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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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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를 걸으며 주변을 살핀다.

새하얀 벽지. 깜빡거리는 전등.

간호사들은 자기들끼리 이상한 언어로 대화를 나누며 뛰어다니고, 병실 내부에는 환자들이 축 늘어져 있다. 병실에 있는 환자들의 이름이 적힌 명패는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뭉개진 상태였다.

‘누군가가 지운 건 아니야. 저절로 녹아내린 것 같은데.

처음부터 이런 상태였을까? 아니면 환자로서 붙잡힌 피해자들이, 점점 죽어가면서 이렇게 녹아버린 걸까.

굳이 따지자면 후자의 가능성이 더욱 높다고 판단했다. 녹아내린 정도가 다른 것이, 처음부터 저런 상태였던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탐사도 더욱 쉬워질 것이 분명했다. 아직 선명한 이름을 찾아 움직이기만 해도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을 터.

굳이 숨겨야 할 정보는 아니었다. 이안은 곧바로 체칠리아에게 떠오른 가설을 알려주었다.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 한번 해보자.”

그녀의 동의를 받고 계속해서 6층을 탐사한다.

하지만 이곳에는 정상적인 이름을 지닌 환자가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있는 거라곤 ‘김민수’라는 반쯤 녹아내린 이름이 전부였다. 정신 상태도 멀쩡하지 않았으니, 데리고 갈 가치는 없었다.

그렇게 다음 층으로 넘어가 같은 짓을 몇 번이나 반복한다. 7층, 8층, 9층…… 이윽고 12층에 도달했을 때. 두 사람이 잠깐 벤치에 앉아 쉬었다.

“후우…….”

담배를 피우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따끔거려서 포기했다. 지금 상태에서 담배까지 피우면 진짜 목이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을 느낄 게 뻔했다. 그래도 기분이라도 낼 수 있도록, 담배를 입에 물기만 한 채 까딱거렸다.

‘일단 규칙을 지키기만 하면 살해당할 위험은 없다. 조심해야 할 건 의사들과 아사(餓死)야.

환자가 아닌 이상, 이 병원에서 함부로 음식물을 입에 댈 수는 없었다. 그들의 밥을 뺏어 먹는 것도 불가능하고, 편의점에서 음식을 사 먹으면 내과의사가 출몰하니…… 사실상 먹을 거라고는 스스로의 피가 전부였다.

이걸로 갈증을 채울 수 있을지언정, 배는 채우지 못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굶주림에 시달릴 게 뻔했다.

그러니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이번 휴식을 마지막으로, 쉬지 않고 66층까지 올라갈 계획이었다. 이미 체칠리아와 이야기는 모두 끝낸 상태다.

‘가능한 전투는 최소한으로 하고 싶은데. 괜히 싸웠다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상대가 먼저 적의를 드러내거나, 정말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마법을 사용하겠지만. 그게 아닌 이상 먼저 방아쇠를 당길 필요는 없었다.

판단은 빠르고 신중하게.

꼭 필요한 상황에서만 무력을 운용하는 게 탁월했다.

“이안 마법사.”

생각하는 사이, 체칠리아가 말을 걸어왔다. 이안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왜.”

“여길 탈출하면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어.”

“……이야기?”

이안이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 온 목적. 상담 좀 부탁해.”

“……마법사와 관련된 이야기인가?”

“응.”

“혹시 모세 제8의 서 때문은 아니지?”

“……? 갑자기 그 마도서는 왜?”

체칠리아가 눈을 끔뻑이며 되물었다.

“그건 저기 아랍 쪽에서 관리해. 바티칸의 마도서는 ‘교황 호노리우스의 서’가 전부.”

교황 호노리우스의 서.

그리 유명한 마도서는 아니지만, 같은 마법사들 사이에선 인지도가 제법 높은 마도서였다. 천사를 소환하는 마법과 신성 계통 마법, 그리고 지능이 없는 순수한 신성 덩어리를 사역하여 전투하는 법이 적힌 책.

혹시라도 마주치는 일이 없을까 이안이 개인적으로 조사한 마도서지만, 모세 제8의 서가 박살 나고 평범한 마도서를 지닐 수 없게 된 시점에서 관심을 끊어버린 마도서였다.

‘그보다 모세 제8의 서, 그거 아랍 쪽에서 관리하는 거였나.

당연히 기독교 관련이라 바티칸에서 보관하고 있는 줄 알았건만, 그건 또 아닌 모양이다. 이러면 제6의 서와 제7의 서도 아랍에 잠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설마 형제의 복수를 하겠답시고 날아올 거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마도서의 행방을 알게 된 광신도들이 찾아올 경우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병원을 탈출하면 미리미리 대비는 해둬야 할 것 같았다.

‘할 일이 많군.

그리 오래 여유를 즐길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예상보다 훨씬 빨리 휴가를 끝내야 할 듯싶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병원을 탈출하는 게 먼저였다. 이안은 쓰라린 목구멍을 쓰다듬으며 몸을 일으켰다.

“이야기에는 어울려줄게. 그러니 탈출에 집중하자.”

“응. 알겠어. 13층으로 가자.”

체칠리아가 단검을 고쳐 쥐고 앞장서서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12층은 탐사가 끝난 상황이다. 이제 다시 위로 올라갈 때다.

지이잉.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 13층이라 적힌 버튼을 꾹 누른다. 눈 깜빡할 사이에 도착한 층에 내려서 병실 문 옆에 달린 명패들을 빠르게 확인한다.

13층은 꽝.

14층에 적당히 녹아내린 이름 하나를 발견했으나, 뇌가 없는 상태라 포기.

15층 꽝.

16층은 정신 병동이라 적혀 있어서 굳이 가지 않았다.

17층, 18층 연달아서 꽝.

19층은 중환자실이라 무시.

그리고 20층.

지이잉.

부드럽게 열린 문 너머로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안은 쉬지 않고 탐색한 탓에 살짝 저리는 허벅지를 주먹으로 두드리며 복도를 거닐었다. 체칠리아가 그의 뒤를 따르며 속삭인다.

“다른 층보다 간호사가 많아.”

“…….”

그녀의 말대로였다. 이안은 목이 욱신거리는 탓에 대답은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마도서를 톡톡 두드렸다.

다른 층들에도 간호사는 존재했다. 다만 그 수가 절대적으로 많지는 않았다.

움직이면서 마주친 놈들의 수는 총 셋. 앉아서 차트를 읽고 있는 간호사도 많아 봤자 둘에서 셋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20층에선 발걸음을 옮기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건만, 벌써 간호사를 다섯이나 만났다.

“환자분, 정신 차리세요. 곧 추가 수술 들어갈 거예요.”

“저쪽 환자분 상태 확인만 좀 해줘. 또 약을 안 먹는다고 하시면 그대로 목을 찢어서 먹여드리고.”

“이쪽에 출혈 환자 발생이요! 지네랑 거즈, 구더기 좀 가져다주세요!”

일사불란하게 뛰어다니는 간호사들을 보며 침음성을 흘린다.

나누는 대화는 전혀 평범하지 않았지만, 환자들을 대하는 태도 자체는 실제 간호사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징그럽게 생긴 외형과는 별개로, 간호 일에는 전력을 다하는 중이었다.

그게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들이 내려주는 처방이 상태 호전에 도움이 된다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다른 층의 환자를 보면 오히려 악화시킬 가능성이 더욱 높았다. 또한 환자들을 대하는 태도와 ‘불청객’을 대하는 태도가 같을 거란 보장도 없었다.

방심은 하지 않는다. 언제든 대처할 수 있도록, 방아쇠에는 손가락이 걸려 있고 손에는 마도서가 붙잡혀 있다. 정신줄을 놓지 않는 이상 무력하게 당할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아직 역방향 조준도 작동을 하는 상태다. 앞으로 2번 정도만 더 경고하면 망가지지만, 당장은 이걸로 충분해.

위협을 미리 알아내는 것만으로 성능은 확실한 편이다. 마냥 의존할 수는 없어도 신뢰할 수는 있었다.

“괜히 간호사들을 자극하지 말고 움직이자. 그리고 간호사가 많다는 건, 이 층이 다른 곳과 다르다는 뜻일 가능성이 높아.”

“나도 같은 생각. 간호사가 별로 없는 층에는 생존자 없었고, 그래도 몇몇 있는 곳에는 조금 더 많았어. 그럼 여기가…….”

“멀쩡한 놈이 있을 확률은 제일 높겠지. 가자.”

촤라락.

이안이 마도서를 펼치며 복도를 거닐었다. 체칠리아가 그를 지키듯이 바로 옆에 따라붙어 주변을 경계했다.

그러기를 한참, 명패를 확인하던 체칠리아의 눈이 번쩍 뜨였다.

“저기!”

그녀가 이안의 옷자락을 붙잡고 손짓했다.

“이름 정확히 적혀 있어.”

“…….”

이안이 체칠리아가 가리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김%!^61][박희수]

4인 병실. 흐물흐물 녹아내린 환자들의 이름 중, 하나가 아직 선명한 상태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두 사람은 곧바로 병실 앞으로 다가가 문에 달린 창문으로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커튼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는데.”

“자리 배치에 따르면 오른쪽 창문 자리. 들어갈 거야?”

체칠리아가 권총을 들고 물었다. 이안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멀쩡한 사람 찾으려고 그 고생을 했는데, 여기서 망설일 이유는 없어.”

“얼굴은 숨길 거야?”

“숨길 게 있나?”

“……없긴 한데.”

“그럼 어쩔 수 없지. 나도 내키지는 않지만, 드러내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어. 나중에 입단속이라도 시키는 수밖에.”

“폭력은 안 돼.”

“마법사답게 할 거다.”

“……더 불안해졌어.”

이안은 중얼거리는 체칠리아를 뒤로하고 병실의 문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가만히 누워있던 환자들이 발작했다.

“아아아아아아악!!!”

“오늘은머리에지네를넣었고구더기는내몸을파먹는중이며출혈과고열이나를새로운종으로다시탄생시킨다.”

“…….”

누군가는 소리를 지르고, 누군가는 미친 듯이 중얼거렸으며, 누군가는 눈과 입이 꿰매진 채로 몸을 박박 긁어댔다.

그러한 소란의 중심에서, 오직 한 침대만이 멀쩡했다. 이안은 곧바로 병실을 걸어가 오른쪽 창가 자리의 커튼을 걷어냈다.

촤라락!

새하얀 커튼을 치우자 침대 위에 누워있는 중년 남성의 모습이 보인다. 자는 것처럼 눈을 감고 있지만, 이안은 단번에 그가 자는 척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소리를 지르는 것보단 이게 훨씬 나았다. 그는 코 고는 척하는 남자를 내려다보며 신체가 변형된 곳이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 겉모습은 멀쩡했다. 최소한 시술의 흔적은 없었다. 의사가 손을 대지는 않았다는 의미다.

자는 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정신도 멀쩡하다는 뜻이고.

이 정도면 충분히 조건에 부합하는 환자다.

결론을 내린 즉시, 이안이 남자의 미간에 총구를 가져다 댔다. 체칠리아가 순간 기겁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자는 척하는 거 다 파악했다. 간호사나 의사는 아니니, 눈을 뜨고 대답해라. 소리를 지르는 순간 방아쇠를 당길 테니까 반응은 최대한 간결하게 해.”

처음부터 이리 강하게 나가는 건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안이라고 한들, 무고한 사람을 향해 총부터 들이밀지는 않는다.

‘멀쩡한 환자라는 걸 확인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신뢰할 수는 없다. 대화는 나눠봐야 해.

만약 이 남자가 멀쩡한 척하는 미치광이 환자라면? 그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나?

아니, 그렇지 않다. 그러니 모든 행동을 신중하게 고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총부터 들이밀었다. 빠르게 대응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화에서 갑과 을의 자리를 확실하게 굳히기 위하여.

꾸욱.

이안은 싸늘한 표정으로 총구를 짓누르며 입술을 달싹였다.

“대답.”

“…….”

남자는 총이 자신의 미간을 밀어내는 듯한 감각에, 천천히 감았던 눈을 뜨고 이안과 눈을 맞췄다.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그의 손에 잡힌 마도서와 십자가 모양 단검을 쥔 체칠리아를 확인하고 씩 미소 지었다.

“마법사에 이단 심문관? 이거 영 희한한 조합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