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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에서의 사건이 끝나고 며칠이 지났다. 다행히 그 사이에 트러블에 휘말리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평화로운 나날의 연속이다.
비일상을 자주 접하는 탓일까. 예전에는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평범한 일상도 지금 느끼기엔 아주 달콤하기 짝이 없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하고,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집에 누워있는 것만으로 그렇다. 여기서 아주 본격적인 휴가를 떠나면 더 리프레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갈까 말까 굳이 고민할 필요가 있나?
이안은 곧바로 그 자리에서 짐을 싸 제법 비싼 5성급 호텔에 1박을 신청하고, 방에 박혀서 꼼짝없이 하루를 보냈다.
흔히 호캉스라고 부르는 휴가였다. 생각보다 서비스도 좋았고, 서울 야경이 훤히 보이는 욕조까지 달린 터라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몸의 피로가 가시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후우…….”
이안은 성공한 삶이란 이런 거구나, 느끼며 창문 밖으로 펼쳐진 서울 야경을 휴대폰으로 찰칵 찍었다. 그러곤 곧장 커뮤니티에 게시글 하나를 작성했다.
[하와와 아기 마붕이 오랜만에 제대로 된 휴가를 나온 것이야요.]
[ㅇㅇ]
(서울 야경 사진)
이 아름다운 아경을 보며 와인을 홀짝이고 싶은 것이야요.
[추천0][비추천4]
[댓글]
-심해아귀: 컨셉 역겨워. 갑자기 왜 그래?
ㄴㅇㅇ: 하와와 그런 나쁜 말 하지 말라는 것이야요.
ㄴ심해아귀: 스무디랑 어울리면서 비슷한 인간이 된 거야?
ㄴㅇㅇ: 선 넘지 마셈.
ㄴ딸기요거트스무디: ?
-테이밍마스터: 왜 멍청하게 호텔로 기어들어 가. 그러다 신비랑 엮여서 고립된다?
ㄴ강삭제발: 너무 극단적이네. 그렇게 따지면 갈 수 있는 곳이 없지 않나?
ㄴ테이밍마스터: 히익! 대머리 괴이다! 저리 꺼져!
ㄴ강삭제발: 야 이 시발 좆같은 새끼야.
익숙하게 달리는 댓글들을 뒤로하고 이안이 침대에 몸을 눕혔다. 호텔 특유의 푹신하면서 불편한 감촉이 전신을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후우…….”
담배를 피우고 싶었지만, 흡연장이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서 포기했다. 휴대용 재떨이가 있기는 하지만 바로 위층에 다른 손님이 머무르는 중이다. 창문이나 화장실에서 흡연하여 괜히 긁어 부스럼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이번 휴가는 좀 길게 잡을까.’
불과 몇 주 전, 이안은 도서관 의뢰를 마지막으로 며칠 동안 휴식을 취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단 심문관과 함께 병원으로 끌려가고, 관리국과 엮이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사실상 제대로 된 휴식을 취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컨디션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아서 크루즈 의뢰까지 받았건만, 끝나고 나니까 심신이 제법 너덜너덜해졌다.
간단한 의뢰라 생각하고 받은 게 뭔 미친 교단과 크툴루 신화 속 외신이 엮인 의뢰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이안이라 하더라도 헤실헤실 웃으며 코파듯이 해결할 수는 없었다. 그게 가능했으면 진작에 깽판 치고 다녔다.
‘마법이라고 무적의 힘은 아니야.’
당장 이안이 처음 마주쳤던 괴이인 팔척귀신을 지금 다시 만난다고 해서 압도적인 격차로 찍어 누르는 건 불가능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공격을 피하고 유효타를 꽂아야 한다.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많아진 건 사실이지만, 상대하는 방식에는 변화가 없는 것이다. 마도서를 펼치고 ‘반으로 갈라져서 죽어’라고 명령한다 한들 상대가 들어 처먹을 리가 있겠는가.
뭐, 아무튼.
마법에 익숙해지고, 제법 많은 경험을 쌓았다고 한들 굳이 무리하게 일정을 강행할 필요는 없었다. 당분간은 휴식에 전념하도록 하자.
이안이 그리 생각하며 냉수 한 잔을 쭉 들이켜던 순간이었다. 침대맡에 놓아둔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별다른 생각 없이 들어서 확인했다.
[김이서: 지금 전화 가능하십니까?]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김이서.
테마파크와 병원에서 마주쳤던 관리국 요원의 이름이다.
이미 통성명은 마쳤고, 계약서까지 작성한 터라 연락이 오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시간이 그리 늦지도 않았다. 이제 막 해가 저물고 가로등에 빛이 들어온 참이었다. 수면을 취하기엔 이르고, 활동하기엔 늦은 그런 시간대. 이안은 잠깐 고민하다가, 메시지가 날아온 번호로 먼저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하는 착신음이 2번 울리기도 전에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마법사님.]
여자치고 상당히 낮은 목소리가 수화기의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이안은 소파에 앉으며 대답했다.
“연락이 제법 늦었군.”
[관리국에 급한 일이 생겨서 말이죠. 이제는 제법 안정화되었습니다.]
“급한 일?”
[잔혹 동화 중 하나가 지방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빨간 구두와 신데렐라가 섞인 동화인데, 피해자가 제법 많은 터라 수습에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딱히 죄송할 일은 아니지만, 어차피 형식적으로 한 말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이안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김이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평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연락을 취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계약이 무사히 체결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관리국 본사 건물 방문 일정을 잡기 위함이었습니다. 혹 괜찮은 시간대 있으십니까?]
“방문? 굳이 해야 하나?”
관리국과 협력 관계를 체결하기는 했지만, 그게 그들을 무한정 신뢰한다는 뜻은 아니다.
관리국이 미치지 않고서야 등에 대놓고 칼을 꽂아버리지는 않겠지만, 비슷한 짓을 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못해 흘러넘쳤다.
물론 지나친 망상일 수도 있다. 그들은 별다른 생각이 없는데, 혼자 쉐도우 복싱을 해대는 중일 수도 있지. 하지만 그게 목이 날아가지 않을 수 있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면, 굳이 안일하게 행동할 이유는 없었다. 안전은 원래 과하게 챙기는 게 좋았다.
같은 이유에서, 관리국 건물로 들어가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관리국 요원들은 마법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호냐, 불호냐 정하라 하면 불호가 압도적으로 많은 집단. 무관심을 가진 이들보다 원망을 지닌 이들이 더욱 많으니, 사실상 가시덩굴 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감정 자체는 이해하고 있다. 인체자연발화 사건과 감금실 저주 인형 사건으로 인해 마법사를 향한 호감도가 바닥에 처박혔다는 것쯤이야 이미 들은 이야기다.
하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수긍까지 한 것은 아니었다.
왜 스스로 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원망을 받아내야 한다는 말인가? 억울한 일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안타깝게도 이안은 그런 부당함을 웃으며 받아들일 정도의 위인이 아니었다.
‘괜히 갔다가 위험한 일이 휘말릴 바에야 차라리 협력 의뢰만 해결하는 게 나아.’
이안이 그리 생각하며 표정을 굳히는 순간, 김이서가 무언가를 작성하는지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대답했다.
[걱정하는 바는 알고 있습니다. 다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확신에 찬 목소리군.”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주눅 들 이유가 없지요.]
그녀의 어조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관리국 요원들은 머저리가 아닙니다. 협력하기로 한 마법사를 굳이 자극해서 트러블을 일으키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애초에 관리국 직원이 계약한 마법사를 도발하거나 비난하는 경우 제법 높은 강도의 제제가 가해집니다. 심한 경우 기억 소거 후에 퇴사 당합니다.]
“…….”
[이는 마법사님을 위한 처벌이기도 하지만, 그보단 관리국 요원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규칙입니다. 마법사와 관리국 요원이 충돌하면 누가 죽을지는 불 보듯이 뻔하니까요.]
그녀의 담담한 목소리에 이안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관리국 요원들이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은 아무런 능력도 없는 일반인들이다. 신비를 직접 잡아 휘두르는 마법사와 전투가 벌어지면 누구 머리가 먼저 떨어질지는 굳이 고민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안심하십시오. 마법사님이 걱정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추가로 첨언하자면, 다른 마법사분들은 심심할 때마다 관리국 건물에 드나드는 편입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2분 정도는 이따금 관리국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십니다.]
“괴짜들이군.”
[같은 마법사가 보기에도 그렇다면 아마 그런 것이겠지요.]
김이서는 그리 말하고, 잠깐 뜸을 들인 후 한마디를 덧붙였다.
[관리국 건물에 방문한다고 해서 소지품 검사를 하지는 않습니다. 마도서는 편하게 들고 오셔도 됩니다.]
그렇게까지 말하면 이안도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었다.
때마침 별다른 급한 일정이 없는 상태다. 안전이 확보된 이상, 하루쯤은 관리국을 위해 쓰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수틀리면 외해의 생물을 소환하면 되는 일이다. 일단 재창조의 손길로 관리국 건물의 구조를 뒤틀고, 전달자 몇 마리만 풀어둬도 관리국은 비상사태에 빠질 것이다.
가능하면 그런 일이 없는 게 좋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그러면서 입을 열었다.
“당분간 쉴 생각이니까 의뢰 투입은 안 해. 그냥 방문만 하는 거다.”
[……알겠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 지울 수 없는 아쉬움이 묻어나왔다.
당연히 발언을 물릴 생각은 없었다.
호텔에서 편하게 휴식한 다음 날.
이안은 바이크를 타고 서울의 도심을 질주했다. 입력된 주소를 따라 바이크가 알아서 나아가며 속도와 방향을 조절한다.
‘이 근처인가.’
이안이 헬멧의 바이저를 올리며 바이크에 탄 채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이는 거라고는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건물들이 전부였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서울의 모습. 그러나 저 높은 건물의 숲 어딘가에 관리국 경기 지부가 숨어있었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겨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관리국 건물 또한 빌딩의 숲에 숨겨둔 모양이다. 뻔하다면 뻔한 짓거리지만, 그래도 확실한 방법이기는 했다. 아무것도 없는 산골짜기에 커다란 빌딩이 우두커니 있는 것보다야 이게 더 낫다.
“음.”
이안은 바이크의 핸들을 잡으면서 휴대폰 내비게이션에 찍힌 주소를 향해 달려갔다. 잠시 후, 그가 거대한 빌딩 앞에 멈춰 섰다.
외부에서 내부를 보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기업이다.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창문 너머로 돌아다니고, 서류나 커피를 든 사원들이 바쁘게 복도를 뛰어다니는 중이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건물 전체에 걸린 인식 저해와 왜곡이 풍경을 조작하고 있을 뿐이다. 아마 진짜 안쪽 풍경은 평범한 기업과 거리가 멀 것이다.
이미 전해 들었기에 당황하지는 않았다. 이안은 근처 주차장에 바이크를 대두고, 헬멧을 축소하여 가방에 집어넣었다. 장갑도 대충 겹쳐서 정리했다.
“…….”
바람에 흐트러진 코트의 위치를 고치며 관리국 건물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입구에 도착하는 순간.
“아, 왔다.”
근처 벤치에 앉아 있던 검은 머리 여성이 그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안의 발걸음이 덜컥 멈추고, 그녀가 자신을 쳐다보는 이안의 시선을 느끼며 흐릿하게 웃었다.
“잘생겼는데 무섭게 생긴 얼굴. 너구나. 만나서 반가워.”
그녀가 쥐고 있던 코코아 잔을 쓰레기통에 넣으며 이안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한쪽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난 김율이라고 해. 너랑 같은 마법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