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11 KiB
혈압이 올랐다.
죽음의 문턱에서 맴돌던 그 끔찍한 숫자가 마침내 생존의 영역으로 한 발짝 돌아왔다.
그 작은 변화가 소생실의 분위기를 확 바꿔놓았다.
“살았다….”
누군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전태정 교수의 얼굴에 안도감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옆에 서 있던 외상외과 펠로우가 전태정 교수를 향해 다급하게 물었다.
“교수님, CT 찍고 정확한 출혈점 확인한 다음에 OR로 올릴까요?”
“바로 올려.”
전태정 교수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 판단에 내 몸의 주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REBOA 풍선이 대동맥을 막고 있는 매 순간 환자의 하반신은 피가 통하지 않아 썩어 들어가고 있으니까.
그렇게 마지막 결정이 내려졌다.
“이송 준비하자!”
외상외과 팀이 다시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환자의 몸에는 이동용 인공호흡기가 연결되었고, 수십 개의 라인이 주렁주렁 달린 IV 폴대가 침대 옆에 따라붙었다.
“갑니다! 비켜주세요!”
전태정 교수의 외침과 함께 거대한 침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외상외과 팀과 간호사들이 침대를 둘러싸고 조심스럽고 신속하게 소생실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이 자동문 너머로 사라지고 나서야.
“휴….”
메스의신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소생실에는 우리 응급의학과 팀과 참혹한 흔적만이 남았다.
메스의신의 시선에 벽에 걸린 시계가 걸렸다.
바늘은 오전 9시 34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레보아 시술을 시작한 지 대략 12분 정도가 흘러 있었다.
‘빙의가 얼마나 남았지?’
시간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30분짜리였으니까… 12분을 썼고… 그럼 앞으로 18분.’
18분.
그 시간 동안 나는 내 몸의 주인이 아니다.
이 귀신이 18분 동안 이 육체를 더 지배한다는 뜻이다.
‘음, 근데 빙의 이거… 어떻게 종료시키지?’
끔찍한 사실이 뇌리를 스쳤다.
스킬 설명에는 사용법만 있었지 종료법 따위는 없었다.
설마 남은 18분이 다 찰 때까지 이 상태로 있어야 하는 건가?
아니면 무슨 종료 커맨드라도 있나?
로그아웃이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면 되나?
‘빙의 해제!’하고 중2병처럼 외쳐야 하나?
아니면 ‘귀신 꺼져’?
내 몸의 주도권을 계속 빼앗긴 채로 있어야 하는 건가? Alt+F4라도 눌러야 하나?
내가 내면의 패닉에 휩싸여 허우적대는 동안 내 몸의 주인은 전혀 다른 것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메스의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동료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대신 소생실을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시선이 벽에 걸린 응급 카트의 약품 목록을 훑었다.
선반에 놓인 제세동기의 패드 종류를 확인했다.
그리고선 우리가 방금 사용했던 C-arm의 모델명을 체크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메스의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선이 벽에 걸린 거대한 장비함에 꽂혔다.
그는 망설임 없이 다가가 [Airway Management]라고 적힌 유리문을 열었다.
안에는 사이즈 별로 정리된 후두경 블레이드와 기관내 튜브, 그리고 비디오 후두경 같은 최신 장비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오케이 체크….”
그는 다음 칸으로 이동했다.
[Chest Trauma]
메스의신은 서랍을 열어 흉관 튜브와 배액병, 그리고 클램프들을 하나씩 꺼내보았다.
손끝으로 차가운 스테인리스 기구의 감촉을 느껴가면서.
“흠….”
메스의신은 그렇게 소생실에 있는 모든 장비함과 선반들을 하나씩 열어보며 그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고 혼잣말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제발.’
나는 그저 필사적으로 기도할 뿐이었다.
‘제발 그냥 얌전히 구경만 해라. 제발 아무것도 만지지 마.’
그때 등 뒤에서 거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재야?”
이민재였다. 이민재는 아주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왔다.
“어. 아니아니, 네?”
내 입에서 여전히 어색하기 짝이 없는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아니 그….”
이민재는 말을 고르기 위해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는 손으로 마른세수를 한번 하더니 가장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다.
“너… 뭐… 뭐… 어떻게 배운 거야? 이거를?”
그 질문에 내 안의 나는 비명을 질렀다.
‘모릅니다! 저도 모른다고요! 이 미친 귀신새끼는 어떻게든 배웠겠죠!’
하지만 내 몸의 임시 주인은 아주 그럴듯하고 완벽한 거짓말을 만들어냈다.
“저… 그….”
그는 잠시 시선을 위로 돌렸다.
“작년에, 충남에 있는 병원에 그… 워크샵 갔을 때 거기서 배웠습니다. 시뮬레이션으로 몇 번 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나는 경악했다.
충남이라니.
난 내 평생 경상권 밖을 벗어나 본 적이 거의 없는 토종 부산 촌놈인데.
물론 서울에 몇 번 가본 걸 제외하곤 말이다.
이민재의 눈이 동그래졌다.
“레보아를? 충남에서? 워크샵 프로그램으로?”
“네. 운이 좋았습니다.”
“…진짜?”
이민재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더 이상 추궁하지는 못했다.
너무나도 구체적인 거짓말 앞에서는 의심하는 쪽이 오히려 이상한 놈이 되어버리니까.
그렇게 대화가 끝나고 메스의신은 다시 한번 소생실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내 몸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움직이며 응급 카트의 서랍을 열어보고 제세동기의 설정을 만지작거리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술기도 해봤잖아. 이제 그만 좀 하고 내 몸에서 나가줘.’
바로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한 줄기 빛이 스쳐 지나갔다.
‘아, 잠깐만.’
빙의, 메스의신.
나는 이 스킬을 그렇게 마음속으로 외쳐서 발동시켰다.
‘그렇다면 끄는 것도…?’
나는 희망을 보았다.
속으로 ‘빙의, 메스의신’을 생각했으니 빙의 해제도 똑같이 하면 되는 건가?
그래, 그거다.
제발.
제발 맞아라.
‘빙의 해제, 메스의신.’
그 단어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
세상이 다시 돌아왔다.
스흡-하.
그래, 이거야.
내 몸을 지배하던 그 차갑고 이질적인 감각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소생실의 퀴퀴한 공기야, 정말 반갑다!
10여 분 만이지만 그래도 반갑다, 공기야!
몸의 통제권이 완전히 돌아왔다.
나는 그 해방감에 아주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눈앞에는 걱정스러운 얼굴의 이민재가 서 있었다.
으악 깜짝이야.
“야, 현재야? 왜 그래? 뭐 혹시 뇌에 이상이 생겼니?”
아무렇지도 않게 인신공격이 될 수 있는 말을 뱉다니. 조금 상처일지도.
“아닙니다. 그냥… 좀 피곤해서….”
빙의가 풀린 내 몸은 힘없이 휘청거렸다.
나는 간신히 옆에 있던 응급 카트를 붙잡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지독한 피로감.
소생실은 그야말로 개판 5분 전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아니, 그냥 개판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지.
여기저기 핏물이 고여 있었고 바닥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의료 폐기물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직원들이 말없이 기계적으로 그 잔해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피 묻은 거즈를 줍고, 바닥을 소독하고, 사용된 기구들을 정리하는 그 모든 과정이 아주 조용하고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다.
역시, 깔끔한 환경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니까.
나는 그 풍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아직도 현실감이 없었다.
내 옆에는 백은서와 박성정이 거의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서 있었다.
두 1년 차들의 눈이 허공의 한 점에 고정되어 있었다.
하긴, 내가 1년 차였어도 똑같이 바라봤을 것 같긴 하다.
세상에 어떤 2년 차가 4년 차랑 펠로우를 패싱하고 술기를 하면서, 타 과 교수. 심지어 비전문가도 아닌 그 분야의 정점에 선 전문가에게 훈수를 둬 가면서 술기를 관찰한단 말인가.
두 명에게 오늘 밤의 경험은 아마도 평생 잊을 수 없는 충격으로 남겠지.
반면 4년 차 한재언은 이미 이 모든 소동 따위는 과거의 일이라는 듯 스테이션으로 돌아가 다음 환자의 차트를 띄워놓고 있었다.
크, 역시.
응급실의 멘탈 최강 한재언.
“아, 잠시만.”
나는 나도 모르게 낮은 신음을 뱉었다.
오른쪽 어깨 근육이 굉장히 기분 나쁘게 씰룩거렸다.
‘…뭐지?’
나는 어깨를 몇 번 돌려보았다.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방금 전까지 너무 긴장해서 근육이 뭉친 거겠지.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애써 잊으려 했던 기억 하나가 섬광처럼 뇌리를 스쳤다.
‘작년에도 이 시점에서 근육통이 또 왔던 것 같은데.’
그래. 응급실에서 1년 차 주제에 개복술을 했던 그날.
메스의신에게 처음으로 빙의 당했던 그날.
모든 것이 끝나고 빙의가 딱 풀리면서 내게 갑자기 찾아왔던 그 지옥 같은 고통.
…아.
그 깨달음과 동시에 통증이 시작되었다.
아.
잠시만요,
신이 계시다면 제 말 좀 잠시만 들어주세요.
진짜 너무 아픈데요.
아파.
누군가 내 몸의 모든 근육 섬유 한 올 한 올을 밧줄처럼 잡고 반대 방향으로 미친 듯이 쥐어짜는 듯한 끔찍한 통증이었다.
아, 다시는 이 통증을 겪고 싶지 않았는데.
어깨에서 시작된 경련은 순식간에 등과 허리, 팔과 다리로 번져나갔다.
끄흐읍…
“야, 현재야?”
내 옆에서 뒷정리를 돕던 이민재가 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얼굴이 새하얘졌는데?”
“아, 저…”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였다.
시야가 터널처럼 좁아지기 시작했다.
소생실의 형광등 불빛이 수십 개의 잔상으로 나뉘며 눈앞에서 춤을 췄다.
이민재의 얼굴, 간호사의 얼굴까지.
모든 것이 흐릿하게 번져나갔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는 카트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쳤다.
‘그래, 차라리 기절하자. 기절하고 깨면 좀 낫겠지…’
그렇게 내 의식이 툭하고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