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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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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뒷문을 거의 부수듯이 열어 재낀 알파가 주차장 내부로 달려 들어갔다. 이안은 다리를 다친 베타를 부축하면서 그를 따라 움직였다.
달이 기울어진 새벽.
이미 클럽에 있던 손님들이 자리를 떠난 건지, 주차장은 텅텅 비어 있었다.
경찰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았다. 있는 거라고는 큼지막한 검은색 리무진 한 대와 그걸 지키듯이 서 있는 사슴 가면을 뒤집어쓴 여성이 전부였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정장과 실제 가죽으로 만든 사슴 가면. 어울리지 않는 두 조합을 아무렇지도 않게 걸치고 있는 그녀가, 정중하게 양손을 포개며 일행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고객님들. 사냥은 즐거우셨는지요.”
“……디어.”
알파가 반다나를 내리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디어라고 불린 여성은 리무진 문을 찰칵 열고 들어오라는 듯 몸을 비켰다.
“시동은 걸어두었습니다. 빠르게 이탈하시지요.”
그녀가 말했다. 알파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리무진 안으로 탑승했다. 이안은 잠깐 망설였지만, 멀리서 들려오기 시작한 사이렌 소리에 혀를 쯧 차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디어는 세 사람이 모두 탑승하자마자 그들을 따라 들어가 문을 닫았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남성이 곧바로 악셀을 밟았다.
부우웅!
리무진이 뻥 뚫린 도로를 타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안은 창밖으로 점점 멀어지는 클럽의 모습을 응시하다가, 디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그를 응시하고 있던 디어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마법사님. 오늘 하루 뿐이기는 하지만, 정성을 다해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카르텔 쪽 사람인가?”
“그렇습니다. 카르텔에서 운용하는 고객님들을 위한 안전 운행 서비스, 인뎀니스의 직원 디어입니다. 편하게 디어, 사슴, 사슴 대가리 등으로 부르셔도 좋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리무진 내부에 마련된 유리잔에 얼음을 넣고 물을 졸졸 담았다.
방금 막 시가를 입에 문 알파가 연기를 내뿜으며 냉수를 쭉 들이켰다. 이안도 그를 따라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차가운 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머리가 맑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물방울이 맺힌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저쪽 헌터가 말했던 카르텔에서 고용한 밴이 너희였군.”
치이익.
라이터로 담배 끝을 점화한다. 디어는 바로 눈앞에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일행을 나무라기는커녕,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로 고개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고객님들의 안전을 가장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경찰이나 군인, 관리국 등과 엮이지 않도록 철저하고 확실한 도주 경로를 이용하여 현장을 이탈하는 서비스를 운행하지요.”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혹시라도 보수에 손을 대려는 거라면…….”
“아. 그런 걱정은 하실 필요 없습니다. 오늘 저희를 고용한 건 마법사님이 아니라 뱀파이어 헌터분이니까요. 대가는 그에게 받을 생각입니다.”
디어가 그렇게 말하고 베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서비스 이용 금액, 총 3천 달러입니다. 지불 방식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봐, 나 다리 다친 거 안 보여? 그런 비즈니스 이야기는 나중에 하면 안 되나?”
“죄송합니다. 저희 회사 방침이 돈 이야기는 확실하고 신속하게 끝내는 것이라서 말입니다. 가능하다면 지금 답변을 주셨으면 합니다.”
“……하아.”
디어의 완고한 태도에, 베타는 시가를 입에 물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날이 밝으면 현금으로 전달하마. 돈 받아 갈 인원만 적당히 보내.”
“알겠습니다. 장소는 저희가 직접 조사하여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러든가. 그보다 저 마법사한테 보수나 줘.”
“알겠습니다.”
베타의 말에, 디어가 조수석으로 팔을 넣어 자그마한 케이스 하나를 가져왔다. 그녀는 곧장 케이스를 이안에게 내밀었다.
이안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케이스를 내려다보며 담뱃재를 털었다.
“……보수를 왜 나에게만 주지? 저 두 사람은 따로 받아 가는 게 없나?”
“아, 오늘 있었던 의뢰는 카르텔 측에서 내건 의뢰가 아니라, 저 두 분이 인력을 모집하고자 저희의 이름을 빌려 대신 모집 공고를 올린 것입니다. 그러니 보수는 마법사님만 받아 가실 수 있습니다.”
“……의뢰서를 그렇게 허술하게 확인하지는 않았다. 분명 그런 내용은 적히지 않았던 것 같은데.”
디어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의뢰서를 꺼내 들고 입을 열었다.
“의뢰서의 상단, 저희 카르텔의 인장 말고 다른 인장이 찍힌 것 보이십니까? 이게 방금 제가 말한 것처럼 신뢰성 높은 외부 특정 인물이 저희의 이름을 빌려 의뢰를 내걸었다는 증거입니다. 상식처럼 알려진 내용이라 글자로 된 안내문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본사에 해당 피드백을 전달해 볼 테니 며칠만 기다려 주십시오.”
디어가 케이스의 잠금장치를 열며 말했다. 이안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카르텔의 인증 마크가 박혀 있다고 마냥 전부 다 그들이 내건 의뢰는 아닌 모양이다. 서아가 따로 말이 없었던 걸 보면, 그녀 또한 이런 내용까지 인지하고 있던 것 아닌 것 같았다. 아니면 단순히 알려주는 걸 까먹을 수도 있고.
뭐, 크게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다. 보수를 받는 건 어느 쪽이나 똑같으니까.
그래도 정보를 얻은 이상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의뢰서를 세밀하게 관찰해야겠지.
이안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디어가 천천히 개봉한 케이스 내부를 확인했다.
달칵, 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린 케이스 안쪽에는 돈뭉치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정확히 한화로 700만 원입니다. 이 자리에서 액수를 확인시켜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럼 확인해 줘. 혹시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디어가 5만 원권으로 이루어진 돈뭉치를 하나하나 세심하게 꺼내어 세기 시작했다.
이윽고 리무진이 시내를 나와 자그마한 골목으로 들어갔을 때쯤, 그녀의 카운트가 끝났다.
“690만 원, 695만 원, 700만 원. 정확하군요. 한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후우.”
이안이 담배 연기를 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디어가 케이스를 다시 닫았다.
“돈은 어떤 방식으로 수령 하시겠습니까? 방법은 현금으로 즉시 수령하는 것과 계좌로 보내드리는 것, 총 2가지가 있습니다.”
“……계좌에 뜬금없이 거금이 이체된 기록이 찍히면 관리국에서 추적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에겐 고객님을 보호할 수십 가지의 수단이 있습니다. 이 나라의 공권력은 물론이고 관리국조차 당신에게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을 것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저희 카르텔의 상점 또한 그 어떤 위험 없이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디어가 공손하면서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리 내뱉었다.
이안은 그녀의 가면 너머.
사슴처럼 시꺼먼 눈동자를 응시하면서 한참 고민하다가 답했다.
“계좌로 보내.”
“확인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디어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이안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어깨에 붕대를 감고 있는 알파를 응시했다.
그는 능숙하게 붕대 매듭을 묶고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숨을 길게 내뱉었다.
“기분 좋군…… 역시 흡혈귀를 찢어 죽이는 일은 언제나 재밌단 말이지.”
“단순히 쾌락을 위해 뱀파이어 헌터가 된 건가?”
이안이 물었다. 알파는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흡혈귀에게 가족이 몰살당했다.”
“…….”
“뻔한 이야기지. 너처럼 마법사가 아닌, 일반인이 이 신비로운 세상에 발을 들이려면 그만한 희생이 필요한 법이다.”
“……유감이군.”
“됐다. 흔하디 흔한 복수에 미친 노인의 이야기니까. 그보다 보수는 마음에 드나?”
“나쁘지 않아. 업무 강도에 비해서는 훨씬 많이 받아 간 것 같기도 하고.”
이안이 농담 삼아 그리 내뱉었다.
알파가 낄낄 웃으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실전에서 그렇게 활약할 수 있는 마법사가 흔하지는 않지. 전투 경험이 몇 번 있던 모양이야?”
“말 그대로 몇 번이다. 많지는 않아.”
“그러냐. 그럼 더 대단한 일이군.”
알파는 그 말을 끝으로 침묵했다. 이안도 굳이 더 이상 말을 걸지 않고, 어두컴컴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피와 화약 냄새가 난무했던 클럽과 달리, 세상은 무척 고요하기만 했다. 차가 달리는 소리만 희미하게 울려 퍼질 뿐이었다. 비일상과 일상의 경계는 그리도 뚜렷했다.
그걸 깨닫는 순간, 이안은 자신이 비일상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체감했다.
아마 무지한 때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겠지.
괜찮다.
눈을 뜬 이상, 다시 맹인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으니.
“ ……후우.”
이안은 담배를 재떨이에 지져 꺼트리고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평화로운 세상이었다.
적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그러할 것이다.
*
[입금자: 디어]
[금액: 7,000,000]
어두운 골목길에 정차한 리무진. 이안은 차에서 내리는 것과 동시에 도착한 입금 메시지에 디어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차한 인원들을 따라 나오며 허리를 숙였다.
“카르텔 안전 운행 서비스 이용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다들 편안한 밤 되십시오. 다음 이용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오냐.”
알파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안은 입금이 확인되었다는 제스처를 취한 뒤, 앞장서서 걷는 알파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베타가 다리를 질질 끌면서 두 사람을 따랐다.
부우웅.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뒤쪽에서 차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리무진이 주차한 곳에서 시작되어 점점 멀어졌다.
“…….”
이안은 하늘에 걸린 보름달을 잠깐 응시하다가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그 순간, 그의 손가락에 금속 물체 하나가 걸렸다.
권총이었다. 그는 아, 하고 목소리를 내며 빌렸던 권총과 선글라스를 다시 베타에게 돌려주었다.
“잘 썼다.”
“아, 맞다. 까먹고 그냥 갈 뻔했네.”
베타는 권총을 넘겨받고 코트 안주머니에 쑥 찔러넣었다.
이걸로 처리할 물건은 더 이상 없었다. 이안은 허리춤에 넣어둔 마도서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가로등을 따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벽임에도 장사 중인 해장국집 하나를 발견했다. 일행은 망설임 없이 가게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다크서클이 진하게 내려앉은 젋은 사장이 그들을 반겨주었다. 알파는 선짓국 3개를 주문하고, 가장 구석 자리에 가서 앉았다. 베타가 그 옆에 앉고, 이안이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코트를 벗어 걸어두다가, 문득 떠오른 궁금증에 알파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에 던졌던 그 캡슐은 뭐야?”
“흐른 피를 지워주는 연기다. 괜히 경찰이 가져가서 DNA 검사라도 하면 귀찮아지니까 사용한 거지.”
“아.”
납득했다는 듯,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주문한 선짓국이 도착했다.
서양인처럼 생긴 두 뱀파이어 헌터는 능숙하게 국의 간을 맞추고 소주 한 병까지 추가로 주문했다. 이안은 쓰게 웃으며 따뜻한 국물을 홀짝거렸다.
그러던 순간, 알파가 소주병 뚜껑을 까면서 지나가듯이 툭 내뱉었다.
“알베르트.”
“……?”
“내 이름이다.”
“나는 벤자민.”
알파에 이어 베타까지 자신의 본명을 소개했다. 그러곤 이안을 물끄러미 응시하기 시작했다.
이안은 그들의 시선에 씩 웃음을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마법사다.”
“이 개새끼.”
알베르트가 웃음기 섞인 욕지거리를 내뱉고 소주를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