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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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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희미한 소음, 그리고 다음은 퀴퀴한 소독약 냄새.

“으어… 어….”

신음과 함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내가 쓰러졌구나.

바로 그때.

촤르륵

침대 옆을 가리고 있던 커튼이 거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리고선 이민재가 짜잔 하고 나타났다.

뭐야, 이 양반 왜 모습이 이따구야.

이민재는 의사 가운이 아닌 목이 늘어난 회색 후드티에 츄리닝 바지 차림이었다.

머리는 까치집이 지어져 있었고.

‘지금 뭔 꼴이냐 진짜.

나는 내 몸을 내려다봤다.

환자복으로 갈아입혀져 있었다.

팔에는 수액 라인이 꽂혀 있었고.

“어… 선생님? 그 옷은.. 퇴근하신 겁니까?”

내 쉰 목소리에 이민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들고 있던 캔커피를 내 머리맡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래 이 새끼야. 퇴근했다고 인마.”

이민재는 의자를 끌어와 내 침대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금 몇 신지는 아냐? 시계 봐봐.”

나는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봤다.

바늘은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후 10시다 10시. 퇴근 시간에서 3시간이나 더 지났다고, 인마.”

“아….”

나는 멍하니 탄식을 뱉었다.

내가 쓰러진 게 아침 9시 반쯤이었으니까… 딱 12시간 언저리 정도 기절해 있었네.

30분에 12시간 정도 페널티니까, 아니. 왜 안 깎아주는 걸까.

이번에는 빙의를 절반도 안 썼는데요.

“몸은? 이제 좀 괜찮냐?”

“아, 저… 네. 괜찮습니다.”

물론 구라다.

아직도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쑤시고 아프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아프다고 징징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깐.

“그래. 괜찮아야지. 안 괜찮으면 어쩔 건데.”

이민재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미친놈 아니야 진짜. 이제 2년 차 주제에 두 번이나 사람 배를 깐 놈이 어디있냐? 외과도 아니고. 아까 외상외과 전태정 교수님이 잠깐 네 상태도 보고 가시더라. 아무 말 없이 너 자는거 한 5분 쳐다보다가 그냥 가셨어.”

“아 그러셨습니까….”

“에휴….”

이민재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는 무어라 말을 하려다 말고, 다시 한숨을 쉰 뒤 입맛을 다셨다.

“그… 하… 아오 씨발. 호들갑을 떨 힘도 안 나온다 이제.”

이민재는 정말로 지쳐 보였다.

“뭔진 모르겠지만. 잘했어. 결과적으로는. 그렇게만 따졌을 때는 잘했고… 아니… 하… 이걸… 칭찬을… 해야 돼 말아야 돼….”

이민재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근처를 서성였다.

이민재는 나를 한번 쳐다봤다가, 다시 벽을 쳐다봤다가 마침내 내 침대 앞에 멈춰 섰다.

이민재는 잠시 숨을 골랐다. 어깨가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입이 열렸다.

“그래! 현재야! 모르겠다!”

그는 내 어깨를 부서져라 꽉 잡았다.

“이게! 바로! 응급의학과 의사의 모습이란다!! 계산하고, 재고, 절차 따지는 샌님 같은 새끼들이 아니라! 눈앞의 사람을 살리기 위해 면허고 나발이고 그냥 다 던져버리는! 이 미친 짓이야말로! 우리 응급의학과의 심장이라고! 알겠냐 인마!”

나는 열정적인 쉐이킹에 아직 회복되지 않은 근육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을 느끼며 그저 영혼 없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 양반은 한결같다 증말.

“환자, 환자는요…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근육통보다 내가 저지른 그 미친 짓의 결과가 더 두려웠다.

내가 한 모든 것이 결국 헛수고는 아니었을까.

“아, 환자?”

이민재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무릎을 탁 쳤다.

“그건 니 눈으로 직접 봐야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그는 구석에 처박혀 있던 병원 노트북을 들고 와 내 침대 옆 테이블 위에 쾅하고 올려놓았다.

꽤나 구형인지 팬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아무리 낡은 노트북이어도 회사 비품인데, 좀 살살 다루면 안 되나.

이 양반 성격 하고는.

“자.”

이민재가 노트북 전원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EMR에 로그인해보렴. 네가 직접 그 환자의 다음 이야기를 확인해 보라고.”

“..네.”

나는 노트북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익숙한 병원 로고 화면.

[CUMC - EMR SYSTEM]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엔터키를 누르자 복잡한 환자 목록과 오더 창이 화면 가득 펼쳐졌다.

병록번호를 치고….

엔터.

차트가 열렸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스크롤을 내리기 시작했다.

음, 내원 이유는 TA… 교통사고고, GCS 별로… 혈압 낮고… 개방성 골반 골절….

그래, 이런 건 빨리 넘기자.

내가 다 아는 내용이니까.

나는 응급실 기록을 빠르게 훑어 내렸다.

[ER서 hemorrhagic shock control 위해 REBOA 시행함.]

..이 기록이 남겨져 있네.

음, 어디 보자. 이건 다 됐고.

수술 기록지는… 어차피 봐도 모르는 내용 투성이일 테니 패스.

가장 중요한 건 중환자실 입원 후 기록이지.

나는 경과 기록 탭을 클릭했다. 외상외과 팀이 작성한 입실 기록부터 시작해서, 시간대별로 빼곡하게 적힌 기록들이 화면을 채웠다.

TICU 입실 시 V/S BP 80/50…

시험적 개복술을 또 시행 하셨고… 외고정술도 하셨고….

“..수술 시간 엄청 길었네요. 거의 8시간 넘게 했네.”

“그치. 빡셌을 거야. 피바다였을 테니. 제대로 안 해놨으면 아마 수술 시작도 못 하고 테이블 위에서 죽었을걸.”

이민재가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나는 계속해서 기록을 읽어 내려갔다.

ARDS(*급성 호흡곤란 증후군) 소견 보여 인공호흡기 세팅 한번 변경했고.

패스 패스… 온갖 복잡한 처치 기록들을 빠르게 넘겼다.

그래서 이 환자는 지금 살아있는가.

마침내 가장 최근의 바이탈 기록과 간호 기록이 보였다.

V/S BP 110/70, HR 90회, SpO2 98%.

오….

나는 나도 모르게 낮은 탄성을 내뱉었다.

모니터 속의 숫자들이 기적을 증명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옆에 앉은 이민재를 쳐다봤다.

“..일단 살았네요.”

이민재는 내 눈을 마주하며 피식하고 웃었다.

“그치? 살았어.”

그는 아주 현실적인 말을 덧붙였다.

“물론 뭐… 이제부터 시작이지. 저런 대형 외상 환자는, 수술 끝나고 중환자실 올라가고 나서부터가 진짜 전쟁이니까. 패혈증, DIC(* 파종성 혈관내 응고장애), 다발성 장기 부전… 온갖 좆같은 합병증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고. 앞으로 저기서 온갖 쌩지랄을 다 하면서 버텨내는 일이 남긴 했지만.”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다시 한번 나를 쳐다봤다.

“그래도 살았어. 테이블 위에서 죽지 않았다고. 어떤 미친놈 덕분에.”

나는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방금 확인한 환자의 생존 기록을 곱씹었다.

살았다.

나는 내 침대 옆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나 마시는 이민재를 쳐다봤다.

“선생님.”

“응?”

“그래서 전 어떻게 됩니까?”

“너?”

이민재가 되물었다. 그의 표정은 읽기 어려웠다.

“네. 저는요.”

이민재는 잠시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글쎄다….”

이민재는 마치 남의 얘기를 하듯 태평하게 말을 이었다.

“작년에 네가 그 미친 개복술을 시행하고도 수련위원회에서 그냥 견책에 감봉 1개월로 넘어갔지. 그때도 환자는 살았고. 이번에도 결과는 괜찮았고. 환자는 살아서 중환자실에 누워있고, 심지어 네 덕분에 예후도 좋다고 하니….”

그 말에 내 마음속에 아주 작은 희망이 피어올랐다.

그래, 이번에도 어떻게든….

“음… 잘 모르겠는데. 아마 좆됐을걸?”

뭐요?

아니 아까는 온갖 희망을 다 줘놓고.

이제 와서 이러기 있습니까.

“에?”

내 입에서 얼빠진 소리가 터져 나왔다.

“자, 우리 함께 곰곰이 생각을 해보자고.”

그가 몸을 앞으로 숙이며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작년엔 네가 1년 차 짬찌였고. 처음으로 사고 친 거였고. ‘환자를 살리려는 뜨거운 열정이 넘쳐서 그만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하고 어떻게든 포장이 가능했다고.”

음, 일단 전제부터가 틀린 것 같습니다 선생님. 일단 1년 차가 개복술을 한 게 훨씬 미친짓 아닐까요.

2년 차보다.

저건 객기로 포장이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싸늘하게 웃었다.

“너 이제 2년 차야! 응급실 물 좀 먹었다고 깝죽거릴 시기라고. 그것도 작년에 이미 한번 초대형 사고 쳐서 수련위원회까지 갔다 온 전과가 있는 놈이 이번엔 응급실 소생실에서 그것도 외상외과 교수님까지 보는 앞에서 레보아를 꽂았어! 그것도 니가 먼저 하겠다고 나선 거나 다름없었고.”

뭐, 지적 자체는 모두 사실이다.

근데 이 양반의 뇌는 내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1년 차가 개복술을 한 게 더 미친짓 아니냐고.

대체 왜 이게 더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마 초범은 봐준다? 뭐 이런 생각을 갖고 계신게 아닐까.

“그냥 열정으로 포장될 수준이 아니잖냐. 미친놈이지. 구제 불능의 상습범. 시한폭탄.”

이민재가 고개를 저었다.

“내 생각에는 수련위에서 끝나는 건 아닐 것 같고, 아마 정식 징계위원회 회부로 가지 않을까? 수련 자격을 박탈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고.”

어우, 왜 겁을 계속 주십니까.

자꾸 쫄리게 이 양반아.

바로 그때 이민재가 갑자기 내 등을 후려쳤다.

“괜찮아 괜찮아!”

이민재의 목소리가 다시 평소의 그 경박하고 요란한 톤으로 돌아와 있었다.

뭐가 괜찮아요.

아파 죽겠는데.

“좆돼보면서 환자도 살리고! 그러면서 크는 거지 의사가! 안 그래? 인생 뭐 있냐! 한번 좆돼보는 거지!”

이민재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어차피 나도 좆됐어! 빼도 박도 못하게 내 묵인 하에, 아니 거의 내 방조 하에 네가 그 미친 짓을 벌인 거나 마찬가지니까. 나도 같이 징계위원회 불려 가서 개처럼 털리겠지. 같이 가는 거야. 인생 뭐 있냐! 동반 입대! 동반 징계! 으하하!”

“어… 좆된건가요?”

“어.”

이민재가 아주 명쾌하게 대답했다.

“너도 나도. 아주 사이좋게 쌍으로. 좆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