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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의 입이 아주 천천히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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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n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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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격막 바로 아래, 복부의 모든 주요 장기로 가는 혈관들이 갈라져 나오기 전의 대동맥 최상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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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거기를 막는다는 건 곧 복부 전체의 혈류를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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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 간, 장…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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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다리로 오랜 시간 혈류가 가지 않아 잘못될 경우 환자의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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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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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의 입에서 얼빠진 소리가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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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는 무어라 더 소리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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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친 짓을 당장 멈추게 해야 한다고, 너는 지금 신체 절단을 하려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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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전에 소생실의 자동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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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이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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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복 차림의 무리가 일사불란하게 뛰어 들어왔다. 외상외과 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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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앞에는 외상외과 부교수, 전태정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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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소생실에 들어서는 순간 소생실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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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바다가 된 바닥, 모니터의 숫자들, 그리고… C-arm의 기괴한 불빛 아래에서 무언가 끔찍한 의식을 거행하고 있는 정체 모를 무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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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미간이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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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거? 지금 환자 상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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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있던 백은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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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거의 반사적으로, 외상 환자 브리핑을 읊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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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넷! 교수님! 20대 남성, 트럭 대 승용차 TA로 현장에서 의식 스투퍼한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open pelvic fracture와 hemoperitoneum 소견 하에 MTP 발동하여 pRBC 4팩 수혈 중입니다. 방금 전 STAT으로 나간 랩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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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 그. 알겠어. 알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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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정 교수는 그녀의 다급한 브리핑을 손짓으로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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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말까지 더듬었다. 아마 십 년이 넘는 외과 인생에서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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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은 백은서의 뒤, C-arm의 불빛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괴한 행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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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건 뭘 하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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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의 임시 주인은 C-arm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도 않은 채 아주 무심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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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BOA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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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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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교수의 얼굴에, ‘내가 지금 한국말을 듣고 있는 게 맞나’ 하는 혼란이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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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니까. 그걸, 지금,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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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정의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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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B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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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학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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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외과 팀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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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이 다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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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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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전태정의 등 뒤에 서 있던 외상외과 펠로우들과 외과 레지던트들의 입에서 ‘허억’ 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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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 교수님!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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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가 거의 울상이 된 얼굴로 먼저 필사적으로 끼어들었다. 이민재는 아주 조심스레 전 교수에게 다가가 이 모든 비현실적인 상황을 어떻게든 포장하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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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예, 교수님! 환자 상태가 워낙 위급해서, 외상팀 도착 전에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보려고… 어… 네… 저희 그… 응급의학과 2년 차, 한현재 선생이 지금 REBOA 시술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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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의 구차하고 필사적인 수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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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수습은 전 교수의 뇌 회전을 돕는 데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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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정 교수는 잠시 이민재와, C-arm 아래의 나(메스의신)를 번갈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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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2년 차] [응급의학과] [REBOA]라는 절대로 한 문장 안에 공존할 수 없는 세 단어를 처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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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입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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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다 미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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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정 교수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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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BOA가 뭔지는 알아? 어? 대동맥을 풍선으로 막는 게 무슨 애들 장난인 줄 아냐고! 응급의학과가, 아니, 내가 응급의학과를 무시하는 건 아닌데. 이건! 이건 우리 외상외과에서도 펠로우 2년 차 이상이 시도하는 술기야! 근데 이걸 지금 너희가, 이 소생실에서 하고 있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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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절규는 안타깝게도 내 몸의 주인에게는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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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의신은 그 모든 외침을 무슨 모기 소음 취급하면서 완벽하게 무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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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은 오직 C-arm 모니터에 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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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의신의 손끝에서 가이드와이어는 마침내 목표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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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이… LSA(* 좌쇄골하동맥) 지나서… 됐다. 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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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서 다음 단계의 장비를 요구하는 무감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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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시스가 아니라 이 개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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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정 교수는 결국 이성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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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어깨라도 붙잡을 기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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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내 말 똑바로 안 듣지 지금? 이 미친놈들아! 당장 멈춰! 멈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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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C-arm 모니터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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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골반에서 피가 난다면서 왜 와이어는 저기 횡경막 바로 밑까지 올라가는데? Zone 1은 왜 노리는 거냐고! 미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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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내 몸의 주인이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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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ne 3에서 어설프게 막았다가 만약 확인되지 않은 복부 내 다른 출혈이 있어서 혈압이 계속 안 잡히면 다시 풍선을 빼고 Zone 1으로 올릴 시간 없습니다. 이 환자는 그 몇 분 사이에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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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건 그렇다 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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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음파 상에서 hemoperitoneum(* 혈복강) 있는 건 확인되지 않았습니까. 백 퍼센트 배 안 어딘가에서도 터졌습니다. 골반만 막는 건 의미 없는 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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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는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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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태정은 물러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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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S면 어쩌려고! 배 딴딴하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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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dder pressure(* 방광압) 20 밑이라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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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전 교수는 이 모든 비상식적인 상황의 가장 근본적인 모순을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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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래서 그 모든 게 다 맞다고 쳐도! 그 시술을 왜 니가 하고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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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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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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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내 몸의 주인이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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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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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의신의 뇌리에 이 몸의 원래 주인이 남긴 좆밥 2년 차라는 근본적인 사실이 스쳐 지나간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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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초가 지나도 메스의신은 이 질문에 대한 합리적인 대답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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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음 말은 뒤의갤의 빠와 까를 모두 미치게 하는 스타다운 행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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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러다가는 환자 갑니다. 시스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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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의신은 논리적인 답변을 포기하고 그저 상황의 위급함으로 모든 것을 밀어붙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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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 전태정 교수가 결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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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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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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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줘. 내가 차라리 할 테니까. 대체 어디서 연수라도 보고 와서 시도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전문의가 하는 게 맞아. 너 손 떼.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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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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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의신은 잠시 가이드와이어가 삽입된 환자와 장갑을 낀 채 자신을 노려보는 전태정 교수를 번갈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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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마도 생각이란 걸 해 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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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하는 것과 저 외상외과 교수가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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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이 이 상황에서 더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절차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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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계산에는 ‘저 외상외과 의사가 이 술기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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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의신 성격에 저 교수가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든 지가 하겠다고 난리를 부렸을 게 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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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의신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이 쥐고 있던 가이드와이어의 끝부분을 전태정 교수를 향해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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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정 교수는 내 손에서, 아니 메스의신의 손에서 가이드와이어를 건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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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 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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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목소리에, 뒤에 있던 누군가가 재빨리 다음 장비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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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교수는 와이어를 따라, 딜레이터(* 혈관 확장기)와 시스(* 튜브)를 한 번에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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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움직임은 메스의신이 보여줬던 신기에 가까운 천재성과는 약간 달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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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경험과 훈련이 만들어 냈을 근육 자체에 각인된 지독하게 숙련된 장인의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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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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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도가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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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을 빌린 메스의신이 지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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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정 교수의 손이 멈칫했다. 그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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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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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도가 너무 높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그 각도로 진입하면 시스 끝이 후복벽을 긁을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눕혀서 혈관 주행 방향과 평행하게 진입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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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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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정 교수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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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디서 연수라도 좀 보고 와서 아는 척하는 모양인데 내가 알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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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교수는 시스를 밀어 넣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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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언가 턱하고 걸리는 저항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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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m 모니터 위로 시스 끝이 혈관 벽에 막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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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의신은 그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비슷한 어조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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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 3mm만 뒤로 빼고 와이어를 살짝 당기면서 시스를 반시계 방향으로 15도 돌린 다음 다시 밀어 넣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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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정 교수는 잠시 망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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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 의사로서의 자존심과 눈앞의 이 말도 안 되는 상황, 그리고 꺼져가는 환자의 생명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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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성이 자존심을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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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교수는 아무 말 없이 내 몸의 주인이 시킨 그대로 시스를 아주 미세하게 조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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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mm 후퇴, 와이어 견인, 15도 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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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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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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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처럼, 시스가 아무런 저항 없이 혈관 속으로 부드럽게 미끄러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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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정 교수의 입이, 아주 살짝 벌어졌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C-arm 모니터와,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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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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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입에서 감사의 말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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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나는 그 광경을 보며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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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외과 교수를 가르치고 심지어 감사 인사까지 받아내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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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은 성공 이후 술기의 주도권은 기묘한 형태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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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 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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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리는 메스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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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리 스킨 한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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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부분 커브 확인하고. 앵글 너무 주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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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어 따라 그대로 올라갑니다. 분기부에서 저항 느껴지면 무리하게 밀지 말고, 살짝 빼서 로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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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위치 좋습니다. 횡격막 바로 아래 복강동맥 분지부 바로 위입니다. 거기서 스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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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의신의 참견은 쉴 새가 없었고, 전태정 교수는 처음에는 인상을 찌푸리다가도 이내 지시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다는 것을 깨닫고 묵묵히 따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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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카테터가 Zone 1에 완벽하게 위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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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루닝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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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정 교수의 말에 이민재가 미리 준비해 두었던 생리식염수가 담긴 주사기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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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교수는 그 주사기를 카테터의 포트에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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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풍선 팽창 들어간다. 혈압 변화 주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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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주사기 피스톤을 아주 천천히 밀어 넣기 시작했다. C-arm 모니터 위로 카테터 끝부분의 작은 풍선이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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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풍선이 이 젊은 남자의 대동맥을 안에서부터 완벽하게 틀어막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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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생실의 모든 시선이 단 하나의 목표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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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탈 모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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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P 50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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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풍선이 대동맥을 막았는데 혈압은 여전히 바닥을 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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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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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의 입에서 절망적인 신음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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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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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교수가 이민재를 진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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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 2초, 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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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옥 같은 시간 속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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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이었던 숫자가, 55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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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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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P 75 /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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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압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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