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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이의 머리는 개미처럼 생겼다. 거대한 대가리 아래는 인간의 육체를 지니고 있었으나, 머리가 너무 무거운 탓에 몸이 바닥에 질질 끌려다녔다. 걸치고 있는 간호사복은 이미 해질 대로 해져서, 놈이 움직일 때마다 찢어진 살갗에서 흐른 피가 바닥을 적셨다.
그 위를 기어서 다가온 간호사가 사사삭거리는 소리를 내며 체칠리아와 이안을 올려다보았다.
“어디로 가세요? 제가 대신 눌러드릴게요.”
“……나 외국인, 한국말 잘 몰라요.”
체칠리아가 어눌한 발음으로 내뱉었다. 간호사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피 묻은 손으로 입가를 긁적였다.
“아…… 그래요? 그럼 저 혼자 먼저 올라갈게요. 병문안을 온 거면 일단 3층 데스크에서 안내부터 받으세요.”
그 말을 남기고 간호사가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한 차례 떨리고, 놈이 층을 누르자마자 문이 거세게 닫히며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2층, 3층. 4층. 5층…….
1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층수가 빠르게 변화한다. 체칠리아는 엘리베이터 위에 적힌 숫자가 66으로 바뀌어서 멈추는 순간, 숨을 토해내며 이안을 데리고 비상구 쪽으로 이동했다. 이안은 순순히 그녀를 따라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병원의 구조가 기억 속에 있는 것과 많이 다르다. 본래 채혈실이나 CT, MRI 촬영실이 있던 자리에 수술실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으며, 복도의 위치나 굴절, 길이가 미로처럼 뒤죽박죽이었다.
‘병원 전체가 오염된 건 아닌 것 같은데. 애초에 다른 공간이야.’
어린 시절 많이 들락거렸을 뿐이지만, 워낙 병원의 구조가 단순해서 어디에 뭐가 있는지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덕분에 지금 걷고 있는 이 복도와 응급실로 향하는 모퉁이, 비상구의 위치가 아예 다르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오염이라고 하기엔 겹치는 곳이 아예 없다. 그러니 테마파크나 도서관처럼,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전이되었다고 보는 게 옳았다.
‘좋지 않은데.’
아주 오랜만에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오늘은 딱히 괴이를 마주치거나, 신비와 관련된 일을 해결할 생각이 없었다. 비록 조금 전까지 잡귀를 마주치고 싶다고 농담하기는 했지만, 이런 공간으로 떨어지길 바란 것은 아니었다.
“…….”
복도와 응급실, 채혈실, 수술실 내부로 사람들이 잔뜩 돌아다닌다. 채혈실 내부에 있는 주삿바늘 촉수들이 천장에 목을 매고 죽은 시체들의 심장에 바늘을 꽂은 채 꿈틀거린다. 소변 검사를 맡은 간호사들은 아예 성기와 방광을 통째로 뜯어내더니 콩팥을 으깨서 종이컵 내부로 흘려보냈다.
보는 것만으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다.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체칠리아에게만 의존해서 나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애초에 나가는 게 가능하기는 할까.’
창밖.
본디 거리의 모습이 보여야 할 창문 너머로 비치는 건 광활한 초원이 전부다. 그리고 그 초원에 환자복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가만히 서서 병원을 응시하는 중이었다.
이 공간으로 끌려온 피해자들인가, 아니면 병원 밖으로 나오는 인간을 죽이기 위한 간수들인가.
뭐가 됐든, 좋은 의도로 서 있는 게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이안은 혀를 쯧 차며 가방끈을 손으로 잡았다.
덜컹!
복도를 달린 끝에 비상구에 도착했다. 체칠리아는 주변을 슥 둘러보더니,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이안을 올려보았다.
“잘 들어요. 지금 우리는 어…… 음…… 신비? 아, 네. 신비에 휘말렸어요.”
그녀가 어색한,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뜻을 전달하기 위해 손짓을 섞어가며 말했다.
“잘못하면 죽어요. 그러니까 내 지시 따라요. 알겠어요?”
“이런 일이 익숙하신 겁니까?”
이안이 살짝 겁먹은 표정으로 물었다. 코트 손에 들어간 그의 손이 리볼버의 해머를 당겼다.
다행히 체칠리아는 찰칵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한 건지, 단검을 고쳐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하지만 이런 공간형은 처음이에요. 우리가 사냥하는 신비, 전부 개체형. 이건 관리국 역할.”
“관리국이요?”
“국가 기관. 이런 거 전문적으로 해결하는 곳. 우리랑 별로 안 친해요. 거긴 억압과 연구로 구원, 우리는 배척과 살해로 정화. 이해했어요?”
쉽게 말해서 관리국은 신비를 붙잡아 억압하고 그것을 연구하며 인류를 구하는 게 목표고, 교황청은 그딴 거 없이 모조리 죽여 세상을 정화하는 게 목표라는 뜻이다.
똑같이 평화를 바라지만, 그 과정이 전혀 다른 두 기관. 협력할 여지는 충분하더라도 끝에서는 결국 갈라지고 말 신념들.
체칠리아가 말하는 걸 들어보면 교황청 측에서도 관리국의 존재 자체는 인지하고 있으며, 그들의 일 자체를 방해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오히려 관리국의 역할이라고 말할 정도라면 일단 적대 관계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친하지 않다는 건, 딱 거기까지라는 수준이다.
카르텔이나 시계탑, 나머지 단체와의 관계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중요한 사안은 아니었다. 일단은 탈출이 우선이다.
“이해했습니다. 그보다 여기서 어떻게 나갑니까? 가만히 있으면…… 좋은 꼴은 못볼 것 같습니다.”
“……공간형은 탈출 방법이 매우 다양해요. 일단은 역할에 충실하는 게 베스트.”
체칠리아가 어디선가 풍겨오는 탄내에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일종의 오페라, 혹은 뮤지컬. 최대한 안전은 역할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에요.”
불타는 냄새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이안은 체칠리아의 말에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가, 갑자기 후욱 풍겨오는 역겨운 냄새에 미간을 찌푸렸다.
냄새는 위에서부터 내려오고 있었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 올리자, 저 위쪽에서 빠르게 내려오고 있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아아아아아악!!!!”
그것은 인간이었다. 전신에 불을 붙이고, 화상과 괴사, 재생을 반복하고 있는 타오르는 인간.
놈은 비명을 내지르면서, 덜렁거리는 머리를 이안과 체칠리아를 향해 집어 던졌다.
“……!”
그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바람을 찢으며 쏘아진 머리는 정확히 이안의 얼굴을 노리고 수직으로 떨어졌다.
피하기엔 늦었다. 이안은 어쩔 수 없이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 빈손을 허공으로 쭉 뻗었다.
그 순간, 체칠리아가 장갑을 낀 손으로 머리를 쳐냈다.
콰아아앙!!!
머리가 터지며 자그마한 폭발이 일어났다.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게 올라오고, 살이 타오르는 역겨운 냄새가 진동했다.
이안은 호흡기를 침투하는 뜨거운 연기에 연신 기침을 해대며 자신을 지키듯이 서 있는 체칠리아를 한쪽 눈으로 응시했다.
머리를 쳐낸 그녀의 팔은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으깨진 상태였다. 바닥에 피가 후드득 떨어지고, 화상을 입은 그녀의 얼굴과 어깨에서 잔불이 피어올랐다.
“……커흑, 크읍…….”
체칠리아가 숨을 토해내며 바닥에 떨어진 단검을 주워 던진다. 계단을 내려오던 타오르는 인간은, 그대로 단검이 무릎에 처박혀 고꾸라졌다.
“아아아아아악!!!! 아파, 아파!!!! 엄마!! 아빠!!! 내 무릎이 부서졌어! 피부가 타오른다아아아아악!!!!”
머리가 사라진 놈이 목구멍으로 비명을 내지른다. 이안은 놈을 무시하고 타오르는 옷을 집어 던진 체칠리아를 향해 다가갔다.
“체칠리아 씨……!”
“괜찮아요! 나가요!”
그녀가 단검을 회수하지도 않은 채 비상계단 밖으로 나간다. 이안이 곧장 그녀를 따랐다.
두 사람은 다시 1층 응급실 근처 복도에 발을 들였다. 이안은 곧바로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려다가, 사방에서 쏟아지는 압도적인 눈빛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체칠리아도 식은땀을 흘리며 앞에 서 있는 존재들을 응시했다.
“…….”
“…….”
본래 벤치에 앉아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고 있던 환자들이 전부 체칠리아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다. 응급실 입구에는 기괴하게 생긴 간호사들이 얼굴을 들이미는 중이었고, 모퉁이 너머로 뚜벅거리는 발소리가, 천장에서는 수십 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듯한 요란한 소음이 들려왔다.
“화상이다.”
“팔이 없다.”
뚜벅거리는 발소리가 가까워지는 순간, 앉아 있던 환자들이 입을 열었다.
“환자다.”
“환자다.”
그들의 입꼬리가 쭉 찢어졌다.
“환자다.”“환자다.”“환자다.”“환자다.”“환자다.”“환자다.”“환자다.”“환자다.”“환자다.”“환자다.”“환자다.”“환자다.”“환자다.”“환자다.”“환자다.”
“시발.”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소름에 이안이 곧장 체칠리아의 몸을 부축해서 일으켰다. 체칠리아는 멍하니 그들을 응시하다가, 곧 이안을 돌아보며 기쁘게 웃었다.
“나 아파요.”
“……뭐?”
“치료받아야 해. 치료, 치료, 치료! 아아아악!! 외과 의사가 온다! 의사가 온다! 수술, 수술!!!”
그녀가 이안의 품에서 발작했다.
정신이 돌아버린 것이다. 그녀의 정신력이 약한 것과는 별개로, 이 미쳐버린 공간의 트리거를 당긴 모양이었다.
아마 그 트리거는 상처를 입고, 누가 봐도 확실한 환자 상태에 진입하는 것일 터.
가만히 놔두면 그녀 또한 저들과 같은 환자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었다.
이안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마도서를 소환하며 마치 흉기처럼 고쳐잡았다.
“죽이면 안 된다! 아직 뽑아먹을 지식이 많아……!”
[우웅!]
손에 잡힌 심해견문록이 이해했다는 듯 반응했다. 이안은 곧장 마도서를 휘둘러 체칠리아의 정수리를 후려쳤다.
빠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두개골이 부서졌다. 광기로 흔들리던 눈동자가 순식간에 위로 치솟고, 경련하던 몸뚱이가 아래로 축 늘어졌다.
본래라면 외신의 마도서에 다른 이가 접촉하는 순간 그 접촉한 부위가 터져버리지만, 이렇게 주인이 허락하거나 마도서 차원에서 조절하면 터트리지 않고 끝낼 수 있었다. 처음 해보는 짓이지만, 다행히 제대로 들어갔다.
하지만 감상에 젖을 시간은 없었다. 이안은 곧바로 체칠리아를 던지듯이 벽에 내려놓고,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리볼버를 꺼내 쥐었다.
“…….”
곧, 모퉁이 너머로 가운을 걸친 의사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