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es
rupy1014 f66fe445bf Initial commit: Novel Agent setup
-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14 KiB
Raw Permalink Blame History

“… 드워프의 왕궁을 범한 자, 드워프의 구원자, 강철의 턱을 가진 자, 관심 수집가….”

“이거 어떻게 꺼!”

“… 최근 오크 157마리를 학살했으며, 관심을 위해서라면 돌도 먹을 수 있고….”

나는 허둥지둥 시스템 창을 조작했다.

결국 한참은 더 목소리가 울려 퍼진 이후에 음성을 끌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 쩌렁쩌렁 울리던 목소리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주변은 다시 고요해졌다.

“누가 듣진 않았겠지?”

나는 혹시나 누가 들었을까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이웃인 정만호에게까지 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손에 들린 새하얀 깃발을 복잡한 심경으로 내려다보았다.

금빛의 모래시계 문양이 새겨진 깃발 자체는 여전히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도 나만의 상징이 생겼다는 점이 좋았다.

다만 방금 전의 요란하고 낯부끄러운 자기소개 기능을 버티기 힘들 뿐.

“나한테 길드가 있었으면 로비에 딱 걸어두는 건데.”

물론 확성기 기능은 영원히 봉인해 둔 채여야 하겠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집 안으로 들어섰다.

쓸모가 있든 없든, 일단은 인터넷에 자랑부터 하고 볼 일.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익숙하게 헌터 갤러리를 열었다.

하지만 갤러리의 분위기가 평소와는 달랐다.

게시판은 온통 하나의 주제로 도배되어 있었다.

[속보) 새 A급 헌터 공식 발표 뜸 ㄷㄷㄷ]

[사실 외국인이라던데?]

[지금 난리난 A급 나는 좀 다르게 본다….]

나는 그제야 며칠 전 풍뎅이에게서 받았던 문자를 떠올렸다.

[A급 헌터 공식 발표, 다음 주 중에 나갈 거야. 정부랑 조율 끝남. 신상 정보는 최대한 통제할 테니 걱정 말고.]

“아, 맞다. 오늘이라고 했었지?”

요즘 너무 보람찬 생활을 하느라 깜빡 잊고 있었다.

나는 일단 내가 올리려던 글은 잠시 접어두고, 갤러리에 올라온 글들을 읽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올라오고 있는 사람들의 추측글.

“일단 무슨 뉴스가 올라왔는지부터 확인해 볼까.”

요즘은 뉴스도 갤러리에서 찾아보는 시대.

그게 가장 빠르고 정확했다.

아니나 다를까, 월간 베스트 게시판에는 뉴스 화면을 그대로 캡처한 게시글이 올라와 있었다.

친절하게도 모든 언론사를 돌면서 모아 온 캡쳐본.

나는 감사를 표하며 헤드라인을 읽어나갔다.

[대한민국 정부, 신규 A급 헌터 등록 공식 발표]

[헌터 협회, “국가 안보 차원에서 신상 정보는 비공개. 과도한 루머는 자제 당부.”]

[최근 20층 돌파… 잠재력은 S급 이상?]

몇 개의 관련 기사 헤드라인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중에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조회수를 노리는 쓰레기 같은 기사들도 많았다.

[해외로 유출되고 있는 헌터들. 국민의 잘못은 없나]

[신규 A급… 사실 S급 김OO의 숨겨진 자식]

[정체 모른다면서 혜택은 ‘풀옵션’… 국민 분노 폭발]

[신규 A급 사실은 아이돌 출신 C양으로….]

“아니, 이 사람들은 겁도 없나?”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트렸다.

만약 이런 기사를 보고 눈깔이 돌아간 헌터가 항의한다면 대체 어쩌려고?

이 사람들은 당사자인 내가 온화하고 착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나는 스크롤을 다시 올려, 맨 위의 정상적인 뉴스를 하나 클릭했다.

내용은 지극히 형식적이었다.

‘… 며칠 전 20층을 돌파하며 자격을 증명한 해당 헌터는, 협회와의 협의에 따라 당분간 신상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는 헌터의 안전과 향후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이며…’

그 정도의 내용이 전부였다.

내가 언제 20층을 돌파했는지, 어떤 직업인지, 심지어 성별조차 공개되지 않았다.

과연 풍뎅이가 말한 대로 어느 정도의 정보 통제는 확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댓글창으로 스크롤을 내렸다.

사실 댓글을 읽기 위해 글을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과연 다양한 사람들이 이미 댓글을 쓰고 있었다.

우선 가장 먼저, 각 길드의 유망주를 거론하며 누구인지 추측하는 댓글들.

ㄴ 이거 화연 길드 사람 아니냐? 작년부터 승급 유력하다고 말 나왔는데.

ㄴ 내가 봐서는 이진혁임. 이 사람이 진짜 실력자거든.

ㄴ 다들 헛소리하네 ㅋㅋ. 길드 소속 아니고 개인 헌터임. 내가 관계자에게 들었음.

ㄴㄴ 니가 아는 관계자라고 해봐야 청소부 아줌마 아님? ㅋㅋ

혹은 나라의 국력을 비교하며 자부심에 취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비꼬는 사람들.

ㄴ 캬 드디어 A급 일본 넘었네 ㅋㅋㅋ

ㄴㄴ 아오 국뽕햄 제발…

ㄴㄴ 근데 이 정도면 솔직히 국뽕 좀 빨만하지 않음?

ㄴ 어 그래도 중국은 못 이겨~~

ㄴㄴ 나는 베이징 천안문을 사랑해.

물론 그냥 화가 잔뜩 난 사람들도 있었다.

ㄴ 너희가 빠는 헌터들 데미갓 주먹 한 번이면 몰살 가능 ㅋㅋ

ㄴ ㄹㅇ 지금이라도 K-헌터 육성이니 뭐니 때려치우고 미국 지원이나 받는 게 맞다

그러나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순수하게 부러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이었다.

ㄴ 하 나도 각성하고 싶다...

ㄴ 각성한다고 끝나냐? 탑 끝까지 오를 능력도 있어야지.

ㄴ ㄹㅇ 나는 각성해도 1층에서 컷당할듯…

ㄴ 쟤는 이제 인생 프리패스네. 부럽다 부러워.

ㄴ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

나는 그 모든 댓글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읽었다.

입가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걸렸다.

발끝에서부터 몰려오는 짜릿함.

“쓰읍, 뭔가 아쉬운데….”

하지만 구경만 하고 있자니 슬슬 손끝이 간질간질거렸다.

이 거대한 떡밥에 직접 참여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아주 간단하고 명료한 한 문장을 입력했다.

“이 정도로 간만 보는 건 괜찮겠지.”

[제목: 그거 난데?]

[작성자: ㅇㅇ(77T.77U)]

[내용: 뉴스 나온 A급 나 맞음.]

ㄴ 아오 탑유동햄 또 이러신다. 가서 밥이나 드세요.

ㄴ 형은 A급이 아니라 특급 관심병사야.

ㄴ 이 사람은 진짜 안 끼는 데가 없네.

평소와 같은 반응.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그냥 정신 나간 어그로꾼으로 생각할 뿐이었다.

내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이 진지한 분석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ㄴ 근데 진지하게 탑유동 A급인 건 맞지 않음? 예전에 템 인증했던 거 생각하면 A급 아니면 말이 안 되잖슴.

ㄴ 나 A급 갤러리 이용자인데, 거기서도 탑유동 본 적 있음.

ㄴㄴ 와 씨발 나라 망했네. 하루 20시간씩 갤질하는 놈이 A급?

“아니 갤러리 좀 보는 게 어때서. S급도 보는데….”

솔직히 내 생각에는 나보다, 매일 수제 매크로 글을 쓰는 풍뎅이가 더 이상한 사람이다.

나는 그냥 가끔 념글 주작 좀 하고, 낚시글 쓰면서 앙증맞은 장난을 치는 게 전부.

이런 취급을 당할 이유가 없었다.

내 억울함과는 별개로, 헌터 갤러리에서는 나를 A급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했다.

증거가 너무나 많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응?”

은근슬쩍 주작기를 돌려 날 옹호하는 글들을 개념글로 보내는 중이었다.

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글이 보였다.

[제목: 분탕충 하나에 닉언을 뭐 이렇게 많이 함? 여기가 쟤 개인 갤러리임?]

[내용: 제발 분탕충 네임드화 좀 시키지 마라 ㅅㅂ]

하지만 이런 반대 의견은 순식간에 다른 유저들의 맹공에 의해 진압되었다.

ㄴ 팩트) 글쓴이는 돈도 없고 관심도 못 받는 놈이라 화가 잔뜩 났다.

ㄴ 꼬우면 너도 레전더리 템 인증해 보던가

ㄴ 치킨 100마리를 뿌렸는데 ㅇㅈ이지

ㄴ 솔직히 네임드화라고 뭐라 하기엔 이미 네임드임 ㅋㅋ

“세상에…. 아직 정의가 살아있구나….”

나는 순간 감동의 눈물을 흘릴 뻔했다.

얼굴 한번 본 적이 없는 나를 위해 싸워주며, 나를 향한 비난을 막아주다니.

이제는 내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나를 옹호하는 팬덤이 형성되어 있었다.

더 이상 분신술을 쓸 필요가 없었다.

“이것이 바로 네임드의 힘…?”

계속해서 논쟁이 이어졌다.

내가 A급이라는 사실 자체는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

다만 이제 사람들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그래서 탑유동이 이번에 발표된 신규 A급이 맞는가?

그때, 결정적인 반박이 나왔다.

한 유저가 내가 활동했던 기록을 시간대별로 정리한 분석글을 올린 것이다.

[제목: 내용김)탑유동이 신규 A급이 될 수 없는 이유.txt]

[내용: 세줄 요약함.

  1. 탑유동은 A급이 맞다.

2.하지만 원래부터 A급이었던 거고 이번에 새로 발표된 사람은 아니다. 시간대가 안 맞음.]

ㄴ 얘는 숫자를 못 세냐?

ㄴ 근데 말은 맞는 말인듯?

사람들은 이 논리적인 분석에 반박할 수 없었다.

결국 여론은 완벽하게 새로운 방향으로 기울었다.

곧바로 새로운 논리가 그 뒤를 받쳤다.

ㄴ 이게 맞네. 애초에 국가 기밀이라고 정보 공개도 안 한 상태인데, 자기 입으로 ‘그거 난데? 하고 까고 다니는 정신병자가 어딨음?

ㄴ 듣고 보니 확실히 그렇네.

ㄴ 그럼 신규 A급은 대체 누구임?

ㄴ 몰라. 근데 탑유동은 아님.

“쩝….”

나는 모니터 앞에서 입맛을 다셨다.

모순적인 감정이 피어올랐다.

자신의 정체를 완벽하게 숨겼다는 점은 분명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의 인물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알리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을 느꼈다.

“여기서 추가 인증이라도 해봐?”

순간적인 충동이 나를 사로잡았다.

만약 내가 신상을 조금만 더 푼다면?

그래서 지금까지 있던 A급 중 누구도 나와 매칭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린다면?

사람들은 모두 경악할 것이고, 나는 다시 한번 갤러리의 왕이 될 수 있었다.

“에휴, 참아야지.”

하지만 나는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그 충동을 억눌렀다.

참아야 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런 건 원래 사람들이 스스로 정답을 찾아오는 편이 더 즐겁다는 사실을.

내가 스스로 정체를 밝히는 것보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추측하는 모습을 보는 게 더욱 즐겁다.

나는 마시멜로를 기다렸다가 먹을 줄 아는 아이.

결국 나는 추가적인 인증을 하지 않고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아 맞아, 깃발도 인증해야지….”

내 이야기를 구경하다 보니 정작 원래 하려던 일을 까먹어 버렸다.

나는 깃발을 바닥에 펼쳐놓고, 최대한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각도를 찾아 사진을 찍었다.

당연히 글을 올릴 곳은 마법사 갤러리.

[31층 뚫고 먹음. 내 개인 깃발이랑 마크도 만들어주더라. 님들도 이런 마크 있음?]

글이 올라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수 중이던 마법사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ㄴ풍뎅이: 디자인 좀 간지 나네…. 난 마크 같은 건 없더라.

ㄴ풍뎅이: 나도 개인 마크 하나 만들어볼까?

ㄴ풍뎅이: 초록색으로 태풍이나 원기옥 뭐 그런 느낌으로 그리면 어떨 것 같음?

ㄴ냉장고: 니가 중학생이냐?

ㄴ풍뎅이: (풍무룩 콘)

ㄴ마법은화력: 아 이거. 30층 후반까지 퀘스트 착실하게 깨고 호감도 충분히 쌓은 사람에게만 주는 건데.

ㄴ마법은화력: 나중 가면 깃발등급 따라서 NPC들 반응이 달라지는 게 재미있지.

ㄴ마법은화력: 무엇보다 발동하면 지금까지 쌓아온 칭호 읊어주는 게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더라.

“이게 감동? 이 사람도 역시 좀 이상하네.”

극악무도한 노예주라는 칭호.

이 어디에서 감동을 느껴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ㄴ마법은 화력: 근데 또 뭘 했길래 시작부터 깃발 얻은 거야?

ㄴ ㅇㅇ(88R.Y88): 뭐 퀘스트 하나 깨니까 주더라. 그리고 시모어도 만났는데 엄청 친절하게 대해주더라고.

ㄴ냉장고: 뭐 뉴비가 우리랑 다른 규칙에서 놀고 있는 게 한두 번이 아니라…. 이제 별로 놀랍지도 않음.

그때, 조용히 대화를 지켜보던 p깟쮸가 댓글을 달았다.

ㄴ p깟쮸: 속도가 정말 빠르다에요…. 이러다 얼마 안 가서 내가 있는 층까지 금방 도착할 것 같다에요.

마지막 댓글을 보는 순간 나는 묘한 감상에 휩싸였다.

뉴비.

내가 처음 마법사 갤러리에 왔을 때부터, 이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불렀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속도로 성장했고, 어느새 그들의 턱밑까지 올라왔다.

“그때가 되면 이제 뉴비가 아닌 건가….”

왠지 모를 아쉬움이 밀려왔다.

나는 잠시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만약 내가 이 사람들을 모두 따라잡게 된다면, 그땐 어떻게 되는 거지?