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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객당은 손님을 맞이하는 곳.
원래 남궁유린이 할아버지인 검왕을 맞이한 장소인데, 그가 보이지 않아 행방을 먼저 물었다.
진료중에 들어오면 괜히 번거로울 테니까.
“여기서 당분간 머무르시기로 하셔서 무림맹에 인사하러 가셨어요.”
다행이다.
“그럼 당장 가문으로 돌아가시지는 않는 겁니까?”
남궁유린은 기뻐보이는 유성을 보자 슬쩍 웃음이 나왔다.
그녀도 기뻤으니까.
시녀를 피할 수 있어서인지, 다른 이유인지는 그녀도 확신하지 못했지만.
“네. 당분간 돌아가지 않아도 돼요. 대신 할아버지께 무공을 배우기로 했지만요.”
“검왕께서 직접 무공을 가르쳐 주신다구요? 축하드립니다.”
“...고마워요.”
검왕에게 직접 무공을 배우는 건 무림인에게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었나?
축하를 건넸음에도 왠지 석연치 않아 보이는 그녀의 표정에 유성은 얼른 본론으로 넘어갔다.
“아, 제가 찾아온 이유는—”
“자, 잠시만요!”
흡- 후.
흡- 후.
남궁유린은 심호흡했다.
전에 보름달 아래 정자에 나란히 앉아, 유성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마저 잇지 못한 게 떠오른다.
‘분위기도 그렇고, 분명 고백하려고 하셨을 거야.’
장칠이 달려오지 않았다면…
아마 자신이 돌아가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유성이 급하게 달려온 듯하다.
‘지금 안 돌아간다고 말씀 드렸는데 의각주님은 왜 이렇게 급하실까?’
아직 어떤 답변을 돌려줘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는데.
분명 유성에게 호감이 있지만 고백을 받아드릴 정도인지는 모르겠다.
‘모르겠어. 그냥 마음이 이끄는 대로 답하자.’
결심한 남궁유린이 입을 열었다.
“이제 말씀해주셔도 돼요. 준비됐어요.”
꿀꺽.
다시 한번 마른침이 넘어간다.
“아, 네. 제가 소저의 몸을 좀 살펴보고 싶습니다.”
“뭐, 뭐라구요? 버, 벌써요?”
“벌써라뇨? 처음이지 않습니까.”
“당연히 처음이죠! 의각주님, 그렇게 안봤는데 무례하시네요!”
남궁유린은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 질렀다.
듣자 하니 못 하는 소리가 없다.
아무리 얼굴 좀 잘생겼기로서 어떻게 처녀에게 그런 말을 한단 말인가?
그동안 조금씩 쌓아 가던 호감도가 수직 하락했다.
오라버니의 눈 치료에 관한 것만 아니면 이 음란한 사람과는 아무 말도 섞지 않을 테다, 라고 다짐한 순간.
“진료 받는 걸 그렇게 싫어하실 줄 몰랐습니다. 함부로 요청해서 죄송합니다.”
“...네?”
“네?”
유성이 ‘몸을 살펴보겠다’라고 하는 건 환자에게 으레 사용하는 말이다.
의원이 환자에게 사용하기에 전혀 이상하지 않은 말.
본래 머리만 살펴볼 생각이었으나, 인후 또는 다른 쪽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몸 전체를 신성력으로 살펴볼 생각이었던 것.
뭔가 병이 있다면 조기에 발견하는 게 좋으니까.
그런데.
남궁유린의 얼굴이 급속도로 붉게 물들었다.
홍당무?
그 정도가 아니다.
톡 건드리면 터져 버릴 듯 새빨갛게 익은 홍시 같았다.
분노한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뭘 했다고… 트라우마 같은 게 아니라 설마 팽지산처럼 머리에 문제 있는 거 아닌가?’
유성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대화를 나눠봤자 분노만 더 유발할 뿐이다.
“그…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접객당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슥.
유성의 소매가 붙잡혔다.
이어, 모기만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진료… 해주셔도 돼요…”
사람의 태도가 이렇게 순식간에 뒤바뀌어도 되는 걸까?
‘팽지산은 일관적이기라도 했지.’
심각한 오해가 생길 뻔했지만, 다행히 그녀의 다음 말에 풀렸다.
“아까는 제가 잘못 들어서 착각했어요. 소리 질러서 죄송해요…”
“아, 그랬군요. 그럼 진료 해 보겠습니다. 몇 가지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었거든요.”
그녀가 무슨 착각을 했는지는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하고, 유성은 다시 자리에 앉아 남궁유린의 손목을 잡았다.
신성력을 흘려 넣어 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역시 남궁세가의 직계라는 건가?'
팽지산의 근골까지 제대로 살펴본 적은 없으나, 남궁유린은 다른 무림학관 생도들보다 월등한 근골을 가지고 있었다.
‘하긴, 그러니까 검왕이 직접 무공을 전수하겠지.’
납득한 유성은 그녀의 몸에 특별한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하고 신성력을 뇌쪽으로 올려보냈다.
그녀를 진료하고 싶었던 진짜 이유.
대련을 지켜보는 게 괴롭다는 말.
어떤 트라우마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마침내 신성력이 뇌까지 도달했을 때,
‘역시…’
유성은 옅은 회색 아지랑이를 발견했다.
팽지산과 같은 계열의 정신병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 하지만,
회색 아지랑이가 옅은 걸 보면 트라우마로 인한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은 걸 수도 있고.
다만, 지금은 치료할 방법이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남궁유린이 유성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음...”
어떻게 말해야 할까.
당장 치료할 수 있다면 흔쾌히 공개하겠지만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게 그녀에게 도움이 될지 알 수 없어 망설였다.
그리고 그건 진료받는 당사자의 처지에서는 꽤 공포스러운 일이다.
다 죽어 가는 사람도 살려내던 유성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니!
최악의 가정마저 하게 만들었다.
“호, 혹시 저 죽나요?”
“그럴 리가요.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럼 심각한 문제라도 있나요?”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이 정도로 물어보는데 더 이상 숨기기는 힘들다.
“...사실 발견한 게 있습니다만, 제가 지금은 별로 도움이 못 될 거 같아 망설여지네요. 제 이야기를 들으면 괴로울 수 있으니 소저가 이야기 들을지 결정해주셔야겠습니다.”
평소였다면 남궁유린은 듣지 않는 걸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자기 몸에 관한 이야기지만 유성이 들려주기를 꺼려하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문제가 커질까 회피하기 바빴던 성격 탓이다.
그런데 조금 전 있었던 경험.
검왕에게 당당하게 의사를 전달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진 일은 자신도 믿기 힘든 성과였다.
제왕검형을 배우는 게 썩 달갑지는 않지만 가문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로 돌아온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결정을 내렸다.
부딪혀 보기로.
“들을게요. 말씀해주셔도 돼요.”
“그렇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쩌면 소저가 이미 잘 알고 계실지도 모릅니다만...”
“...”
“제가 추측하기로, 소저는 심상을 앓고 계신 것 같습니다.”
심상.
마음의 상처.
그리고 유성이 전달하고자 하는 심상의 의미는 정신질환, 그중에서도 트라우마다.
“역시 그런가요?”
남궁유린의 표정이 어둡다.
“알고 계셨군요.”
“네. 혹시 어떤 것 때문인지도 짐작 하시나요?”
“지난번 이야기로 미루어 보아 대련과 관계된 게 아닐까 합니다만.”
남궁유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기억하고 계시네요. 음… 제가 자세히 이야기해드리는 게 도움이 되나요?”
마음의 병을 얻게 된 계기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치료에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좋아요. 그때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끔찍하긴 하지만... 말씀 드릴게요.”
‘이번에도 한 발 나아가 보자.’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가 열 살 무렵.
오라버니 남궁유현이 가문의 일류 무사와 펼치는 진검 대련을 지켜보았다.
평소에도 자주 대련을 지켜보고는 했지만, 그날은 유독 남궁유린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일류 무사는 오라버니의 좋은 대련 상대였다.
오라버니는 대연검법을 거쳐, 직계에게 전수되는 창궁무애검법을 펼치고 있었다.
끝없는 푸른 하늘을 거리낌 없이 누비는 한 자루의 검.
세상의 제약을 넘어 자유롭게 펼쳐지는 검로를 보며 남궁유린이 느끼는 것은 경외였다.
검로가 뇌리에 각인되는 것 같았다.
‘오라버니는 정말 대단해. 나도 오라버니처럼 멋진 고수가 되어야지. 언젠가 창궁무애검법도 배울 거야.’
그 무렵의 남궁유린은 무공을 수련하는 것이 즐거웠다.
수련도 자발적으로 열심히 했다.
그녀는 오라버니의 모습을 눈에 담다가 전담 시녀 겸 호위무사인 주연과 함께 다른 연무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언니, 우리도 대련하자!”
남궁유린보다 열 살 많은 시녀는 이류 무사였다.
본격적으로 무공을 배운 지 얼마 안 된 남궁유린을 상대하기에 충분한 실력자다.
남궁유린은 그날따라 오라버니를 따라 진검을 들고 싶어졌다.
“언니, 진검으로 대련 해도 돼?”
“아가씨, 잘못하면 다칠 수도 있어요.”
“언니는 고수잖아. 여태 한 번도 못 이겼는데 뭘.”
시녀는 잠깐 고민하다가 허락했다.
아직 수준 차이가 많이 나서, 자신만 조심하면 다칠 일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요. 대신 제대로 못 다룰 거 같으면 목검을 드셔야 해요.”
“응, 좋아!”
남궁유린은 어릴 적 오라버니가 쓰던 진검을 들었다.
목검보다 묵직했지만, 특수 제작되어 휘두를 정도는 됐다.
태어나 처음으로 진검을 들어 보았다.
‘목검보다 훨씬 느낌이 좋아. 뭐든지 할 수 있을 거 같아.’
대련이 시작되었다.
평소처럼 대연검법으로 공격을 시작한 남궁유린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검이 답답해하는 거 같은데.’
주연과 몇 차례 초식을 주고받았으나 답답함은 가시지 않고 더 커지기만 했다
‘아무래도 이게 아닌 것 같아.’
그동안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던 대연검법의 검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궁유린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다음 공격 때 대연검법 초식의 틀을 깨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검을 휘둘러보았다.
무의식중에 펼친 초식은 남궁유현이 펼쳤던 창궁무애검법의 그것과 꼭 닮아 있었고,
주연이 다급하게 펼친 방어 초식을 뚫어내고 그녀의 얼굴을 깊게 베어 버렸다.
촤악—!!
피가 뿜어져 나왔다.
세상이 멈춘 듯했다.
좋아하는 남자와 곧 혼인할 거라고 들떠 있던 주연이 쓰러지는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피를 흠뻑 뒤집어쓴 남궁유린의 손이 덜덜 떨렸다.
유성은 크게 당황했다.
'아니, 이 정도 이야기일 줄은 몰랐는데!'
눈앞에서 남궁유린이 또 울음을 터뜨렸다.
벌써 몇 번째 보는 눈물인지.
이번에는 자신이 울린 것 같아 큰 죄책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