성은 제갈영영을 진료실 안으로 데려갔다.
성수 관련해 함께 논의할 일이 있다.
남궁유린은 안으로 사라지는 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혹시 총군사님이 나를 싫어하시는 건 아니겠지?’
눈초리가 왠지 따가워 그런 생각마저 했으나, 다시 생각해 보니 원래 총군사의 눈매는 날카로운 편이다.
딱히 개인적인 일을 비밀로 했다고 싫어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애초에 둘은 딱 두 번 만났을 뿐이니까.
남궁유린은 얌전히 경계 위치에 섰다.
종일도 아니고, 하루에 잠깐 경계 임무 서는 건 크게 부담되지 않지만,
원래 그녀는 입맹할 의사가 전혀 없었기에 아무것도 지원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다른 임무에는 모두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의각 경계 임무에는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후기지수들을 보고 그녀는 짧은 순간 큰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의각 경계 임무에는 아무도, 심지어 나도 지원하지 않았다는 걸 알면 의각주님이 서운해할지도 몰라. 난 의각주님께 오라버니의 치료까지 부탁한 사람이니까.’
아무 사이도 아닌 자신에게 의각주가 먼저 호의를 베풀었는데 안면몰수 할 수 없다.
그게 남궁유린이 의각 경계 임무에 지원한 이유다.
그녀는 혹시 모를 자객의 습격으로부터 유성을 지키는 일 역시 오라버니를 치료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고 애써 자위했다.
제갈영영은 진료실로 들어와 살짝 목소리를 낮추었다.
지금 하는 이야기는 굳이 바깥으로 새어 나가서 좋을 게 없다.
“말씀하신 성수요. 영술로 만든 거면 영수라는 이름이 낫지 않아요?”
진지한 표정으로 그런 이야기를 꺼내오자 김이 조금 샜지만, 유성이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영수는 좀… 성수라고 불러 주십시오.”
원래 이름도 성수고, 어감도 좋은데 굳이 다른 이름으로 바꾸고 싶지 않다.
“흠, 아쉽네요.”
“어쨌든, 사용해 보셨습니까?”
제갈영영이 소매에서 작은 호리병을 하나 꺼냈다.
그녀가 바빠서 며칠 의각에 들리지 못했다가, 어제 성수를 다시 받아갔었다.
오늘 새벽, 천문진법총해 공부를 재개하고 성수를 사용해 본 거다.
유성이 성수를 받아들고 살짝 흔들어 보았다.
처음 준 것에서 삼분의 이 가량 남아 있는 듯하다.
“삼할 정도 마시니까 두통이 완전히 가라앉았어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되는 거 맞나요?”
“맞습니다. 이제 대략적인 효과를 가늠할 수 있겠군요.”
크게 고개를 주억거리는 유성.
제갈영영의 표정이 샐쭉해졌다.
“효과 가늠이라… 이거 혹시 저한테 실—”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머릿결이 부드러워 보이네요.”
“허엄, 네?”
혹시 자신에게 실험한 것이냐 물으려던 제갈영영은 당황했다.
평소 외모 칭찬 따위는 거의 하지 않던 유성이 기습적으로 머릿결을 칭찬하다니.
‘아무도 못 알아보던데 어제 서역에서 들여온 물건으로 머리를 감은 걸 어떻게 알았지? 날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나 봐. 이런 것도 다 알아보고.’
아침부터 남궁유린과 유성이 비밀 이야기라는 것을 쑥덕여 약간 기분이 상했던 것이 사르르 풀렸다.
제갈영영은 괜히 머리 끄트머리를 잡고 손가락으로 배배 꼬았다.
“혹시 잘못 본 거라면 죄송합니다.”
“치, 제대로 봤어요. 티 많이 나나요?”
“...조금요.”
유성이 여자의 머릿결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아무 말이나 던졌는데 얻어 걸렸을 뿐이다.
어쨌든 진료실 안의 분위기가 봄이라도 온 듯 부드러워졌다.
제갈영영은 한결 부드러워진 눈매로 이야기를 꺼냈다.
목소리도 마찬가지로 부드럽다.
“아무튼, 성수는 하루에 얼마 못 만든다면서요? 그럼 아껴두세요. 전 어차피 매일 와서 치료받으면 되니까요.”
유성과 생각이 통했다.
성수의 편리함을 보고 매일 제공해 달라고 했으면 오히려 난감했을 텐데.
“알겠습니다.”
“참, 부군사님께 의각 의원을 늘릴 거라는 이야기는 전해 들으셨죠?”
“네, 다만 그 방식은 아직 논의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저번처럼 시험을 치르게 되겠죠?”
“방식이 결정 났어요. 오늘 성수 건으로 온 김에 말씀드릴게요. 이번에 의원 두 명 더 뽑을 거예요. 그 정도면 충분할까요?”
“물론입니다. 저까지 세 명이면 충분하지요.”
“다행이네요. 그래서 말인데, 두 사람을 뽑는 건 전적으로 백의원님께 권한을 드리기로 했어요. 혹시 생각해 두신 분 있나요?”
“제가 뽑으라고요? 의각 의원을요?”
“네, 정식 의각주가 되실 분이 뽑게 하는 게 좋겠다고 결론이 났어요. 아무래도 마음 맞는 분과 일 하시는 게 좋지 않겠어요?”
무림맹에서 일할 의원 두 사람을 뽑는 권한을 준다는 것도 인상 깊었으나 정식 의각주는 또 무슨 이야기일까.
처음 논의된 것과 다르다.
모용림 장로의 의견으로, 임시 의각주로 시작한 후 한 단계를 더 거치기로 했는데 말이다.
“정식 의각주는 의원들이 늘어난 후 한 번 더 심사를 보기로 한 거 아니었습니까?”
“저는 처음부터 의각주가 필요한 의원들을 뽑았으면 좋겠다는 쪽이었어요. 이번에 다시 정정 의견을 냈죠. 뭐, 이유는 아시겠지만 이번엔 반대 의견이 없었어요. 그러니 곧 정식 의각주가 되실 거예요. 미리 축하해요.”
짧은 기간이지만 서열 일위의 달콤함을 맛 봤던 유성으로서 나쁠 게 없는 이야기.
의각 담당자도 그의 편이고 총군사도 도와주니, 의각을 입맛대로 운영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믿을 만한 사람들로 뽑아두면 몇 달간 의각을 떠날 수 있는 체계를 만들 수 있겠는데?’
유성이 제갈영영의 가슴에 대못 박을 발칙한 계획을 세우는 줄도 모르고 그녀가 신을 내며 말을 이었다.
“뽑고 싶은 의원 두 사람이 누군지 말해주시면 문제가 없는지 철저히 조사하려고 해요. 아직 안 정해졌으면 천천히 말해주셔도 되구요.”
유성은 제갈영영의 말을 듣고, 자신 역시 뒷조사를 당했으리라 예상했다.
만약 처음에 하지 않았더라도 부군사 사건이 생겼으니 이번에는 출신 성분 정도는 했을 테고.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을지 조금 궁금했다.
‘아마 절정의 벽에 도전하다가 무공을 잃고 가문에서 쫓겨난 머저리?’
유성이 밝히지 않았기에 그가 절정 고수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멍청하다 생각할 수도 있고 측은하다 여길 수도 있는 과거인데.
다행히 제갈영영은 호의 가득한 눈빛을 보내오는 중이다.
‘고맙네. 다행이기도하고.’
이제 의각에 뽑을 의원 두 사람을 결정해야 한다.
천천히 생각해봐도 되겠지만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유성의 머릿속을 스치는 첫 번째 사람은 당연히,
‘차의원님.’
…?
‘아니, 잠깐!’
유성이 세차게 고개를 휘저었다.
제갈영영이 이상하게 쳐다보았으나 유성은 양의원이 아니라 차의원부터 떠올리는 자기 모습에 당황했다.
무의식적으로 그가 사용하던 벼루로 시선이 갔다.
멋들어진 용이 양각된 고급 벼루의 상단에는 멋진 필체로 적힌 문구가 있다.
[일침신의]
이제 많은 사람이 부르고 있는 신의라는 거창한 별호.
유성은 내심 마음에 들어 요긴하게 쓰고 있다.
그리고 그건.
‘얼마 전에 따로 만났을 때 차의원님이 준 선물이지.’
유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그의 집요함에 말려들었음을.
‘내가 졌다.’
대답을 기다리는 제갈영영에게 그의 결정을 들려주었다.
“낙양 의방의 양의원님과 차의원님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알겠어요. 차의원님도 실력이 좋으신가 봐요?”
“낙양 의방 출신이시니… 대신 차의원님은 제가 개인적으로 시험을 보고 최종 결정하겠습니다. 그래도 되겠지요?”
“그럼요. 의각 운영은 백의원님 의견을 최우선으로 반영할 테니까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두통을 치료하고 진법과 수학에 대한 책자만 교환하던 것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이제 다른 환자를 위해 자리를 비켜 주어야 한다.
제갈영영이 진료실 밖으로 나선 순간.
진료실 앞을 지키고 있던 여자와 곧바로 눈이 마주쳤다.
남궁유린.
나이는 자신보다 네 살이나 어리고 배경도 절대 꿀리지 않는다.
가문만 놓고 봤을 때 오대세가의 상석인 남궁세가 대 세 번째인 제갈세가.
게다가 무림맹 총군사 자리는 영원하지 않은데 반해 남궁유린은 나중에 가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제갈세가는 제갈영영의 오라버니가 가문을 물려받게 될 테니 배경 점수의 우위도 거의 없다.
외모는 또 어떤가.
남궁유린은 눈이 큰 미녀다.
‘남자들은 어리고 청순한 여자를 좋아한다던데…’
날카로운 자기 눈을 떠올리자 왠지 모를 패배감이 든다.
무림학관 후기지수들이 임무에 투입되면서, 일부 무림맹 지역에 그들이 출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지역은 유성이 차의원과 만나러 이동하는 경로에 있었다.
이동하던 유성은 정면에서 꼴 보기 싫은 사람을 마주쳤다.
아마 상대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표정이 잔뜩 일그러진 팽지산이 스쳐 지나갔다.
이튿날, 도왕 팽헌무가 심각한 표정으로 의각에 찾아왔다.
환자의 신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