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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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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말리온.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으로, 현실의 여성에게 혐오와 환멸을 느껴 직접 이상형을 조각한 남성이다. 심지어 그 조각상과 결혼하고 아이까지 가졌다.
아무리 여신의 도움이 있었다고 한들, 기본은 돌덩이인 육체와 성관계를 나눈 것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는 굳이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아마 아프로디테가 조각상을 사람이랑 똑같은 형태로 만들어준 거겠지.
인간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자동인형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기야 했다만, 솔직히 말해서 그리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그가 신비라는 형태로 세상에 다시 나타났다는 것이다.
“처음 발견된 곳은 김포의 공공 화장실 안이었습니다.”
발걸음을 옮기며 김이서가 말했다.
“이상한 망치 소리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경찰이 현장에 찾아갔습니다만, 그 자리에서 대부분 살해당했습니다. 그 후에 관리국으로 사건이 이전되었죠. 발견된 게 비교적 최근이라, 제법 자세히 기억납니다.”
“…….”
“경찰들의 사인은 조각상이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피그말리온이 망치를 후려치는 순간, 조각상이 되어 박살 나 사망했습니다. 당연히 피나 장기 같은 건 없었습니다.”
“제법 난폭한 신비인 모양인데.”
“그건 또 아닙니다. 피그말리온은 온화한 성격입니다.”
그녀가 왼쪽으로 코너를 꺾었다. 지나가던 격리팀 직원들이 그녀를 향해 인사를 건네주고, 김이서도 적당히 받아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여성에겐 가차 없습니다. 원본 피그말리온 또한 현실의 여성은 혐오했으니까요.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그럼 같은 남성이면 문제없는 건가?”
“그렇습니다. 현장에서 사망한 경찰도 전부 여성이었습니다. 애초에 피그말리온 자체가 여자 화장실에 있었습니다.”
“등장한 연유는?”
“모릅니다. 여타 다른 신비가 그렇듯, 그 자리에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뚜벅.
김이서가 발걸음을 멈추고 한 격리실 앞에 섰다. 이안이 그녀의 뒤에서 격리실 문 옆에 달린 명패를 확인했다.
[피그말리온]
선명한 회색빛으로 적힌 명패. 돌가루가 살짝 떨어지는 것을 보아하니 괴이의 성격에 맞게 조각으로 장식한 모양이다. 아마 이것 또한 놈을 격리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문 옆에 달린 창문 사이로 미세한 물 냄새가 풍겨왔다. 슬쩍 고개를 돌려 확인해 보니 방의 가장자리를 타고 흐르는 물줄기가 보였다.
그리 많은 양은 아니지만, 적당히 운치를 즐길 정도는 되는 수류. 김이서는 격리실 옆에 쌓여있는 마스크를 꺼내 착용하며 조심스레 말했다.
“피그말리온은 관리국 내부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인간에게 친화적인 괴이입니다. 다만 아시다시피, 모든 신비는 결과적으로 인간에게 해롭습니다. 그 또한 마찬가지죠.”
방의 중앙에는 상아로 이루어진 남성 형태의 조각상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조각상은 돌망치와 못을 들고 진열장 위에 놓인 누군가의 얼굴을 새롭게 조립하는 중이었다. 바닥으로 돌가루가 후드득 떨어지고, 흐르는 물을 타며 그것들이 배수구로 빨려 들어갔다.
“피그말리온과 대화할 수 있는 최장 시간은 20분입니다. 그 이상을 넘어가면 피그말리온이 영감을 얻고, 남녀 상관없이 상대방을 ‘조각’하려 듭니다. 물리적인 파괴가 불가능한 개체이기에, 생존을 위해선 빠르게 자리를 피해야 합니다.”
“…….”
“또한 그의 조각상을 비난하거나 비평해선 안 됩니다. 굳이 칭찬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20분 동안은 안전한가?”
“남성이라면 안전합니다. 운이 좋다면 그가 직접 당신을 위해 조각상을 만들어줄 수도 있을 겁니다.”
“…….”
조각상을 만들어준다니.
듣기에는 굉장히 꺼림칙하지만, 관리국피셜 운이 좋다고 말할 정도라면 최소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 받아서 마법으로 분해하거나 재창조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터.
이안은 김이서가 건네주는 마스크를 착용하며 조각에 열중하고 있는 피그말리온을 돌아보았다. 아직 그는 두 사람을 인식하지 못한 것처럼 느릿느릿 망치를 휘둘러댔다.
깡, 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울려 퍼질 때마다 미약한 피 냄새가 수향(水香)에 섞여 풍겨왔다.
조각하는 덩어리 중 일부가 본래 사람이었기 때문에 번져오는 향이었다. 카르텔을 통해 조달하는 시체나 사형수의 몸뚱어리 중 일부는 저곳에 있을 것이다.
그리 놀랍지도 않은 사실이었다. 카르텔이 취급하는 품목 중에서 가공한 인간의 살점이나 장기, 혹은 통째로 된 시체 하나가 있다는 것쯤이야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들과 나름 협력 관계를 구축한 관리국이 카르텔의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덕분에 그들이 어떻게 시체를 가져 왔는지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대신, 괴이와의 직접적인 대화에 호기심이 동했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신비랑 긴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어.
팔척귀신? 그 자리에서 팔을 뽑았다.
원숭이? 안타깝게도 이안은 원숭이보다 진화된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뱀파이어? 그 구울보다 강한 괴물들이 언어 체계를 가지고 있을까?
테마파크에 있는 직원들과는 대화를 조금 나눠보기는 했지만, 그건 전부 공간에 어울리는 문답이 전부였다. 병원도 마찬가지다.
유일하게 도서관에서 사서와 제법 긴 대화를 나눠보았지만, 그때 그의 상태는 사실상 유치원생과 다를 바가 없었다. 멀쩡한 상태의 신비는 결코 아니었다. 크루즈의 선장 또한 신비보단 신비와 결합한 인간에 더욱 가까운 형태였고.
그러니 굳이 따지자면 이번이 신비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는 첫 번째 기회였다.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었다.
“20분 동안 안전하다면 괴이랑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데, 가능한가?”
이안이 마도서를 까딱이며 물었다. 김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합니다. 다만 저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일단은 여성이니까요.”
“딱히 상관없어. 내 몸 정도야 혼자 지킬 수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문제가 생긴다면 이걸 꾹 눌러주십시오.”
스윽.
그녀가 방범 벨처럼 생긴 물건을 이안에게 내밀었다. 흔히 미성년자들이 차고 다니는 그 벨이 맞았다.
“…….”
이안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벨을 받아 들었다. 생긴 건 좀 그래도, 안전 수단을 하나 주겠다는데 마다할 필요는 없었다.
“사용법은 그냥 누르면 되나?”
“예. 사용하면 마법사님 주변으로 다가오는 모든 유기물과 무기물들의 속도가 굉장히 느려질 겁니다.”
“……뭐, 어린이 보호구역 괴이 같은 건가?”
“정확하게 짚으셨습니다. 비슷한 원리죠.”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밖에 안 나왔다. 이안은 한숨을 푹 내쉬며 벨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격리실의 출입 버튼을 눌렀다.
지이잉.
아무런 저항 없이 문이 옆으로 열렸다. 그와 동시에 화악 풍겨오는 돌과 피, 그리고 물 냄새. 이안은 잠깐 걸음을 멈췄다가, 마도서를 펼치기 쉽게 잡으며 천천히 피그말리온을 향해 다가갔다. 몇 걸음 가지 않아 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
창문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매끈한 벽이 전부다. 아무래도 내부에서 외부를 볼 수 없도록 조처를 해둔 모양.
나름 합리적인 방비였다. 이안은 숨을 길게 토해내며 격리실의 이중문을 열고, 본격적으로 피그말리온의 작업실에 발을 들였다.
까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을 굴러다니는 돌가루가 신발에 밟혔다. 그와 동시에 피그말리온이 입을 열었다.
“잠깐 의자에 앉아서 기다려라. 이번 작업만 끝내지.”
움직이는 조각상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두꺼웠고, 또한 깨끗했다. 평범한 사람과 다른 점은 살짝 끊어지듯이 들린다는 게 전부였다. 나머지는 사람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
이안은 그의 말을 굳이 거스르지 않고, 적당히 벽에 기대어 서서 그를 기다렸다. 피그말리온의 고개가 순간 그를 향해 돌아갔다가 다시 조각으로 기울어졌다.
잠시 후, 조각의 마무리 작업을 마친 그가 망치를 테이블에 놓아두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가 움직이는 대로, 육체를 형성하고 있는 그의 조각상 몸뚱이가 바스러졌다가 다시 재생했다.
“그래서.”
정리를 마치고, 피그말리온이 이안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대단한 마법사께서 무슨 일로 찾아오셨는가.”
삐그덕삐그덕.
그가 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이안 근처로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안은 손에 쥔 마도서의 표지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대답했다.
“잠깐 대화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
“아, 대화. 좋지. 여성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남성이라면 누구든지 환영이다. 취향이 어떻게 되지? 얼굴은 예쁜 편을 선호하나? 아니면 추한 편? 몸매는? 가슴과 엉덩이는 역시 큰 게 좋나? 털은 무조건 없어야 할 테고.”
생각보다 더욱 천박한 내용의 대화 주제가 튀어나왔다. 이안의 얼굴이 순간 구겨졌지만, 그는 근처에 진열된 조각상을 들여다보며 대충 대답했다.
“……몸매는 아무래도 좋아. 얼굴만 예쁘면 된다.”
“아, 맞는 말이군. 결국 궁극적인 아름다운 얼굴이니까. 그래서 나 같은 조각사들이 얼굴을 세심하게 깎는 거지.”
그가 쾌활하게 웃으며 구석에 놓아둔 조각상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거 보이나? 아프로디테 님의 외형을 본떠서 만든 조각상인데, 내가 깎은 모든 조각상 중 저게 가장 아름답지. 그래서 밤마다 생명을 불어넣어 진짜 아프로디테 님처럼 움직이게 하는 중이다.”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원본 피그말리온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 신화에서 그가 만든 조각상이 여신의 힘 덕분에 생명을 얻은 반면, 피그말리온 괴이는 직접 자신의 힘으로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예상보다 훨씬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괜히 관리국에서 그를 이리 붙잡아 놓고 있는 게 아닌 모양이다. 이안은 침음성을 흘리며 벽에서 몸을 떨어뜨렸다.
“넌 언제부터 존재했지?”
“글쎄. 잘 모르겠군. 그런 걸 생각하며 사는 성격은 아니라서 말이지.”
피그말리온이 큭큭 웃으며 손가락 사이로 못을 돌려댔다. 그의 관절이 움직일 때마다 돌가루가 후드득 떨어졌다.
“그보다…… 음. 널 보고 있으며 영감이 마구 샘솟는군. 아주 오랜만에 보는 훌륭한 모델이야.”
“……뭐?”
“말했다시피, 나는 이 세상에서 얼굴을 가장 중시한다. 다른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야. 얼굴이 제일 중요하다는 뜻이지.”
“…….”
“그 점에서 네 얼굴은 제법 훌륭하군. 하지만…… 괜히 마법사를 자극할 필요는 없겠지. 네 얼굴을 조각하는 일은 피하마.”
피그말리온이 아쉽다는 듯 입술을 핥으며 못을 내려놓았다.
“그래도 영감을 주기는 했으니 나도 한 가지 보답하겠다. 원하는 모델을 말하면 그 형태 그대로 깎아주지. 원한다면 생명도 넣어주겠다.”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다. 하지만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안 그래도 입장하기 전에, 그가 원하는 조각상을 만들어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참이다. 가져가서 재창조 마법으로 이리저리 굴려보면서 연구할 가치는 충분했다.
“좋아. 그럼 하나 부탁하지.”
이안이 작게 웃으며 마도서를 손으로 두드렸다.
“검은 머리카락에 붉은 눈동자를 지닌 작은 소녀. 가능한가?”
[우웅!?]
그의 묘사가 누구를 그리는 건지 깨달은 심해견문록이 짧게 진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