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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실랑이한 끝에 이안은 두 마도서 사이에 낀 손을 빼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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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책으로 짓눌린 손은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손가락이 움직이는 걸 보면 부서진 건 아닌 것 같은데, 아프기는 더럽게 아팠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손목까지 번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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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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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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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의 손이 빠졌음에도 마도서들은 계속해서 서로의 몸뚱이를 들이박았다. 모서리로 표지를 찍어버리고, 옆으로 빙글빙글 돌아서 옆구리를 후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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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사 UFC 경기였다. 튀는 게 피가 아니라 스파크고, 선수가 인간이 아니라 책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두 마도서는 진심으로 서로를 밀어내고 죽이기 위해서 푸닥거렸다. 모습이 좀 우스꽝스럽기는 해도, 두 책에서 흘러나오는 살기는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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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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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의자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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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마도서와 시꺼먼 마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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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되는 색을 지닌 책들이 싸우는 모습은, 솔직히 외신이 작성했다고 여기기 어려울 정도로 유치했다. 어린 애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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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마도서가 2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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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마도서 하나가 더 굴러들어 왔지만, 이안이 바라던 상황은 아니었다. 평범한 마도서라면 또 모를까. 외신이 작성한 걸 두 개나 지니고 있으면 어떤 탈이 생길 가능성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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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유불급이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외신의 마도서가 지닌 힘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그 어떤 것이든 원하는 형태로 재조립할 수 있는 어처구니없는 능력. 특이한 마법을 지닌 유나조차도 보고 놀랄 정도로 규모나 위력에 비해 리스크가 거의 없는 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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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저 [심해견문록] 또한 비슷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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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창조한 생물을 소환하는 게 가능하다고 적혀 있지만, 그 생물이 평범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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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책의 제목도 바다와 연관되어 있다. 아마 크라켄을 포함한 각종 심해 괴물들을 부리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평범한 생물이 아닌, 외신이 직접 만든 생물이니 육지에서 활동하는 것도 가능할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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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공격력을 채우기에는 나쁘지 않은 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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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쁘지는 않은데…… 굳이 원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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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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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담배 한 개비를 물고 태우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여전히 싸우는 두 마도서를 가만히 내버려두고, 안내문을 곳곳에 붙이는 사서를 응시하며 팔짱을 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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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서의 간택이라는 게 온전히 마도서의 의지에 달린 일이라는 건 알고 있다. 마법사가 찾으려면 찾을 수야 있겠지만, 그 경우보다 마도서가 직접 찾아가는 경우가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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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방금 산 채로 찢겨나간 모세 제8의 서도 호기심에 슬쩍 들렀다가 강제로 잡혀 오체분시를 당한 거겠지. 의도한 일은 아니지만, 참 안타깝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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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마도서의 선택을 받는다는 건 마법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평범한 마도서라면 거부할 수 있지만, 외신의 마도서는 그딴 게 불가능했다. 눈앞에 나타나자마자 강제로 표지를 열어서 내용을 보게 하는 데, 저항할 틈 같은 게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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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한숨을 푹 내쉬며 싸우다 지쳐 쓰러진 마도서들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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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위에 드러누워 미동도 하지 않는 상반된 색의 두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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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다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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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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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동시에 심해견문록이 그의 손에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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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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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창조의 손길이 배신이라도 당한 것처럼 몸을 덜덜 떨어대고, 심해견문록이 표지를 펄럭인다. 이안은 각기 다른 반응을 내비치는 두 마도서를 무시하며 진지한 표정으로 심해견문록을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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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확인은 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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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환에 응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마도서의 소유자가 되었다는 의미였다. 바라지 않았던 두 번째 마도서라고 한들, 소유주가 되었다면 돌이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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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 같은 건 존재하지 않으니, 남는 건 적응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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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현실을 부정해 봤자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판단은 빠르게.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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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커뮤니티에 물어는 봐야지. 마도서를 2개 지닌 마법사도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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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마도서의 소개글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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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견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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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외해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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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마도서는 외신, 외해의 주인 ■■■의 손에 쓰였으며 ■■■가 직접 만들어낸 외해의 생물들을 소환하여 다루는 게 가능한 마법이 기록되어 있다. 이 외에도 물에서 숨을 쉬는 마법, 담수를 해수로 바꾸는 마법 등이 적혀 있다. 본 마도서의 전 주인이 없으므로 기억의 열람은 불가능하다. 기뻐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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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창조의 손길과 묘하게 비슷하면서도 다른 소개글이다. 이안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면서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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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마법이 적힌 목차를 넘기고, 마도서의 주요 내용인 소환 파트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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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해의 생물은 모두 기본적으로 생명체에게 적대적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을 혐오하고 증오하며, 이는 저들끼리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목숨은 그들이 살아가는 바다의 주인에게 저당 잡혀 있으며, 그녀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복종하고 따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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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마도서를 통해 그들을 불러와 다루는 건 가능하다. 재료로 필요한 것은 소유주의 피와 신비의 살점이다. 내장 기관이면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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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하는 피와 살점의 양에 따라 소환되는 생물의 크기 또한 달라진다. 다만 소환진을 잘못 그릴 경우, 역으로 외해 속으로 빨려 들어가니 주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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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소환한 후, 그에 응한 대가. 즉, 충분한 음식을 주지 않는다면 역으로 소유자를 공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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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환할 수 있는 생물과 그들의 소환진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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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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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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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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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지 않는 눈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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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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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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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게 많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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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쭉 이어진 소환진과 그들의 외형, 설명을 읽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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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자리에서 모두 읽기에는 분량이 상당히 많았다. 그래도 대충 성격은 파악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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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으로 치자면 소환사 계열의 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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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렇게 소환되는 존재들이 요정이나 정령처럼 이롭지 않고, 눈에 보이는 모든 생명체를 먹어 치울 정도로 포악하고 굶주려 있다는 차이점이 존재했다. 소환의 대가를 주지 않으면 소환사를 역으로 죽이려 들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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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대가로 받아 가는 게 없던 재창조 마법과 비교하면 연비 자체는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러나 원거리 공격 수단이 하나 생겼다는 건 환영할 만한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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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창조랑 소환을 같이 사용하는 건…… 불가능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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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도서의 주인으로서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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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서에 적힌 마법은 쥐고 있는 책 하나만 사용이 가능하다. 심해견문록을 쥔 채로 재창조 마법은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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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것 이외의 다른 소소한 마법들은 사용할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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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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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고 있자, 사서가 다가왔다. 놈은 이제 제 몸을 가누기도 힘든 건지, 가만히 서 있음에도 몸을 바들바들 떨어냈다. 제대로 서 있는 방법도 잊어가는 것이다. 백치가 되기 직전 단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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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상태로 5분 이상 놔두면 자기 혼자 털썩 쓰러져 죽어버린다. 딱히 놈이 죽든 말든 이안에겐 별 상관이 없었지만. 여기서 나가기 위해선 놈의 존재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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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마도서를 덮고, 두 권의 책을 가방에 쑤셔 넣으며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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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서 배치 다 끝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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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안내문도 곳곳에 붙였습니다. 하지만 이걸 왜 하는 건지 이해가 잘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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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필요 없어. 그보다 규칙서 원본 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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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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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곱게 접은 종이를 이안에게 내밀었다. 이안은 종이를 주머니에 넣고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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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용무는 끝났으니까 이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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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정식 절차를 밟으시면 나갈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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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정식 절차란, 도서관에 있는 책 한 권을 대여하고 독후감을 써오겠다며 약속하는 것이다. 여기서 정확한 기간을 물을 때 대답을 해버리면, 그 기간이 지나는 순간 도서관으로 강제 전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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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으면 당할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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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견문록. 이제 내가 가져갈게. 대여 아니고 소유. 기간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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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으음…… 그…… 그거 맞아요……? 왜 이렇게 아닌 것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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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 의심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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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닙니다. 나가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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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어색하게 머리를 긁으면서 도서관 입구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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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가면 현실로 이어집니다…… 다음에 또 이용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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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냐. 아, 그리고 너 등에 종이 하나 붙어 있다. 뜯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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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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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길쭉한 팔을 뻗어 종이를 떼는 사서를 보며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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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살점째로 뜯겨나간 붉은색 종이가 사서의 손에 잡힌 채 덜렁거린다. 그 순간, 멍하게 풀렸던 사서의 거대한 눈동자가 부릅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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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 시발 마법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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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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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굳이 놈과 어울려주지 않고 문을 열어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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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를 맞이해준 것은 복도가 아니라 짙은 밤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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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다행히 창문 밖의 괴물들과 눈싸움을 벌일 필요는 없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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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고, 도서관의 벽에 기대서 담배 한 개비를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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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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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을 향해 입김과 연기를 같이 내뱉는다. 하늘로 흩어지는 매캐한 연기 사이로 별과 달이 보인다. 빛이 거의 없는 주택 단지라서 그런지, 별이 상당히 잘 보였다. 달은 좀 기괴할 정도로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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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별의 어딘가에 만물의 재구성이랑 외해의 주인 본체가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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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실제 모습이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그렇게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닐 것 같았다. 보고 미쳐버리지나 않으면 다행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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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다 피운 담배를 대충 근처 쓰레기통에 버리고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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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바람은 제법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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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 이안은 곧바로 샤워하고, 의자에 앉아 카르텔에 연락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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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도서관 의뢰 완료했다. 보수는 어떻게 받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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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텔 직원: 고생하셨습니다. 보수 같은 경우, 근처 카르텔 지점을 방문하여 의뢰 완수 보고를 하고 수령 하시면 됩니다. 지점 위치는 본 어플에 안내되어 있으니 확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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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보니까 동물병원이라고 나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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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텔 직원: 맞습니다. 그곳에 방문하여 카르텔 어플을 보여주기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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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신원 보호는 확실히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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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텔 직원: 그렇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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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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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텔 직원: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카르텔의 상담사, 익스였습니다. 좋은 밤, 편안한 하루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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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휴대폰 화면을 닫고 옆에 대충 놓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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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뎀니스를 이용할 때는 보수가 바로바로 들어와서 좋았는데, 그게 아니라면 직접 찾아가야 하는 모양이다. 참 서비스 잘 만들었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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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몇백만 원이나 드는 서비스를 매번 사용할 수는 없었다. 적당히, 필요할 때만 쓰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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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 수단을 하나 마련하는 게 낫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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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그렇게 내뱉으며 책상 위에 놓아둔 두 마도서를 곁눈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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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났을 때는 그렇게 치고받고 싸우더니, 지금은 또 얌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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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를 한 건가, 아니면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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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지만, 그래도 매번 싸우는 것보단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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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두 마도서의 표지를 겹치게 놔두고, 뒷면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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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좋게 지내라. 난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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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끝으로 이안이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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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이안의 숨소리가 고르게 바뀔 때쯤, 두 마도서가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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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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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웅? 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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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책이 화내고, 검은 책이 이죽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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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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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재창조의 손길이 먼저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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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잠든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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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도서의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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