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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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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말.
병원은 연말의 어수선함으로 가득 차있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 12월 말은 또 다른 의미를 가졌다.
‘신규 레지던트 합격자 발표.
내년 한 해 나의 삶의 질을 결정할 운명의 심판.
과연 우리의 당직 부담을 덜어줄 새로운 노예… 아니, 새로운 후배가 들어올 것인가.
오후 내내 나와 김지훈은 틈만 나면 병원 내부 전산망의 공지사항 게시판을 새로고침했다.
F5 키가 닳아 없어질 지경이었다.
“언제 뜨는 거야 대체!”
김지훈이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었다.
“원래 오늘 오후 중에 뜬다고 했잖아!”
“좀 닥쳐봐. 뜰 때 되면 뜨겠지.”
나는 겉으로는 쿨한 척했지만 내 심장 역시 불안하게 날뛰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페이지가 새로고침되면서 새로운 게시글 하나가 목록 최상단에 떠올랐다.
[공지] 전공의(레지던트) 1년 차 최종 합격자 명단 안내
“떴다!”
나와 김지훈은 거의 동시에 외치며 모니터 앞으로 머리를 맞댔다.
“오… 어디 있냐… 어디 보자…”
나는 스크롤을 미친 듯이 내렸다.
“찾았다!”
[응급의학과 | 정원(TO): 4명]
정원 네 명.
그래, 작년과 똑같다.
그리고 그 밑으로 제발 네 개의 이름이 다 있기를.
[백은서]
[박성정]
TO 4명에… 두 명 지원…?
크아아아악.
내 눈을 의심했다.
이름이 두 개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익숙한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박성정? 얘 결국 EM 왔네…?”
“뭐?”
옆에서 함께 절망하던 김지훈이 고개를 들었다.
“니가 그때 똥꼬에 뭐 들어간 환자 짬 처리했던 그 인턴? 걔가 대체 왜 왔대? 너한테 복수하려고?”
“닥쳐 김지훈.”
나는 비아냥을 씹고 다른 이름 하나를 더 확인했다.
백은서.
지난번에 원서 접수하러 왔던 걔구나.
“음, 뭐. 나쁘진 않네.”
나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0명보다는 낫잖아.
“야! 두 명이야, 두 명! 반타작이라고! 내년에도 여전히 1년 차처럼 당직을 졸라 서야 한다는 소리야! 내년에도 우리 인생은 조뺑이가 확정이라는 소리잖아!”
“0명보단 낫잖아 이 새끼야.”
없는 것보다야 낫지.
“다른 과들은 뭐 없냐? 우리만 이 꼴이야?”
나는 김지훈의 말에 다른 과들의 합격자 명단을 훑어 내렸다.
“내과랑 외과는 그럭저럭 선방해서 어느 정도 채웠고. 어… 산소는 전멸인데?”
[산부인과 | 정원(TO): 3명]
[none]
[소아청소년과 | 정원(TO): 5명]
[none]
“아이고….”
김지훈이 혀를 찼다.
차라리 아예 비워주지 [none]은 왜 써놓은거야.
“오, 야. 흉부외과 한 명 있다. 미친놈이네.”
[심장혈관흉부외과 | 정원(TO): 2명]
[정재상]
나와 김지훈은 동시에 감탄사를 터뜨렸다.
우리가 그렇게 다른 과의 흥망성쇠를 안주 삼아 떠들고 있을 때였다.
등 뒤에서 서늘한 그림자가 우리를 덮쳤다.
“혀… 현재야.”
“말 걸지 마 김지훈. 나 지금 다른 과 망했는지 살았는지 구경하느라 바쁘다고.”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등 뒤에서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 안 하니…?”
“엇.”
나는 거의 비명을 지를 뻔했다.
고개를 돌리자 천은정 교수가 팔짱을 낀 채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천 교수님! 아이고! 오신 줄도 몰랐습니다!”
나는 의자에서 튀어 오르듯 일어나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일 해야죠! 당연히 일 해야 합니다! 지금 바로 하겠습니다!”
호다다닥.
***
시간은 어김없이 흘렀다.
수많은 환자들이 내 손을 스쳐 지나갔고, 나의 첫 레지던트 생활은 귀신들의 끝없는 잔소리와 함께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맞이한 2월 11일.
레지던트의 1년은 3월에 시작해서 이듬해 2월에 끝난다.
겨울의 끝은 곧 한 해의 끝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언제나 이별이 있었다.
응급의학과 전체 회식.
장소는 병원 앞 고깃집이었다.
갓 들어온 파릇파릇한 1년 차부터 오늘을 마지막으로 병원을 떠나는 4년 차들, 그리고 교수들까지.
나는 멍하니 맥주잔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R1.
레지던트 1년 차.
그 지옥 같던 시간이 이제 정말로 끝나가고 있다니.
한참 동안 고기가 익고 술잔이 오가던 그때 박웅 과장이 숟가락으로 불판을 내리쳤다.
“자자, 다들 주목!”
소란스럽던 식당이 순간 조용해졌다.
“오늘 이 자리는 지난 4년간 우리 응급의학과를 위해 청춘을 바친 자랑스러운 우리 4년 차 선생들을 떠나보내는 자리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 자, 모두 박수!”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짝짝짝.
나 역시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쳤다.
“자, 그럼 앞으로의 찬란한 미래에 대해 한번 들어봐야지! 유성훈 선생은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되나?”
4년 차 유성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뭐, 어쩌다 보니까 운이 좋아서 서울에 있는 오성서울병원 중환자의학과 전임의 과정으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캬! 성훈이는 큰 물로 올라가는구나!”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김민욱 선생은 어디라고 했지?”
나와는 거의 엮일 일이 없어 얼굴만 겨우 알던 김민욱이 일어났다.
“저는 부산 생활도 슬슬 정리하고 고향인 통영에 있는 종합병원 응급의학과 과장 자리로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이제 저도 좀 편하게 살아보려고요.”
그 말에 모두가 부럽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저런 길도 있지.
“그치그치. 고향 내려가서 지역 의료에 힘쓰는 것도 아주 훌륭한 선택이지. 자, 마지막! 우리 의국장! 이민재는?”
모든 시선이 이민재에게 쏠렸다.
이미 몇 달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병원 중 하나인 아성병원의 펠로우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민재는 비장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여러분. 저…”
이민재가 잠시 말을 끊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남습니다!!!!”
정적이 흘렀다.
남는다고? 어디에?
“저 이민재! 제 청춘과 영혼을 바친 이곳, 청진대학교의료원에 뼈를 묻겠습니다!”
바로 그때 교수석 테이블에서 “푸웁!” 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천은정 교수가 방금 마신 물을 뿜고 사레가 들려 켁켁거리고 있었다.
“뭐? 뭣? 민재야 너 방금 뭐라고? 남는다고? 어디를?”
“모르셨습니까? 교수님들은 다 아시는 줄 알았는데요. 저 그냥 여기 청진의료원에 뼈를 묻기로 했습니다! 저는 응급실을, 그리고 여기 계신 여러분들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하하, 뭐야 이거. 나만 몰랐어요?”
뭐야, 나도 당황했다.
교수가 이걸 모를 수 있는거였어?
천 교수가 당황해서 주변을 둘러보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과장이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천 교수가 평소에 민재를 하도 닦달하고 놀려대길래 내가 특별히 천 교수한테만 비밀로 했죠! 서프라이즈!”
“과장님!”
천은정 교수가 배신감에 찬 얼굴로 과장을 쳐다봤다.
그제야 모든 상황을 파악한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이민재의 서프라이즈 폭탄선언으로 회식 자리의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한참 동안의 소란이 이어지던 그때 박웅 과장이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과장의 시선은 테이블 가장 끝자리에서 거의 투명인간처럼 앉아있는 두 명의 젊은 얼굴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는 아주 귀한 손님들이 오셨지!”
그 말에 모든 시선이 박성정과 백은서에게 쏠렸다.
예비 1년 차들이었다.
“우리 예비 1년 차 선생들도 오늘 참석하셨는데 소감은 어때? 이 자리에 온 소감이!”
박웅 과장의 질문에 박성정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 저… 그… EM… 진짜… 참… 좋은… 네… 과 같습니다… 선배님들도 다 좋으시고… 많이 배우겠습니다….”
그 영혼 없는 대답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박성정 선생은 의학 지식보다 포커페이스를 먼저 연습하도록 해야겠네. 하하!”
그렇게 박성정의 신고식이 끝나고,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 옆의 백은서에게로 향했다.
“자, 그럼 백은서 선생은 왜 여기 왔나? 응급의학과가 좋아서? 아니면 그냥 성적 맞춰서?”
박웅 과장의 짓궂은 질문에 백은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저. 한현재 선배님이 환자분 개복술 하시는 거 보고 지원했습니다!”
정적의 순간.
시끄럽던 고깃집 안의 모든 소음이 그 순간 거짓말처럼 멎었다.
나는 입에 넣으려던 돼지갈비 한 점을 그대로 접시 위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1초 뒤.
“하하하하하!”
이민재의 폭소가 정적을 깨뜨렸다.
그 웃음소리를 신호탄으로 식당 전체가 웃음바다로 변했다.
“와, 저 또라이를 보고도 EM에 지원한 인턴이 다 있었을 줄이야!”
이민재는 거의 눈물을 흘릴 정도로 웃고 있었다.
“예비 1년 차.”
옆 테이블에 있던 4년 차 유성훈이 웃음을 참으며 진지하게 조언했다.
“너는 한현재처럼 미쳐가지고 환자 배 째면 안 된다? 알았지? 쟤는 그냥 돌연변이야 돌연변이. 쟤는 면허를 걸었다니까. 미친놈이야.”
“맞아! 심지어 그때 반말까지 했잖아!”
펠로우 박세영이 덧붙였다.
나는 수치심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고개를 숙이고 소주만 들이켰다.
“아앗, 선생님! 예전 이야기를 왜 또 꺼내십니까!”
내 항변은 거대한 웃음소리에 묻혀버렸다.
“아니 뭐 그리 예전 이야기도 아니구만! 불과 몇 달 전이잖아.”
이민재가 나를 놀리며 술잔을 채워주었다.
나는 그 잔을 단숨에 털어 넣었다.
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