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341 lines
12 KiB
Markdown
341 lines
12 KiB
Markdown
|
||
접객당은 손님을 맞이하는 곳.
|
||
|
||
원래 남궁유린이 할아버지인 검왕을 맞이한 장소인데, 그가 보이지 않아 행방을 먼저 물었다.
|
||
|
||
진료중에 들어오면 괜히 번거로울 테니까.
|
||
|
||
“여기서 당분간 머무르시기로 하셔서 무림맹에 인사하러 가셨어요.”
|
||
|
||
다행이다.
|
||
|
||
“그럼 당장 가문으로 돌아가시지는 않는 겁니까?”
|
||
|
||
남궁유린은 기뻐보이는 유성을 보자 슬쩍 웃음이 나왔다.
|
||
|
||
그녀도 기뻤으니까.
|
||
|
||
시녀를 피할 수 있어서인지, 다른 이유인지는 그녀도 확신하지 못했지만.
|
||
|
||
“네. 당분간 돌아가지 않아도 돼요. 대신 할아버지께 무공을 배우기로 했지만요.”
|
||
|
||
“검왕께서 직접 무공을 가르쳐 주신다구요? 축하드립니다.”
|
||
|
||
“...고마워요.”
|
||
|
||
검왕에게 직접 무공을 배우는 건 무림인에게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었나?
|
||
|
||
축하를 건넸음에도 왠지 석연치 않아 보이는 그녀의 표정에 유성은 얼른 본론으로 넘어갔다.
|
||
|
||
“아, 제가 찾아온 이유는—”
|
||
|
||
“자, 잠시만요!”
|
||
|
||
흡- 후.
|
||
|
||
흡- 후.
|
||
|
||
남궁유린은 심호흡했다.
|
||
|
||
전에 보름달 아래 정자에 나란히 앉아, 유성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마저 잇지 못한 게 떠오른다.
|
||
|
||
‘분위기도 그렇고, 분명 고백하려고 하셨을 거야.’
|
||
|
||
장칠이 달려오지 않았다면…
|
||
|
||
아마 자신이 돌아가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유성이 급하게 달려온 듯하다.
|
||
|
||
‘지금 안 돌아간다고 말씀 드렸는데 의각주님은 왜 이렇게 급하실까?’
|
||
|
||
아직 어떤 답변을 돌려줘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는데.
|
||
|
||
분명 유성에게 호감이 있지만 고백을 받아드릴 정도인지는 모르겠다.
|
||
|
||
‘모르겠어. 그냥 마음이 이끄는 대로 답하자.’
|
||
|
||
결심한 남궁유린이 입을 열었다.
|
||
|
||
“이제 말씀해주셔도 돼요. 준비됐어요.”
|
||
|
||
꿀꺽.
|
||
|
||
다시 한번 마른침이 넘어간다.
|
||
|
||
“아, 네. 제가 소저의 몸을 좀 살펴보고 싶습니다.”
|
||
|
||
“뭐, 뭐라구요? 버, 벌써요?”
|
||
|
||
“벌써라뇨? 처음이지 않습니까.”
|
||
|
||
“당연히 처음이죠! 의각주님, 그렇게 안봤는데 무례하시네요!”
|
||
|
||
남궁유린은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 질렀다.
|
||
|
||
듣자 하니 못 하는 소리가 없다.
|
||
|
||
아무리 얼굴 좀 잘생겼기로서 어떻게 처녀에게 그런 말을 한단 말인가?
|
||
|
||
그동안 조금씩 쌓아 가던 호감도가 수직 하락했다.
|
||
|
||
오라버니의 눈 치료에 관한 것만 아니면 이 음란한 사람과는 아무 말도 섞지 않을 테다, 라고 다짐한 순간.
|
||
|
||
“진료 받는 걸 그렇게 싫어하실 줄 몰랐습니다. 함부로 요청해서 죄송합니다.”
|
||
|
||
“...네?”
|
||
|
||
“네?”
|
||
|
||
유성이 ‘몸을 살펴보겠다’라고 하는 건 환자에게 으레 사용하는 말이다.
|
||
|
||
의원이 환자에게 사용하기에 전혀 이상하지 않은 말.
|
||
|
||
본래 머리만 살펴볼 생각이었으나, 인후 또는 다른 쪽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몸 전체를 신성력으로 살펴볼 생각이었던 것.
|
||
|
||
뭔가 병이 있다면 조기에 발견하는 게 좋으니까.
|
||
|
||
그런데.
|
||
|
||
남궁유린의 얼굴이 급속도로 붉게 물들었다.
|
||
|
||
홍당무?
|
||
|
||
그 정도가 아니다.
|
||
|
||
톡 건드리면 터져 버릴 듯 새빨갛게 익은 홍시 같았다.
|
||
|
||
분노한 것 같기도 하다.
|
||
|
||
‘내가 뭘 했다고… 트라우마 같은 게 아니라 설마 팽지산처럼 머리에 문제 있는 거 아닌가?’
|
||
|
||
유성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
지금은 대화를 나눠봤자 분노만 더 유발할 뿐이다.
|
||
|
||
“그…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
||
|
||
접객당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
||
|
||
슥.
|
||
|
||
유성의 소매가 붙잡혔다.
|
||
|
||
이어, 모기만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
||
|
||
“진료… 해주셔도 돼요…”
|
||
|
||
사람의 태도가 이렇게 순식간에 뒤바뀌어도 되는 걸까?
|
||
|
||
‘팽지산은 일관적이기라도 했지.’
|
||
|
||
심각한 오해가 생길 뻔했지만, 다행히 그녀의 다음 말에 풀렸다.
|
||
|
||
“아까는 제가 잘못 들어서 착각했어요. 소리 질러서 죄송해요…”
|
||
|
||
“아, 그랬군요. 그럼 진료 해 보겠습니다. 몇 가지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었거든요.”
|
||
|
||
그녀가 무슨 착각을 했는지는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하고, 유성은 다시 자리에 앉아 남궁유린의 손목을 잡았다.
|
||
|
||
신성력을 흘려 넣어 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
||
|
||
‘역시 남궁세가의 직계라는 건가?'
|
||
|
||
팽지산의 근골까지 제대로 살펴본 적은 없으나, 남궁유린은 다른 무림학관 생도들보다 월등한 근골을 가지고 있었다.
|
||
|
||
‘하긴, 그러니까 검왕이 직접 무공을 전수하겠지.’
|
||
|
||
납득한 유성은 그녀의 몸에 특별한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하고 신성력을 뇌쪽으로 올려보냈다.
|
||
|
||
그녀를 진료하고 싶었던 진짜 이유.
|
||
|
||
대련을 지켜보는 게 괴롭다는 말.
|
||
|
||
어떤 트라우마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
||
|
||
마침내 신성력이 뇌까지 도달했을 때,
|
||
|
||
‘역시…’
|
||
|
||
유성은 옅은 회색 아지랑이를 발견했다.
|
||
|
||
팽지산과 같은 계열의 정신병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 하지만,
|
||
|
||
회색 아지랑이가 옅은 걸 보면 트라우마로 인한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
|
||
|
||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은 걸 수도 있고.
|
||
|
||
다만, 지금은 치료할 방법이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
||
|
||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
||
|
||
남궁유린이 유성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
||
|
||
“음...”
|
||
|
||
어떻게 말해야 할까.
|
||
|
||
당장 치료할 수 있다면 흔쾌히 공개하겠지만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게 그녀에게 도움이 될지 알 수 없어 망설였다.
|
||
|
||
그리고 그건 진료받는 당사자의 처지에서는 꽤 공포스러운 일이다.
|
||
|
||
다 죽어 가는 사람도 살려내던 유성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니!
|
||
|
||
최악의 가정마저 하게 만들었다.
|
||
|
||
“호, 혹시 저 죽나요?”
|
||
|
||
“그럴 리가요. 그런 거 아닙니다.”
|
||
|
||
“그럼 심각한 문제라도 있나요?”
|
||
|
||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이 정도로 물어보는데 더 이상 숨기기는 힘들다.
|
||
|
||
“...사실 발견한 게 있습니다만, 제가 지금은 별로 도움이 못 될 거 같아 망설여지네요. 제 이야기를 들으면 괴로울 수 있으니 소저가 이야기 들을지 결정해주셔야겠습니다.”
|
||
|
||
평소였다면 남궁유린은 듣지 않는 걸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
||
|
||
자기 몸에 관한 이야기지만 유성이 들려주기를 꺼려하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
||
|
||
문제가 커질까 회피하기 바빴던 성격 탓이다.
|
||
|
||
그런데 조금 전 있었던 경험.
|
||
|
||
검왕에게 당당하게 의사를 전달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진 일은 자신도 믿기 힘든 성과였다.
|
||
|
||
제왕검형을 배우는 게 썩 달갑지는 않지만 가문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로 돌아온 것이다.
|
||
|
||
그래서, 그녀는 결정을 내렸다.
|
||
|
||
부딪혀 보기로.
|
||
|
||
“들을게요. 말씀해주셔도 돼요.”
|
||
|
||
“그렇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쩌면 소저가 이미 잘 알고 계실지도 모릅니다만...”
|
||
|
||
“...”
|
||
|
||
“제가 추측하기로, 소저는 심상을 앓고 계신 것 같습니다.”
|
||
|
||
심상.
|
||
|
||
마음의 상처.
|
||
|
||
그리고 유성이 전달하고자 하는 심상의 의미는 정신질환, 그중에서도 트라우마다.
|
||
|
||
“역시 그런가요?”
|
||
|
||
남궁유린의 표정이 어둡다.
|
||
|
||
“알고 계셨군요.”
|
||
|
||
“네. 혹시 어떤 것 때문인지도 짐작 하시나요?”
|
||
|
||
“지난번 이야기로 미루어 보아 대련과 관계된 게 아닐까 합니다만.”
|
||
|
||
남궁유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
“맞아요. 기억하고 계시네요. 음… 제가 자세히 이야기해드리는 게 도움이 되나요?”
|
||
|
||
마음의 병을 얻게 된 계기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
||
|
||
“치료에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
||
|
||
“좋아요. 그때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끔찍하긴 하지만... 말씀 드릴게요.”
|
||
|
||
‘이번에도 한 발 나아가 보자.’
|
||
|
||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
그녀가 열 살 무렵.
|
||
|
||
오라버니 남궁유현이 가문의 일류 무사와 펼치는 진검 대련을 지켜보았다.
|
||
|
||
평소에도 자주 대련을 지켜보고는 했지만, 그날은 유독 남궁유린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
||
|
||
일류 무사는 오라버니의 좋은 대련 상대였다.
|
||
|
||
오라버니는 대연검법을 거쳐, 직계에게 전수되는 창궁무애검법을 펼치고 있었다.
|
||
|
||
끝없는 푸른 하늘을 거리낌 없이 누비는 한 자루의 검.
|
||
|
||
세상의 제약을 넘어 자유롭게 펼쳐지는 검로를 보며 남궁유린이 느끼는 것은 경외였다.
|
||
|
||
검로가 뇌리에 각인되는 것 같았다.
|
||
|
||
‘오라버니는 정말 대단해. 나도 오라버니처럼 멋진 고수가 되어야지. 언젠가 창궁무애검법도 배울 거야.’
|
||
|
||
그 무렵의 남궁유린은 무공을 수련하는 것이 즐거웠다.
|
||
|
||
수련도 자발적으로 열심히 했다.
|
||
|
||
그녀는 오라버니의 모습을 눈에 담다가 전담 시녀 겸 호위무사인 주연과 함께 다른 연무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
||
|
||
“언니, 우리도 대련하자!”
|
||
|
||
남궁유린보다 열 살 많은 시녀는 이류 무사였다.
|
||
|
||
본격적으로 무공을 배운 지 얼마 안 된 남궁유린을 상대하기에 충분한 실력자다.
|
||
|
||
남궁유린은 그날따라 오라버니를 따라 진검을 들고 싶어졌다.
|
||
|
||
“언니, 진검으로 대련 해도 돼?”
|
||
|
||
“아가씨, 잘못하면 다칠 수도 있어요.”
|
||
|
||
“언니는 고수잖아. 여태 한 번도 못 이겼는데 뭘.”
|
||
|
||
시녀는 잠깐 고민하다가 허락했다.
|
||
|
||
아직 수준 차이가 많이 나서, 자신만 조심하면 다칠 일이 없다고 판단했다.
|
||
|
||
“그래요. 대신 제대로 못 다룰 거 같으면 목검을 드셔야 해요.”
|
||
|
||
“응, 좋아!”
|
||
|
||
남궁유린은 어릴 적 오라버니가 쓰던 진검을 들었다.
|
||
|
||
목검보다 묵직했지만, 특수 제작되어 휘두를 정도는 됐다.
|
||
|
||
태어나 처음으로 진검을 들어 보았다.
|
||
|
||
‘목검보다 훨씬 느낌이 좋아. 뭐든지 할 수 있을 거 같아.’
|
||
|
||
대련이 시작되었다.
|
||
|
||
평소처럼 대연검법으로 공격을 시작한 남궁유린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
||
|
||
‘검이 답답해하는 거 같은데.’
|
||
|
||
주연과 몇 차례 초식을 주고받았으나 답답함은 가시지 않고 더 커지기만 했다
|
||
|
||
‘아무래도 이게 아닌 것 같아.’
|
||
|
||
그동안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던 대연검법의 검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
||
|
||
남궁유린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다음 공격 때 대연검법 초식의 틀을 깨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검을 휘둘러보았다.
|
||
|
||
무의식중에 펼친 초식은 남궁유현이 펼쳤던 창궁무애검법의 그것과 꼭 닮아 있었고,
|
||
|
||
주연이 다급하게 펼친 방어 초식을 뚫어내고 그녀의 얼굴을 깊게 베어 버렸다.
|
||
|
||
촤악—!!
|
||
|
||
피가 뿜어져 나왔다.
|
||
|
||
세상이 멈춘 듯했다.
|
||
|
||
좋아하는 남자와 곧 혼인할 거라고 들떠 있던 주연이 쓰러지는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
||
|
||
피를 흠뻑 뒤집어쓴 남궁유린의 손이 덜덜 떨렸다.
|
||
|
||
***
|
||
|
||
유성은 크게 당황했다.
|
||
|
||
'아니, 이 정도 이야기일 줄은 몰랐는데!'
|
||
|
||
눈앞에서 남궁유린이 또 울음을 터뜨렸다.
|
||
|
||
벌써 몇 번째 보는 눈물인지.
|
||
|
||
이번에는 자신이 울린 것 같아 큰 죄책감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