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69 lines
13 KiB
Markdown
269 lines
13 KiB
Markdown
|
||
번지는 누런 연막. 그 사이로 핏빛 안광이 번뜩인다.
|
||
|
||
붉은색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탁하다. 검붉은색이라고 하기에는 괴상할 정도로 질척거린다.
|
||
|
||
그렇기에 핏빛이다.
|
||
|
||
요사스러운 색깔. 마주하고 있으니 비강으로 비릿한 혈향이 번져오는 것만 같았다.
|
||
|
||
‘저게 흡혈귀.’
|
||
|
||
대부분의 창작물에서 흡혈귀는 굉장히 이지적이고 귀족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종족이다. 인간의 피를 탐하기는 하지만, 그 과정은 우아하거나 합리적인 경우가 많다.
|
||
|
||
때때로 욕구를 이기지 못하고 인간을 찢어버리는 이들도 등장하기는 하나, 어쨌든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에서 주로 나타나는 이들은 아름답고 고풍스럽게 묘사되는 편이다.
|
||
|
||
“캬아악!!”
|
||
|
||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
||
|
||
피골이 상접하여 회색빛 피부 너머로 뼈와 장기의 윤곽이 그대로 다 드러난다. 입술이 없어서 날카로운 이빨이 아무런 가림막 없이 노출되었고, 기형적으로 길게 뻗은 팔다리에 피가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
||
|
||
이성 따위 거세된, 완벽한 짐승과도 같은 모습이다. 헌터들이 괜히 그들을 보고 본능대로 살아간다고 표현한 것이 아니었다.
|
||
|
||
눈빛에서 자그마한 이성의 편린조차 느껴지지 않으니, 남은 것은 흡혈귀로서의 본능밖에 없을 터.
|
||
|
||
말 그대로 괴물이었다. 망설일 이유도, 자비를 베풀 이유도 없다. 이안은 곧바로 흡혈귀를 향해 총구를 들이밀고, 방아쇠를 당겼다.
|
||
|
||
탕!
|
||
|
||
큰 소리와 함께 불을 뿜은 권총에서 은탄이 발사되었다.
|
||
|
||
정확히 흡혈귀의 귀를 관통한 총알. 부상이기는 하지만, 치명상은 되지 않는 공격이었다. 머리를 꿰뚫을 생각이었는데, 아직 권총에 익숙하지 않아 빗나갔다.
|
||
|
||
다음은 빗나가지 않는다. 이안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숨을 참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
||
|
||
그 순간, 은탄이 관통한 곳을 중심으로 흡혈귀의 몸이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다.
|
||
|
||
“……뭔.”
|
||
|
||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맥이 빠지는 퇴장. 이안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자, 알파가 허리춤에 꽂아놓았던 리볼버 두 자루를 손에 쥐며 씩 웃었다.
|
||
|
||
“흡혈귀 특제 은탄이다. 어딜 맞추던 죽일 수 있지.”
|
||
|
||
“……스치기만 해도 그런가?”
|
||
|
||
“상반신을 스치면 죽일 수 있다. 팔다리는 그냥 잘려 나갈 뿐이야.”
|
||
|
||
내뱉는 순간, 알파를 향해 술병 하나가 날아왔다. 노년의 헌터는 당황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겨 병을 깨트렸다.
|
||
|
||
산산조각이 난 유리 파편들이 술과 함께 아래로 떨어진다. 알파는 난간에 살짝 묻은 술을 손가락으로 찍어 먹고는, 술을 던진 흡혈귀를 향해 리볼버를 까딱거렸다.
|
||
|
||
“르 팽이군. 비싼 와인이다. 아깝게 던지지 말고 잔에 따라서 가져와라.”
|
||
|
||
“……갸아아악!!”
|
||
|
||
DJ의 바로 앞. 인간으로 의태 중이던 흡혈귀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손톱을 날카롭게 세웠다. 알파가 그 모습을 보며 방긋 웃었다.
|
||
|
||
“싫다면 내가 가지.”
|
||
|
||
화악!
|
||
|
||
그가 난간 너머로 몸을 날리고, 정확히 흡혈귀를 겨냥한 채 방아쇠를 당겼다.
|
||
|
||
타당!
|
||
|
||
해머가 탄환을 두드리며 은빛 총알이 발사된다. 흡혈귀가 능숙하게 총탄을 피하고, 떨어지는 그를 향해 길쭉한 팔을 내질렀다.
|
||
|
||
으드득!
|
||
|
||
알파가 총 한 자루를 던져 팔의 궤적을 비튼다. 그러고는 오른손에 쥔 리볼버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빈손으로 해머를 연달아 당겼다.
|
||
|
||
타다다당!!
|
||
|
||
순간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
||
|
||
그게 신호탄이었다. 사방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흡혈귀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
|
||
“후우…….”
|
||
|
||
이안은 알파에게서 시선을 떼고, 점점 가까워지는 피 냄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
|
||
자욱한 연기 너머,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을 올라오는 중인 흡혈귀 두 마리의 매끈한 머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
||
|
||
연막 탓에 그들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선글라스는 연막을 뚫고 그들의 모습을 선명하게 비춰주었다. 어째서 그들이 선글라스를 건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
|
||
이안은 곧바로 가늠좌를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
||
|
||
탕! 탕!
|
||
|
||
정확히 흡혈귀의 어깨와 머리를 깨부순 탄환. 뇌수와 핏물을 흩뿌리며 잿더미가 된 그들 위로, 천장을 부수며 다른 놈이 튀어나왔다. 놈은 이안의 냄새를 맡고 곧장 아가리를 쩍 벌리며 도약했다.
|
||
|
||
인간으로서는 흉내 내는 것조차 불가능한 속도. 이안은 미간을 콱 찌푸리며, 난간을 손으로 잡아 마법을 발동했다.
|
||
|
||
뿌드드득!
|
||
|
||
내뱉음과 동시에 난간의 형태가 변형된다. 중간부터 뚝 끊어진 원통 쇳덩이가 여러 갈래로 찢어지더니, 창처럼 쇄도하여 달려드는 흡혈귀의 궤도에 떡하니 자리를 잡는다.
|
||
|
||
“갸아악?!”
|
||
|
||
당연한 이야기지만, 공중에서는 자리를 바꾸기가 쉽지 않다. 흡혈귀는 그대로 푸욱, 하는 소리와 함께 창에 관통당했다.
|
||
|
||
“갸악…… 갸아악……!”
|
||
|
||
하지만 죽지는 않았다. 고통에 몸부림칠 뿐, 숨통은 그대로 붙어있었다. 이안이 그 모습을 흥미롭게 관찰했다.
|
||
|
||
“약점으로 공격하지 않으면 죽지 않는 건가? 뇌랑 심장이 관통되었는데도 살아있다면 가능성은 그것뿐인데…….”
|
||
|
||
“마법사! 여유 부리지 마라!”
|
||
|
||
쐐애액!!
|
||
|
||
중얼거리는 순간, 옆에서 날아온 은화살이 흡혈귀의 관자놀이에 틀어박혔다. 고개를 돌리자, 손목에 장착한 쇠뇌를 장전하고 있는 베타의 모습이 보였다.
|
||
|
||
그는 바닥에 떨어진 은화살을 주워 주머니에 집어넣고, 이안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
||
|
||
“흡혈귀에 관심이 많다는 건 이해하지만, 아직 전투 중이다. 죽기 싫으면 방심하지 마.”
|
||
|
||
“음. 미안하다. 집중하지.”
|
||
|
||
탕!
|
||
|
||
이안이 베타의 어깨 너머, 달려오는 흡혈귀의 미간에 탄환을 처박으며 대답했다. 귀 바로 옆에서 터진 총성에 베타가 기겁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
||
|
||
“아, 시발! 귀 터질 뻔했잖냐! 군대 안 갔냐?!”
|
||
|
||
“고아라서 면제다.”
|
||
|
||
“힘들게 살았구나. 내가 미안하다.”
|
||
|
||
순식간에 태세 전환을 마친 그가 쇠뇌의 시위를 당기고, 반대 손에 말뚝을 꺼내 들며 말했다.
|
||
|
||
“2층으로 올라오는 놈들은 맡긴다. 네가 지금 3마리, 내가 5마리를 죽였으니 지금 남은 건 6마리뿐이야. 그것들을 처리하고 저 늙은이에게 합류할 거다. 이해했나?”
|
||
|
||
“……방금 그 흡혈귀는 사실상 내가 잡은 것 아닌가?”
|
||
|
||
“그런 사소한 것까지 따지지 말라고. 경쟁하는 게 아니잖아.”
|
||
|
||
“그건 그렇군.”
|
||
|
||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
그는 베타의 어깨를 권총으로 툭 두드려주고, 뻥 뚫린 천장 너머로 머리를 들이밀기 시작한 흡혈귀들을 응시했다.
|
||
|
||
“빠르게 끝내고 돌아가지.”
|
||
|
||
“오냐. 뒤풀이는 선짓국이다. 이의는 안 받아.”
|
||
|
||
“흡혈귀가 따로 없군.”
|
||
|
||
이안이 픽 웃으며 총구를 겨눴다.
|
||
|
||
그리고 격발.
|
||
|
||
타다당!!
|
||
|
||
남아있는 탄환을 전부 쏟아내어 흡혈귀 두 마리를 처리했다. 잿더미가 되어 사라지는 그들 사이로 몸집이 제법 큰 놈 하나가 툭 떨어져 내렸다.
|
||
|
||
“크어어어억!”
|
||
|
||
울음소리가 다른 놈들과 조금 달랐다. 아무래도 흡혈귀 내부에서도 우량아로 취급되는 놈인 모양.
|
||
|
||
이안은 살짝 흐트러진 선글라스의 위치를 고치고, 탄이 비어버린 권총을 주머니에 쑤셔 박았다.
|
||
|
||
대신 마도서를 펼쳤다.
|
||
|
||
빈손으로 바닥을 짚어 재창조를 발동한다.
|
||
|
||
드드득!
|
||
|
||
손에 닿은 타일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가느다란 팔이 되어 흡혈귀의 다리를 콱 붙잡았다.
|
||
|
||
흡혈귀가 갑작스러운 접촉에 당황하는 찰나, 이안이 팔을 뒤로 잡아당겼다. 그와 함께 흡혈귀의 몸이 바닥을 긁으며 앞으로 쓰러졌다.
|
||
|
||
“크어억!”
|
||
|
||
균형을 잃고 넘어진 흡혈귀. 이안이 근처에 있던 의자 하나를 재창조하여 말뚝처럼 길쭉하게 바꾸고 놈의 팔꿈치에 내다 꽂아버렸다. 파육의 감촉과 함께 처박힌 말뚝 사이로 핏물이 튄다.
|
||
|
||
“캬아악!!”
|
||
|
||
흡혈귀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다른 손을 뻗어 이안의 심장을 향해 찔러넣었다. 이안은 반사적으로 마도서를 가슴 앞으로 끌어당겼다.
|
||
|
||
그렇게 놈의 손과 마도서가 닿는 순간.
|
||
|
||
뻐어어엉!!
|
||
|
||
커다란 굉음과 함께 흡혈귀의 팔이 통째로 터져버렸다.
|
||
|
||
주인이 아닌 존재가 함부로 마도서와 접촉했기 때문에 발생한 폭발.
|
||
|
||
이안은 틈을 놓치지 않고, 쏟아지는 피를 피하며 놈의 다리에 손을 올렸다.
|
||
|
||
“새롭게 태어나라.”
|
||
|
||
꾸르륵……!
|
||
|
||
재창조의 마법이 발동한다. 놈의 다리를 중심으로 육체가 물처럼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끔찍한 고통에 흡혈귀가 발버둥 쳤지만, 팔이 말뚝에 고정된 탓에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
||
|
||
“크허어어어ㅡ”
|
||
|
||
결국, 놈이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녹아내렸다. 이안은 바닥을 적신 붉은 회색빛 액체를 뒤로하고, 1층에서 싸우는 중인 알파와 무리를 이끌던 흡혈귀를 내려다보았다.
|
||
|
||
“빌어먹을 모기 년이. 제법 질기구나! 귀족에게 직접 피를 받기라도 한 모양이야!”
|
||
|
||
“……망…… 할 인,간……!”
|
||
|
||
“오호, 지능까지 생기는 중인가? 이거 정말 귀족이 한국에 들어왔나 보군. 당분간은 여기서 머물러야겠어.”
|
||
|
||
알파가 그렇게 말하며 능숙하게 리볼버를 장전했다.
|
||
|
||
하지만 목소리와 행동에 여유가 넘치는 것과는 별개로, 그의 어깨에선 피가 줄줄 쏟아지고 있었다. 흡혈귀의 손톱에 관통되어 생긴 상처였다.
|
||
|
||
흡혈귀도 몰골이 멀쩡하지는 않았다. 은탄에 직격당한 부분은 재가 되어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목구멍에는 말뚝이 처박혀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
||
|
||
이안은 살짝 분홍빛이 도는 놈의 혈액을 응시하다가, 방금 막 흡혈귀의 이마에 은화살을 처박은 베타의 모습을 확인했다.
|
||
|
||
제법 격렬한 몸싸움을 했는지 그 또한 허벅지에서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다급하게 지혈하는 걸 보면 혈관이 다친 모양이다. 손목 위에 장착한 쇠뇌도 부서져 바닥을 나뒹구는 중이었고.
|
||
|
||
‘지원할 여유는 없어 보이네.’
|
||
|
||
결국 남은 것은 이안 뿐이었다. 그는 곧바로 주머니에서 반지 케이스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
||
|
||
케이스 안에 든 것은 반지가 아니라 천에 고이 감싸진 생선의 눈알이었다. 이안은 천을 빠르게 걷어내고, 납작한 눈알을 손에 쥔 채 망막에 흡혈귀의 모습이 비치도록 각도를 조절했다.
|
||
|
||
……덜컥.
|
||
|
||
어느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맞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
||
|
||
목표가 망막이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이안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망막에 비친 대상을 확인해 보았다.
|
||
|
||
다행히 생기 하나 없는 눈동자에는 흡혈귀의 모습만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
||
|
||
그는 망설이지 않고, 눈동자를 손으로 쥐어 터트렸다.
|
||
|
||
콰직!
|
||
|
||
“……!”
|
||
|
||
안구가 뭉개지는 것과 동시에 흡혈귀의 눈동자가 터졌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부서진 놈의 안구 사이로 핏물과 투명한 액체가 줄줄 흘러나왔다.
|
||
|
||
“캬아아아악!!!”
|
||
|
||
산 채로 눈이 으깨지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놈이 괴성을 내질렀다. 그 모습에 알파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
||
|
||
‘원거리에서 안구를 짓뭉개는 마법이라. 무섭군.’
|
||
|
||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그는 곧 평정심을 되찾고 리볼버를 정조준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
||
|
||
콰직!
|
||
|
||
발광하는 흡혈귀의 머리를 정확히 박살 낸 탄환이 벽에 처박힌다. 머리가 부너진 흡혈귀는 그 자리에서 짧게 몸을 떨더니, 곧 재가 되어 사라졌다.
|
||
|
||
“끝이군.”
|
||
|
||
놈을 마지막으로 모든 흡혈귀가 사라졌다. 알파는 곧장 품에서 작은 캡슐 하나를 꺼내 바닥에 집어 던졌다.
|
||
|
||
사아아아…….
|
||
|
||
깨진 캡슐 사이로 하늘색 연기가 자욱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알파는 연기를 가만히 놔두고, 이안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
||
|
||
“장소를 이탈한다! 지금쯤이면 카르텔에서 고용한 밴이 도착했을 거다!”
|
||
|
||
“주차장으로 가면 되나?”
|
||
|
||
이안이 마도서를 허리춤에 집어넣으며 물었다.
|
||
|
||
알파는 지혈제를 씹어 삼키고, 리볼버를 허리춤에 꽂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
|
||
“그래, 짭새가 오기 전에 빨리 움직인다! 달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