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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희미한 소음, 그리고 다음은 퀴퀴한 소독약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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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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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음과 함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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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러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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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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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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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옆을 가리고 있던 커튼이 거친 소리를 내며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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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선 이민재가 짜잔 하고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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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 양반 왜 모습이 이따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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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는 의사 가운이 아닌 목이 늘어난 회색 후드티에 츄리닝 바지 차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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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는 까치집이 지어져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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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뭔 꼴이냐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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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몸을 내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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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복으로 갈아입혀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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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에는 수액 라인이 꽂혀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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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선생님? 그 옷은.. 퇴근하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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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쉰 목소리에 이민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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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들고 있던 캔커피를 내 머리맡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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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 새끼야. 퇴근했다고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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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는 의자를 끌어와 내 침대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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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몇 신지는 아냐? 시계 봐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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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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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은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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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0시다 10시. 퇴근 시간에서 3시간이나 더 지났다고,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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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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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멍하니 탄식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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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러진 게 아침 9시 반쯤이었으니까… 딱 12시간 언저리 정도 기절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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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에 12시간 정도 페널티니까, 아니. 왜 안 깎아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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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빙의를 절반도 안 썼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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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이제 좀 괜찮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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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 네.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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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구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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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쑤시고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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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상황에서 아프다고 징징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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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괜찮아야지. 안 괜찮으면 어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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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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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 아니야 진짜. 이제 2년 차 주제에 두 번이나 사람 배를 깐 놈이 어디있냐? 외과도 아니고. 아까 외상외과 전태정 교수님이 잠깐 네 상태도 보고 가시더라. 아무 말 없이 너 자는거 한 5분 쳐다보다가 그냥 가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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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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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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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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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무어라 말을 하려다 말고, 다시 한숨을 쉰 뒤 입맛을 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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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하… 아오 씨발. 호들갑을 떨 힘도 안 나온다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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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는 정말로 지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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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진 모르겠지만. 잘했어. 결과적으로는. 그렇게만 따졌을 때는 잘했고… 아니… 하… 이걸… 칭찬을… 해야 돼 말아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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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근처를 서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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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는 나를 한번 쳐다봤다가, 다시 벽을 쳐다봤다가 마침내 내 침대 앞에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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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는 잠시 숨을 골랐다. 어깨가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입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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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현재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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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어깨를 부서져라 꽉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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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바로! 응급의학과 의사의 모습이란다!! 계산하고, 재고, 절차 따지는 샌님 같은 새끼들이 아니라! 눈앞의 사람을 살리기 위해 면허고 나발이고 그냥 다 던져버리는! 이 미친 짓이야말로! 우리 응급의학과의 심장이라고! 알겠냐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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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열정적인 쉐이킹에 아직 회복되지 않은 근육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을 느끼며 그저 영혼 없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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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반은 한결같다 증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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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환자는요…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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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통보다 내가 저지른 그 미친 짓의 결과가 더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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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모든 것이 결국 헛수고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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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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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무릎을 탁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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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니 눈으로 직접 봐야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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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구석에 처박혀 있던 병원 노트북을 들고 와 내 침대 옆 테이블 위에 쾅하고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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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구형인지 팬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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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낡은 노트북이어도 회사 비품인데, 좀 살살 다루면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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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반 성격 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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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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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가 노트북 전원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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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R에 로그인해보렴. 네가 직접 그 환자의 다음 이야기를 확인해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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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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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트북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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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병원 로고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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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MC - EMR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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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엔터키를 누르자 복잡한 환자 목록과 오더 창이 화면 가득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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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록번호를 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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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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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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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스크롤을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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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내원 이유는 TA… 교통사고고, GCS 별로… 혈압 낮고… 개방성 골반 골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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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런 건 빨리 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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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 아는 내용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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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응급실 기록을 빠르게 훑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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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서 hemorrhagic shock control 위해 REBOA 시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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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이 남겨져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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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어디 보자. 이건 다 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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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기록지는… 어차피 봐도 모르는 내용 투성이일 테니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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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건 중환자실 입원 후 기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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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과 기록 탭을 클릭했다. 외상외과 팀이 작성한 입실 기록부터 시작해서, 시간대별로 빼곡하게 적힌 기록들이 화면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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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CU 입실 시 V/S BP 8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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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적 개복술을 또 시행 하셨고… 외고정술도 하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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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시간 엄청 길었네요. 거의 8시간 넘게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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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 빡셌을 거야. 피바다였을 테니. 제대로 안 해놨으면 아마 수술 시작도 못 하고 테이블 위에서 죽었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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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가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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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계속해서 기록을 읽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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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DS(*급성 호흡곤란 증후군) 소견 보여 인공호흡기 세팅 한번 변경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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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 패스… 온갖 복잡한 처치 기록들을 빠르게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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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환자는 지금 살아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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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가장 최근의 바이탈 기록과 간호 기록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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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S BP 110/70, HR 90회, SpO2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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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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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도 모르게 낮은 탄성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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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 속의 숫자들이 기적을 증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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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들어, 옆에 앉은 이민재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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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살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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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는 내 눈을 마주하며 피식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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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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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주 현실적인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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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뭐… 이제부터 시작이지. 저런 대형 외상 환자는, 수술 끝나고 중환자실 올라가고 나서부터가 진짜 전쟁이니까. 패혈증, DIC(* 파종성 혈관내 응고장애), 다발성 장기 부전… 온갖 좆같은 합병증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고. 앞으로 저기서 온갖 쌩지랄을 다 하면서 버텨내는 일이 남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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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다시 한번 나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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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살았어. 테이블 위에서 죽지 않았다고. 어떤 미친놈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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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방금 확인한 환자의 생존 기록을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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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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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침대 옆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나 마시는 이민재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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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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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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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전 어떻게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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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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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가 되물었다. 그의 표정은 읽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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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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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는 잠시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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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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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는 마치 남의 얘기를 하듯 태평하게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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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네가 그 미친 개복술을 시행하고도 수련위원회에서 그냥 견책에 감봉 1개월로 넘어갔지. 그때도 환자는 살았고. 이번에도 결과는 괜찮았고. 환자는 살아서 중환자실에 누워있고, 심지어 네 덕분에 예후도 좋다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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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내 마음속에 아주 작은 희망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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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번에도 어떻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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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잘 모르겠는데. 아마 좆됐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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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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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까는 온갖 희망을 다 줘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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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이러기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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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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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에서 얼빠진 소리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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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우리 함께 곰곰이 생각을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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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몸을 앞으로 숙이며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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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엔 네가 1년 차 짬찌였고. 처음으로 사고 친 거였고. ‘환자를 살리려는 뜨거운 열정이 넘쳐서 그만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하고 어떻게든 포장이 가능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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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일단 전제부터가 틀린 것 같습니다 선생님. 일단 1년 차가 개복술을 한 게 훨씬 미친짓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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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차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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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객기로 포장이 되는 게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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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싸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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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제 2년 차야! 응급실 물 좀 먹었다고 깝죽거릴 시기라고. 그것도 작년에 이미 한번 초대형 사고 쳐서 수련위원회까지 갔다 온 전과가 있는 놈이 이번엔 응급실 소생실에서 그것도 외상외과 교수님까지 보는 앞에서 레보아를 꽂았어! 그것도 니가 먼저 하겠다고 나선 거나 다름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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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지적 자체는 모두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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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 양반의 뇌는 내가 이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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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1년 차가 개복술을 한 게 더 미친짓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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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이게 더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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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초범은 봐준다? 뭐 이런 생각을 갖고 계신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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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열정으로 포장될 수준이 아니잖냐. 미친놈이지. 구제 불능의 상습범. 시한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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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가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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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는 수련위에서 끝나는 건 아닐 것 같고, 아마 정식 징계위원회 회부로 가지 않을까? 수련 자격을 박탈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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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왜 겁을 계속 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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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쫄리게 이 양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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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 이민재가 갑자기 내 등을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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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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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의 목소리가 다시 평소의 그 경박하고 요란한 톤으로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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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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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 죽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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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좆돼보면서 환자도 살리고! 그러면서 크는 거지 의사가! 안 그래? 인생 뭐 있냐! 한번 좆돼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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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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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나도 좆됐어! 빼도 박도 못하게 내 묵인 하에, 아니 거의 내 방조 하에 네가 그 미친 짓을 벌인 거나 마찬가지니까. 나도 같이 징계위원회 불려 가서 개처럼 털리겠지. 같이 가는 거야. 인생 뭐 있냐! 동반 입대! 동반 징계! 으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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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좆된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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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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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가 아주 명쾌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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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나도. 아주 사이좋게 쌍으로. 좆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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