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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소옥보다 몇 살 더 많아 보였는데 꽤 곱상한 외모였다.
소옥이 나서서 유성을 소개했다.
"사형, 이분은 이번에 무림맹 의각에 합격하신—"
"누가 그걸 몰라서 묻느냐? 문주님이 저 상태일 때 아무도 들이면 안 된다는 걸 모르느냐?"
"증상이 없으시다가 이야기중에 발작 하셨어요. 이제 와서 막아도 무의미해요. 그리고 백의원님께 제가 치료를 부탁드렸으니 비켜 주세요."
소옥이 길을 터주기를 요청했으나 사형이라 불린 사람은 길을 비키지 않았다.
"연세가 드셔서 노망이 난 걸 무슨 수로 치료한단 말이냐?"
"가능성이 보여서 시도해볼 생각이었습니다."
"아무리 백의원이라도 병이 아닌데 어떻게 치료한단 말입니까? 헛수고 말고 돌아가십시오."
상대가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병일 수도—"
소옥이 유성을 말렸다.
"일단 오늘은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백의원님. 머지 않아 발작이 사라지실 테니 그때 다시 부탁할게요."
"알겠습니다."
소옥이 다시 마차로 유성을 태워주었다.
"혹시 여기는 하오문입니까?"
"...굳이 숨길 일은 아니죠. 맞아요, 우리는 하오문이에요. 문주님이 일반인을 만나실때는 하오문인 걸 티 내지 않으셔서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녀, 상인, 문파.
세 가지를 조합해 보니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했다.
상인은 정보 상인을 뜻하는 것 같다.
하오문은 기녀, 점소이, 마부, 소매치기, 도박꾼 등 밑바닥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
하오문의 설립 목적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함으로, 그들이 가져오는 정보를 가공해 팔아먹는 정사지간의 문파다.
소옥은 하오문주의 제자인 모양이다.
"사형이라는 분과 사이가 안 좋아보이십니다. 당장 문주님을 치료하는 건 좀 힘들겠군요."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문주님이 곧 정신을 차리실 테니 다시 연락 드릴게요. 그때는 사형도 막지 못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마침 이틀 후 휴무일이니 그때부터 빈민가 사람들을 모아주시는 것 맞습니까?"
"네, 그건 제가 책임지고 진행할게요."
이튿날, 드디어 유성은 제갈영영과 식사할 수 있었다.
"저는 백의원님이 당연히 합격하실 거라 생각했어요.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양의원님과 근소한 차이였습니다. 양의원님도 대단하신 분입니다."
"몰라요. 저한테는 백의원님이 의선보다 더 뛰어나신 의원이에요."
맹목적인 신뢰를 받는다는 건 꽤 즐거운 일이다.
유성이 흡족하게 웃었다.
"앞으로는 두통 때문에 고생하시지 않도록 더 열심히 치료해드리겠습니다."
"그 말 꼭 기억할게요. 그리고 제 두통치료도 영술이라는 걸로 해주신 거 맞죠?"
"그렇습니다."
제갈영영은 가문에서 전해지는 천문진법총해 역시 무언가 신비로운 힘이 작용하는 거라고 여겼기 때문에 영술의 존재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유성이 더 대단해 보였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오직 유성만 자신을 치료해 줄 수 있다는 의미였다.
'절대 안 놔줘야지. 두 번째 진법을 익히는 건 첫 번째 진법보다 훨씬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어. 아마 백의원님이 없으면 나도 고작 두 번째 진법을 익히는 게 끝일 거야.'
유성의 의각 시험 합격, 그리고 영술을 활용한 치료법에 대한 이야기 후에, 화제는 어제 일로 넘어갔다.
"낙양 의방의 주인은 만나 보셨나요?"
"네, 어제 만나고 왔습니다. 총군사님은 그분이 하오문주라는 걸 알고 계셨지요?"
"맞아요. 무림맹에 큰 도움이 되는 분이시죠. 아시다시피 하오문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개방과 또 다르거든요.
전에 몇 번 뵌 적이 있는데 몇 년 전부터 대외활동을 중단하셔서 소식이 궁금했어요."
제갈영영은 하오문주의 상태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눈치다.
하오문에서 바깥으로 새어 나가는걸 막고 있으니 그녀로서는 알 수 없을 거다.
당연히 유성도 비밀을 지켰다.
"좋은 분이시더군요. 문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기녀들의 치료를 부탁하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유성을 직접 만났을 정도.
유성은 자기 사람을 잘 챙기는 정연같은 사람이 좋았다.
"맞아요. 좋은 분이시죠. 이전에 하오문은 돈이 된다면 정사지간을 가리지 않고 정보를 팔았는데 정연 문주님은 정파에 훨씬 호의적이세요."
"정연 문주님이 오랫동안 하오문주의 자리에 계시는 게 좋겠군요."
"그렇죠. 그쪽 후계 문제가 조금 복잡하긴 하지만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어요."
"후계… 그런 걸 저에게 말씀해주셔도 됩니까? 기밀 아닙니까?"
제갈영영이 살짝 웃었다.
"백의원님이 무림쪽 일에 관심을 안 가지셔서 그래요. 낙양의 무림인들이라면 대부분 아는 이야기예요. 어쩌면 여기 다른 층에서 사람들도 그 이야기 중일 수도 있죠."
"그렇군요."
유성의 주위에서 그런 이야기를 전해 줄 사람은 제갈영영 아니면 차의원 정도였다.
차의원은 무림쪽 일은 크게 떠들지 않으니 굳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유성이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알았어요? 맛있네요."
"차의원이랑 몇 번 와봤습니다."
유성이 아는 주루는 한 곳 뿐이라 자연스럽게 제갈영영을 여기로 안내했다.
유성은 소옥과 그녀의 사형이라는 사람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사형이라는 사람은 좀 별로였지.'
이곳 상식으로 치매가 질병이 아니라 늙어서 생긴 것으로 여겨져도, 유성이 한번 치료를 시도해 보겠다는데 그걸 막아섰다.
제자라는 사람이 되어 할 짓은 아니다.
'어쩌면 다른 꿍꿍이가 있을 수도. 후계 다툼이라, 소옥에게 별일 없겠지?'
잠깐 생각에 잠긴 유성의 귓가로 제갈영영의 음성이 들려온다.
"지금 저한테 집중 안 하고 누구 생각해요?"
"아무도요. 음식 맛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상한데..."
제갈영영이 탐색하듯 살폈으나 유성은 모르는 척 젓가락을 들어 여러 음식을 맛보았다.
며칠 후, 유성의 휴무일이 되었다.
전날 소옥이 사람을 보내 데리러 온다는 소식을 전했기에 유성은 약속 장소로 나가 기다렸다.
이제 굳이 치안 나쁜 빈민가까지 가지 않아도 하오문에서 마련해 준 장소에서 진료만 보면 된다.
빈민가 사람들을 모아 치료 받을 수 있도록 옮겨 주기로 했으니까.
마차로 그를 데리러 오기를 기다리며, 유성은 사람들을 구경했다.
상점가를 오가는 평범한 사람들과 여러 무림인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모습이다.
그런데.
"좀 늦는데. 무슨 일 있나?"
한참을 기다려도 소옥이 오지 않았다.
그녀가 직접 오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라도 보낼 텐데 유성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쉽게 약속을 어길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한 일이네. 오늘은 직접 빈민가로 가야 하나?'
포기하고 그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한 사람이 상점가 골목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유성님."
돌아보자 항상 소옥을 태우고 왔던 마부였다.
마차도 없이 맨몸이었으나 그의 얼굴이 확실하게 기억났다.
"아, 조금 늦으셨군요. 소옥님은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마부의 표정이 좋지 못했으나 유성은 그가 늦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유성님, 저희 소옥님을 좀 도와주십시오. 지금 방혁님 때문에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방혁님이라면..."
"아, 소옥님의 사형입니다."
하오문의 후계 문제가 복잡하다더니 사건이 터진 것 같다.
"무슨 일인지 자세히 말씀해주십시오."
소옥은 유성이 다녀간 후, 하오문주 정연이 머지 않아 정신을 차릴 줄 알았다.
어쩌면 정연이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생겼다.
대단한 의술 실력을 가진 유성이 노망이 아닐 수 있다지 않은가?
경쟁관계에 있는 사형이 꼬투리를 잡기 위함인지 소옥을 방해했으나, 정연이 제정신을 차리면 이제 유성을 다시 초청해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다.
보통 정연이 발작 증세를 보이면 머지 않아 제정신을 차리고는 했다.
그 순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중에 전해 듣고 나서 한탄하고는 하셨는데.
정연은 이번에 발작 후 기절하여 며칠 동안 깨어나지 못했다.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셨나?"
"예, 여전히 잠들어계십니다."
"이렇게 오래 깨어나지 못하신 적이 없는데 이상하구나. 깨어나시면 곧바로 알려다오."
하녀들에게 정연을 잘 보살펴달라 부탁한 소옥은 유성과 약속한 일을 처리해나갔다.
치료가 필요한 빈민가 사람들을 파악해 마차를 배정하고.
괴질을 앓고 있는 기녀들의 일정을 조절하여 유성의 휴무일에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고.
약재 수급도 신경 쓰고.
직접 여러 일들을 처리하던 중, 소옥은 하오문 장로들의 호출을 받게 되었다.
"소옥, 외지인을 들여 문주님이 노망난 모습을 들켰다지?"
"문주님께서 백의원님을 청해 만나다가 생긴 일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백의원님이 문주님이 노망이 아니라 병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장로들 사이에 끼어 있던 사형이 끼어들었다.
“사매의 말은 믿을 수 없다. 네 방문 이후 문주님이 기절하셔서 여태 깨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으냐? 여태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때 네가 무슨 수작을 부리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일이 생긴단 말이냐?”
소옥은 뭔가 잘못된 걸 느꼈다.
그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냥 유성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평소처럼 정연이 발작한 것이 다인데.
‘함정이야. 사형이 뭔가 손을 쓴 거야. 설마 사부님께 수작을 부릴 줄이야.’
상황을 알아챘지만 너무 늦었다.
그녀는 사형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철저히 조사 해볼 테니 얌전히 기다려라. 만약 문주님이 잘못되신다면 가만두지 않겠다.”
당대의 하오문주는 정연이고 그녀는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정파와 친하게 지내자는 쪽이다.
그러나 장로들은 두 패로 나뉘어 있다.
정연, 소옥과 같은 뜻을 가진 장로들.
반면 하오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돈이 된다면 정사지간 가리지 말고 정보를 팔아먹자는 장로들도 있다.
사형 방혁은 후자의 편이었다.
하오문주가 직접 미는 후계자는 소옥이지만 사형 역시 절반의 장로들에게 만만치 않은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정연이 노망이 난 틈을 타 사형이 무언가 일을 벌인 듯했다.
과반의 장로들이 소옥을 의심하여 그녀가 조사받기를 원했다.
결국 소옥은 별다른 반항도 하지 못하고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큰일이야. 사형은 없는 죄도 만들어 낼 거야.’
항상 근처에서 소옥을 모시던 마부가 그 모습을 보고 슬그머니 자리를 떠났다.
소옥의 심복으로 그녀를 직접 모신다는 마부가 해준 이야기.
유성이 물었다.
"소옥님을 구출하는 일이면 무림맹에 무사들을 요청해야 하지 않습니까? 의원인 제가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게… 무림맹은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다른 문파의 내부 갈등에는 끼어들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오문에서 직접 요청하지 않는 한 무림맹이 끼어들 명분이 없단다.
마부가 말을 이었다.
"의원님께는 문주님의 치료를 부탁드리려고 합니다. 소옥님께서 직접 문주님의 치료를 부탁하셨으니까요. 만약 문주님이 깨어나실 수 있다면 위기를 넘길 수 있을 겁니다.”
맞는 말이다.
유성이 정연을 치료할 수 있다면 소옥도 누명을 벗을 수 있을지 모른다.
‘무림맹이 나서지 못한다면 지금 상황에서 그들을 도와줄 사람은 나 뿐이다.'
게다가 마부의 마지막 말도 유성의 흥미를 끌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문주님은 수많은 하오문도들의 존경을 받는 분입니다. 도와주신다면 저희는 백의원님의 은혜를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하오문도들의 수는 얼마나 될까?
진한 신성력의 향기가 풍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