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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점점 멍청해지는 사서의 옆에 앉아서 같이 커피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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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도서관의 책임자라서 그런가, 사서가 타 준 커피는 제법 맛있었다. 분명 똑같은 인스턴트 가루를 쓸 텐데, 어떻게 맛이 이렇게 다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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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일종의 괴현상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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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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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종이 위에 사서가 타 준 커피는 먹어도 된다는 규칙을 적은 뒤, 그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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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도서관에서 뛰면 안 됩니다. 점프도 안 돼요. 아, 기어다녀도 안 되고, 책장을 타고 올라가도 안 돼요. 그럼 제가 호다닥 달려가서 머리를 똑 따버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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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 다음 규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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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커피를 홀짝이며 그가 알려준 규칙을 하나하나 종이에 새겨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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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할 정도로 방대한 규칙은 최대한 요약해서 적는다. 예를 들어 도서관의 책에 침을 바르거나 찢으면 아가리가 쭉 찢어져 2등분으로 몸이 나누어진다, 같은 규칙은 ‘책을 훼손하지 말 것’이라고 축약한다. 나머지 규칙들도 비슷하게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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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못 알아보고 굳이 굳이 책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행위를 한다면 그건 자연사다. 어차피 여기가 아니라도 어디서 죽을 예정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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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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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볼펜을 손가락 사이로 굴리고, 담배를 입에 물며 사서의 규칙을 계속 경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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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도서관에서 흡연은 금지에요. 담배 피우면 발끝부터 천천히 지져 죽여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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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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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요?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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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다음 규칙이나 계속 말해줘. 앞으로 몇 개나 남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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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총 136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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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면 몇 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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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7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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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요약해서 설명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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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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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이안은 사서가 알려준 규칙을 빠르게 작성하고, 사서는 점점 멍청해지는 두뇌를 어떻게든 회전하며 모든 규칙들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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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규칙서가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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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탄 괴담이나 다름없는 규칙. 축약에 축약을 반복해서 그런가, 생각보다 내용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외우는 게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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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소한 복사본은 들고 다니는 게 생존율을 더욱 높일 수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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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을 위해서 여기 하나 남겨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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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현상은 기본적으로 신비와 인간을 가리지 않는다. 이안은 제 발로 도서관에 방문했지만, 일반인들까지 그러리란 보장은 없었다. 마법사나 초능력자라는 조건 상관 없이, 분명 끌려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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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생환율을 높이기 위해서 복사본 몇 개는 도서관에 남겨두는 게 좋을 듯싶었다. 그는 직접 작성한 규칙서를 사서에게 내밀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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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복사해서 5개 정도만 도서관 곳곳에 배치해 줄래? 원본은 나 돌려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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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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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은 모두가 알아야 되잖아. 그래야 너도 편하게 쉴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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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네요! 복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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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규칙서들을 각각 어디에 놔뒀는지 알려주는 안내문도 만들어.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여기서 뭘 하든 신경 쓰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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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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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활기차게 대답하는 놈을 놔두고 방대한 책들의 무덤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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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 닿을 정도로 높게 솟은 책장. 그중 하나를 들여다보며 괜찮은 책이 있는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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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은 악의적인 것들이었다.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방법 총집편은 그 분량이 자그마치 2천 페이지에 달했다. 굳이 읽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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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마냥 그런 것들만 있는 건 또 아니었다. 평범한 소설책인 돈키호테, 아서왕 전설 등. 현실에서 유명한 이야기들도 몇 개 보였다. 책을 읽는 행위에 불이익이 없다는 걸 알고 있어서 펼쳐 읽어보았으나, 역시 특별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냥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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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 저 세계에서 책을 모아오는 곳인 모양인데. 그럼 마도서도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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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 있던 책을 다시 책장에 꽂아 넣고, 마도서를 손에 쥐며 어깨를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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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이 소유하고 있는 마도서는 평범한 마도서와는 궤가 다르다. 기본적으로 같은 인간이 작성한 일반적인 마도서와 달리, 재창조의 손길 작성자는 외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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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이라는 존재가 대체 어느 정도인지, 창작물에서처럼 지구를 꿀꺽 삼키는 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우주에서도 강자로 꼽히는 존재인 건 확실하다. 지구에서 난다 긴다 하는 마법사들도 그들의 앞에 서면 벌레와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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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확인해 보고 싶었다. 마법사가 작성한 마도서와 외신이 작성한 마도서의 차이가 뭔지. 수준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등. 미리 알고 있으면 훗날 그들과의 충돌에서도 이점을 점할 수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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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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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돌아가는 복사기를 뒤로하고. 이안은 제 발로 도서관 곳곳을 누비며 마도서를 찾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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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를 한참, 다른 책들과 다르게 제법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고풍스러운 책 한 권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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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표지에 금빛 글자가 새겨진 두꺼운 도서. 이안은 책의 제목을 확인하고 씩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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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 제8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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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첨이다. 이안은 재창조의 손길을 테이블 위로 올려두고, 의자에 앉아 새롭게 찾은 마도서를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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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 제8의 서는 이안도 알고 있는 마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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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메게톤, 솔로몬의 열쇠, 네크로노미콘, 알만델, 정령의 직무의 서 등. 내로라하는 수준급 마도서와 같은 등급의 책. 이서아가 지니고 있던 마도서 안내문에도 해당 마도서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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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통해 비를 내리게 하거나, 홍수를 일으키는 등. 파괴적인 마법이 주로 기록된 마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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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죄를 뉘우치고 신에게 진심을 다해 빌면 마법을 무력화시킬 수 있기는 하지만, 대단한 마도서라는 건 확실했다. 이안은 사서를 보채서 커피 한 잔을 더 가지고 와 홀짝이며 마도서의 표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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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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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기려 했다. 하지만 접착제로 붙인 것처럼, 표지는 넘어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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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거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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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다른 책들과 달리, 마도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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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자세히 보니까 표지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마치 열리지 않기 위해서 억지로 힘을 주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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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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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좋다고 모습을 드러낸 주제에, 갑자기 이렇게 튕긴다고? 무슨 어장 관리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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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가 생겼다. 이안은 책을 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온 힘을 다해 표지를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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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그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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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 제8의 서가 안간힘을 다하며 펼쳐지지 않기 위해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두꺼운 표지는 몇 mm 깔짝거리기만 할 뿐, 완전히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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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와서 도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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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안이 숨을 헐떡이며 재창조의 손길을 불렀다. 외신의 마도서는 도도하게 한숨을 내쉬는 듯 한 차례 펄럭이더니, 천천히 기어와 모세 제8의 서 표지를 툭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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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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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어어어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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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굉음과 함께 모세 제8의 서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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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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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기갈기 찢기고 으스러진 마도서가 바닥에 후드득 떨어진다. 순식간에 시체처럼 변한 그것은, 간헐적으로 부들부들 떨다가 이윽고 축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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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것이다. 방금 이 세상에 있던 마도서 하나가 그대로 소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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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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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바닥에 떨어진 마도서였던 것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마을 하나를 통째로 수장 시켜버리고, 대홍수로 재난을 불러오는 게 가능했던 마도서는 오늘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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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시대부터 존재했던 위대한 위인, 모세가 남긴 흔적은 그렇게 사라졌다. 이안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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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이 작성한 마도서는, 그 주인에게도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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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마도서의 잔재를 응시하고 있자, 손아귀로 재창조의 손길이 올라오며 저절로 페이지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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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서의 주인은 외신에게 간택 받은 자로 간주 된다. 이 상태가 된 마법사는 다른 마도서들에게 기피의 대상이 된다. 읽히는 순간, 자아가 붕괴하여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다만 격이 높은 마도서들은 이를 버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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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적합성이 100퍼센트인 대상은 더 이상 간택 받은 애완동물이 아닌, 외신의 동반자로 간주 되어 사실상 다른 마도서들에게 외신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 그리고 같은 외신의 마도서가 아닌 이상, 모든 마도서는 외신의 기운을 버티지 못하고 소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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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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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외신이 쓴 마도서를 주워 주인이 된 순간부터 다른 마도서는 사용하는 것도, 들여다보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이안은 머리를 긁적이며 손에 잡힌 새하얗고 두꺼운 책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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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는 마도서는 마치 자신 이외에 다른 마도서는 꿈도 꾸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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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집착 심한 여자 친구도 아니고. 어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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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마도서를 테이블에 내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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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같은 외신이 쓴 마도서만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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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가 쓴 마도서를 평생 볼 수 없게 된 건 아쉽지만, 그렇다고 다른 외신의 마도서를 찾아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집착 심한 마도서는 한 권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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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커피를 집어 들기 위해서 옆으로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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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손에 잡히는 건 커피가 든 종이컵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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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하면서도 거친, 가죽의 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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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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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테이블 위에 다른 책을 놓아두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렇다면 갑자기 잡힌 이건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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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손에 잡힌 무언가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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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새까만 책이었다. 아무런 설명도, 그림도 없이. 그저 검은색으로 칠한 표지 위로 붉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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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견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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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치 않은 제목의 책이 튀어나왔다. 이안은 곧바로 손을 떼려고 했지만, 손은 저절로 움직여 표지를 사락 넘겨버렸다. 새하얀 페이지 속 빼곡하게 들어찬 글자가 그의 안구에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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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견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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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외해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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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마도서는 외신 외해의 주인, 이하 ■■■가 작성한 것으로 ■■■가 직접 창조한 생물을 소환하는 방법이 주로 기록되어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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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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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내용의 소개글을 이안도 모르게 읽어 내려가던 순간, 돌연 재창조의 손길이 심해견문록의 표지를 닫아버리고 위에서 꽉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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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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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등이 으스러지는 듯한 통증에 이안이 비명을 내지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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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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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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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도서가 이안의 손을 끼운 채 서로를 밀어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쓴다. 이안은 압착기로 손이 짓눌리는 듯한 통증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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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 야이, 아프다고!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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