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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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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문을 거의 부수듯이 열어 재낀 알파가 주차장 내부로 달려 들어갔다. 이안은 다리를 다친 베타를 부축하면서 그를 따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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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기울어진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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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클럽에 있던 손님들이 자리를 떠난 건지, 주차장은 텅텅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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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았다. 있는 거라고는 큼지막한 검은색 리무진 한 대와 그걸 지키듯이 서 있는 사슴 가면을 뒤집어쓴 여성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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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게 차려입은 정장과 실제 가죽으로 만든 사슴 가면. 어울리지 않는 두 조합을 아무렇지도 않게 걸치고 있는 그녀가, 정중하게 양손을 포개며 일행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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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들. 사냥은 즐거우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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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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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가 반다나를 내리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디어라고 불린 여성은 리무진 문을 찰칵 열고 들어오라는 듯 몸을 비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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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은 걸어두었습니다. 빠르게 이탈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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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말했다. 알파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리무진 안으로 탑승했다. 이안은 잠깐 망설였지만, 멀리서 들려오기 시작한 사이렌 소리에 혀를 쯧 차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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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는 세 사람이 모두 탑승하자마자 그들을 따라 들어가 문을 닫았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남성이 곧바로 악셀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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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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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무진이 뻥 뚫린 도로를 타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안은 창밖으로 점점 멀어지는 클럽의 모습을 응시하다가, 디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그를 응시하고 있던 디어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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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마법사님. 오늘 하루 뿐이기는 하지만, 정성을 다해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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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텔 쪽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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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카르텔에서 운용하는 고객님들을 위한 안전 운행 서비스, 인뎀니스의 직원 디어입니다. 편하게 디어, 사슴, 사슴 대가리 등으로 부르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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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리무진 내부에 마련된 유리잔에 얼음을 넣고 물을 졸졸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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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막 시가를 입에 문 알파가 연기를 내뿜으며 냉수를 쭉 들이켰다. 이안도 그를 따라 물을 한 모금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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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머리가 맑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물방울이 맺힌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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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 헌터가 말했던 카르텔에서 고용한 밴이 너희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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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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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터로 담배 끝을 점화한다. 디어는 바로 눈앞에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일행을 나무라기는커녕,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로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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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고객님들의 안전을 가장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경찰이나 군인, 관리국 등과 엮이지 않도록 철저하고 확실한 도주 경로를 이용하여 현장을 이탈하는 서비스를 운행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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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혹시라도 보수에 손을 대려는 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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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 걱정은 하실 필요 없습니다. 오늘 저희를 고용한 건 마법사님이 아니라 뱀파이어 헌터분이니까요. 대가는 그에게 받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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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가 그렇게 말하고 베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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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이용 금액, 총 3천 달러입니다. 지불 방식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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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나 다리 다친 거 안 보여? 그런 비즈니스 이야기는 나중에 하면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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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저희 회사 방침이 돈 이야기는 확실하고 신속하게 끝내는 것이라서 말입니다. 가능하다면 지금 답변을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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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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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의 완고한 태도에, 베타는 시가를 입에 물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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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으면 현금으로 전달하마. 돈 받아 갈 인원만 적당히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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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장소는 저희가 직접 조사하여 연락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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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든가. 그보다 저 마법사한테 보수나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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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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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타의 말에, 디어가 조수석으로 팔을 넣어 자그마한 케이스 하나를 가져왔다. 그녀는 곧장 케이스를 이안에게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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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케이스를 내려다보며 담뱃재를 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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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를 왜 나에게만 주지? 저 두 사람은 따로 받아 가는 게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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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늘 있었던 의뢰는 카르텔 측에서 내건 의뢰가 아니라, 저 두 분이 인력을 모집하고자 저희의 이름을 빌려 대신 모집 공고를 올린 것입니다. 그러니 보수는 마법사님만 받아 가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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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서를 그렇게 허술하게 확인하지는 않았다. 분명 그런 내용은 적히지 않았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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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의뢰서를 꺼내 들고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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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서의 상단, 저희 카르텔의 인장 말고 다른 인장이 찍힌 것 보이십니까? 이게 방금 제가 말한 것처럼 신뢰성 높은 외부 특정 인물이 저희의 이름을 빌려 의뢰를 내걸었다는 증거입니다. 상식처럼 알려진 내용이라 글자로 된 안내문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본사에 해당 피드백을 전달해 볼 테니 며칠만 기다려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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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가 케이스의 잠금장치를 열며 말했다. 이안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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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텔의 인증 마크가 박혀 있다고 마냥 전부 다 그들이 내건 의뢰는 아닌 모양이다. 서아가 따로 말이 없었던 걸 보면, 그녀 또한 이런 내용까지 인지하고 있던 것 아닌 것 같았다. 아니면 단순히 알려주는 걸 까먹을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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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크게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다. 보수를 받는 건 어느 쪽이나 똑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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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정보를 얻은 이상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의뢰서를 세밀하게 관찰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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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디어가 천천히 개봉한 케이스 내부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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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칵, 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린 케이스 안쪽에는 돈뭉치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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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한화로 700만 원입니다. 이 자리에서 액수를 확인시켜 드릴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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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확인해 줘. 혹시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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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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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가 5만 원권으로 이루어진 돈뭉치를 하나하나 세심하게 꺼내어 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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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리무진이 시내를 나와 자그마한 골목으로 들어갔을 때쯤, 그녀의 카운트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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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0만 원, 695만 원, 700만 원. 정확하군요. 한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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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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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이 담배 연기를 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디어가 케이스를 다시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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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어떤 방식으로 수령 하시겠습니까? 방법은 현금으로 즉시 수령하는 것과 계좌로 보내드리는 것, 총 2가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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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좌에 뜬금없이 거금이 이체된 기록이 찍히면 관리국에서 추적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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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에겐 고객님을 보호할 수십 가지의 수단이 있습니다. 이 나라의 공권력은 물론이고 관리국조차 당신에게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을 것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저희 카르텔의 상점 또한 그 어떤 위험 없이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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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가 공손하면서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리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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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그녀의 가면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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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처럼 시꺼먼 눈동자를 응시하면서 한참 고민하다가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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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좌로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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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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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이안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어깨에 붕대를 감고 있는 알파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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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능숙하게 붕대 매듭을 묶고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숨을 길게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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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군…… 역시 흡혈귀를 찢어 죽이는 일은 언제나 재밌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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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쾌락을 위해 뱀파이어 헌터가 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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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이 물었다. 알파는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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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귀에게 가족이 몰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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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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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이야기지. 너처럼 마법사가 아닌, 일반인이 이 신비로운 세상에 발을 들이려면 그만한 희생이 필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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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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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흔하디 흔한 복수에 미친 노인의 이야기니까. 그보다 보수는 마음에 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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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지 않아. 업무 강도에 비해서는 훨씬 많이 받아 간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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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이 농담 삼아 그리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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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가 낄낄 웃으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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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에서 그렇게 활약할 수 있는 마법사가 흔하지는 않지. 전투 경험이 몇 번 있던 모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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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몇 번이다. 많지는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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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냐. 그럼 더 대단한 일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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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는 그 말을 끝으로 침묵했다. 이안도 굳이 더 이상 말을 걸지 않고, 어두컴컴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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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화약 냄새가 난무했던 클럽과 달리, 세상은 무척 고요하기만 했다. 차가 달리는 소리만 희미하게 울려 퍼질 뿐이었다. 비일상과 일상의 경계는 그리도 뚜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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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깨닫는 순간, 이안은 자신이 비일상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체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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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무지한 때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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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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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뜬 이상, 다시 맹인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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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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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담배를 재떨이에 지져 꺼트리고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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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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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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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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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금자: 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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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액: 7,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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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골목길에 정차한 리무진. 이안은 차에서 내리는 것과 동시에 도착한 입금 메시지에 디어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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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차한 인원들을 따라 나오며 허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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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텔 안전 운행 서비스 이용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다들 편안한 밤 되십시오. 다음 이용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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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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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안은 입금이 확인되었다는 제스처를 취한 뒤, 앞장서서 걷는 알파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베타가 다리를 질질 끌면서 두 사람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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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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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뒤쪽에서 차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리무진이 주차한 곳에서 시작되어 점점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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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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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하늘에 걸린 보름달을 잠깐 응시하다가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그 순간, 그의 손가락에 금속 물체 하나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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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총이었다. 그는 아, 하고 목소리를 내며 빌렸던 권총과 선글라스를 다시 베타에게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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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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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까먹고 그냥 갈 뻔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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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타는 권총을 넘겨받고 코트 안주머니에 쑥 찔러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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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처리할 물건은 더 이상 없었다. 이안은 허리춤에 넣어둔 마도서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가로등을 따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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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새벽임에도 장사 중인 해장국집 하나를 발견했다. 일행은 망설임 없이 가게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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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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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서클이 진하게 내려앉은 젋은 사장이 그들을 반겨주었다. 알파는 선짓국 3개를 주문하고, 가장 구석 자리에 가서 앉았다. 베타가 그 옆에 앉고, 이안이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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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코트를 벗어 걸어두다가, 문득 떠오른 궁금증에 알파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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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마지막에 던졌던 그 캡슐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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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른 피를 지워주는 연기다. 괜히 경찰이 가져가서 DNA 검사라도 하면 귀찮아지니까 사용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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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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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득했다는 듯,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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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주문한 선짓국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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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처럼 생긴 두 뱀파이어 헌터는 능숙하게 국의 간을 맞추고 소주 한 병까지 추가로 주문했다. 이안은 쓰게 웃으며 따뜻한 국물을 홀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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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순간, 알파가 소주병 뚜껑을 까면서 지나가듯이 툭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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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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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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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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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벤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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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에 이어 베타까지 자신의 본명을 소개했다. 그러곤 이안을 물끄러미 응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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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그들의 시선에 씩 웃음을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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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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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개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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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가 웃음기 섞인 욕지거리를 내뱉고 소주를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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