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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
서브컬쳐 쪽에서는 제법 자주 등장하는 직업이지만, 현실에선 직접 보기 어려운 존재들이다. 일단 한국에는 기본적으로 없고, 일본으로 가야 그 머리카락이라도 볼 수 있는데. 정작 대외적으로 나타나 행동하는 이들은 전부 진짜 무녀가 아니라 무녀 코스플레이어다.
무녀의 성격 자체가 한국의 무당이나 성직자들과는 좀 다르긴 하다. 무당이 진심으로 신을 따르며 삿된 것들을 물리치는 이미지라면, 무녀는 신탁을 받아 이를 설파하거나 노래와 춤을 통해 신들의 행사에서 흥을 돋우는 등. 매우 다양한 역할을 겸하는 편이다.
물론 한국에도 진짜 무당이 많이 없는 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무당이라는 존재 자체는 길가에서 하나쯤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반면 무녀는 신사에만 있는 터라 마주치는 게 쉬운 편은 아니었다.
그리고 거기까지가 딱 이안이 말고 있는 무녀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다.
굳이 찾아보지 않은 탓도 있지만, 그보단 타국의 일이라 신경 쓰지 않은 게 더욱 컸다.
일본에서도 보기 힘든 무녀를 한국에서 어떻게 보겠는가.
무녀에 대해 알아볼 시간에 무당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게 훨씬 이로웠다.
“으음? 손님? 손님?”
“아.”
상념에 너무 깊이 빠졌다. 이안은 자신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미코를 보고 잡념을 지워냈다.
“바이크는 저건가?”
그가 천으로 덮인 무언가의 윤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물었다. 미코가 활짝 웃었다.
“네! 무려 신차 값만 3천만 원! 거기에 자율 주행과 이런저런 옵션을 더해 추가 비용 2천만 원! 합쳐서 무려 5천만 원짜리 오토바이입니다!”
“결제는 확인했지?”
“물론입니다. 시원한 결제, 감사드립니다! 카르텔은 마법사님 같은 고객을 참 좋아해요!”
절그럭.
미코가 의수로 만들어진 팔을 움직여 바이크 위에 덮인 천을 홱 걷어냈다.
펄럭이며 멀어지는 천 아래, 매끈한 형태의 검은색 바이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안은 무심코 감탄을 터트리며 바이크의 몸체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아, 손대셨네요? 이제 환불도 안 되세요!”
미코가 그 모습을 보며 농담을 건넸다. 이안은 픽 웃음을 터트려 화답하고, 바이크의 상태를 가볍게 점검했다.
다행히 어딘가 하자가 있는 구석은 없었다. 시동도 잘 걸리고, 배기음은 굉장히 적고, 자율 운행 인공지능도 탑재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몸체에는 생채기 하나 그어져 있지 않았다.
관리를 굉장히 잘했다는 뜻이었다. 이안은 손가락으로 바이크의 주유통을 톡톡 두드리며 만족스레 웃었다.
5천만 원이라는 다소 거금이 나가기는 했지만, 후회가 되지는 않았다.
돈이야 또 벌면 되는 일이다. 애초에 쓰려고 버는 만큼, 괜히 지출에 망설임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카르텔에서 파는 물건들이 기본적으로 비싼 거야 누구나 아는 사실이니, 미리미리 경제관념을 이쪽으로 맞춰두는 게 좋았다.
물론 다 개소리고 그냥 바이크를 하나 새로 뽑아서 기분이 좋았다.
이안은 시동이 걸렸음에도 소음이 그리 크지 않은 바이크를 잠깐 내려보다가, 미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서류는? 바로 작성하고 싶은데.”
“여기 있습니다. 펜도 챙겼어요!”
미코가 품에서 종이 다발과 볼펜을 꺼내 이안에게 건네주었다.
차를 뽑아서 기분이 다소 좋아진 상태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이안은 신중하게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으며 사인을 해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성이 끝났다. 미코는 정중하게 그가 건네준 것들을 받고, 벽에 기대어 오류가 없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어딘가 이상한 부분은 없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 방긋 웃었다.
“좋아요! 이제 그 바이크는 고객님 거예요! 마음대로 타셔도 됩니당!”
“번호판은?”
“아, 여기용. 이미 등록은 다 됐으니까 경찰에게 잡힐 일은 없을 거예요. 보험은 카르텔에서 보장하는 보험이라 비용이 좀 많이 비싸기는 할 텐데, 마법사님에게 부담이 될 정도의 가격은 아닐 거예요.”
이안이 방금 사인한 보험은 카르텔에서 직접 만들고 관리하는 보험사의 것이었다. 차량 전면 무료 수리와 병원비 등. 많은 것을 지원하는 만큼 달에 내야 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미코가 말한 대로 그리 부담이 될 수준은 아니었다. 충분히 내고도 남았다.
“내가 추가로 알아야 할 사항은?”
“음…… 없어요! 이제 편하게 타고 다니시면 돼요! 아,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것! 절대 사고로 그 얼굴 다치지 마세요! 너무 손해야!”
미코의 자연스러운 아부와 너스레에 이안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미코에게서 준비된 서류를 넘겨받고, 바이크 좌석에 앉았다.
그대로 스탠드를 걷어 올리자 차량이 자동으로 균형을 잡아주기 시작한다. 탑재된 인공지능의 수준이 상당히 높은 모양이었다. 비싼 돈을 쓴 보람이 있었다.
“그럼, 지금까지 카르텔의 직원 미코였습니다! 고객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이었고, 다음에 또 저희 서비스를 이용해 주세요!”
떠나려는 그를 향해 미코가 허리를 숙이며 정중히 인사했다.
이안은 출발 직전, 그녀의 초록색 머리카락을 보면서 나직이 물었다.
“개인적인 질문이다. 왜 일본의 무녀가 한국에서 카르텔 직원이나 하고 있는 거지?”
“……에? 너무 갑작스러운 질문 데스와.”
“……답하기 싫으면 됐다.”
어처구니가 없는 말투에 이안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미코가 허리를 세우고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로 대답했다.
“별건 아니고요. 그냥 무녀 일을 하다가 팔이 날아가는 바람에, 이제 쉴 겸 신이고 뭐고 다 놓아주고 카르텔에 입사했어요.”
“……그래?”
“네. 별거 아닌 이야기예요. 그래서 뭐, 굳이 숨길 필요도 없죠.”
미코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의수를 절그럭 움직였다.
“후회는 안 해요. 수입도 지금이 더 높고, 안정성은 말도 안 되게 높죠. 간혹 ‘진상’들을 만나면 죽을 수도 있지만,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무녀인데 대처는 불가능한가?”
“다 놓아줬다니까요? 이제 제게 남은 건 미약한 신력이랑 영안(靈眼)이 전부에요. 이걸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죠.”
예전처럼 액막이 활이나 부적 같은 건 못 써요, 라며 미코가 덧붙였다. 그러고는 분홍색 눈동자로 이안을 응시하며 싱긋 웃었다.
“혹시 무녀들에 대해 궁금하세요?”
“……조금은 그런 편이지.”
“안 돼요, 안 돼. 이런 거 외부인에게 알려주면 신벌이 내려오거든요. 저한테 남은 힘을 다 가져갔으면서, 벌은 남겨두다니. 제 신님 좀 너무하죠?”
너스레를 떠는 미코를 보며 이안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팔 하나가 날아가고, 영원히 금언(禁言)의 저주가 걸렸음에도 그녀의 목소리와 표정에선 슬픔 하나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홀가분하다는 기분만 여실히 느껴졌다.
만약 자신이 마법사라는 정체성을 포기하고, 영구적인 신체장애와 저주를 지닌 채 일상으로 복귀한다면…… 그녀처럼 저리 행동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다만 예상하길, 아마 정상적으로 살지는 못할 것 같았다.
의미 없는 가정이었다. 이안은 앞으로 평생 마법사라는 직업과 정체성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미코와 인사를 나누고, 바이크를 직접 몰아 물류센터를 빠져나왔다. 아직 헬멧이나 다른 장비를 사지도 않았고, 마법이 부여되지도 않아 다소 불안했지만, 그래도 불어오는 바람 덕분에 기분은 제법 좋았다.
‘대모가 알려준 산은……여기군.’
이안은 자율 주행을 맡기고, 휴대폰을 꺼내 주소를 확인했다.
다행히 거리가 그리 멀지는 않은 곳이었다. 그가 다시 손잡이를 붙잡으며 바이크에 대고 목적지를 직접 육성으로 알려주었다.
[목적지 확인. 경로를 설정합니다. 안전을 위하여 반자율 주행을 시작합니다.]
부아아앙!
바이크가 이안이 설정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뒷산. 아직 내린 눈도 다 녹지 않은 새하얀 공간 위에, 검은색 후드를 뒤집어쓴 여성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얼굴은 그 윤곽조차 보이지 않았다. 뒤집어쓴 마스크와 선글라스, 모자 덕분에 그녀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당장 이곳에 시체 하나를 유기하러 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수상하기 짝이 없는 패션이었다.
[아예 나 마법사요 광고를 해라.]
결국 참지 못한 레메게톤이 그녀에게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그녀는 김이 서린 선글라스를 안경닦이로 닦으며 대답했다.
“이게 무슨 마법사처럼 보여요. 그냥 평범한 여자지.”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너는 그 평범함의 기준을 알기 위해 밖을 나돌아다닐 필요가 있다. 커뮤니티도 그만해라. 차라리 SNS를 해.]
“제가 없으면 누가 커뮤니티를 관리하는데요. 그리고, 지금 솔로몬 님이 말한 대로 밖에 나왔잖아요. 뭐라 하지 마세요.”
[내가 말한 건 최소한 친구라도 만들라는…… 후우, 됐다. 내가 무슨 보모도 아니고. 알아서 해라.]
“그 말 지금까지 몇 번 한지 아세요?”
[알면 고쳐라.]
여성, 유은하는 레메게톤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나뭇가지를 주워 바닥에 슥슥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평범한 그림은 아니었다. 혹시 모를 사태에 자신을 지키기 위한 마법들이었다. 가톨릭 계열 마법이라 공격력은 그리 높지 않지만, 방어적인 능력은 탁월했다.
“그대 신의 은총을 받은 존재에게 해를 입히지 아니하고, 본래 왔던 곳으로 돌아가 자비를 구하라.”
마법진 위에 혈액 소량과 동물의 빻은 뼈, 그리고 빵을 놓아두고 주문을 외운다. 마법의 재료들은 곧바로 마법진 속으로 스며들어 형체를 감췄다.
그녀의 근처에는 방금 사용한 마법과 비슷한 것들이 다수 깔려있었다. 곧 찾아올 누군가가 다짜고짜 공격성을 드러내도 여유롭게 제압할 수 있을 수준이다.
양만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마법의 질 또한 수준급이었다.
레메게톤도 그녀의 성격을 제외하고 마법적인 실력이나 재능만 놓고 보면 그녀를 굉장히 고평가하는 편이었다.
괜히 그가 은하를 자신의 주인으로 삼은 것이 아니다. 시계탑의 마법사들을 무시하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그녀를 고른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다만 그녀가 지독한 대인기피증에 히키코모리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진짜 조금만 바뀌면, 아니, 좀 많이 바뀌면…… 아니, 성격이 아예 다 바뀌면 이만한 마법사도 없을 텐데. 빌어먹을 신은 너무 공평했다.
[하아…… 나 때는 이런 식으로 구는 마법사가 있으면 그대로 몽둥이로 다리부터 부수고 시작했는데…….]
유은하는 꼰대 같은 레메게톤의 말을 무시하고 바닥에 쌓인 눈을 뭉쳐 나무를 향해 던졌다.
그때였다. 제법 가까운 곳에서 오토바이의 배기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 큰 소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소리가 아무도 없는 산에 울려 퍼졌다.
[왔군.]
“…….”
은하는 나직이 중얼거리는 레메게톤의 혼잣말을 들으며 자신의 상태를 한번 점검했다.
마스크? 멀쩡하다.
선글라스? 괜찮다.
모자? 그럭저럭 봐줄 만 하다.
얼굴은? 안 보인다.
완벽하다. 그녀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패딩의 후드까지 푹 눌러쓰고,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색 오토바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달달거리며 도로를 올라오는 바이크 위로, 검은 터틀넥에 코트를 걸친 남성의 얼굴이 보였다.
몇 주 전, 강가를 산책하면서 마주쳤던 그 남자였다.
‘진짜였구나.’
익숙한 강가에서 운동했다던 인증글을 보고 혹시나 했는데, 설마 진짜였을 줄은 몰랐다. 이걸 운명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우연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은하.]
은하가 그리 생각하고 있던 순간, 레메게톤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망쳐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의 발언이 튀어나왔다. 은하가 순간 그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 네?”
[도망쳐.]
레메게톤이 선명하게 소리쳤다.
[저 미친 것이 이계의 마도서를 두 권이나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